소설리스트

The Answer-61화 (61/346)

00061  -  =========================================================================

[어, 이제 끝났어. 괜찮다니까. 아 잠시만.]

데이빗은 잠시 수화기에서 얼굴을 떼며 자신의 재활 훈련을 도와준 트레이너에게 인사를 했다. 트레이너는 수고했다고 손을 흔들어 주고는 이내 차트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데이빗은 다시 핸드폰에 귀를 가까이 가져갔다.

[사실 낫기는 예전에 다 나았지. 검사 결과도 아주 좋았어. 재활 경과도 아주 완벽하다고 하네. 이제 완벽히 나았어. 응, 그러니까 걱정 안해도 돼.]

[일단 리저브에 합류 할거야. 거기서 경기를 치르면서 점검을 해야겠지. 응, 그래 에리카. 무리하지 않을거야. 알고 있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자신의 몸을 걱정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기분 나쁠리는 없었기에 데이빗의 표정은 밝았다. 부상에서 회복되고 재활 치료도 어느 덧 막바지였다. 그 사이 날씨는 어느 덧 쌀쌀해진 것을 느꼈다. 전화를 끊은 데이빗은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중얼거렸다.

[벌써 12월도 중순이구나. 참 시간 빠르네.]

발목을 다쳤을때가 9월, 깁스를 풀고 이리저리 재활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12월이다. 처음에는 복귀까지 2달정도 걸릴거라 예상했는데 1달의 시간이 추가로 더 걸렸다. 그 사이 첫 눈도 벌써 왔었고 이제 입에서 하얀 김이 나오는 계절이 와버렸다.

[정말 재활이라는 거...사람이 할 일이 아닌 것 같아.]

앞으로는 절대 다치지 않겠노라며 머리를 흔드는 데이빗이다. 내일부터 리저브 팀에 합류하여 경기를 치러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복귀 이후 무리는 시키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짧지 않은 회복, 재활 기간을 거친 데이빗에게 다시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

그가 부상당한 이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6억 파운드 이하로는 리버풀을 팔지 않겠다던 구단주는 결국 NESV(New England Sports Venture)의 존 헨리에게 구단을 넘기게 되었다. 존 헨리는 구단의 부채로 남아 있던 3억 파운드 가량을 청산하며 리버풀이 매년 소모하고 있던 2500~3000만 파운드의 빚을 200~300만 파운드 수준으로 낮추었다. 비록 끈질긴 두 미국인 전 구단주로부터 10억 파운드 규모의 소송 루머가 돌고 있었으나 어쨌든 리버풀을 지지하는 팬들은 질레트&힉스 공동 구단주가 리버풀에서 손을 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비록 새로운 구단주 또한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일말의 불안감을 안겨주었으나 최소한 빚을 내서 구단을 인수하지는 않았기에 안심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리버풀의 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두 구단주가 떠난 희소식이 있었다면 시즌 10경기를 치르기 전까지 비판은 듣고 싶지 않다고 했던 로이 호지슨의 리버풀은 역대 최악으로 꼽힐 만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다. 17라운드까지 펼쳐진 프리미어 리그에서 리버풀의 순위는 그야말로 경악할 만한 수준, 리그 18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 티켓을 손에 쥐기는 커녕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리버풀인데, 설마-' 하는 시선도 시즌이 중반으로 접어 들때까지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혹시나? 진짜로?' 하는 시선으로 변해가고 있는 요즘이었다. 구단이 가지고 있던 기록들을 모조리 갈아치우며(물론 안좋은 쪽으로!) 팬들로부터 신뢰를 잃어 버린 호지슨 감독은 그래도 꿋꿋하게 좀 더 나아질 수 있다며 긍정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그 사실이 팬들을 더욱 화나고 열받게 했다)

몇몇의 팬들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무리뉴의 후임으로 인테르 감독에 취임한 라파 베니테즈가 인테르에서 떠날 것 처럼 보이는 기사가 뜨자 그를 다시 데려오자며 구단 건물 담벼락에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데이빗은 'All I WANT 4 X-MAS IS RAFA' 라고 적힌 문구를 보며 실소를 흘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바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다른 감독이 왔으면 좋겠다.]

