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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팀과의 경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09-10 프리미어리그가 개막했다. 리버풀은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토튼햄 원정 경기로 리그 개막을 치르게 되었고 이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첫 시작을 기분좋게 출발하는 데 실패했다. 이 경기에서 리버풀에게 생각보다 사비 알론소의 빈 자리가 크게 느껴졌고 토튼햄은 그런 리버풀의 약점을 집요하게 노렸고 효율적인 압박을 가했다. 전반 44분에 아수 에코토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간 리버풀은 후반 11분 제라드가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며 원점으로 만들었지만 동점을 만든지 3분만에 세바스티엔 바쏭에게 실점을 허용하며 1:2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베니테즈 감독은 두번째 골 실점 이후 요시 베나윤, 안드레이 보로닌을 교체투입시키며 공격 강화를 꾀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패배도 뼈아팠지만 경기중 리버풀의 중앙 수비의 핵심인 제이미 캐러거와 마틴 스크르텔이 공중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서로 부딪히며 경미한 부상을 입게 된 것도 악재였다. 아게르가 개막을 앞두고 부상으로 전력을 이탈했기에 급히 리저브 팀에서 대체 자원으로 다니엘 아얄라를 콜업시켰는데 거기에 한번 더 구멍이 생기게 된 꼴이었다.
루카스는 프리시즌에서의 좋지 못한 모습을 벗지 못했고 리버풀의 미드필드가 토튼햄에게 유린당하는데 빌미를 제공했다. 마스체라노는 수비하기 바빴고 전방의 토레스는 고립되었고 제라드의 위치는 애매해졌다. 결국 양쪽 윙어의 돌파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공격 루트의 단조로움으로 나타났고 토튼햄은 이를 쉽게 막아냈다.
[거 개막부터 시작이 영 좋지 못하네.]
입맛을 다시며 신문을 던져놓는 웨스트 코치, 데이빗은 그 앞에서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가 하고 있는 운동은 데드 리프트로 선 상태에서 바벨을 잡고 허리를 바닥과 수평이 되게 숙였다가 일어서는 동작으로, 허리와 함게 엉덩이, 허벅지 근육을 강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목표치를 채웠는지 바벨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데이빗은 옆에 준비해놓은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저도 경기를 봤어요. 스피어링은 출전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던 걸요.]
지난 연습시합이 끝나고 퍼스트 팀으로 콜업된 스피어링이었다. 아무래도 미드필더의 공백이 크다고 판단한 베니테즈 감독이었기에 연습경기에서 아주 인상적인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무난한 모습을 보인 스피어링을 콜업시키기로 결정했고 얼마전에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스피어링은 퍼스트 팀에 합류했었다.
[아무래도 지고 있는 상황에서 검증 안된 유망주를 넣기에는 좀 그렇잖아? 공격수라면 모를까.]
그 말에는 데이빗도 조금은 공감하는 바였지만 경기를 직접 본 입장에서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스피어링이 루카스보다 더 뛰어난 선수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루카스는 분명 그 경기에서 폼이 좋지 못했고 경기가 말린 첫째 요인은 미드필드에서 패스가 원활하게 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공격수만 넣어서 해결되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감독도 생각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뭐 일단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1분 지났지? 다시 한세트 시작하자.]
코치의 말대로 지금 데이빗에게는 전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고 데이빗도 그에 동의했다. 그리고 다시 자세를 잡고 천천히 바벨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자세가 중요해. 너도 알겠지만 지금 들어올리는 무게가 그렇게 무겁진 않아. 그렇다고 대충 들어올리면 부상, 특히 허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가 있어. 특히 지금처럼 여러 세트를 반복하고 지쳤을때 그럴 위험이 커. 힘드니까 아무래도 자세가 풀어지게 되는거지. 지금 너 처럼 말이야. 허리 굽히지 마. 고개 들어.]
잘못된 자세를 지적하는 코치였고 데이빗은 코치의 말대로 자세를 수정했다.
[좋아. 힘들다고 대충하면 효과도 없고 다칠 위험이 크다는 점을 잊지말도록 해. 마지막 세트야. 확실하게 끝내고 다음 훈련으로 넘어가자.]
