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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이게 누구야!]
[오랜만이야 데이빗! 좋아보이니 다행이다.]
그 말대로 근 한달만에 보는 친구들이었다. 물론 중간중간에 연락은 하고 지냈지만 말이다. 이들과 알게 된 이후 이렇게 오랜 시간을 떨어져 보낸적이 없었던 데이빗은 지난 시간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오랜만이야 제임스, 티티. 너희들도 좋아보여.]
환하게 웃으며 친구들과 포옹을 나눈다. 에리카는 데이빗이 이정도로 환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아니라 정말 형제처럼 보여.'
[오 데이빗. 못 보던 사이에 몸이 정말 좋아진 것 같은데? 단단해진 느낌이야?]
[동감이야. 확실히 운동 선수가 되니 달라지는 걸? 훈련량이 만만치 않았다고 들었는데 잘 소화한 것 같네.]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는 데이빗, 티티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널 오랜만에 봤잖아. 확실히 좀 변했어.]
티티의 말에 그런가-하고 넘기는 데이빗, 뭐 변했다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동안 열심히 한 티가 난 것 같다는 생각에 뿌듯함도 들었고 말이다.
[이런, 반가운 마음에 실수를 했네. 같이 온 분 소개 좀 부탁해도 될까?]
티티의 정중한 말에 데이빗은 아차 하며 에리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소개를 하려는 데 에리카가 웃으며 손을 저었다.
[반가워요. 에리카 켈리라고 해요. 데이빗으로부터 두분의 얘기 많이 들었어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이는 에리카, 티티 또한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례했다.
[새뮤얼 로이라고 해요. 보통 친구들은 티티라고 부르죠. 만나서 반가워요 켈리양.]
[제임스라고 불러요. 우리가 얼마나 켈리양을 보고 싶어했는지 아마 모를겁니다!]
[어머? 저를요?]
고개를 갸웃하는 에리카의 모습에 제임스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고 데이빗은 불길함을 느꼈다.
[어떤 미인이 우리 목석같던 데이빗의 마음을 그렇게 사로잡았는지 궁금했죠! 실제로 보니 데이빗이 변할만 하다는 걸 알겠네요.]
[제임스!!]
황급히 소리치는 데이빗이었고 제임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표정으로 실실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에리카는 제임스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살풋 웃으며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자자, 길거리에서 이야기하지 말고 일단 자리를 옮기는게 어떨까? 켈리씨? 선호하는 곳이라도 있나요?]
[아뇨, 그보다는 데이빗과 여러분들이 평소에 가는 곳을 가고 싶어요.]
에리카의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 티티, 제임스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자주가는 곳이라면 싸구려 펍인데 켈리씨가 갈만 한 곳은 아니에요. 분위기도 시끄럽고 메뉴도 그리 좋다고 말하기 힘든 곳이라서요.]
[괜찮아요. 저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 아니에요. 부담갖지 마시고 평소처럼 가주세요.]
에리카의 말에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데이빗을 돌아보는 티티, 데이빗은 한번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할게요. 혹시 들어가서 마음에 안들면 옮겨도 괜찮아요.]
티티의 말에 절대 그럴일 없을 거라며 야무지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결국 그들의 행선지는 평소 그들이 늘 술 한잔을 나누었던 항구 인근의 펍으로 결정되었다.
[여기 뭔가 정말 오랜만에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실내로 들어가며 데이빗이 중얼거렸다. 조금은 어두은 실내조명에 매캐한 담배연기에 소란스러운 분위기 모두 익숙했던 광경이었음에도 좀 전에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난 것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여전하지 여기는. 다만 일과를 마치고 맥주 한잔 하러 올때 제임스와 둘이 온다는 것이 바뀐 점이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자리를 잡고 앉은 일행은 간단한 요리와 술을 주문했다. 어떤 음료를 마시겠냐는 티티의 질문에 에리카는 웃으며 똑같이 맥주를 시켜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데이빗에게 술을 많이 마시지 말라고 이야기했고 데이빗은 난감히 웃으며 한잔만 마시겠다고 했다. 그 모습에 제임스는 호오-하며 휘파람을 불었고 티티는 보기 좋다고 중얼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데이빗은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봐 데이빗. 아직 맥주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한잔 한거야? 얼굴이 빨개졌는데?]
