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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러니까 저 친구가 꽤나 쓸만한 것 같다는 말이군?]
[네. 별 기대 안하고 테스트 했는데 볼 다루는 기술이 정말 좋았습니다. 체력테스트는 아직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기대할만한 친구라고 생각되서 경기에 뛰는 모습을 좀 보고 싶네요.]
개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유소년 팀 감독이다. 오늘 예정된 훈련도 팀 내 청백전, 그 중 한 자리를 할애하는 일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마침 잘됐군. 오늘 훈련도 청백전 훈련이니만큼 한번 기용해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간단히 데이빗의 연습경기 참가에 대한 허락을 받아 낸 개리는 데이빗에게 그 소식을 전해주었다.
[...해서 갑작스럽지만 리버풀 유소년 선수들과 연습경기를 치르게 되었는데 괜찮나요?]
개리의 질문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데이빗. 사실 그로서도 재미없는 테스트를 치르는 것보다 시합 한 게임 뛰는 것이 훨씬 즐겁다.
[물론이죠.]
시원스런 데이빗의 모습에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이는 개리.
[그런데 데이빗은 주로 뛰는 포지션이 어디인가요?]
[주로 공격수로 많이 뛰었어요. 사이드나 중앙에서 뛴 적도 좀 있어요.]
[그럼 감독에게 그렇게 전해 놓을게요. 갑작스럽게 시합에 뛰게되어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긴장 풀고 편하게 뛰도록 해요.]
알았노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한쪽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푸는 데이빗을 두고 개리는 유소년팀 감독에게 데이빗의 희망 포지션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공격수로 주로 뛰었다고 합니다. 윙어나 미드필더도 몇번 뛰어 봤다고 하는 군요.]
[그렇군. 알겠네. 그나저나 저 친구 어땠기에 개리 자네가 이렇게 열성적으로 나서는 건지 궁금하군 그래. 눈 높기로 소문난 개리 매칼리스터가 말이야.]
감독의 장난기 어린 말에 살짝 웃음을 보이는 개리였다.
'눈이 특별히 높은건 아니지만 리버풀에 어중이 떠중이를 데려올 순 없다고!'
그는 스카우터로서 자부심이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클럽, 위대한 리버풀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가 특별히 까다로운 건 아니지만 저 친구는 누가봐도 훌륭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 드리블을 보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바로 안과에 달려가는게 낫겠지. 아니면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하거나!'
그런 개리의 말에 다시 한번 데이빗을 힐끔 쳐다보는 감독, 그의 눈에는 단지 허름한 차림의 동양인일 뿐이었다.
[자네가 이렇게 추천하니 나도 기대가 되는군 그래. 곧 실력을 확인할 수 있을테지.]
연습경기를 앞두고 데이빗이 경기에 참가할 것이라는 사실을 선수들에게 알려주자 가벼운 술렁거림이 있었다. 가끔 입단테스트를 받는 선수들이 훈련에 참가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동양인 출신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의혹, 무시, 경계 따위의 감정이 선수들의 눈에 떠올라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데이빗은 코치가 나눠주는 조끼를 받아입으며 몸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있었다.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포지션은 4-3-3 포메이션에서의 왼쪽 윙포워드, 괜찮은 포지션이라 생각하며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럼 시작한다.]
삐익~!
감독의 지시와 함께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리버풀 유소년 선수들, 아직 어린 선수들이지만 이들이 곧 미래의 리버풀이기에 그 재능이 범용할리 없었다. 꽤나 짜임새 있고 빠른, 수준 있는 플레이를 보이기 시작하는 선수들이다.
[이런...어린 친구들이 새로 들어온 친구를 좀 무시하는군 그래.]
경기를 보고 있던 감독의 인상이 조금 찌푸려진다. 아마 동양인이라고 무시, 또는 새로 들어올지도 모르는 선수에 대한 견제라고 보여진다. 옆에서 함께 보고 있던 개리의 표정도 그리 좋지 않았다.
[이봐! 새로 들어온 친구에게 공을 좀 돌리란 말이야!]
결국 터치라인에 서서 크게 지시하는 감독, 그제서야 데이빗을 향해 패스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경기 시작후 7분만이었으니 감독이 나설만도 했다.
'쳇, 동양인 따위에게 패스를 해야하다니.'
