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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 시합에 걸맞지 않게 경기는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리저브 팀 선수들이야 이 경기에서의 내용으로 자신의 인생이 바뀔수도 있었기에 죽자 사자 뛰는 것이 당연해 보였으나 퍼스트 팀 선수들도 생각 이상으로 진지하게 나섰다. 애초에 선발 라인업도 베스트 일레븐에 가깝게 들고 나왔으니 말이다.
잠시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데이빗, 이내 어렵지 않게 답을 찾았다. 생각해보면 간단했다. 리저브 팀에서 누군가 기회를 얻어 퍼스트 팀에 합류한다는 이야기는 퍼스트 팀에서 누군가는 그 자리를 제공해주는 희생양이 된다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물론 핵심 중의 핵심으로 꼽히는 몇몇 플레이어들이야 그 대상이 안될 것이지만 마음 놓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나태한 마음의 소유자였다면 리버풀이라는 빅 클럽에서 핵심 선수의 위치에 올라서지 못했을 것이고 말이다.
경기 초반 분위기는 팽팽했다. 의욕에 불탄 리버풀 리저브 팀이 예상을 뒤집고 선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베니테즈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예상보다 훌륭한 경기력으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리버풀 퍼스트 팀의 신예 미드필더 루카스의 부진이 한몫을 했다.
마스체라노와 함께 4-2-3-1 포메이션에서 2의 자리에 위치한 루카스는 자신의 임무인 패스 전개에 있어 상당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중반 지역에서의 볼 흐름이 막히자 당연히 경기 흐름이 리저브 팀에게로 넘어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 리버풀을 2위로 이끈 원동력이었던 탄탄한 수비진은 건재했다. 흐름을 잡고 몰아치는 리저브 팀의 맹공을 모조리 튕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글렌 존슨, 제이미 캐러거, 스크르텔, 인수아로 이어진 4백 라인은 리저브 팀에게 있어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기회가 왔을때 결정짓지 못하면 상대에게 되려 흐름을 내주게 된다. 데이빗은 벤치에 앉아 본능적으로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계속된 맹공에도 골문이 열리지 않자 맥이 빠진 리저브 팀 선수들이었고 경기는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듯 했다.
레이나의 골킥이 가까이 있던 글렌 존슨에게로 향했다. 존슨은 공을 받자 마자 반대쪽 사이드에서 시동을 걸고 있던 바벨에게 길게 연결했다. 08-09시즌 아쉬운 모습도 자주 보였으나 주로 교체로 출전하여 준수한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슬슬 포텐이 터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들게하는 바벨이었고 오늘 연습경기에서의 움직임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드리블 능력이 주특기인 선수답게 마크하러 달려온 리저브 팀의 풀백을 순식간에 벗겨냈다. 그리고 사이드에서 중앙쪽으로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중앙 수비수 한명이 커버를 나올 수 밖에 없었고 에어리어 내에 공간이 열리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그리고 그 공간을 놓치지 않는 선수가 있었고 바벨은 욕심내지 않고 그 선수의 발 밑에 공을 정확히 전달해 주었다.
[스티븐 제라드!]
벤치에서 비명처럼 소리가 울렸다. 리버풀, 아니 프리미어리그를 통틀어 공간을 주면 가장 위험한 선수에게 노마크로 공이 전달되었다. 그것도 페널티 박스 안에서! 골키퍼는 부랴부랴 각을 좁히며 뛰쳐나왔고 제라드는 특유의 호쾌한 슈팅 모션을 가져갔다. 아니, 가져가는 것 처럼 보였다.
[!!!!]
슛 동작은 속임수였다. 제라드는 가볍게 공을 반대편 포스트로 굴려주었고 바람에 흩날리는 금발이 인상적인 리버풀 부동의 스트라이커 페르난도 토레스가 가볍게 빈 골문을 향해 차 넣었다. 토레스는 환하게 웃으며 좋은 패스를 해준 제라드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다가갔고 제라드 또한 경기 전과 달리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고 토레스의 골을 축하해주었다.
0:0 의 스코어가 1:0으로 변했다. 너무도 순식간에 먹혀버린 골, 골킥에서 시작되어 30초도 안되는 시간에 골을 헌납해버린 것이 허무했는지 리저브 선수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몇몇 선수들이 아직 시간이 많다며 독려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큰 소용이 없어보였다.