[시끄러워 제임스.]
그 모습이 재밌었는지 쿡쿡 웃음을 흘리는 에리카였고 데이빗의 얼굴은 더이상 달아오를 수 없을만큼 익어버렸다.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공연히 맥주는 언제 나오냐며 투덜거렸다.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맥주가 서빙되어왔다.
[오늘은 데이빗에게 작지만 큰 진보가 있었던 날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친구 데이빗이 앞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둘거라 믿어요.]
티티의 덕담과 함께 잔을 높이 들고 건배를 외치는 그들이었다. 데이빗은 일행에게 감사를 표했고 퍼스트 팀에 올라가게 되면 한번 또 모이자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말에 그때는 이런 펍 말고 더 멋진곳으로 가자고 제임스가 이야기를 꺼냈고 데이빗은 '제임스 너만 여기 박아놓고 우리끼리 더 근사한 곳을 갈거다' 라며 응수했다.
술이 한잔 들어가자 분위기는 좀 더 화기애애해졌다. 화제는 주로 에리카와 데이빗에 관한 이야기였다. 티티와 제임스는 둘의 만남부터 이것저것을 물었고 데이빗은 뭘 그리 꼬치꼬치 물어보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에리카는 웃으며 하나씩 이야기해주었다. 특히 두번째 만남이었던 카페에서 데이빗이 주문을 한 뒤 자리에서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제임스와 티티는 박장대소를 했다.
[그때였구나! 우리와 만나서 어떻게 해야되냐고 물어봤던 날이! 크하하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 너 정말 웃겼다고!]
[제기랄. 그럴 수도 있지!]
[어떻게 거기서 잘 생각을 하냐? 켈리씨가 얼마나 당황했겠어?]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계속 데이빗을 놀리는 제임스, 데이빗은 속에서 부글부글 무언가 끓었지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에리카도 빙글빙글 웃으며 즐거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놓고 우리한테 와서 어떻게 하면 좋냐고 물어봤지. 정말 그때 네 표정을 사진으로 찍어 놨어야 했는데!]
그건그래!-라며 동의를 표시하는 티티의 말에 데이빗은 작은 배신감마저 느꼈다. 마치 브루투스 너마저!-를 외쳤던 카이사르의 심정이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들었다. 생글생글 웃으며 즐거워하는 에리카의 모습도 평소처럼 귀여웠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얄밉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 데이빗? 어디가?]
[화장실.]
[같이 가자. 나도 좀 전부터 가고 싶었다고.]
[제기랄, 붙지 마.]
티격태격하며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데이빗과 제임스, 티티는 그런 그들을 보며 '쟤들은 한달을 떨어져 있어도 변하질 않네' 라고 가볍게 중얼거렸다.
[보기 좋아보여요.]
[네?]
에리카의 말이 조금 뜬금없다고 생각했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 티티, 에리카는 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야기로 조금 듣긴했지만 이렇게 친했을 줄은 몰랐어요. 데이빗이 이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처음보는 것 같아요.]
에리카의 말에 그런가요-라고 중얼거리는 티티, 에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빗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오해를 많이 해요. 말 수도 적고 표정도 없어서 접근하기 힘들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죠. 근데 사실 데이빗은 그런 친구가 아니에요.]
[저녀석은 사실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친구에요. 다만 행복하지 못했던 그의 과거가 그를 변하게 만들었죠. 그는 자신을 지키는 방법으로 마음의 문을 닫는 방법을 택했어요. 처음 그를 보았을때 그는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었어요. 가까이 오지 마, 나에게 다가오지 마, 라고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죠.]
목이 타는지 맥주를 한모금 들이키는 티티, 그리고 한숨을 가볍게 쉬고 말을 이었다.
[우리와 만나고 데이빗은 조금 변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변하고 있어요. 요즘 데이빗의 모습을 보면 예전의 그 날카로웠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그리고 오늘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말을 마치고 미소를 지으며 에리카를 응시하는 티티, 에리카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저요?- 라고 물어보았고 티티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켈리씨를 볼때의 데이빗의 표정은 정말 행복해보였어요. 켈리씨는 우리와 함께 있을때 데이빗이 정말 즐거워보였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 같아요. 워낙 쑥맥에다 순진한 친구라 표현을 잘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켈리씨라면 데이빗을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티티의 말에 살짝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 에리카였다. 티티는 웃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부담을 주자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그냥 지금처럼 데이빗과 좋은 인연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머리를 매만지며 할 말을 정리하는 듯한 에리카, 티티는 그런 에리카를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저는...]
