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4 - =========================================================================
웨스트 코치와의 트레이닝은 말 그대로 '별도' 의 훈련이었다. 당연히 리저브 팀의 일정은 그대로 소화를 해야 했다. 데이빗은 오전에 리저브 팀 훈련을 소화하며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넓혔고 오후에는 웨스트 코치와 개인 트레이닝을 소화했다.
그런데 리저브 리그가 개막한 지금, 개인 트레이닝을 무리하게 소화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웨스트 코치와 상의하여 경기에 출전하는 날, 거기서 풀타임 출전인지, 교체 출전인지, 교체라면 몇분을 소화하는지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훈련 일정을 세밀하게 조정했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맥마흔 감독은 데이빗이 개인 트레이닝을 진행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뒤 경기 투입 시기를 조절하겠다고 이야기 한 이후 별다른 언급없이 데이빗을 경기에 집어넣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일정을 세부조정한 보람없이 처음 계획대로 소화해 나가고 있었다. 시즌은 개막했지만 데이빗의 생활은 시즌 개막 전이나 다를바가 없었다.
사람은 참 적응이 빠른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훈련 4주차에 접어 들자처음 트레이닝을 시작했을 때 화장실에서 토하고 비실댔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힘들긴 했지만 충분히 버틸만 했고 그런 데이빗의 변모에 웨스트 코치도 만족스러워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웨스트 코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맥마흔 감독은 책상앞에 앉아 이런 저런 서류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바쁘신가 보군요. 잠시 후에 다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문을 다시 닫고 나가려는 웨스트 코치, 맥마흔 감독은 서류를 덮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니었어요. 이리 앉으시죠.]
그 말에 그럼 잠시 실례-라고 말한 웨스트 코치, 감독이 이끄는 자리에 앉았다. 맥마흔 감독은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웨스트 코치에게 권했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며 간단한 신변잡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두사람, 어느 정도 시간을 할애하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데이빗의 훈련에 관해서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 데이빗 말이군요. 안그래도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어떻게 그 친구 훈련을 잘 소화하고 있습니까?]
기대감 어린 감독의 눈빛에 웨스트 코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데이빗에게 거는 기대가 큰가 보군요.]
[저만 그렇겠습니까? 데이빗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 친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궁금해할겁니다.]
'내가 멍청한 말을 했군.'
하긴 기대가 안된다면 자신도 이렇게 열성적으로 한 선수를 위해 매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내심 고개를 주억거린 웨스트 코치는 분명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군요.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데이빗은 이제 개인 트레이닝보다 실전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일단 1차적으로 목표했던 수준은 달성했습니다. 이제는 실전을 치르며 자신의 몸을 쓰는 법을 경험으로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 트레이닝도 조금씩 병행해야겠지요.]
웨스트 코치의 말에 반색하는 맥마흔 감독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군요. 수고 많았습니다 웨스트 코치.]
[별말씀을. 워낙 훌륭한 선수라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겸손하게 했지만 웨스트 코치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과 뿌듯함이 드러나 있었다. 맥마흔은 조용히 웃었다.
[그나저나 데이빗 그 친구도 보통이 아니군요. 웨스트 코치의 프로그램은 소화하기 만만치 않기로 리버풀에서 정평이 나있는데 잘 소화하는 걸 보니 말이죠.]
[생긴 것 답지 않게 끈기가 있더군요. 드러내놓고 표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승부욕이 강해보입니다.]
[호, 그렇습니까. 그건 의외로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감을 표시하는 맥마흔 감독이다. 기다리고 있던 마지막 퍼즐 조각이 손에 들어왔다. 자신의 임무는 데이빗이라는 원석을 빛나는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더 콥들 앞에 선보이는 것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이런, 나이가 들수록 성질이 급해지는 것 같아 문제입니다. 코치의 말을 듣고 나니 빨리 그 친구를 경기에 투입하고 싶어지는군요.]
'이해합니다. 제 심정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나는 그 친구를 출전시키면 감독으로서의 자세를 잃을 것 같아 두려워집니다. 이 녀석이 경기장에서 무슨 일을 저지를까. 어떤 놀라운 플레이로 나를 즐겁게 해줄까 하는 기대가 든단 말이에요. 이제 슬슬 감독직을 내려놓고 팬으로 돌아갈 때도 되지 않았나 싶군요.]
