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Answer-3화 (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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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프군.]

리버풀FC 소속의 스카우터 개리 매칼리스터는 머리가 아팠다. 프리미어리그를 주름 잡는 4개의 팀 중 하나로 꼽히는 리버풀이었으나 최근의 행보는 좋지 못하다. 몇년전 이스탄불에서 기적을 일으키며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을 차지한 이후 변변한 트로피 하나 얻지 못하고 빅4의 자리마저 토튼햄, 맨시티 같은 팀들에게 위협받고 있었던 것이다.

중원의 지휘자 사비 알론소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전력에 차질을 가져 왔고 이적을 요구한 마스체라노는 자신의 요구가 거절되자 눈에 띄게 불만을 가진 듯한 모습을 보여 팀 케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리버풀의 옛 영광을 되찾길 바라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를 사와도 부족할 판에 가지고 있는 유능한 선수를 파는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빌어먹을 구단주. 리버풀을 가지고 장사속만 차리려는 재수없는 양키 같으니.]

스카우터들이 발에 땀이 나도록 좋은 선수를 찾아오면 무얼 하는가. 구단주는 리버풀에 투자 할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있는 선수를 팔아 치워 장사속을 채우기 바빴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이 친구는 진짜로 연락해왔으니...]

리버풀 항만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의 친구 새뮤얼 로이, 제법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친구라 가끔 만나서 술한잔 하는 사이였지만.

[동네에서 축구 좀 잘한다고 들어올만큼 만만한 팀이 되어버린건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세계에서 최고의 재능을 가진 이들이 모이는 프리미어리그, 그중에서도 톱 클래스의 팀이 리버풀이다. 저는 공 좀 찰 줄 압니다! 동네 축구에서는 져본적이 없죠! 라는 정도의 레벨로 리버풀 입단을 꿈꾼다? 약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이상해진게 아니냐고 물어봐야 할 것이다. 개리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친구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텐데...]

그나마 고민하고 있는 이유가 그 친구의 평소 행실때문이다. 평소 점잖은 이 친구가 얼마전부터 좋은 재능을 가진 친구가 있으니 테스트 한번만 해달라고 부탁을 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스카우터로 있으면 주변에서 그런 청탁을 자주 받기 마련이다. 그랬기에 좋게 웃으며 넘어가려 했으나 평소답지 않게 계속 부탁하는 모습에 그러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게 생각해야지. 돈 드는 일도 아니고 좀 귀찮을 뿐인데 말야. 운만 좋으면 정말 괜찮은 친구하나 얻을 수도 있으니까.]

물론 기대는 전혀 들지 않았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여기구나.]

조금은 긴장된 표정으로 눈앞의 건물을 응시하는 데이빗, 'WELCOME TO MELWOOD'라는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멜우드 트레이닝 센터(MELWOOD TRAINING CENTER). 1950년대부터 리버풀이 사용한 이곳은 원래 조그마한 학교 운동장이었다. 그런만큼 시설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당시 선수들은 안필드에 모여 옷을 갈아입고 버스를 타고 이곳에 와서 훈련을 한 뒤 다시 안필드로 돌아가 샤워를 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야 리버풀은 선수들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돕겠다며 최신식 훈련장을 지었다. 그 이후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경기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멜우드 트레이닝 센터에 모이게 되었다. 리버풀의 현재와 미래가 만들어지는 곳이 바로 이곳 멜우드 트레이닝 센터였다.

[일찍 왔군요. 데이빗씨 맞습니까?]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기회를 준 스카우터임을 직감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네. 데이빗 장 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만나서 반갑군요. 개리 매칼리스터라고 합니다. 오늘 좋은 모습을 보여 리버풀의 미래가 되길 바랍니다.]

가벼운 인사을 건네며 악수를 청하는 남자, 데이빗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손을 맞 잡았다.

[이쪽으로 오시죠. 아직 테스트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미리 몸을 충분히 풀어 놓는 편이 좋을 겁니다.]

남자를 따라 트레이닝 센터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데이빗,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들을 맞이 한 것은 리버풀의 영원한 전설 빌 샹클리의 흉상과 그가 남긴 한마디 였다.

Above all, I would like to be remembered as a man who was selfless, who strove and worried so that others could share the glory and who built up a family of people who could hold their heads up high and say...

We are Liverpool.

-BILL SHANKLY

빌 샹클리의 흉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데이빗, 리버풀의 전설이자 수많은 명언을 남긴 위대한 축구인, 리버풀 선수들은 매일 멜우드에 들어오며 빌 샹클리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리버풀이다. 나는 리버풀이다.'라고 다짐한다.

[그는 리버풀이었죠. 리버풀이 곧 그였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터무니 없는 소리!'

덕담을 건네고 자신의 말이 얼마나 실현되기 어려운 일인지 깨달은 개리는 속으로 자신을 비웃으며 데이빗을 이끌었다.

[오늘은 기본기 테스트와 체력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먼저 숏 패스와 볼 트래핑 테스트부터 시작합니다. 지금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네. 문제 없어요.]

운동장 한쪽에서 몸을 풀고 있던 데이빗에게 오늘 테스트 일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테스트 시작을 알려주는 개리, 데이빗은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다.

[좋아요. 그럼 저 코치와 함께 패스를 주고받으면 됩니다. 다이렉트로 처리해도 좋지만 패스가 정확하지 않다면 평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니 신중하게 임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표한 데이빗, 그리고 자신의 테스트 파트너를 응시한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하고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한 손을 들어 올린다.

