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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swer-29화 (29/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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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은 라커룸에 앉아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선발 명단을 부르는 감독, 다행히 자신의 이름이 들어있었다. 파체코와의 대화 덕분이었을까, 평소보다 감독의 지시가 잘 들리는 느낌이었다.

'아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한귀로 흘렸는지 알겠네.'

입맛이 썼다. 말로만 예스라고 했지 실제 경기에서는 하고 싶은대로 천방지축으로 날뛰기만 했다. 어쩐지 감독이 그간 자신을 전반만 기용하고 후반에 바로 교체시킨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내심 그냥 확실히 말해주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쓴 웃음을 지을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자신에게 따로 주변과의 연계플레이에 좀 더 신경쓰라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감독님.]

확실하게 인식했다는 뜻을 표현한다. 감독도 평소 데이빗의 태도와는 다르다고 느꼈는지 살짝 눈이 커졌다. 그러더니 미소를 지으며 데이빗의 어깨를 툭 하고 쳐준다.

신발끈을 다시 한번 고쳐매본다. 너무 꽉 묶으면 발이 답답한 느낌이 든다. 적당히, 하지만 풀리지 않게 매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때 자신의 옆에 털썩 하고 주저 앉는 사람이 있었다.

[오늘 잘 부탁한다고 파트너.]

보는 사람이 기분 좋아질 정도의 미소를 짓고 있는 파체코, 넉살좋게 데이빗에게 어깨동무를 걸어오며 말을 붙여왔다.

[오케이. 한번 날뛰어보자.]

씨익 웃으며 주먹을 마주치는 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라운드로 향했다.

[거 경기장 상태가 영 엉망이네.]

혀를 차며 중얼거리는 스피어링이다.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그라운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전형적인 잉글랜드 날씨답게 경기 전부터 갑자기 비가 쏟아졌고 지금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문제는 그라운드 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는지 중간중간에 잔디가 패인 부분에 물이 살짝 고여 있었던 것이다.

[뭐 어쩌겠어. 상대도 마찬가지니까 같은 조건이니 불만은 없어.]

데이빗은 솔직히 신경이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이정도 상태면 예전 항구에서 공을 찰 때나 그보다 더 어린 시절 자신의 아지트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제대로 정비된 그라운드에서 뛰어본 적이 없다시피했기에 다른 이들보다 그라운드 컨디션에 영향을 받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오늘 리버풀이 상대할 팀은 에버튼 리저브였다. 퍼스트 팀 간의 대결을 두고 머지사이드 더비라고 할 만큼의 라이벌 전이었고(비록 프렌들리 더비라고 불릴만큼 우호적인 더비였지만) 이는 리저브 간의 대결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그만큼 양팀의 선수들의 경기에 대한 의욕은 높았다.

삐익-

심판의 경기 휘슬이 울렸고 양 팀 선수들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저브 팀 전력에 있어서는 리버풀 리저브는 잉글랜드 내에서 손꼽히는 팀이었고 에버튼 리저브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오늘 에버튼의 선수들은 정신 무장상태가 꽤나 투철한듯 했고 예상외로 초반부터 팽팽한 힘겨루기가 진행되었다.

[둘러싸! 돌아서게 하지 말라고!]

[이쪽이야! 공을 돌려!]

선수들의 고함소리가 울려퍼졌다. 데이빗도 어설프게나마 전방압박에 참여했고 끊임없이 동료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보조를 맞추고자 노력했다.

[평소보다 열심히 압박에 참여하는 것 같군요. 아직 쓸데없는 움직임도 많고 다른 동료들의 움직임에 완전히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지만요.]

벤치에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던 코치가 데이빗의 압박에 대해 간략하게 평했다. 맥마흔 감독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애초에 수비 전술에 있어서 완벽한 움직임을 보여주길 기대하기엔 저 친구와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이 너무도 짧지. 하지만 움직임에 망설임은 없어. 자신감 있게 뛰고 있고 무엇보다 적극적이지. 그동안 수비 가담이 좋지 못했기에 아쉬운 점이 많았는데 오늘 저런 태도라면 충분히 만족스럽군.]

