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34화 (34/346)

00034  -  =========================================================================

삑삐익-

경기 종료를 울리는 휘슬이 울렸고 오늘도 승리한 리버풀 리저브 선수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승리를 자축했다. 퍼스트 팀의 부진과는 별개로 지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은 리저브 팀의 약진이었다. 오늘 상대는 블랙풀의 리저브 팀, 애초에 한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았던 팀이었고 리버풀 리저브의 낙승이 점쳐졌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리버풀의 3:0 압승으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오늘도 죽이는데 데이빗!]

오늘 경기에서 2골을 터뜨리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된 데이빗에게 동료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데이빗도 환하게 웃으며 그런 동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지금 벌써 몇골째야? 이제 12라운드인데 벌써 9골이라고!]

[초반에 4경기는 안뛰었잖아. 8경기 9골이지. 진짜 끝내주는데?]

골을 넣는 것이 공격수의 임무라고 하지만 매경기 골을 넣는 것은 탑 클래스의 선수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리저브 레벨이라고는 하지만 현재 세계 최고의 실력을 뽐내는 선수들도 리저브에서 전부 미친듯한 골 폭풍을 기록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세계 최고의 선수중 한명으로 꼽히며 리그를 씹어먹을 듯한 포스를 보여주고 있는 리오넬 메시도 바르셀로나 B팀에 있을 당시(04-05) 22경기에 6골 밖에 기록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리저브에서 뛰어난 활약을 한다고 해서 퍼스트 팀에서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오히려 리저브나 유소년 레벨에서의 활약보다 퍼스트 팀에서의 활약이 더 뛰어난 선수들도 종종 있었다. 물론 메시는 골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뿐이지 충분히 좋은 움직임을 보이며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데이빗의 현재 활약이 폄하받을 부분은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리저브에서 통하지 않는 선수가 퍼스트 팀에서 통할 확률보다 리저브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는 선수가 상위 리그에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요즘 같아서는 진짜 너한테 공만 주면 골을 넣을 것 같단 말야. 실제로도 그렇게 해주고 있고.]

저 선수에게 공을 주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거다. 반드시 골을 넣어줄 거다 라는 믿음, 그런 믿음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일이었다. 데이빗은 최근 꾸준한 활약으로 동료들로부터 그런 믿음을 받기 시작했다. 리저브에 데뷔한지 몇달 되지도 않아 어느새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고 있는 데이빗이었다.

[실례합니다.]

그렇게 승리를 자축하고 있는 리저브 선수들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선수들은 고개를 돌려 말을 붙여 온 남자를 쳐다보았다.

[저는 리버풀에코에서 나온 기자입니다. 요즘 리버풀 리저브가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취재하기 위해 왔죠. 오늘도 멋진 승리를 거두어서 기사를 쓰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늦었지만 오늘 승리 축하합니다.]

점잖은 기자의 모습에 선수들도 가볍게 고개를 숙여 답례를 했다. 퍼스트 팀 만큼 언론에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종종 기자들이 취재를 왔기에 생소하게 느끼는 선수는 없었다. 데이빗만 빼고 말이다.

[데이빗 선수죠? 오늘 두골 아주 멋졌어요.]

[아, 예. 감사합니다.]

[괜찮다면 간단한 인터뷰 괜찮겠습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인터뷰요?!]

순간 잘못들었나 싶었다. 인터뷰라니, 데이빗에게 인터뷰라는 것은 존나 멋지고 후광찬란한 슈퍼스타들이나 하는 것이었기에 지금 상황이 현실감이 없게 느껴졌다.

'인터뷰라고? 지금 이 기자라는 양반 제정신이야?'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자신의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기자의 모습이 있었다.

리버풀에코의 기자 토머스 에드윈은 리버풀 리저브 팀의 취재를 하고 오라는 지시를 받고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 리버풀 퍼스트 팀의 부진이 길어지며 더 콥들의 신경은 꽤나 날카로워진 상태였고 부진일 비판하는 기사를 쓰는 것보다 현재 잘나가고 있는 리저브 팀을 취재하며 희망적인 메세지를 보여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기대대로 오늘도 승리하며 강한 면모를 이어나가는 리퍼풀의 리저브였고 토머스는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선수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아시아쪽에서 발굴해온 유망주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잉글랜드 국적의 선수였고 더 의외의 사실은 리버풀 리저브 이전에 아무런 경력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토머스는 여기서 기자의 본능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이 친구, 꽤 기사거리가 될 만한 선수라는 것을 말이다.