침을 뱉으며 중얼거리는 데이빗, 현 감독의 구상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으며 있다고 해도 토레스, 은고그에 이은 3번째 옵션일 뿐이었다. 데이빗으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었고 그와 함께 잘해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설마 한 시즌도 안되서 짜르진 않겠지...]

입맛을 다시며 발걸음을 옮기는 데이빗, 고개를 흔들며 상념을 털어 냈다. 이런 생각을 한다고 바뀌는 것도 없을 뿐더러, 중요한 것은 복귀전을 잘 치르는 일이다. 데이빗은 아-하는 탄성을 흘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오, 이게 누구야.]

자신을 반색하며 맞아주는 맥마흔 감독의 모습에 데이빗도 씩 웃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책상 앞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다가와 가볍게 포옹하는 맥마흔, 데이빗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난 앞으로 자네를 TV에서만 봤으면 했는데 말이야! 이렇게 또 보게 되니 반갑다고 해야하나, 유감이라 해야하나?]

[저는 반가운데요. 감독님은 금방 은퇴하실 것 처럼 말씀하시더니 여전히 정정하시네요.]

데이빗의 농담에 크게 웃으며 '뭐 그렇지. 내가 워낙 유능하니까 말이야!' 하고 응수한 맥마흔 감독, 그리고 그에게 자리를 권한다.

[그래, 다쳤다는 말은 들었네. 그 경기를 보기도 했고 말이야. 정말 불운한 일이었어. 이제는 괜찮아 졌다는 보고도 받았고 내일부터 자네가 합류할 거란 말도 들었네.]

그러면서 '뭐, 자네라면 한 두경기 정도만 뛰고 금방 올라갈 테지만 말이야.' 라고 말하며 웃었다. 데이빗은 글쎄요-하며 피식 웃고 말았다.

[당연히 그렇게 될 거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퍼스트 팀의 공격수 사정이 좋지가 못하거든. 토레스도 예전 같지 않고 은고그는 여전히 부족하지. 뭐 보아하니 로이 감독이 자네를 그리 선호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안 쓰고는 못배길 만큼 지금 상황이 안좋거든.]

[팀 상황이 안좋아서 기회를 얻게 되다니 이걸 좋아해야 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데이빗의 말에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준다.

[좋게 생각해. 안 좋은 상황에 올라가서 좋은 상황으로 바꿔주면 되잖나. 마치 지난 시즌 막바지에 그랬던 것 처럼 말이야.]

그러면서 '아마 라파가 남아 있었다면 계속 기회를 얻었을 텐데' 라고 중얼거린다. 데이빗도 그런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뭐, 그거야 올라가서 생각할 일이고, 그래서 오늘 무슨 일로 왔나?]

[그냥 감독님이 보고 싶어서 왔다는 걸로는 안됩니까?]

[이 친구 한번 다치더니 유머가 늘었네. 뭐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렸다고 생각하지.]

사실 즉흥적이고, 그냥 생각나서 들렸을 뿐이었다. 자신이 겪어 본 감독 중(그래봐야 맥마흔을 포함해서 3명이지만) 자신을 가장 아껴주고 믿어준 이였기에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보고 싶었을 지도 몰랐다.

[일단 내일은 팀 훈련이고, 모레에 블랙번하고 리저브 리그가 있어. 아마 자네는 그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를테지. 물론 처음이니 전반 정도만 소화하는 수준에서 그칠거야. 무리는 금물이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데이빗의 마음을 안다는 듯 인자한 미소를 짓는 맥마흔 감독이다. 별 말은 안하고 있지만 불안해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맥마흔은 데이빗의 조급함을 이해했고 이를 진정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게나. 자네는 충분히 젊고 아직 시간은 많아. 자네의 능력이 프리미어 리그에서 통한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지 않았나. 실력은 어디 안 도망가네. 우리 위대한 샹크스가 했던 멋진 말도 있지 않나?]