그런 그들의 눈에 미드필드에서 상대의 공을 끊어 내는 스피어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리버풀 공격진의 움직임이 변하기 시작했다. 투 톱을 이루고 있었던 파체코와 데이빗이 빠르게 전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후방에 포진되어 있던 인원들도 함께 라인을 올리기 시작했다.

[데이빗!]

스피어링의 선택은 데이빗이었다. 최근 워낙 컨디션이 절호조에 이른 데이빗이었기에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데이빗은 달려나가던 스피드를 죽이지 않은 채 왼발 인사이드로 가볍게 공을 받아냈다. 동시에 급격한 방향전환으로 자신을 마크하던 수비를 제쳐냈다. 데이빗에게 있어 볼 트래핑과 드리블은 별개의 동작이 아니다. 파체코는 그런 데이빗의 움직임을 보고는 빠르게 페널티 박스로 침투해 들어갔다.

[슈팅을 막아!]

수비수 한명이 어처구니 없을만큼 쉽게 나가떨어져버렸다. 그랬기에 데이빗의 슈팅 코스를 막기 위해 한 명의 수비수가 더 필요한 에버튼이었고 이는 페널티 박스 내 수비라인에 구멍이 생김을 뜻했다. 그렇다고 해도 데이빗을 마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는 지난 경기에서 보인 데이빗의 개인기 위주의 플레이 때문이기도 했다.

'리버풀의 데이빗이라는 친구가 요즘 꽤나 좋은 모습을 보인다고 하지. 하지만 이 선수는 공을 몰고 대부분 혼자 몰고 들어올 뿐이야. 패스는 거의 하지 않으니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수비하기 바란다.'

자신들의 감독의 말대로 데이빗은 공을 받고 드리블을 시작했고 빠르게 몰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체코가 신경쓰이긴 했지만 이 녀석은 패스를 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패스에 대한 생각을 아예 접고 데이빗의 돌파와 슈팅만을 견제하는 수비수였다. 방금 전 수비수를 제쳐내는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았기에 데이빗의 발놀림 하나하나에 집중력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에버튼 수비진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최악의 수가 되고 말았다. 데이빗은 평상시와 달리 자신에게 마크가 쏠리는 움직임을 알아챘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파체코를 정확히 보고 있었다. 굳이 슛 훼이크를 줄 필요도 없다. 강한 스루패스도 필요없다. 가볍게 파체코의 발 앞에 공을 밀어주기만 하면 끝이다. 데이빗은 이를 실행했다.

[뭐야!?]

당황한 수비진들에게서 기함이 터져나왔다. 너무나도 평범한 패스, 하지만 그 패스를 끊어 낼 만한 선수가 에버튼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수비수들의 시선이 데이빗에게 집중되었고 평소와 달리 데이빗은 혼자 뚫고 들어가는 패턴이 아닌 패스를 선택했다. 당연히 파체코의 앞은 무인지경이었고 패스는 정확히 파체코의 오른발에 안착했다.

'나이스 패스!'

파체코는 속으로 연신 나이스를 외쳤다. 라스트 패스 찬스에서 적지 않은 선수들이 범하는 실수 중 하나가 킬패스를 의식한 나머지 빠르게 패스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패스가 너무 길거나 받는 이의 쇄도 타이밍과 어긋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패스는 받기에 정말 편한, 그야말로 사랑스러운(lovely) 패스였다. 이런 완벽한 찬스를 망칠 정도로 자신은 얼간이가 아니었다. 파체코는 침착하게 데이빗이 만들어 준 찬스에 마침표를 찍었다.

[멋졌어 파체코!]

[나이스 패스 데이빗!]

파체코는 별다른 세레모니를 하지 않고 자신에게 찬스를 만들어준 데이빗을 향해 팔을 벌리고 뛰어갔다. 이내 서로를 강하게 부둥켜 안는 두 사람이었고 곧 이어 다른 선수들이 둘을 덮쳤다.

[오늘 데이빗은 확실히 다르네요! 정말 멋진 패스 아닙니까?!]

