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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swer-15화 (1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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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로 돌아온 데이빗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평상시 침착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냉장고에서 물을 한병 꺼낸 데이빗은 컵에 따를 생각도 않고 그대로 벌컥 벌컥 들이켰다.

[후우...]

시원한 물이 목을 넘어가자 조금은 진정이 되는듯 한 모습이다. 데이빗은 그제서야 생각이 나는지 상의를 벗었다. 특이하다면 특이한 것이 흰색 셔츠는 왼쪽 부분만 젖어 있었고 아직 입고 있는 바지도 왼쪽이 젖어 있었다.

[소나기...베스트 타이밍이었어.]

지랄맞다고만 생각했던 잉글랜드 날씨가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데이빗은 진심으로 날씨에 감사했다. 잉글랜드에서 비가 오는 일은 전혀 특별한 일이 못된다. 오죽하면 1년 365일 중 300일동안 잉글랜드엔 비가 오는데 그 중에서 비가 안오는 60일은 여름이다 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오겠는가.

그나마 여름이라 그런지 요 근래에 비가 오지 않고 있었고 그래서 그녀는 우산을 챙겨나오지 않은듯 했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당황해하는 그녀에게 우산을 내밀며 바래다 주겠다고 할 때 무언가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당황하지 말자. 예상에 없던 상황이긴 한데 나에겐 우산이 있고 그녀를 안전하게 마지막까지 에스코트할 의무가 있어.'

그녀는 자신의 말에 특유의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살짝 팔장을 끼어 왔고 이는 데이빗의 심장 박동수 증가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혹시나 그녀에게 이렇게 미친듯이 뛰는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의식적으로 진정하자는 말을 되뇌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우산 사이즈가 작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큰 것도 아니었기에 둘이 쓰기에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었다. 데이빗은 그녀가 비에 젖지 않게 최대한 우산을 그녀쪽으로 씌웠고 그녀는 데이빗의 그런 모습에 운동선수가 비 맞으면 어떻게 하냐고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데이빗의 대답에 그녀는 납득했다.

'잉글랜드에서 축구선수가 비맞는다고 감기걸리면 선수 못하죠.'

그 이후로는 조금 더 친밀하게 붙어 데이빗을 곤혹스럽게 했다. 아마 최대한 붙어서 걷는다면 데이빗이 비를 맞는 면적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말이다. 그녀의 그러한 호의는 안그래도 두근거리고 있었던 데이빗의 심장을 터질듯 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집 앞까지 에스코트를 마치고 오늘 재미있었다고 다음에 다시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자 그녀도 웃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돌아서려는 데이빗의 볼에 느껴지는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귀엽게 혀를 내밀며 돌아서는 그녀의 모습까지 현실감이 없었다. 몸이 붕 떠오르고 마치 술에 취한 것 같은 느낌이 데이빗을 감쌌다. 에리카가 들어간 뒤에도 데이빗은 한참을 그자리에 서 있었다.

[진정하자 데이빗, 단순한 인사였어. 알고 있잖아.]

알고는 있었지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아직도 팔에 그녀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고 뺨에는 부드러운 촉촉함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오늘 밤에 잠은 다 잤군.]

데이빗은 확신할 수 있었고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자신의 예상대로 잠을 설쳤다. 하지만 얼마 자지 못했음에도 아침에 컨디션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오늘은 다시 강한 체력 훈련을 받아야 했다. 잠을 많이 못잔것 치고는 충분히 괜찮은 상태라고 생각했다.

[어제는 분명 아름다웠어. 하지만 어제보다는 오늘, 그리고 내일이 더 행복할 거야.]

어제에 취해 오늘을 허투루 보낼 생각따윈 없었다. 달콤한 기억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은 현실을 바라볼 때다. 아마 오늘도 웨스트 코치는 자신을 죽일 것 처럼 굴려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데이빗은 어떤 힘든 훈련도 웃으면서 넘길 자신이 있었다.

[이 친구 어제부터 확실히 좀 변했는데.]

웨스트 코치는 고개를 갸웃하며 데이빗이 훈련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미 땀으로 목욕을 한 상태에 다리는 슬슬 후들거리고 있었고 호흡은 거칠었다. 하지만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고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다. 체력이 이미 다 떨어진 것은 진작 알았다. 주저 앉아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데이빗은 포기하지 않았다. 하루 사이에 어떤 절박함이 생겼을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웨스트 코치, 하지만 좋은게 좋은거라며 납득했다.