[오늘 저와 감독님이 비슷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되는군요.]
저도 그렇습니다-라고 덧붙이는 웨스트 코치의 모습에 씨익 미소를 짓는 맥마흔 감독이었다.
[아마 데이빗 그 친구가 나를 곧 팬의 자리에서 즐겁게 만들어 줄거라 기대되는군요. 데이빗을 완성시키는 것이 내 커리어의 마지막이라면 그보다 더 보람된 일은 없을겁니다.]
웨스트 코치가 방을 나가고 맥마흔 감독은 책상에 어지러이 놓인 서류를 정리하고 가져온 데이빗에 관한 리포트를 펼쳤다.
이름: 데이빗 장(David Chang)
출생: 1990.05.22(현재 19세)
국적: 잉글랜드(England)
신장: 183.2cm
체중: 72kg(입단 이후 3kg 증가)
포지션: 포워드
클럽: 리버풀(리저브)
코멘트
-19세의 이 어린 신인의 최대 장점은 빠른 주력과 정교한 볼 컨트롤이다. 우리는 이 선수의 스피드와 기술은 퍼스트 팀에서도 최상위권이라 생각한다.
-공격시 드리블 돌파를 상당히 선호한다. 패싱 센스도 좋으나 주로 라스트 패스 찬스가 아니라면 본인이 뚫고 들어가려는 경향이 있어보임. 빌드업 시 주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를 익힐 것을 요망.
-지구력에서 평균 이하의 모습을 보임.(프리 시즌 트레이닝을 통해 어느 정도 보완됨.)
-몸싸움 저항 능력이 매우 부족함. 이를 보완하지 않고 경기에 투입할 경우 부상이 우려됨.
스카우트 평점
슈팅- 9/10
패스- 7/10
태클- 2/10
헤딩- 7/10
속도- 10/10
시야- 8/10
현재능력- 7/10
잠재능력- 10/10
전체 스카우트 평점 - 60/80
*전체 평점 참조
00-10 가망이 없다.
11-20 다른 곳에서 찾아봐라.
21-30 성공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31-40 할 일은 한다.
41-50 그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51-60 위대한 가능성이 있다.
61-70 최고로 가는 중이다.
71-80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
.
.
.
보고서를 읽는 내내 만족스러운 미소가 맴돌았다. 입단과 동시에 탑 프로스펙트 급의 선수라니, 그것도 전문적인 지도를 받지 않은 선수가 말이다. 물론 아무리 좋은 평가를 받고 기대가 되는 유망주라고 해도 그 재능을 만개하지 못한채 그저그런 선수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생각보다 유망주가 기대대로 성장해주는 일은 적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가 바로 맥마흔 감독이었고 말이다.
[말년에 참 복도 많군.]
유소년 내지 리저브 팀 감독에게 로컬보이가 팀의 핵심, 나아가 최고의 선수가 되는 것 만큼 기쁜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있는 선수가 지금 자신에게 있다. 맥마흔은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이 꿈을 현실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데이빗은 에리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처음 그녀와 갔었던 베트남 레스토랑은 어느새 둘의 단골집이 되었다.(에리카의 말대로 가격도 적당했고 맛이 괜찮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중 데이빗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데이빗? 나 웨스트 코치야. 통화 가능한가?
[네? 예, 긴 용건이 아니라면 괜찮습니다.]
-짧고 행복한 용건이 될거야. 장담하지. 아마 자네는 전화를 끊고 만세를 부를거야. 그리고 행복한 비명을 지르겠지.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지금 너하고 나하고 하고 있는 트레이닝 있지? 이제 다음 프리시즌 전까지는 아마 거의 못하게 될 거야?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의아해하는 데이빗의 말에 수화기 건너편에서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그맣게 '척하면 착하고 알아 들어야지' 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아니 뜬금없이 그렇게 말해봐야 내가 무슨 말인지 알겠냐고.'
속으로 투덜거려본다. 그런 데이빗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 처럼 웨스트 코치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리저브 리그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말이야. 시즌 중에 그런 하드한 피지컬 트레이닝을 하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아. 애초에 그래서 너와 시즌 개막 이후에 세부 일정을 조정하려 했었던거고. 그런데 맥마흔 감독은 어설프게 조정하는 것 보다 일정 수준을 만들어 놓고 리그를 치르자고 했어. 그리고 이제 너는 우리가 원하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생각해.]