벤치에서도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른 시간 선제골을 기록했기에 코칭 스탭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거기에 데이빗이 이전처럼 혼자 날뛰는 플레이로 기록한 골이 아니라 멋진 팀 플레이로 기록한 골이었기에 기쁨은 더욱 컸다. 코치는 자신의 말에 뭔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감독을 슬쩍 쳐다보았고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맥마흔 감독은 어느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연신 '그레이트! 퍼펙트!' 를 외치며 말이다.

이른 시간에 일격을 맞은 에버튼이 전열을 정비할 새도 없이 리버풀은 강하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완전히 미드필드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틀어쥔 리버풀은 쉴새없이 에버튼을 몰아붙였다. 전반 15분, 왼쪽 사이드에 머물고 있던 데이빗이 중앙쪽으로 쇄도하며 손을 크게 들었다. 오른쪽 사이드 라인을 타고 오버랩 해 올라온 마틴 켈리는 그런 데이빗을 향해 땅볼 패스를 깔아주었고 수비수들은 그런 데이빗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불어 첫 실점 장면에서처럼 파체코나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데이빗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파체코는 페널티 박스 근처, 오프사이드 라인 언저리에서 쇄도 타이밍을 잡고 있었다. 그의 눈에 데이빗이 순간적으로 중앙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들어왔고 얼마전 그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공을 잡으면 네가 원하는 위치로 달려들어가. 어떻게 해서든 너에게 연결시켜 줄게. 날 믿는 다면 의심하지 말고 뛰도록 해.'

생각해보면 그에게서 받았던 몇차례의 패스를 자신이 날려먹은 것은 그의 패스 타이밍이 예측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반응이 늦어서였다. 그랬기에 그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고 지금 데이빗을 의심하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좋은 공간을 잡아낸다면 그는 자신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파체코에게 생기기 시작했다.

데이빗은 상대 수비가 좀 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좀 전에는 자신에게 과도하게 신경이 팔려있었다면 지금은 자신을 견제하면서도 다른 선수들에 대한 마크를 잃지 않고 있었다. 딱히 뚫어내지 못할 수비는 아니었지만 더 좋은 방법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데이빗은 속도를 끌어올리며 마틴 켈리가 밀어준 공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3m, 2m, 1m, 공과의 거리가 가까워져 올수록 데이빗을 마크하는 수비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번에야 말로 발을 걸어서라도 막아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그의 눈에 데이빗이 공을 그대로 흘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아니, 흘리는 듯 했다.

데이빗은 공을 흘리는 척하면서 그대로 오른발을 뒤로 빼면서 공을 가볍게 찼다.  라보나 킥, 한템포 느리게 터진 데이빗의 라보나 킥에 상대 수비진들은 반응하지 못했다. 느린 로브 볼, 마치 상대 수비를 약올리는 것 처럼 유유히 페널티 박스를 지나 파체코의 앞에 정확히 전달되었다. 누구도 반응하지 못한 패스에 파체코만이 반응했고 너무도 간단하기 두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키며 환한 웃음과 함께 뛰어오는 파체코의 모습에 데이빗도 스스로 골을 기록할 때와는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파체코와 포옹을 나누는 데이빗의 표정은 그 어느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오 마이 갓! 자네 지금 패스 봤나? 믿을수 없어! 으하하하하! 믿을 수 없다고!!]

[엄청나네요! 저런 패스라니! 정말 환상적인 패스군요!]

코치도 감탄했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맥마흔 감독은 코치의 표현이 적합하지 않다고 느꼈는지 흥분이 그대로 남아있는 말투로 빠르게 소리쳤다.

[저건 천상의 터치야! 분명 잠깐이지만 성스러운 무엇인가가 데이빗에게 닿았을 게 분명해! 정말 시간이 그대로 멈추는 줄 알았다고! 빌어먹을! 이럴때는 리저브 경기라는 사실이 정말 미치도록 원망스러워. 리플레이로 다시 보고 싶어지지 않나?! 이봐, 오늘 경기 분명히 찍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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