[분위기가 안좋아 보이는데...]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던 데이빗이 손톱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이제 기껏해야 전반 20분을 막 지난 참이다. 그리고 단 한골만 실점했을 뿐이다. 그런데 피치위의 몇몇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만큼 퍼스트 팀 선수들이 주는 압박감이 크게 느껴질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경기는 다시 재개 되었고 퍼스트 팀의 독무대가 시작되었다. 일방적인 공세, 공은 리저브 팀 진영에서만 맴돌았고 리저브 선수들은 느긋하지만 치명적인 퍼스트 팀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리버풀 퍼스트 팀을 상대로 수비에 치중한 이 행위는 결과적으로 악수가 되었다.
아무리 리버풀이 소위 양민학살을 못해서 우승컵을 맨유에게 넘겨주었다고 하더라도 리버풀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강팀이었고 공격력이 절대 부족한 팀이 아니었다. 그런 그들이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 못했을리 없고 거북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상대를 끌어내는 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제라드는 망설임 없이 오른발을 강하게 휘둘렀다.
콰앙!!!
사람의 발과 공이 부딪혀서 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폭력적인 굉음이 들렸고 공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 골키퍼가 간신히 펀칭해 냈고 루즈볼을 향해 달려드는 토레스보다 한발 앞서 수비수가 멀리 걷어내는데 성공했다. 섬뜩한 표정으로 방금 골이나 다름 없었던 슈팅을 날린 선수를 바라보는 리저브 선수들, 그 시선의 끝에는 살짝 인상을 찌푸린채 고개를 흔들고 있는 캡틴 제라드가 있었다.
이후 리버풀 퍼스트 팀은 중거리슈팅을 줄기차게 시도하며 리저브 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사이드에서 바벨과 카윗이 줄기차게 돌파를 시도하며 흔덜어댔다. 그리고 전반 종료 직전에 다시한번 리저브 팀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다시 한번 중거리에서 슈팅을 날리려는 모션을 취한 제라드에게 낚인 것이 화근이었다. 수비수가 몸을 날려오자 가볍게 슈팅 동작을 캔슬한 제라드 그리고 툭툭 치며 공을 몰고 왔다. 그리고 양 사이드에서 공간을 벌리며 서 있던 바벨과 카윗이 쇄도를 시작했고 제라드의 깔끔한 패스가 카윗에게 이어졌다. 순간적인 제라드의 움직임으로 인해 수비라인이 혼선에 빠졌고 카윗은 지체없이 낮고 빠른 크로스를 시도했다. 이런 완벽한 패스를 놓친다면 페르난도 토레스가 아니다. 감각적인 볼 터치로 크로스의 방향만 살짝 바꾸는 토레스였고 골망을 흔들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2:0, 기세가 꺾인 리저브 팀을 나락으로 밀어 넣는데 충분한 스코어였다. 전반 막판 카윗이 때린 슈팅이 골 포스트를 맞고 튕겨나오지 않았다면 3:0이 되었으리라. 다행히 추가 실점 없이 전반전을 마칠 수 있었다.
[엉망이었다 너희들.]
휴식시간, 맥마흔 감독은 가차없는 어조로 전반전 선수들의 플레이를 질타했다.
[너희들, 퍼스트 팀 수준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한거냐? 퍼스트 팀에게 한골도 안먹히고 막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나? 웃기지 마라. 그게 가능했다면 너희들은 진작 퍼스트 팀에 올라갈 수 있었을 거다.]
[너희들은 지금 정확히 20분 동안만 축구를 하고 왔다. 전반 20분 이후에 너희들이 한건 축구가 아니야! 겁쟁이들이나 할 법한 비겁한 짓거리였어!]
감독의 비난에 리저브 팀 선수들은 울컥하기도, 고개를 숙이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감독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선수는 없었다. 그들도 자신들의 플레이가 최악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맥마흔 감독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흥분을 가라 앉히려 애썼다. 호흡을 몇번 가다듬은 맥마흔 감독은 조금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반전에 너희들은 충분히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그건 너희들이 증명했었지. 기억 안나는 친구 있나? 내가 벤치에서 옆에 앉혀놓고 충분히 기억나게 도와줄 수있는데 말만 하라고.]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은근 슬쩍 농담을 끼워넣는 감독의 모습에 선수들의 분위기도 살짝 풀어졌다. 한 선수는 감독님이 여자라면 고려해보겠다며 농담을 날렸고 맥마흔 감독은 '오 자네는 나처럼 생긴 여자를 좋아하나? 취향 한번 독특하군' 이라며 넉살좋게 받아쳤다. 그 말에 라커룸안은 푸핫 하는 웃음 소리로 가득찼고 무거운 분위기가 많이 가셨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맥마흔 감독은 다시 진지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문제는 너희들은 좀 더 치밀하지 못했고 침착하지 못했을 뿐이다. 긴장했다고 이야기 하지는 않겠지? 너희들은 안필드의 4만에 달하는 콥들 앞에서 뛰기를 꿈꾸는 선수들인데 이정도 시합에서 긴장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거야.]