데이빗은 토머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시간을 달라고 했다. 경기를 마친 직후이기에 일단 씻고 나오겠다는 데이빗의 말에 토머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신경쓰지 말고 천천히 해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데이빗은 샤워를 하며 동료들에게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별거 없어. 애초에 리저브 선수에게 민감한 사항을 물어보지도 않을 거고 그냥 무난한 질문이 대부분일 거야.]

[대답하기 좀 난감하다 싶으면 적당히 얼버무리는게 좋아. 잘하고 오라고.]

[별로 그런 것도 없을걸? 리버풀에코라면 우리 지역 언론이잖아. 리버풀 선수에게 호의적인곳이라고. 긴장할거 없어.]

동료들의 반응에 조금은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물론 첫 인터뷰라는 압박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말이다. 데이빗은 평소보다 빨리 씻고 먼저 샤워실을 나섰다.

[일단 에리카에게 오늘 갑자기 인터뷰가 잡혀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얘기해줘야 겠지.]

옷을 입고 핸드폰을 열어 똑딱거리는 데이빗, 에리카는 연락이 안되거나 늦는걸 싫어했기에 미리미리 연락을 해주어야 했다.

[좋아, 그럼 가볼까.]

메세지도 보내놨고 이제는 인터뷰만이 남았다. 데이빗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토머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토머스와 만나기로 한 곳은 경기장 근처의 카페였다. 그냥 경기장 내부에서 할 줄 알았는데 토머스가 편한 자리에서 인터뷰를 하자며 요청했기에 데이빗도 별 생각 없이 수락했다. 데이빗은 빠른 발걸음으로 토머스가 알려준 카페로 향했다.

[아 여깁니다. 일찍 오셨네요.]

카페 문을 열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데이빗의 눈에 일어서서 손을 들고 있는 토머스의 모습이 들어왔다.

[많이 기다리셨나요? 최대한 빨리 씻는다고 했는데.]

[아니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천천히 오셔도 됐을텐데.]

그러면서 노트북을 툭툭 치는 모습이다. 힐끗 살펴보니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오늘 경기를 취재했으니 기사를 써야죠. 오늘 리버풀 리저브가 이겨서 저도 기사 작성하는데 기분이 좋습니다. 진 경기를 기사로 쓰는 건 최악이거든요.]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도 콥이라고 했다. 데이빗은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 멋적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음료 한잔 시키시죠. 제가 사겠습니다.]

데이빗은 괜찮다고 손사래 쳤으나 계속 강권하는 토머스의 모습에 수락했고 토머스는 점원을 불러 주문을 마쳤다. 그리고 노트북을 몇번 두드리더니 씩 웃으며 인터뷰를 시작하자고 했다.

[일단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까 얘기했지만 다시 소개를 하자면 리버풀에코 소속의 기자 토머스 에드윈이라고 합니다. 주로 리버풀FC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죠.]

[반갑습니다. 올해 리버풀 리저브에 합류한 데이빗 장이라고 합니다.]

[먼저 오늘 경기 승리 축하드립니다. 오늘 두골이나 기록하셨는데요. 요즘 골 감각이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컨디션이 괜찮은 것도 있지만 동료들의 패스가 좋았습니다.]

[제가 기록을 살펴보니 리저브 리그에서 8경기를 뛰며 9골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리고 어시스트도 5개나 기록하셨네요. 8경기에 공격포인트가 무려 14개인데 이런 좋은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토머스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데이빗이다.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지만 좀 더 좋은 대답을 하고 싶었다.

[좋은 팀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공격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줍니다.]

[동료들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것 같아 보기가 좋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프로에 데뷔하셨는데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습니다. 전문적으로 축구를 배우지 않았고 운좋게 리버풀에 합류했기에 잘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죠. 하지만 맥마흔 감독님, 그리고 코치분들이 잘 지도해주셨고 동료들도 친근하게 대해주어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토머스의 손길이 점점 빨라졌다. 데이빗은 마침 주문한 음료가 나온 것을 받아 한모금 마셨다.

