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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휴식은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데이빗이 리저브 팀 훈련에 합류하는 날이 왔다. 평소보다 일찍 눈을 뜨게 된 데이빗,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리버풀FC의 엠블럼이 새겨진 트레이닝복을 걸치고 기숙사를 나서자 새로운 출발에 대한 설레임과 긴장감이 밀려왔다.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심장을 달랬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멜우드 트레이닝 센터에 도착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센터였고 별 문제 없이 목적지인 리저브 선수들이 사용하는 라커룸 앞에 섰다. 살짝 긴장되는 것을 느낀 데이빗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네.]
자신이 처음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뭐야-하고 한숨을 내쉬는 데이빗이다. 그리고는 내부를 살피며 자신의 라커를 찾았다.
[이거구나.]
감회 서린 눈길로 자신의 라커를 바라보는 데이빗,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방을 풀어 안에 넣었다. 그때 방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도 보나마나 내가 1등...이 아니었네?]
빡빡 밀어버린 머리에 깊은 눈두덩, 전체적으로 나이 들어보이는 인상이었고 키가 꽤나 작은 선수였다. 데이빗은 가벼운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오늘부터 팀 훈련에 합류하게된 데이빗 장입니다. 잘부탁합니다.]
[아, 너였구나. 난 제이 스피어링이야. 잘 부탁해.]
가벼운 악수를 나누는 둘이었고 스피어링은 데이빗을 훝어보며 입맛을 다셨다.
[키가 꽤 커보이네? 키가 얼마나 돼?]
[마지막으로 쟀을때 분명...183cm였어요.]
[제길, 나하고는 15cm나 차이가 나잖아. 얼마전에 들어온 다니엘은 키가 나하고 같아서 좋은데. 그나저나 말 편하게 해. 이제 같은 동료인데 편하게 지내자구. 근데 나이는 어떻게 돼? 좀 어려보이는데?]
[19살이야. 너는 나보다 많아보이는데, 그렇지?]
넉살좋게 농담을 섞어 응수하자 스피어링이 '이놈 봐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보다 많으십니다 이 자식아. 뭐 그래봤자 한두살 차이니까 신경쓰지 말라구. 생각보다 넉살이 좋아보이네. 점잔빼는 것보단 그런 성격이 마음에 들어.]
그렇게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선수들이 한 두명씩 라커룸으로 들어왔고 데이빗은 그때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스피어링 뿐만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그럭저럭 데이빗을 환영해주는 분위기였다.
[오, 다들 일찍 나와 있었군.]
리버풀 리저브팀의 사령탑, 존 맥마흔 감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선수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던 맥마흔 감독은 데이빗을 보더니 반가워 했다.
[드디어 합류했군! 다들 인사는 나누었지?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할 친구야.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친구니까 잘 가르쳐주고 사이 좋게 지내라고.]
감독의 배려에 데이빗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감독은 데이빗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쳐주며 열심히 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럼 다들 모인 것 같으니 이야기를 시작하지. 너희들에게는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거니 귀를 잘 열어 두도록 해.]
감독의 말에 조금은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라커룸의 공기가 변했다. 선수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는 것을 확인한 감독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시즌 개막이 별로 안남았어. 그렇지? 너희들도 프리시즌을 충실히 보냈고 우리 리버풀의 퍼스트 팀도 마찬가지야. 근데 너희들도 알다시피 올해 우리 퍼스트 팀 전력이 예년만 못하다는 평이 많아. 시작부터 부상자도 나오는 판국이니 말할 것도 없지. 그래서 말인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선수들을 둘러보는 맥마흔 감독, 선수들의 눈동자는 어느새 열망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시즌 개막 전에 퍼스트 팀과 리저브 팀간의 연습 경기를 갖게 됐다. 아마 이정도로 말했으면 내가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 다들 알아 들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면서 씨익 하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맥마흔 감독.
[다들 슬슬 내 얼굴 보는 것도 지겹지 않아? 이번 기회에 못보게 될 친구들이 좀 있었으면 좋겠군. 아 물론 사적으로 연락하는 건 환영이야. 그럴 친구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열정이 지나쳐 경직될 뻔한 분위기를 특유의 농담으로 부드럽게 환기시키는 맥마흔 감독이었고 선수들도 피식하고 웃으며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았다.
[날짜는 3일 뒤, 다들 컨디션 관리 잘하라고. 말 안해도 잘하겠지만 말이야.]
말을 마치고 오늘 훈련을 시작하자며 그라운드로 선수를 이끄는 감독, 데이빗도 그 뒤를 따랐다. 리저브팀 합류 첫날에 1군과의 연습시합 소식을 접하게 되다니 혹시나 하는 기대가 들었지만 자신에게까지 기회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기존의 선수들에게 기회를 더 줄것이 당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10분, 아니 5분이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죽을힘을 다해 뛰겠다고 다짐했다.
퍼스트 팀과의 연습경기는 선수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리저브 리그(2군리그) 경기도 물론 중요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리버풀의 1군이 되는 것이다. 그 1군과의 경기에서 활약한다면 베니테즈 감독의 눈에 바로 들 것이 뻔한 이야기였기에 선수들에게 있어 다른 경기보다 몇배는 중요한 경기였던 것이다. 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훈련에 임하자 맥마흔 감독은 '평소에도 이렇게 할 것이지' 라며 혀를 찼지만 얼굴 표정은 밝았다. 감독 입장에서도 리저브 팀을 이끌며 몇명이나 1군무대에 보내는 것이 중요한 사항이었기에 이번 경기를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일단 공격진은 난감한 노릇이군.'