[좋아. 거기까지. 수고했어. 스트레칭을 충분히 해주고 들어가도록 해.]

괜찮은 변화라 느꼈다. 이런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해 준다면 빠른 시간에 꽤 쓸만해 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코치 생활을 해오면서 생긴 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 감이 자신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이녀석, 분명 물건이 될거야.]

몇주 동안 데이빗의 생활은 그야말로 단순했다. 하루 간격으로 웨스트 코치와 함께 피지컬 트레이닝, 회복훈련을 반복하고 오후에 카페에 출근하여 에리카와 만났다. 첫 데이트 이후 좀 더 데이빗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에리카였고 지금 데이빗이 체력 훈련을 받고 있다고 하자 먹는 것에 좀 더 신경써야 한다며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을 피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체력 훈련을 받는 도중 리저브 팀 선수들과 대면을 할 기회가 있었다. 감독의 소개를 받아 정식으로 팀원들에게 인사를 한 데이빗을 생각보다 별 문제 없이 받아준 동료들이었다. 현재 체력이 완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 웨스트 코치와의 특별 트레이닝을 마친 후에 본격적으로 팀 일정에 합류할 것이란 이야기를 듣자 선수들은 데이빗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봤는데 동병상련의 아픔을 이해하는 듯한 표정이라 헛웃음이 나왔다. 같이 고생하는 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오히려 데이빗에게 힘내라며 가벼운 덕담을 건넨 선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힘내라구. 웨스트 코치는 분명 악랄하고 좋지 못한 취미를 가진게 분명하지만 널 죽이진 않을 거야.'

'우리는 얼마전에 그 프로그램을 다 했지만 말야. 벌써 내년이 걱정되는 건 나뿐만은 아닐거야. 우리 리저브 선수들에게 빨리 1군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열망을 불어 일으키는 존재이기도 하지 그 사디스트는!]

입단 테스트에서 유소년 팀으로부터 좋지 못한 대우를 받았었기에 살짝 걱정이 되었던 데이빗이었지만 리저브 팀 선수들은 달랐다. 그랬기에 데이빗 또한 웃으며 그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빨리 팀 일정에 합류할 수 있기를 원하게 되었다.

7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데이빗이 리버풀에 입단한 지도 어느새 한달을 넘어갔다. 리저브 팀은 다른 팀들과의 연습경기를 치르며 시즌을 앞두고 경기력 향상을 꾀하고 있었다. 데이빗은 웨스트 코치와의 피지컬 트레이닝을 계속 이어갔는데 이제 그것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고생많았다. 아마 너도 느낄 수 있을거야.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는 분명히 바뀌었어.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너는 충분히 잘해 주었어. 너와 나의 훈련은 여기까지야. 내일 하루는 쉬고 이제 팀 일정에 합류하도록 해. 감독님에게도 그렇게 보고해 놓았어.]

코치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짓는 데이빗,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제 드디어 진정한 리버풀의 일원이 되었다고 느꼈다. 데이빗은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코치님. 덕분에 저 자신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데이빗의 감사에 코치 또한 웃으며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평소 늘 웃는 모습이었지만 조금 느낌이 달랐고 데이빗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는 분명히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을 거야. 너는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친다고 해도 이겨낼 수 있어. 내가 그렇게 가르쳤고 너는 능력을 증명했지. 문제가 생겼을 때 밖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지마. 답은 네 안에 있고 넌 이미 그것을 알고 있어. 다만 잠시 잊었을 뿐이야. 그것을 잊지 않으면 돼.]

코치의 가르침에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두고두고 담아 둘 말이라고 생각하며 데이빗은 가벼운 마음으로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오, 정말이야? 축하해 데이빗!]

늘 그렇듯 훈련을 마치고 에리카가 있는 카페로 향한 데이빗이었고 오늘 드디어 리저브 팀 일정에 합류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에리카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었다.

[고마워 에리카.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야. 겨우 스타트 라인에 선 거지. 목표는 어디까지나 리버풀 1팀에서 뛰는 거니까 말이야.]

몇번 만나면서 말을 편하게 하게 된 에리카와 데이빗이었다. 나이도 19세로 동갑이었기에(에리카는 생일이 아직 지나지 않았긴 했지만 말이다) 부담도 없었다.

[그래도 축하할 만한 일이야. 네 친구들에게는 이야기 해줬어?]