감독의 지시에 어쩔수 없이 데이빗을 향해 패스를 날리는 조쉬는 기분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감독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터라 기껍지 않을 지언정 그를 향해 패스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호락호락하게 지시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약간의 심술을 담아 공을 강하게 찼다.
'어디 받아보라고. 원숭이 녀석.'
데이빗은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어린 나이에 험한 일을 하며 별꼴을 다 보아온지라 눈치가 제법 빠르다. 특히 자신을 향한 적대감을 느끼는 데에는 도가 텄다. 딱 보아도 지금 리버풀 유소년 선수들은 자신을 왕따시키고 있었다. 뭐 눈치가 없어도 7분동안 공이 한번도 오지 않았다면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심지어 좋은 위치로 파고 들어도 그들은 자신을 무시했으니 말이다.
'젠장, 뭐 공이 와야 테스트를 받던가 할거 아니냐고!'
자신의 실력이 모자라서 떨어진다면 억울할 것도 없지만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떨어진다면? 그런 생각이 들자 저절로 이가 앙다물어진다. 좋은 위치를 잡아도, 빈공간으로 뛰어 들어가면 뭐하는가, 공이 오질 않는데. 자신은 산책을 하러 온게 아니었다. 프로가 될 수 있는 지 없는 지 그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찾아온 자리였다. 그런데 이런 꼴이니 분통이 터질만도 했다.
답답한 시간이 계속되던 중, 감독이 자신에게 공을 주라는 지시가 들려온다. 그리고 중앙에서 공을 잡고 있던 한명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신에게 패스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엄마도 못 알아볼 자식이!'
코 앞에서 슈팅을 때리듯이 패스를 하면 어쩌란 말인가. 당연히 공을 받아내지 못했고 그대로 터치라인을 넘어가버렸다.
[......]
인상을 차갑게 굳히며 방금 자신을 향해 슛을 날린 선수를 쏘아보는 데이빗이다. 본인도 조금은 켕기는 것이 있는지 눈이 약간 흔들린다. 겁쟁이 같으니라고. 그런 배짱으로 시비를 걸었다는 사실이 웃겼다.
[뭘 노려보냐 이 Yellow Monkey 자식아!]
뒤늦게 자신의 실태를 깨달았는지 얼굴이 시뻘개진채 달려드는 녀석이다. 피식 비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젓는 데이빗,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한 모습에 더욱 흥분해서 달려든다.
[이 빌어먹을 원숭이 자식이 감히 누굴...헉?!]
고개를 돌리는 데이빗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 돌려놓는 것 까진 좋았으나 어느새 자신의 눈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데이빗의 모습에 주춤한다. 이글거리는 데이빗의 눈빛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까.
[너같이 존나 엿같은 얼간이가 짖어대는 건 아무 상관없긴 한데, 네놈때문에 내 인생을 망치게 된다면 가만두지 않을거야. 알겠어?]
[...이...이 자식이...?!]
둘 사이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이 와서 말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굴이 시뻘개진 유소년 팀 감독이 부랴부랴 달려와서 호통치기 시작했다.
[네놈들 지금 신성한 그라운드에서 무슨 망할 짓거리들이냐?! 조쉬!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한다는 소리가 인종차별이냐? 쓰레기 같은 자식! 내 눈앞에서 꺼져 버려! 너 같은 자식은 리버풀의 유니폼을 입을 자격이 없어!]
감독이 노발대발해서 날뛰자 표정이 일그러진채 항의하는 조쉬, 하지만 감독은 냉랭한 표정을 지우지 않은채 그를 그라운드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자네, 물론 우리팀 어린놈들이 먼저 예의없게 굴긴 했지만 막 테스트를 받으러 온 친구가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도 좋아보이진 않아. 내 말 알겠나?]
[......]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데이빗, 사실 억울한 마음이 더 컸지만 자신에게 욕한 놈은 그라운드 밖으로 쫓겨나갔으니 어느 정도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다고 봐도 되리라. 그리고 감독의 말 마따나 자신은 이곳에 테스트를 받으러 온 신입일 뿐이었으니까.
[다른 놈들도 명심해. 어줍잖은 편견으로 경기를 망치는 놈이 또 보이면 그 자리에서 바로 빼버릴거야. 내 말 명심해. 알겠어?]
