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10화 (1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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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는 개리의 호언장담대로 굉장히 힘들었다. 애초에 목적이 데이빗이라는 선수의 육체적인 한계는 어디인가 를 알아보기 위함이니 힘들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스피드 테스트와 민첩성 테스트는 할만 했지만 지구력 테스트는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았다.

그중 가장 치가 떨렸던 테스트는 바로 셔틀런(Shuttle Run)이었다. 셔틀런은 20m 구간을 왕복해서 달리는 것인데 단계를 나누어 구간 별로 빨라지는 신호음에 맞춰서 달려야 한다. 보통 첫 달리고 속도를 8.5km/h 로 시작하여 매분 0.5km/h 씩 증가하는 방법이 통상적이다. 이러한 방식이 정말 사람을 잡는 다는 것을 데이빗은 뼈저리게 깨달았다.

'무리할 건 없어요.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하면 됩니다.'

간단한 말이었다. 그런데 할 수 있는데 까지라는게 참 애매모호한 기준이다. 그리고 애초에 테스트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상 어영부영 할 수 없는게 테스트 받는 쪽의 마음이 아닌가. 그러면서 1군에서 풀타임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최소한 120회는 기록해야 한다는 말을 은근슬쩍 흘리기 까지 했다. 그런말을 흘려놓고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엄청나게 얄미웠다. 그런고로 데이빗은 죽을 힘을 다해 테스트에 임했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매달리고 나서 결과를 확인할때 바튼 코치와 개리의 반응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음음, 당신도 역시 사람이었네요.'

라고 한 것이 개리의 반응이었고

'역시 신은 완전히 불공평한 것은 아니었군.'

라고 한 것이 바튼 코치의 반응이었다.

이런 반응이 나오니 데이빗은 되려 맥이 탁 풀려버렸다. 그 전까지 사람을 괴물보듯 바라보던 시선이 바뀐것은 바람직했지만 말이다. 이사람들 정말이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데이빗은 120회를 달성하지 못했다. 아니 80회를 넘길때 쯤 부터 죽을 것 같았고 간신히 100회를 넘기고 101회를 채우는 순간 쓰러져버렸다. 그래서 꽤나 낙심하고 있는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저런 말이었으니 황당했다.

짜게 식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헛기침을 하며 수고했다고 한마디 던져놓고 오늘은 이만 가도 좋다고 했며 자신들은 꾸며야 할 서류가 있어서 바쁘다고 했다. 오늘 측정 결과를 보고서 형식으로 정리해야 하고 향후 트레이닝 스케줄 또한 편성해야 할 것이라 이야기 해주었다.

그런고로 지금 데이빗은 완전히 녹초 상태, 과장해서 말한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태였다. 트레이닝 센터 밖으로 나와 길가에 설치된 벤치에 몸을 기댔다. 그래도 트레이닝 센터 안에서 샤워는 하고 나와 찝찝함은 없었다.

[좀 살살 뛸 걸 그랬나.]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중얼거려본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물론 진짜로 데이빗이 요령을 부렸다면 코치가 못알아볼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별 말없이 리포트란에 멘탈이 좋지 않다는 문구가 추가되었을게 분명했을 것이고 말이다.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올라 꽤나 더운 날씨, 앉아 있자니 덥고 움직이자니 힘들었다.

'뭔가 이거 사람이 글러먹은 것 같은데.'

시작 첫날부터 이렇게 퍼져버려서야 어디에 쓰겠나 싶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오늘은 스트레칭만 하고 운동하지 말라고 했고 내일도 강한 운동은 금지라고 했는데.

[하루 종일 뭘 하나 그럼.]

아직도 해가 중천이다. 지금부터 잘 수도 없고 방에 가봤자 아무것도 없다. 아무래도 취미거리를 좀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이 마르네.'

일단 뭐라도 좀 마시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음을 정한 데이빗은 주변을 살폈고 길 건너편 카페를 발견했다. 비쌀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고 아직도 예전의 사고방식이 남아 있는 자신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월급이 1만파운드가 넘는 고소득자(?)인 자신이 고작 음료 한잔 가격을 고민하다니 말이다.