[자 오늘 할 마지막 프로그램이야. 며칠간 해와서 알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네가 보디빌더가 되는 것이 아니야. 쓸데없이 근육량을 늘려봐야 네 최고의 장점만 사라질 뿐이겠지.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훈련이 될거야. 매일 말해서 지겹겠지만 그만큼 중요하단 얘기니까 집중해서 하도록 하자. 오케이?]
데이빗과 웨스트 코치의 앞에는 기다란 사다리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들이 할 훈련은 사다리 트레이닝(Ladder Step Training)으로 민첩성과 균형감각, 거기에 심폐기능강화까지 꾀할 수 있는 훈련이었다. 데이빗은 첫날 이 훈련을 얕보고 덤벼들었다가 화장실에서 자신이 점심때 무엇을 먹었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먼저 기본적인 스텝으로 사다리 안쪽을 찍으며 통과하는 게 첫번째, 두번째는 안쪽을 찍으며 무릎을 들어올리는 동작을 추가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사다리 안쪽을 찍은 발로 다시 바깥쪽 땅을 찍고 나오는 동작이 추가 되고 네번째는 뒤돌아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마지막은 옆으로 서서 앞뒤로 스텝을 이어나가는 방식으로 총 5가지의 방법으로 진행되었는데 각 방법을 한번씩 진행하는 것이 1세트였다.
처음에는 재미도 있었다. 이런 류의 움직임은 자신의 장기나 다름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트가 반복되면서 다리가 풀리기 시작했고 숨이 가빠왔다. 물론 웨스트 코치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거기에 비례해서 점점 짙어졌고 데이빗의 속도가 떨어지고 자세가 풀어질때마다 어김없이 지적이 날아왔다. 지금처럼 말이다.
[속도가 떨어졌어. 다시 첫 동작부터.]
[무릎 더 높이 들어 올려. 이왕 하는거 확실하게 해야지.]
웨스트 코치의 프로그램을 소화한 데이빗은 녹초가 되어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다. 그런 데이빗의 어깨를 치는 손길이 있었다.
[헤이, 사디스트와의 즐거운 시간은 이제 끝난거야?]
상당히 겉 늙어보이는 얼굴로 미소를 짓는, 조금 힘겹게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이는 제이 스피어링이었다. 키도 작은 사람이 왜 자꾸 무리하게 어깨에 손을 올리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데이빗은 생각했다.
[딱히 즐겁진 않지만 어쨌든 훈련은 끝났어.]
그러면서 죽을 것 같네-라고 중얼거리는 데이빗이다. 스피어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정말 나에게 1000만 파운드를 준다고 해도 웨스트와의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건 사양하고 싶어. 우리의 고통은 그의 행복이라고! 정말 너도 대단하다. 벌써 그 사람을 닮아가는 건 아니겠지.]
호들갑스러운 스피어링의 말에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데이빗이다.
[그는 유능한 코치야. 뭐...가끔은 너무 힘들다고 느끼지만 내가 필요하다고 느낀거니까.]
[가끔이라는 말이 나온 시점에서 넌 이미 물든거야. 확실하지. 이미 넌 마조히스트의 길에 접어 들었군. 웨스트가 좋아할 만한 이유가 있는 걸.]
그러면서 리버풀의 사디와 마조 커플이 나왔다며 낄낄거렸다. 데이빗은 한숨을 쉴 뿐이었다.
[근데 넌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여기 있는거야?]
데이빗의 질문에 인상을 구기는 스피어링이었고 곧 내뱉듯이 말을 시작했다.
[어제 1분도 못뛰었잖아. 체력도 남아돌고 가만 있자니 답답해서 말이야. 운동이나 하러 왔었지.]
그러면서 어제 경기 뛴 주전들은 간단하게 회복훈련만 하고 돌아갔지만 말이야 하고 중얼거린다.
[뭐 이제 첫경기뿐이긴 한데...생각보다 기회를 많이 못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 어떻게든 기회를 잡으려면 내가 좀 더 높은 수준이 되어야 하지 않겠어?]