그러면서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 라고 중얼거렸다.

[자신의 '클래스'를 믿게. 내가 믿고 라파도 믿었을 거야. 그러니 자네도 스스로를 믿게나.]

데이빗은 마음이 뜨거워 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다. 그래서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대답할 수 있었다.

[이틀 뒤, 보여 드려야 겠군요. 저에게 클래스가 있다면, 과연 어느 정도인지 말이에요.]

[괴물이구먼.]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는 맥마흔 감독, 그 시선의 끝에는 방금 블랙번 리저브의 골대에 엄청난 중거리 슈팅을 꽂아 넣고 동료들과 기뻐하는 데이빗이 있었다.

[이봐,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 시간 관념이 좀 부족해지는 것 같은데.]

뜬금없이 코치를 돌아보며 말을 붙이는 맥마흔, 코치는 데이빗의 골에 박수를 치며 기뻐하다 고개를 갸웃하며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라고 응했다.

[아직 전반 10분도 안된 거 맞지?]

[네, 이제 막 10분이 됐네요.]

[그래, 그런데 저 친구는 벌써 2골이나 넣었고 말이야. 난 지금 전반인지 후반인지 잠시 헷갈렸단 말이야. 그래서 저 친구 빼야되는 거 아닌가 하고 고민했지 뭔가.]

감독의 농담에 피식 웃고 마는 코치, 뭐 그 오버스러운 농담처럼 전반 10분만에 2골을 기록하기란 쉬운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부상에서 회복되고 나서 첫 경기인데 전혀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잘뛰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 내가봐도 그래! 뭔가 움직임이 예전보다 더 효율적이야. 크게 변한건 없는데 느낌이 그래.]

그러면서 후유증이 없는 걸로 보이니 다행이군- 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발목쪽에 부상을 입으면 킥을 하거나 드리블을 할때 무의식 중에 발목을 신경쓰다가 제대로 된 동작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좀 전의 중거리 슈팅을 보니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저 친구의 미들 레인지 슛을 보자면, 사실 스티븐 같은 폭발적인 이미지는 아닙니다만...]

[곡선의 미학이랄까, 부드럽고 치명적이지.]

감독의 품평에 고개를 끄덕이는 코치였다.

[정말 그렇습니다. 골키퍼 입장에서는 공이 손 밖으로 달아나는 이미지겠지요. 저런 식으로 휘어져 들어간다면요.]

[슈팅 파워가 특출난 선수는 아니지만 아주 영리하게 찰 줄 아는 선수야. 본능적으로 골키퍼를 엿먹이는 법을 알고 있어. 사실 강한 슈팅이건, 커브를 많이 먹은 슈팅이건 목적은 같으니까 뭐가 더 낫다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나.]

골만 잘 넣으면 장땡이지-라고 덧붙인다. 그 사이 어느새 데이빗에게 날아가는 롱 패스, 코치와 감독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닫고 보기 시작했다. 결과가 뛰어난 공격수 이전에 확실히 사람을 주목시키는 무언가가 있는 선수라고 느꼈다.

[오 마이 갓! 저 친구 지금 블랙번 리저브를 상대로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군요!]

등 뒤에서 날아오는 공을 비스듬하게 점프하며 가슴으로 트래핑, 그리고 공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무릎으로 다시 한번 차올리고 곧 바로 머리로 툭 하고 띄워 놓는다. 연속된 볼 터치에 수비의 발이 순간적으로 굳은 틈을 타 마치 유령처럼 수비를 스치고 지나갔다. 중앙으로 쇄도해 들어오고 있던 같은 팀 공격수를 보고 슬쩍 오른발 인사이드 킥을 준비하는 모습에 수비가 움찔하며 시선이 쏠리자 곧바로 발목을 꺾어 접고 들어간다. 간단한 킥 페인트, 누구나 할 수 있는 동작, 하지만 자연스러운 시선과 톱 스피드에서의 전환은 누구나 할 수 없다.

