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9화 (9/346)

00009  -  =========================================================================

데이빗은 새로운 장소에 와 있었다. 리버풀 구단에서 제공한 일종의 기숙사였는데 1인 1실에 방 크기도 혼자 쓰기에 충분히 넓어 마음에 들었다.

[아니 애초에 난 짐도 거의 없고...]

항구에서 입었던 작업복에 허름한 운동복 한벌, 그리고 기타 옷가지 몇벌에 허름한 담요가 살림살이의 거의 전부였으니 말 다했다. 그리고 허름한 담요는 오자마자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방은 휑하기는 했으나 생활에 필요한 물품은 거의 다 구비되어 있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그냥 몸만 달랑 들어와도 사는데 큰 지장은 없었을 것 같다.

간단한 짐정리가 끝나고 데이빗은 자신이 항구 생활을 할 때 입었던 작업복을 펼쳐놓았다. 이곳저곳 해지고 얼룩이 진 볼품없는 옷, 앞으로는 입을 일이 없을 것이다. 아니 없어야 했다. 하지만 데이빗은 이 옷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이 옷을 보면서 두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다짐하겠어.]

볼품없는 이 옷이야말로 데이빗에게는 최고의 동기부여가 되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한 데이빗은 작업복을 옷걸이에 걸어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다. 이 옷은 자신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워 줄 것이다.

[읏차.]

푹신한 침대에 몸을 묻었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자 작은 액자에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세 남자의 모습, 보고 있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고마운 친구들이야 정말.]

성질 급하고 거친 면이 있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한결같은 제임스, 온화하고 다정하며 사려깊은, 마치 형이 있다면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는 티티, 데이빗의 유이한 친구들이었고 무엇보다 소중한 인연들이었다.

방 한켠에 정리해놓은 그들의 선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으 보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결국 1000파운드 받아냈지 제임스.]

하긴 제임스에게서 내기 돈을 떼어먹으려 드는 것은 전혀 현명한 일이 못된다. 그렇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은 성질머리를 자랑하는 핏불이었기에 약간은 놀랍기도 했다. 그 1000파운드의 일부가 지금 데이빗의 새출발을 축하하는 선물로 화하여 와 있었다.

[그나저나 이자식은 이딴걸 선물이라고...]

배고플때 먹으라고 사준 식료품은 고마웠다. 근데 도대체 남성과 여성의 사랑에 필요한 고무는 왜 사가지고 온 것인지 의도를 모르겠다. 그것도 한 박스 씩이나! 자신이 그에 대해 항의 하자 제임스는,

'의무방어를 칼같이 해줘야 코 안꿰인다. 너도 스캔들 조심해야지.'

란다. 아니 아직 출발도 안한 햇병아리에게 스캔들은 웬말이며 의무방어는 또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한숨을 쉬자 너도 다 알건 알지 않냐고 오히려 히죽댄다. 말을 말아야지.

그에 비해 티티는 역시 사려 깊었다. 마땅한 외출복이 없는 데이빗을 위해 비싸진 않지만 깔끔한 수트 한벌을 선물했고 각종 욕실 용품을 사들고 왔다. 데이빗이 고마워 하면서도 미안해하자 씩 웃으며 나중에 큰 돈을 벌면 다 받을거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갔다.

친구들을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짐과 함께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만약 자신이 슈퍼스타가 된다고 해도 친구들을 절대 배신하지 않겠노라고.

자명종 소리에 눈을 떴다.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알람을 눌러 껐다. 눈을 비벼 시각을 확인하니 오전 7시 30분, 데이빗은 크게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잤다. 잠자리가 편하니 확실히 좋네.]

커튼을 걷자 환한 햇빛이 방안을 비췄다. 우중충한 잉글랜드 날씨 답지 않은 쾌청한 날이었다. 물론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는 변덕스러운 날씨인지라 언제까지 맑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드디어 오늘이군.]

리버풀의 선수로서 시작하는 첫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어제밤 설레서 잠을 못이룰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푹 잘 수 있었다. 몸 컨디션도 괜찮고 의욕도 넘쳤다.

기숙사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잉글랜드의 아침식사는 꽤나 푸짐한 편이다. 세계에서 요리가 맛없기로 손꼽히는 잉글랜드에서 좋은 음식을 잘 먹으려면 잉글랜드식 아침식사를 3번 먹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잉글랜드 사람들이 아침 식사에 쏟아붓는 정성은 대단한 편이다.