웨스트 코치의 말이 이어질수록 데이빗은 기대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말이 길어졌네. 결론은 다음 경기에서 네가 뛰게 되었다는 얘기야. 내일 모레 블랙번하고 리그 경기가 있는거 알지? 그 경기에서 뛰게 될 거니까 충분히 몸 관리 잘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그래, 넌 잘 할 수 있을거야. 나도 기대하고 있어. 그럼 좋은 저녁 보내라고.
전화를 마친 데이빗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았기에 조급해지지 말자고 다짐했고 차근차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달갑지 않았다. 조금은 모순된 감정일 수도 있었지만 이제 경기에 뛸 수 있을거라고 알려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전화야? 굉장히 기분 좋아 보이는데?]
[아, 나 다음 리저브 리그 경기에서 뛸 수 있을 것 같아. 코치님 전화였어. 다음 경기에서 뛸 거라고 준비하고 있으래.]
데이빗의 말에 눈을 크게 뜨는 에리카, 이내 환하게 웃으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정말 축하해 데이빗. 그동안 열심히 한 보람이 있네. 나도 정말 기뻐.]
[고마워. 사실 난 한동안은 계속 개인 트레이닝 위주로 시간을 보낼 줄 알았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야.]
그러면서 '나도 이제 공식전에 출전하게 된 거라고!' 라며 기뻐하는 데이빗이었다.
[근데 그 경기는 언제 치르는 거야?]
[이틀 뒤에 블랙번 리저브하고의 경기래. 그러니까...일요일이네.]
데이빗의 말에 미소가 더욱 짙어지는 에리카였다. 에리카는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정말? 아 일요일이면 나도 아르바이트 쉬는 날이잖아. 정말 잘됐다. 나 구경가고 싶은데, 괜찮지?]
에리카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데이빗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괜찮겠어? 내가 알기로 우리 리저브 경기장은 좀 멀리 떨어져 있는데, 솔직히 퍼스트 팀 경기만큼 재미있지도 않을 거고.]
눈치라고는 쥐뿔도 없는 데이빗의 말에 에리카는 살짝 핏줄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에리카는 표정관리를 하며 말을 이었다.
[괜찮아. 나도 리저브 경기장에 멀리 있는 건 알아. 그래도 꼭 보고 싶어.]
그러면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가 가면 부담스러워?' 라고 물어오는데 데이빗은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아냐. 부담스럽기는. 절대 그런거 아니야.]
그러면서 여전히 조그맣게 '재미 없을까봐 그러지.' 라고 중얼거리며 눈치를 보는 모습이었다. 에리카는 간신히 표정을 관리하는데 성공했다.
============================ 작품 후기 ============================
술은 참 묘한 것이...한번 과음해서 고생하면 다시는 술 안먹어야지 하면서도 며칠 지나면 똑같이 처묵처묵하게 되네요. 쩝;
오늘은 간만에 리리플을 한번 하겠습니다~
OLD-BOY : 잘 봤습니다. [2013.08.10 13:34]
RE: 항상 코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임페리어 : 오늘은 주말이니까 연참입니까!? [2013.08.10 12:10]
RE: 죄송합니다. 주말이니까 숙취였습니다.ㅠㅠ
SPARTANS : 재미집니다 ㅎㅎ [2013.08.09 23:41]
RE: 앞으로도 재미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데롱데롱 : 재밎어요 추추추천필수 [2013.08.09 23:19]
RE: 필수! 감사합니다~
후룽굴루 : 질투에 눈먼 남자는 귀요미 [2013.08.09 23:08]
RE: ㅋㅋ귀여워보인다니 다행이네요. 쓰면서 최대한 찌질해보이지 않게 쓰려고 했는데 그럭저럭 성공한듯 싶습니다.
도끼천사야 : 어뜬아르바이트일까 ㅋㅋㅋ 같이살자로갔어면좋긋네 ㅋ [2013.08.09 23:05]
RE: 왜 말을 못해~ 저여자가 니여자라고 왜 말을 못하니~
에스티니안 : 짧은시간에 이정도 퀄리티에 용량이라니...대박!!!!! 작가님도 불금 잘즐기세요. [2013.08.09 22:57]
RE: 회사에서 쓰니까 뭔가 쫄깃하면서도 글이 잘써지더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