리버풀 리저브 팀의 에이스였던 크리스티안 네메스가 현재 AEK 아테네로 임대를 간 상태였다. 은고그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1군에 합류한 상태였고 그러다보니 공격진을 꾸릴만한 선수가 나빌 엘 자르와 이번 시즌 합류한 다니엘 파체코 정도라고 생각했다.
'수비진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흠. 켈리도 그렇고 다비도 잘 성장해주고 있으니 말이야.'
이기는 것이 어려운 시합이고 이기는 것이 목적인 시합은 아니다. 하지만 만약 이길 수 있다면 그만큼 리저브 선수들을 다른 눈으로 볼 것이 분명하니 경기결과에도 욕심이 나는 것이 감독의 마음이다. 그런 반면 많은 선수들에게 기회도 주어야 하니 참 난감했다.
데이빗은 간단한 공뺏기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6명이 한조가 되어 4명이 공을 돌리고 2명이 수비가 되어 공을 뺏는 훈련이었다. 데이빗으로서는 처음 해보는 훈련이지만 크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볼을 다루는 기술만큼은 리버풀 스탭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던 데이빗이었기에 수비가 달라 붙는다고 해서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거의 모든 패스를 원터치로 직접 처리했기에 수비가 붙을 새도 없긴 했지만 말이다.
[오, 잘하는데?]
[이번 신입 실력이 괜찮은 것 같네.]
동료들도 데이빗의 볼 컨트롤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는지 가벼운 칭찬을 던졌다. 하지만 이어진 공수를 바꿔 이루어진 연습에서 데이빗은 전혀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니 움직임이 그야말로 엉망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모습이었다. 감독도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빠르긴 빠른데 말야. 기본적인 움직임이 갖춰져있지 않군.'
혼자만 죽자고 달려들어서 4명이 돌리는 공을 뺏기란 힘들다. 괜히 수비 숫자를 2명으로 한것이 아닌데 데이빗은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긴, 축구를 제대로 배운적이 없다고 했지. 가끔은 그 사실을 까먹는단 말이야.'
워낙 기술이 뛰어나니까 말이지-라고 중얼거린 맥마흔 감독은 잠시 중지를 선언했다.
[데이빗. 잠시 이리 와보게.]
감독의 말에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고 발걸음을 옮기는 데이빗이다. 마음대로 되지않아 기분이 좋지 않은지 살짝 인상이 찌푸려져 있었다.
[이런 훈련 처음해보지?]
감독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시한다. 그럴줄 알았다는 듯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시작하는 맥마흔 감독이다.
[이 훈련의 핵심은 2명이 얼마나 좁은 지역에서 효율적인 압박을 수행해 낼 수있는가, 그리고 볼을 돌리는 4명이 그 압박을 얼마나 무력화 시킬수 있는가 일세. 무턱대고 공을 쫓아서야 죽어도 공을 뺏을 수 없지. 상대가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말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었는지 곧장 말을 이어버리는 감독이었고 무언가 대답하려했던 데이빗은 뻘쭘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한 사람의 공격수가 공을 가진 시점에서 패스코스는 3개가 나오는 것은 알겠지? 일단 수비수 중 한명이 그중 하나를 끊는게 우선이야. 남은 코스는 2개로군? 이제 남은 수비수 한명이 반반으로 높인 확률을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커트해 내는 것이지. 이게 기본적인 전술이라네. 물론 기본이 그렇다는 것이고 다양한 파생전술이 나올 수있지. 일단 기본만이라도 숙지하자고.]
[좀 전에 자네의 움직임은 자네와 같은 조였던 동료의 움직임은 보지도 않고 무작정 공을 따라 뛰어다녔지. 그렇게되면 자네의 움직임이 비효율적인 것 뿐만아니라 동료까지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리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그 말에 데이빗은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항구에서 공을 찰때는 이런 것을 알려주는 사람도 알 필요도 없었다. 자신이 빠르게 달려들면 다들 정신없이 공을 뻥 차내거나 당황한 상태로 공을 뺏기거나 했으니까 말이다.
[내가 듣기로 자네의 포지션이 공격수 쪽에 가깝다고 들은 것 같은데, 공격수라고 해서 수비가담을 안할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수비에 있어서 최전방 공격수는 곧바로 최전방 수비수가 되는거야. 그점 잊지말고 훈련에 임하도록 하게.]
그리고는 동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구경하면서 배우라고 지시했다. 데이빗은 순순히 그라운드 밖으로 나와 동료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느려...하지만 빨라...'
모순된 감상이었다. 분명 자신이 보기에 빠른 움직임은 아니었다. 자신이라면 저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빨랐다'. 쓸데없는 움직임이 없었고 생각의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동료들과 위치를 순식간에 조정하는 것도 빨랐다.
'개인은 느리지만 팀은 빠르다...인가.'
느끼는 점이 많았다. 공을 한번에 뺏고 못뺏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공을 탈취하지 못해도 바로 압박 타겟을 바꾸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그럴수록 공격자들의 실수도 늘어갔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은 것 같아. 수비의 목적은 상대의 공을 뺏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공격작업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지금 그라운드에서 동료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그 말을 정확히 대변해주고 있었다. 데이빗은 그들의 움직임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눈에 담으려는 듯 집중했다.
[단시간 내에 저들의 움직임을 모두 배우기란 불가능하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안되는 것은 분명 존재하네. 이런 전술적인 움직임은 혼자 잘한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말이야. 동료들과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하는게 좋을거야. 그렇게 한다면 생각보다 빠르게 익숙해 질수 있을지도 모르지.]
옆에서 감독이 한마디 충고를 던져준다. 데이빗은 대답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눈은 계속 훈련 장면을 보고 있었고 말이다. 맥마흔 감독은 그런 데이빗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