[방금 전문적으로 축구를 배운 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럼 어떻게 리버풀 리저브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까?]

[운이 좋았어요. 사실 저는 리버풀 항구에서 일하는 노동자였거든요. 그런데 친구 중의 한명이 리버풀FC의 스카우트를 알고 있었고 저에게 소개시켜주었습니다. 덕분에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운 좋게 리버풀에 합류할 수 있었죠.]

토머스는 이어 데이빗에게 항구에서의 생활과 스카우트 당시 있었던 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질문했고 데이빗은 꾸밈없이 솔직히 이야기했다.

[정말 놀랍습니다. 데이빗씨는 본인이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리버풀 구단이 더 운이 좋아보이는군요. 공짜로 뛰어난 유망주를 얻게 된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종종(?) 들었던 칭찬이었지만 인터뷰 도중에 듣게되니 참 낯이 간지러웠다. 데이빗은 뺨을 긁으며 음료를 다시 한모금 마셨다. 그런 데이빗을 웃으며 지켜보던 토머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데이빗씨는......]

[오늘 시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 것 같네요.]

카페에서 일어서며 악수를 청하는 토머스, 데이빗도 마주 손을 내밀어 살짝 악수를 나누었다.

[그럼 앞으로도 좋은 경기 이어가시고 빠른 시일내에 퍼스트 팀에 올라가시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토머스는 빨리 가서 기사를 정리해야할 것 같다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데이빗은 처음 겪는 인터뷰가 끝나자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털석 자리에 앉아 크게 한숨을 내쉬어 본다.

'인터뷰라니...정말 믿을 수가 없네.'

웃긴 얘기였지만 데이빗은 첫 인터뷰를 치르고 나자 그 어느때보다도 자신이 축구 선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에 에리카가 리버풀 홈페이지에 나에 대한 글이 올라 왔었다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자신이 유명(?)한게 아닌가 싶었다. 그때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졌고 데이빗은 고개를 돌렸다.

[어? 에리카?]

특유의 밝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에리카의 모습에 데이빗은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고 있어?]

[아니 별로 그런건 아닌데...넌 어떻게 알고 여기에 온거야?]

[오늘 나도 경기보러 갔었잖아. 그런데 네가 인터뷰한다길래 시간이 좀 걸릴테니까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려고 했어. 그래서 여기에서 시간 때우고 있는데 네가 들어오잖아? 부르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이 널 부르는 걸 보고 가만 있었어.]

그러면서 너 인터뷰하는 거 다 구경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표정이 상당히 장난스러웠기에 데이빗은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상했어? 나 처음 인터뷰라 진짜 긴장 많이 했는데.]

데이빗의 말에 쿡쿡 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에리카였다.

[완전히 얼어 있던데? 뭐 첫 인터뷰니까 어쩔수 없긴 하지만.]

그러면서 앞으로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해보라고 했다. 데이빗은 그런 에리카의 말에 차라리 훈련을 빡세게 하는게 더 나을 것 같다고 가볍게 투덜거렸다.

[근데 내가 인터뷰라니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 일어 났어. 난 인터뷰 같은건 진짜 슈퍼 스타들만 하는 건줄 알았는데.]

[앞으로 슈퍼스타가 되면 되잖아. 너 앞으로 유명해진다고 바람피면 안된다?]

[내가? 그럴리 없잖아. 애초에 슈퍼스타도 아니지만 말이야.]

[나중에라도 말이야! 알았지? 축구 선수들 유명해지면 막 스캔들 장난 아니잖아. 안그런 선수들도 있긴 하지만...넌 절대 그러면 안돼!]

평소와 조금 다른 에리카의 모습에 데이빗은 웃음이 나오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도 귀여웠지만 묘하게 질투하는 듯한 모습이 더 귀엽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벌써부터 그런 걱정을 한다는 사실이 재밌고 귀여웠다.

[너 왜 웃는거야? 진짜 바람피우기만 해봐. 정말 가만 안둘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