영국식 아침식사(Full English Breakfast)는 주스나 차로 간단하게 시작한다. 취향에 따라 시리얼을 조금 곁들이기도 한다. 그 이후 기본적으로 베이컨, 달걀, 소시지, 버섯, 토마토, 콩과 토스트 등이 포함된 식사가 나온다. 아침식사 치고는 양도 제법 되는 편이고 맛도 그럭저럭 쓸만하다. 그리고 티 타임으로 유명한 잉글랜드 답게 차 한잔 역시 필수적으로 곁들인다.

데이빗은 처음으로 푸짐한 아침식사를 먹어본 셈이었고 매우 만족했다. 괜히 아침식사는 왕처럼, 점심식사는 왕자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으라는 속담이 나온게 아닌듯 싶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서 트레이닝 센터로 향했다. 기숙사에서 트레이닝 센터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 소화도 시킬겸 몸도 가볍게 풀겸 해서 걸어가기로 했다. 일찍 일어났기에 시간도 충분했고 아침이라 크게 덥지도 않았다.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비틀즈의 Let It Be 를 흥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기분 좋게 걷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고보니...트레이닝 센터로 나오라고만 했지 어디로 오라고는 못들었는데?]

가볍게 혀를 차고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리버풀과 계약을 하면서 핸드폰은 반드시 있어야겠다고 느꼈기에 장만한 것이다. 그때 타이밍 좋게 벨이 울렸고 데이빗은 발신 번호를 확인했다. 리버풀의 코치로부터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데이빗? 혹시 지금 어디쯤 왔나?]

[트레이닝 센터 앞이에요. 안그래도 지금 어디로 갈까 물어보려고 했어요.]

[아 빨리 왔군.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오게.]

전화를 끊고 건물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매칼리스터씨? 그리고 바튼 코치님.]

리버풀의 스카우트 개리 매칼리스터와 테스트 당시 보았던 팀 바튼 코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미소를 지으며 데이빗을 반겨주었다.

[반가워요 데이빗. 오, 이렇게 입으니 정말 리버풀 선수가 되었다는 실감이 나네요. 스카우트로서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죠.]

[다 매칼리스터씨 덕분이에요.]

[겸손도 좋지만 데이빗은 자신감을 가져도 좋아요. 데이빗이라면 분명 나에게 최고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줄 거라 믿어요.]

무슨 말이냐고 묻자 별거 아니라는 듯이 들려오는 대답.

[스카우트가 가장 보람을 느낄때는 자신이 발굴한 선수가 굉장한 스타가 되었을 때 입니다. 데이빗의 경우는 제가 발굴했다고 하긴 좀 뭣하지만 어쨌든 리버풀 구단에 보고 된 바로는 제가 찾은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데이빗이 성공한다면 저도 기뻐요. 물론 제 연봉 고과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테고 말이에요.]

그렇게 농담을 섞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코치가 슬쩍 끼어들었다.

[이야기는 그쯤 하고 이제 슬슬 일을 시작하자구요 개리씨.]

[그래요. 데이빗씨, 오늘 당신이 어떤 프로그램을 소화할 지 알고 있습니까?]

알리가 없다. 그런고로 데이빗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 당신은 피지컬 테스트를 받게 될겁니다. 아 테스트란 말은 좀 어폐가 있군요. 이미 당신은 리버풀의 선수가 되었으니까요. 이것도 참 굉장한 일이라는 거 아십니까? 피지컬 테스트도 받지 않고 우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는 거라구요. 놀랍지 않나요?]

또다시 칭찬을 시작하는데 이쯤되면 몸둘바를 모르겠다. 어색한 미소를 지은채 뺨을 긁고 있으니 본론을 계속한다.

[크게 스피드 테스트(Speed Test)와 민첩성 테스트(Agility Test), 그리고 지구력 테스트(Endurance Test) 세 파트로 나누어 집니다. 물론 세부 항목으로 들어가면 좀 더 다양하지만 결국 종합적으로 보면 세가지 능력을 보는 거죠. 아마 오늘은 태어나서 가장 힘든 날이 될겁니다. 장담할 수 있죠.]

말을 마치며 불길한 미소를 짓는 개리, 옆에 있는 바튼 코치의 표정도 비슷했다. 웬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다. 표정에서 살짝 긴장한 티가 났는지 개리와 바튼 코치가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짓는다. 이사람들이?

[일단 스피드 테스트부터 시작할겁니다. 그라운드로 나가시죠.]