목이 마른지 물병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키는 맥마흔 감독, 살짝 흘러내린 물을 훔치고는 후반전 변경사항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후반에도 퍼스트 팀은 분명 강하게 몰아쳐 올거야. 그들이 2골차에 만족할 거란 생각을 하고 있는 겁쟁이는 없을거라 믿어. 너희는 전반에 보였던 존나 엿같은 움직임을 버려야 해. 공격해. 맞붙어서 깨지더라도 공격하라고. 겁쟁이처럼 웅크려서 3:0으로 깨지는 것보다 10:1로 깨지라고. 내 말 알아 듣겠어?]
발끈하며 할 수 있다고 소리치는 선수들, 맥마흔 감독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 그런 모습을 보여줬으면 더 나았을텐데 말이지. 너희들도 알다시피 오늘 경기는 연습 게임이야. 여기 있는 선수들 중에 자신이 풀 타임을 뛸거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없겠지? 그런 이유로 후반에는 선수 교체를 할거야.]
감독의 선언이 떨어지고 긴장한 표정을 짓는 선수들이다. 제발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바라는 표정이 절실해 보였다. 반면 전반에 뛰지 못한 선수들의 눈은 불타올랐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를 반전시키는 주인공이 된다면 그것보다 더한 어필은 없을 터였다. 맥마흔 감독은 선수들을 훝어보며 호명을 시작했다.
휴식시간이 끝나고 후반 시작을 위해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다시 모였다. 퍼스트 팀은 양 사이드 자원이었던 바벨과 카윗을 리에라와 베나윤으로 교체했다. 또한 수비의 핵 제이미 캐러거 대신 아게르를 투입했고 인수아 대신 데겐을 기용했다.
[아퀼라니가 있었다면 좀 더 폭넓은 기용을 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요.]
새미 리 수석코치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고 베니테즈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했다.
[어쩔수 없지요. 저는 그보다는 루카스가 자신감을 잃은 듯한 모습이 아쉽군요. 충분히 제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아무래도 그가 차지한 포지션의 이전 주인이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군요. 그의 존재감을 신인 선수가 대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동의합니다. 하지만 루카스는 더욱더 성장해주어야 해요. 우리를 위해서도 그를 위해서도 여기서 정체되는 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입니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 그는 충분히 변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새미 리 수석코치도 동의했다. 후반 시작을 위해 경기장에 나온 선수들을 살피던 리 코치는 리저브 팀의 라인업이 전반과는 많이 달라진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리저브 팀의 라인업이 많이 바뀐 것 같군요. 사실 전반전 리저브 선수들의 움직임은 정말 최악에 가까웠죠. 한골 먹었다고 허둥지둥댔던 모습밖에 기억이 안날 정도로 말이죠.]
[그랬죠. 사실 조금 실망했어요. 우리 리버풀의 리저브 정도 되는 선수들이라면 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거라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후반에는 좀 더 긍정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습니까? 맥마흔 감독은 분명 전반에 베스트 라인업을 준비했을텐데 후반에 교체투입되는 선수의 역량은 아무래도 그보다 못할거라 생각됩니다.]
리 코치의 말에 가타부타 말이 없던 베니테즈 감독, 이내 무엇인가를 보더니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공은 둥글고 경기는 끝나봐야 아는 겁니다. 퍼스트 팀 선수들이 혹시나 방심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에요. 그리고...]
여운을 남기듯 말을 흘리는 베니테즈 감독, 리 코치는 무슨 말을 하고 싶냐는 듯 베니테즈 감독을 응시한다.
[그리고...아마 후반은 조금 재밌는 장면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명백한 기대감이 어린 베니테즈 감독의 눈빛, 그 시선의 끝에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모습의, 눈에 확 들어오는 흑발의 청년이 센터서클에서 시작 휘슬을 기다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따...딱히 어제 반응이 너무 좋아서 올리는 건 아니니깐 오해하지 마시죠. 운동하고 와서 맥주도 한잔했고 피곤한데 여러분 좋으라고 올리는 건 아니니깐, 그냥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