감독이 그라운드 밖으로 나가고 재개된 경기, 아무래도 분위기가 차게 식어버렸다. 다들 움직임이 소극적이 되었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모습에 데이빗은 내심 혀를 찼다.
'이것들은 죄다 머저리들인가. 이럴때일 수록 활발하게 움직여야 감독 눈에 들어갈거 아냐.'
속으로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진 유소년 선수들을 비웃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공간을 찾는다. 그리고 손을 크게 들며 빈 공간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공을 안주면 정말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
그런 데이빗의 움직임에 맞춰 날아오는 패스, 감독의 불호령이 효과가 있었는 지 적절한 코스와 강도의 패스였다.
'진작 이런 패스를 했으면 좋잖아!'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가볍게 공을 받아 낸다. 개리가 보고 감탄했던 부드러운 트래핑과 동시에 한명을 자연스럽게 제쳐낸다. 마치 한 동작과도 같은 전혀 낭비가 없는 움직임, 그리고 부드러우면서도 폭발적인 가속이 이루어졌다.
[!!!]
자신을 마크하기 위해 어슬렁 거리며 다가오던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인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어중간한 곳에서 얼쩡거리라고 했냐. 이미 가속이 끝난 상태의 공격수를 공간을 선점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어찌 막으려고 한 것인지 웃음이 나온다.
'어지간히도 날 얕봤구만.'
순간 스피드로 한명을 떨궈버린 채 쭉쭉 치고 올라가는 데이빗, 앞에 남은 수비수는 둘, 아니 하나!
'앞에 있는 이녀석만 제압하면 커버들어오는 녀석이 붙기 전에 때릴 수 있어!'
드리블에는 자신 있다. 그렇기에 선택은 최대한 빠른 돌파, 이를 위한 최적의 방법을 상상한다. 밍기적 거리다간 에워 싸일 수 있다. 찰나의 시간에 그려진 이미지, 그리고 그 이미지를 현실로 만드는 데이빗이다.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공을 바깥으로 밀어낸다. 자연스레 수비수의 움직임이 쏠린다. 하지만 그것은 속임수, 데이빗의 오른발이 유연하게 꺾이며 공을 다시 끌어온다. 동시에 왼쪽으로 밀려온 공을 앞으로 부드럽게 밀고 나가는 왼발, 외계인이라 불렸던 호나우지뉴(Ronaldino)의 전매특허 개인기, 스피드를 죽이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플리플랩에 완전히 무게중심을 잃어버린 수비수가 나가 떨어지고 데이빗의 앞에는 골키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또한 데이빗을 막지 못했던 팀원들처럼 무력했다. 굳이 강한 슈팅도 필요없었다. 골문 구석을 정확하게 노리는 낮은 탄도의 그것은 슈팅은 마지막 패스라는 말에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었다.
출렁-
골망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씨익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는 데이빗,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유소년 선수들이었다. 무려 리버풀의 유소년 팀이 일개 테스트 생에게 박살이 나버렸다.
[저...지금 뭐...허참.]
데이빗의 플레이에 할말을 잃어버린 유소년 감독이다. 개리 또한 마찬가지로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지?]
아직 조금 멍한 기색이 보이는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개리, 그리고 곧 흥분한 감독의 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거야!? 혼자 40야드를 뚫고 들어가서 골?! 세명을 제치고? 오 맙소사! 지금 본게 꿈이 아니라고!?]
개리는 감독만큼은 아니었지만 흥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꽉 움켜쥔 주먹에는 땀이 흥건했다.
'지저스! 내가 메시나 호날두를 잘못 데려온 건 아니겠지!'
유소년팀이지만 무려 '리버풀'의 유소년팀이다. 모두가 프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이들은 이들 나이 또래에서는 프로에 가장 가까운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예비 프로 선수들이 부두 노동자 출신의 테스트 생에게 농락당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훈련장 안팍을 뒤집어버린 데이빗은 사람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골을 넣은 덕분인지 이제는 감독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패스가 제대로 오기 시작한다. 그 덕분에 지금은 완전히 경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데이빗이다.
그리고 이날 데이빗은 청백전에서 전반전에만 4골을 몰아 넣으며 자신의 친구 티티의 안목이 예사롭지 않음을 증명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