그 말에 어처구니 없는 미소를 짓는 데이빗이었다. 자기도 개인 트레이닝을 하러 온 주제에 남보고 마조니 뭐니 하는 것이 웃겼던 것이다.
[이봐. 너도 마찬가지인데 왜 멀쩡한 사람을 변태로 모는 거야?]
[아직 멀었구나 데이빗, 이런말 못들어봤어?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라는 말. 지혜가 담긴 말이야. 꼭 알아 두도록 해.]
뭔가 찝찝했지만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둘은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트레이닝 센터를 나섰다. 스피어링은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하더니 혀를 찼다.
[시간이 좀 애매하네. 저녁먹기는 좀 그렇고. 뭐할거야?]
[저기,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 뭐 하기로 한적 없지 않아?]
[딱딱하긴, 동료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은 중요한 거라고. 뭐 바쁜일이라도 있는거야?]
[선약이 있어서 말이야. 다음에 커뮤니케이션의 기회를 갖도록 하자고. 오케이?]
[비싼척 하긴, 뭐 어쩔수 없지. 다음에 보자고 그럼.]
그렇게 손을 한번 흔들고 작별을 고하는 둘, 그런데 묘하게 가는 방향이 비슷했다. 데이빗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이 스피어링? 어디가는 거야? 따라오지 말라고.]
[무슨 소릴 하는거야. 목이 말라서 저 앞 카페에서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가려고 했지.]
스피어링의 말에 표정이 살짝 딱딱해지는 데이빗, 스피어링은 그 낌새를 못느꼈는지 맞다-하고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난 저 카페 안가봤는데 말이야, 누구였지? 누가 그러던데 아무튼 저기 일하는 아가씨가 있다는데 엄청나게 귀엽다고 하더라고. 겸사겸사 얼마나 귀여운 아가씨인지 한번 보려고 했지.]
그러면서 '너도 궁금하지 않냐? 같이 가지 않을래?'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엄청 귀엽긴 하지.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걸.'
그러면서 어떻게 해야 이 친구를 신사적으로 막을지 고민을 하는 데이빗이었다.
[약속있다고 하지 않았어? 너도 그 귀엽다는 아가씨에게 관심이 생긴거야?]
스피어링의 말에 고개를 살짝 숙인채 대답이 없는 데이빗이었고 스피어링은 데이빗이 부끄러워하면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자, 어서 들어가서 확인해보자고. 렛츠 고!]
그렇게 문을 힘차게 열려는 스피어링, 데이빗은 스피어링의 손목을 잡았다.
[뭐야? 왜 손을 잡는거야? 난 남자가 손 잡는 것에 흥미 없...]
[이봐, 스피어링.]
해맑게 웃는 데이빗, 그 미소에서 무언가 불길함을 느꼈는지 스피어링이 주춤한다.
[뭐...뭐야? 왜그러는데?]
[아니, 중요한 얘기야. 너는 지금 분명 바쁜 일이 있었을거야.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실 겨를이 없을 정도로. 잠시 잊고 있었겠지만 이제 생각이 났을거야. 그렇지?]
분명 밝게 웃는 표정이고 말투도 부드러웠다. 그런데 무엇인가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드는 느낌이 든다고 스피어링은 생각했다. 여기서 '아니 바쁜 일 없어! 무슨 소리 하는거야?' 라고 이야기한다면 상당히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은근히 잡힌 손목에 가해지는 힘도 세지는 것 같다.
[그, 그랬지. 이런 잊을 뻔했네. 알려줘서 고마워 데이빗. 그럼 다음에 보자구.]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문고리에서 손을 떼는 스피어링, 그리고 뻣뻣하게 손을 흔들며 사라져갔다. 데이빗은 스피어링이 멀리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와. 힘들었지?]
늘 그렇듯 밝은 미소로 데이빗을 반겨주는 에리카, 데이빗은 살짝 웃으며 화답했고 용건을 이야기했다.
[에리카.]
[응?]
[아르바이트 혹시 옮길 생각 없어?]
[아? 무슨 소리 하는거야?]
에리카는 고개를 갸웃했고 데이빗은 머리를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