'이래서야 무슨 취미 생활을 갖겠다고.'

혀를 차며 카페안으로 들어갔다.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었는지 시원한 내부 공기가 반겨 주었다. 인테리어도 깔끔해보였고 잔잔한 음악이 귀를 즐겁게 했다. 생각보다 마음에 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데이빗은 주문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해오는 종업원, 어깨까지 오는 길지 않은갈색머리에 머리색과 비슷한 담갈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여자였다. 눈매가 살짝 처지고 둥그스름한 것이 전체적으로 귀여운 상이었다.

[음...]

메뉴를 보던 데이빗은 곤란함을 느꼈다. 무슨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대부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대충 보면 커피같은데 이름들이 참 다양했다. 그러다 아는 메뉴를 발견했고 데이빗은 결정했다.

[콜라 한잔 주세요.]

종업원은 데이빗을 한번 살펴보더니 아까와 같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주문을 받았다. 데이빗은 머리를 긁적이며 계산을 하고 자리를 잡았다.

'촌스러워 보였나.'

아무래도 메뉴를 멍하니 쳐다보는 시간이 길었고 그렇게 두리번 거려놓고 기껏 시킨 것이 콜라였으니 그렇게 보일만도 했다고 생각했다. 가볍게 입맛을 다신 데이빗은 자리를 잡고 카페 내부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손님이 적다고 느꼈다. 인테리어도 이정도면 훌륭하다고 보였고 종업원도 꽤나 미인인데 손님이 적다니 약간 의아했다.

'설마 맛이 없나.'

그런 걱정이 들었지만 자신은 콜라를 시켰을 뿐이니 딱히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사람이 적으니 조용해서 좋았다.

[실례합니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테이블에 음료를 놓으며 미소를 짓는 종업원, 데이빗은 가볍게 감사를 표했고 음료를 마시려 했다.

[어...? 저는 콜라를 주문했는데요.]

음료는 콜라가 아닌 다른 것이 나와있었다. 의문을 표하는 데이빗의 모습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응대하는 종업원이다.

[축구선수시죠?]

[네? 그런데요. 어떻게 알았죠?]

살짝 놀라는 데이빗의 모습이 재밌었는지 쿡하고 웃고는 말을 있는 모습이다.

[그런 차림에 이 시간에 이곳 멜우드 앞에 있다면 당연히 알 수 있죠. 리버풀의 선수인가봐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하는 데이빗이다. 축구선수라 했고 리버풀의 앰블럼이 찍힌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으니 딱히 숨길 것도 없었다.

[운동하고 난 뒤에 탄산 음료는 좋지 않아요. 이거 라즈베리 티 인데 갈증해소에 도움도 되고 콜라보다는 몸에 더 좋아요.]

방긋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 데이빗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괜한 참견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친절을 받아 들여야 하나. 머리를 굴리며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데이빗의 눈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종업원의 모습이 들어왔다.

[혹시 괜한 참견이라고 생각하시면 다시 콜라로 가져다 드리겠...]

[아니오. 괜찮아요. 근데 이거 콜라보다 비싸지 않나요?]

화들짝 놀라며 손을 홰홰 젓는 데이빗, 이 여자 내 마음을 읽은건가 싶었기에 꽤나 당황한 모양새다. 그리고 순식간에 표정이 시무룩해졌다가 밝아지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괜찮아요. 리버풀의 선수에게 이 정도쯤 못해 드릴까봐요. 걱정 마세요.]

그리고는 '맛있게 드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카운터로 돌아갔다. 뭔가 말린 것 같은 느낌인데 나쁘진 않았다. 두 친구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받아보는 것 같은 타인으로부터의 호의였다. 그게 설령 손님 접대용의 멘트였다고 해도 말이다. 기분이 나쁠리 없었다. 잔을 들어 한모금 마셔보자 상큼한 향과 부드러운 맛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일단 취미라고 해야 할까, 여가 시간에 할 만한 일 하나 생겼네.'

차를 마시는 데이빗의 입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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