무인지경, 남은 것은 골키퍼 뿐, 부랴부랴 뛰어나와 보지만 그가 지켜야 할 골문은 너무나도 넓었고 데이빗은 가볍게 구석을 향해 공을 굴렸다. 그리고 전반 13분만에 데이빗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장난 아니네요. 정말. 저도 완전히 속았습니다. 패스 할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속도에서 꺾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구요. 오 이런 괘씸한 녀석! 감쪽같이 속이다니!]

이마를 치며 놀라워하는 코치, 맥마흔 감독도 만만찮게 흥분하여 소리쳤다.

[남들을 속이길 좋아하는 친구지! 이봐! 만약 미스터 호지슨이 저 친구를 부르지 않으면 10분만 출전 시켜야 겠어! 저녀석을 풀타임으로 뛰게 하는 건 상대팀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 될거야!]

[굉장한 친구야.]

경기장 한쪽 구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작은 체구를 가진 초로의 남자가 감상을 내뱉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여기 계셨군요 미스터 달글리시.]

[아, 무슨 일인가 존?]

존이라 불린 남자는 달글리시, 그러니까 리버풀을 지지하는 이들로부터 킹 케니라는 애칭으로 더욱 자주 불리는 그에게 용건을 전달했다.

[보드진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미스터 달글리시가 다음 달부터 리버풀을 맡아 이끌어주길 바란다고 하는군요.]

존의 말에 그런가-하고 중얼거린 달글리시는 고개를 돌려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가타부타 말이 없는 달글리시의 모습에 존은 고개를 갸웃했다.

[팬들도 왕의 귀환을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리버풀은 그만큼 위기이고 로이는 신뢰를 잃었어요. 킹 케니가 귀환하여 이 위기를 헤쳐나간다면 그보다 더 환상적인 미래는 없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한동안 대답없이 그라운드를 지켜보고 있던 달글리시, 얼마나 지났을까, 존이 안절부절한 기색을 보일때 쯤이 되어서야 입을 열었다.

[로이는 조급했어. 사람들은 그를 느긋했다고, 언제까지 긍정적인 변화를 기다리고 있을거냐고 얘기했지만 그는 분명히 조급했네.]

무어라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느낀 존이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달글리시는 딱히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닌 듯 계속 말을 이었다.

[라파는 분명 훌륭한 지도자였어. 그리고 6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지. 그는 지나치게 빠른 시간에 라파의 색을 지우고 자신의 색을 입히려 했어.]

그 색이 리버풀에 맞는 색인가는 둘째치고 말이야 라고 덧붙이는 달글리시, 존은 여전히 그 말을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번 시즌, 리버풀의 추락은 나에게도 큰 슬픔이었지. 그리고 나라면, 내가 감독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고민도 많이 했었다네. 그리고 이제.]

케니의 눈에 힘이 들어오는 것을 느낀 존, 그의 대답이 예상되어서였을까, 존의 표정이 점차 밝아졌다. 이어 힘있는 목소리로 달글리시가 말했다.

[내가 찾은 리버풀의 해답을 증명해볼 차례가 되었군. 보드진에게 감사하네 존.]

말을 마치고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린 달글리시, 그의 시선에 공을 쫓아 질주하고 있는 데이빗의 모습이 들어왔다.

============================ 작품 후기 ============================

九靈感 2014-01-09 19:01

왜! 사랑한다고 말을 못해! 이 미련한 작가야!!!

Re: 딱히 여러분을 사랑하는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심심하고 누워만 있는 것도 힘드니 글을 썼을 뿐이니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