[아니, 아직 안했어. 지금 막 훈련을 마치고 나왔잖아. 제일 먼저 너에게 이야기 한거야.]

데이빗의 말이 꽤나 기분 좋았는지 에리카도 헤헤 웃으며 늘어진 표정을 짓는다.

[지금이라도 해줘. 그 친구들 분명 정말 기뻐할 거야.]

에리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여는 데이빗, 에리카는 마실 것을 가져오겠다며 자리를 옮겼다.

-여보세요?

[아 티티? 나야 데이빗. 오랜만이야.]

-아 데이빗? 그러게. 그동안 연락이 뜸하길래 훈련이 많이 힘든가 걱정했어. 몸은 좀 괜찮아?

[문제없어. 아주 좋아. 그런데 티티, 오늘은 좋은 소식을 알려주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좋은 소식? 무슨 일인데? 혹시 그 아가씨와 좀 더 깊은 사이가 된거야?

티티의 말에 피식하고 웃음을 흘리는 데이빗이다. 갑자기 제임스가 떠올랐다.

[아니야 티티. 물론 에리카와는 잘 지내고 있어. 그녀는 좋은 친구야. 근데 지금 할 이야기는 그게 아니라고.]

잠깐 말을 마치고 살짝 심호흡을 하는 데이빗, 마치 가족에게 이야기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에리카에게 말할 때와는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티티는 정말 좋은 친구지만 가끔 형이 있다면 이럴까 싶어. 가끔은 아버지 같은 느낌도 있고.'

[나 내일부터 리버풀 리저브 팀에 정식으로 합류하게 됐어.]

최대한의 감사와 기쁨을 담아 이야기했다. 자신에게 이런 좋은 날이 온 것은 다 네 덕분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 하지 않아도 티티는 알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는 언제나 현명했으니까.

-그게 정말이야? 오 이럴수가! 축하해 데이빗! 제임스! 이리 와봐! 빨리! 서두르라고!

흥분한 기색으로 제임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무슨일인데 그리 호들갑이야' 라며 제임스가 다가오는 소리가 작게 들렸고 이내 전화기를 바꿔주겠다는 티티의 목소리가 들렸다.

-데이빗? 무슨일 인데 티티가 저렇게 흥분한 거야?

[제임스, 나 이제 리버풀 리저브 팀에 정식으로 합류하게 됐어. 혼자 훈련 받는 건 이제 끝이라고.]

말을 마치자 마자 수화기에서 굉음(?)이 들려와 잠시 귀에서 멀리 뗀 데이빗, 참 여전한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다.

-크하하! 그거 정말 대단한 일이잖아! 오늘 한잔 해야지 데이빗! 축하 파티다!

[저기 제임스, 나 아직 퍼스트 팀에 올라간 것도 아닌데 너무 흥분하지 말라고. 축하 파티라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너는 이제 머지사이드에서 두번째로 위대한 팀의 일원이 된거라고! 그전에 이미 되었지만 이제 확실해졌지! 이런 날 한잔 하지 않으면 도대체 언제 하자는 거야?

제임스의 말에 한숨을 쉬는 데이빗이다. 하지만 표정은 전혀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별일 아닌데도 기뻐해주는 친구들의 모습에 기뻤다.

[알겠어. 티티도 시간 괜찮다고 하지? 오늘 내가 한턱 쏠게. 응 그래, 좀 있다가 보자.]

순식간에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마치자 에리카가 어느새 차 한잔을 들고 와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어?]

[응, 사실 그렇게 호들갑 떨 일도 아닌데 친구들이 나보다 더 들떠서 말이야. 저녁에 잠깐 보기로 했어.]

[그렇구나. 나도 오늘 축하해주고 싶었는데. 아쉽다.]

정말 아쉬운지 입술을 살짝 비죽이는 그녀의 모습에 실소를 흘리는 데이빗이다. 그러더니 에리카에게 같이 친구들을 보자고 권했다. 에리카는 데이빗의 제안을 생각지도 못했는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네 친구들 만나는데 내가 가면 어떻게 해.]

[너만 괜찮다면 같이 가고 싶어. 친구들도 너를 한번 보고 싶어해. 혹시 갑작스러워서 부담스럽다면 다음에 자리를 만들어 볼게.]

데이빗의 말에 '부담스러운건 아닌데...' 라며 중얼거리는 에리카였고 늘 행동이 빠른 그녀답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알았어. 나도 네 친구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 그럼 잘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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