[오늘 켈리씨와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마찬가지에요. 데이빗이 평소에 왜 로이씨를 칭찬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만족할만한 대화를 나눈 것인지 둘의 표정은 밝았다.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나눈거야?]
화장실에서 이제야 돌아오는 데이빗과 제임스였다. 티티는 웃으며 살짝 핀잔을 준다.
[별 얘기 안했어. 근데 너희들은 화장실에 간다면서 뭐 이렇게 오래걸려?]
[제임스가 담배를 한대 피운다고 해서 말이야. 그래도 에리카가 있다고 배려해준거라나. 그래서 좀 늦었어.]
[오, 제임스 네가 왠일이야? 그러고보니 오늘 어쩐일로 담배를 안피운다고 했다.]
[내가 이자리에서 담배를 피웠다가는 데이빗이 날 죽이려들게 뻔한데 어쩔수 없잖아.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고 데이빗. 사실이잖아?]
다시 자리에 합류한 데이빗과 제임스였고 화기애애한 술자리가 계속되었다. 데이빗은 티티와 에리카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으나 둘다 별로 이야기를 해줄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포기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즐기다보니 어느새 자리를 파할 시간이 되었다. 서로 오늘 즐거웠다며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밖으로 나오며 티티는 데이빗에게 마지막까지 에스코트를 잘하라며 어깨를 툭 쳐주었다.
[그럼 다음에 봐 데이빗, 켈리씨 잘 바래다 드리고.]
[오늘 즐거웠어 티티, 제임스도. 다음에 또 연락할게.]
가벼운 포옹으로 만남을 마무리하는 그들, 티티는 데이빗에게 살짝 어깨동무를 하며 속삭였다.
[데이빗, 가끔은 그냥 가슴이 시키는데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너무 완벽하게 모든 일을 하려고 하면 기회를 놓칠 수도 있어.]
[응? 무슨 말이야?]
데이빗의 의문에 사람 좋은 미소만 지을 뿐인 티티, 데이빗은 고개를 갸웃하며 재차 물어보았으나 티티는 손만 흔들 뿐이었다.
[로이씨, 제임스씨 오늘 즐거웠어요. 그럼 다음에 또 볼 수 있길 바래요.]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데이빗은 에리카를 집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친구들과 헤어졌다. 제임스는 티티를 보며 궁금했는지 질문했다.
[근데 티티, 방금 데이빗에게 무슨 얘기를 한거야?]
제임스의 질문에도 뜻 모를 미소만을 지을 뿐인 티티, 간단하게 별거 아냐 란 대답만 남겼다. 그는 조금 전에 에리카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저도 데이빗에게 호감이 있어요. 그건 데이빗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와 함께 있을때 그가 저를 배려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가끔은 그가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와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말을 했을때 에리카는 볼을 부풀리며 귀엽게 투정을 부렸다. 티티는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에리카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웃지말라고 타박했었다.
'웃어서 미안해요. 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가 보기 정말 좋아요. 데이빗은 절대 켈리씨를 실망시키지 않을거에요. 제 친구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는 정말 좋은 남자에요.'
그 말에 홍조띈 표정을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에리카였다.
'오래걸리지 않을 거에요. 데이빗을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
[참 귀여운 친구들이야. 그렇지 않아?]
[누구? 아 좀전의 데이빗 애인? 그거야 그렇지. 근데 좀 의외였어. 난 데이빗은 좀 더 섹시한 스타일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제임스의 말에 픽 웃고 마는 티티였다. 자신이 봤을때 데이빗은 분명 에리카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건 친구 이상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 쑥맥같은 친구는 자신의 감정을 알고 있음에도 섯불리 그 이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혹시나 지금의 관계마저도 깨져버리면 어떻하나 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용기 있는 자 만이 미인을 얻는 법이지.]
[아? 무슨 말을 하는거야?]
제임스가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티티는 못들은 척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친구가 용기를 내기를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