그라운드에 도착한 데이빗은 먼저 몸을 충분히 풀라는 코치의 지시에 가볍게 운동장을 한바퀴 뛰고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코치는 선수경력이 처음인 데이빗을 위해 올바른 스트레칭 법을 알려주었다. 30분 정도 몸을 풀고 본격적인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50m 러닝부터 시작합니다. 준비 됐나요?]

[언제든지요.]

[좋아요. 코치님이 신호에 맞춰 시작하면 됩니다.]

자세를 잡으며 호흡을 한번 가다듬었다. 이윽고 코치의 휘슬소리가 울렸고 데이빗의 다리가 지면을 박찼다.

타타타탁

눈깜짝할 사이에 톱스피드에 도달한 데이빗은 50m는 너무 짧다는 듯 순식간에 주파했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록 확인을 위해 코치의 곁으로 향했다.

[......]

코치의 표정이 영 딱딱했다. 기록이 영 시원찮게 나온것인지 살짝 걱정이 되는 데이빗이다. 그럭저럭 잘 뛴 것 같았는데 문제가 있었나 싶었다. 개리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코치에게 다가와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았다. 코치는 대답없이 데이빗의 기록을 들어보였다.

[...5.60????]

개리도 결국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이건 세계 톱클래스의 기록이다. 개리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분명 작년 최고 기록이 5.53인가 그랬지. 다비드 수아소(David Suazo)가 그 주인공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C.호날두와 메시가 5.60 정도였지 분명. 오 마이갓...'

코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연신 그레이트! 어메이징! 을 외치며 데이빗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 코치를 손짓하여 부르는 개리, 그리고는 둘이 속닥속닥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서로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얘길 하는거지?'

궁금해하는 것도 잠시, 싱글벙글 웃으며 데이빗에게 다가와 이번에는 공을 몰고 50m를 뛰어보라고 한다. 분명 시작전에 오늘은 공은 구경도 못할거라고 얘기를 들었는데? 하지만 뭐 하라면 해야지 별 수 있나 싶었다. 코치가 저쪽에서 부랴부랴 공을 챙겨 오는 모습이 보였다.

공을 몰고 스타트라인에 서자 바튼 코치와 개리의 눈빛이 반짝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쳐다보면 부담스럽잖아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볍게 숨을 고르고 준비되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코치의 휘슬소리가 울렸다.

공을 크게 크게 치고 나가는 데이빗, 하지만 투박해보이지 않았고 시원시원하게 공을 치고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속도도 좀 전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 듯한 모습, 아니 공을 몰고 뛰는걸 감안한다면...

'체감상 더 빨라진 것 같은 기분인데...'

개리 코치는 진심으로 기록이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데이빗이 50m지점을 통과하자마자 코치를 향해 달려갔다. 이번에도 코치는 데이빗의 기록을 보고는 얼어붙어 있었다.

'그만좀 놀라시라고. 뭐 반응을 보니 대단한 기록이...헉?!'

개리 또한 얼어붙어버렸다. 코치가 측정한 데이빗의 기록은.

[5.62????]

개리와 바튼 코치는 앞으로 데이빗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절대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위 50m 기록은 사커라인에서 코코리님이 올리신 자료를 참고 했습니다.

2007년 기준의 자료라고 하네요. 한번 보시죠.

50M dash (Off the ball) 공 없이 뛰었을때의 기록입니다.

David Suazo 5.53

Luis Perea 5.54

Obafemi Martins 5.55

Valon Behrami 5.58

Richardo Kaka 5.59

Michael Owen 5.59

Cristiano Ronaldo 5.60

Darren Bent 5.61

Robinho 5.61

Dennis Rommedahl 5.61

Shaun Wright-Phillips 5.63

Lionel Messi 5.63

Aaron Lennon 5.64

Ronaldo 5.65

50M Dribble (Ball Possessed) 이번에는 공이 있었을때의 기록입니다.

Cristiano Ronaldo 5.63

Richardo Kaka 5.66

Ronaldo 5.68

Robinho 5.70

Michael Owen 5.73

David Suazo 5.73

Lionel Messi 5.74

Dennis Rommedahl 5.75

Aaron Lennon 5.76

Obafemi Martins 5.76

Shaun Wright-Phillips 5.78

Darren Bent 5.79

Valon Behrami 5.85

Luis Perea 5.91

C호날두와 호돈신은 드리블이랑 그냥 뛰는게 0.03초 차이; 아니 C호날두는 젊으니까 그렇다 쳐도(뭘 그렇다고 쳐;) 호돈신은 저때 나이가 있으신데 저런 미친 기록이...; 저 자료가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요;

역시 현실이 판타지인듯.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