-삐익~!

테스트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와 함께 공을 굴리고 있던 코치가 공을 강하게 찼다. 갑작스러운 빠른 패스,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보통의 사람이라면 반응도 하기 힘들 스피드의 공이었다. 하지만 데이빗은 보통의 사람이 아니었다.

오른발 인사이드로 가볍게 볼을 받아 낸다. 미묘한 중심이동으로 볼의 스피드를 완벽히 죽이고 튕겨져 나가려는 볼을 잡아 놓았다. 마지막에 살짝 발을 꺾어 왼발로 차기 좋은 지점에 공을 보내고 부드럽게 공을 돌려 보낸다.

[호오...]

지켜보고 있던 개리 매칼리스터의 눈에 이채가 돈다. 사실 테스트를 부탁하며 코치에게 면목이 없었다. 코치도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으나 자신의 체면을 보아 허락해준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초반부터 강하게 진행하여 볼게 없으면 빨리 떨어뜨리자고 이야기 해 놓았던 것이다. 보통 테스트를 진행하는데 있어서는 긴장하고 있을 테스트 생들을 배려하여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말이다.

공을 돌려받은 코치의 표정에서도 살짝 놀란 기색이 보였다. 사실 내키지 않는 테스트라 귀찮기도 했고 초반부터 세게 나가라는 말도 들었기에 스트레스를 담아 평소보다 강하게 공을 찼는데 완벽하게 공을 받아내고 빠르게 리턴을 보내왔다.

'어디 다시 한번 시험해 볼까?'

다시 강하게 공을 보내는 코치였다. 데이빗은 좀전의 트래핑이 운이 아니라는 듯 유연하게 볼을 트래핑하고 빠르게 돌려보냈다. 차이점은 이번에는 왼발로 트래핑하고 오른발로 패스했다는 점에 불과했다.

그 이후 계속 이어지는 빠른 패스워크, 데이빗은 오른발, 왼발을 번갈아가며 사용하며 자신의 능력을 어필했고 나중에는 다이렉트로 바로 돌려보내며 여유로운 모습을 과시했다.

[볼 트래핑은 꽤나 쓸만하네. 패스도 아직은 미스가 없고. 흠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인데?]

귀찮게만 느껴졌던 테스트에 조금은 흥미가 생겼다. 그것은 코치도 마찬가지였는지 이제는 완연히 집중하여 테스트생의 능력을 알아보는데 힘을 쏟고 있었다. 패스의 강약, 코스를 조절하며 대응 능력을 파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진 롱패스에서도 데이빗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개리의 고개를 긍정적으로 끄덕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개리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던 부분은 소위 아마추어, 길거리 축구에서 날렸다는 친구들이 보통 보이는 쓰잘데기 없는 화려한 동작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멍청한 짓이지.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묘기에 가까운 동작을 해낼 수 있다. 단지 필요가 없기에 안하는 것일 뿐이다. 빠르고 간결하게 처리해도 상대 수비를 이겨낼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에서 느긋하게 묘기나 부리고 있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런데 명색이 프로를 꿈꾸며 테스트를 받으러 온 녀석들이 되도 않는 쓸모라고는 전혀 없는 발놀림을 뽐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답답함뿐만아니라 측은함까지 느꼈던 개리였다.

'그런면에 있어서는 합격. 축구를 배운 적이 없다고 했나? 그런데도 기본기가 꽤나 충실하네. 아직까지 미스 한번 없는 거 보니.'

패스와 트래핑 테스트를 시작한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을 생각하면 단 한번의 미스도 없다는 것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상대해 주고 있는 코치가 몇차례 작은 미스를 범한 점을 두고 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정도면 패스와 트래핑부분은 합격이야.'

[여기까지 합시다. 수고했어요 데이빗. 샘이 추천한대로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군요.]

[벌써 끝인가요?]

데이빗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 저으며 대답하는 개리.

[그럴리가요. 이제 다음 테스트로 넘어가는 것 뿐이죠. 패스와 볼 트래핑은 정말 훌륭하니 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다음 테스트에서도 이런 능력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겁니다.]

이어진 테스트는 드리블 테스트였다. 콘을 여러개 세워놓고 그 사이를 통과하는 것으로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정확함과 신속함이 동시에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삐익~!

휘슬소리와 함께 드리블을 시작한 데이빗은 내심 자신이 있었다. 드리블 하나만큼은 내심 프로의 수준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는 그였기에 이번 테스트에서 확실히 눈도장을 찍겠다고 다짐했다.

'콘 사이를 통과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어떻게 할까...빠르고 간결하게? 아니면 화려하게?'

항구에서 내기 시합을 할때 데이빗은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존재였다. 관리가 제대로 안되어 수시로 불규칙한 바운드가 일어나는 그라운드, 강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 소싯적에 공좀 찬 티가 역력한 덩치 좋은 상대 수비들, 그 어떤 것도 데이빗에게 장애가 되지 못했다. 하물며 가만히 서있는 콘을 통과하는게 대수랴. 고민은 길지 않았다. 첫번째 콘이 눈에 들어왔다. 미소를 지우지 않은채 왼발로 공을 오른쪽으로 밀어간다. 자연스럽게 콘의 오른쪽을 지나가는 데이빗, 그리고 곧바로 오른발로 공을 꺾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속.

[오...]

[저...저...]

놀란 기색이 역력한 코치와 개리, 데이빗은 원터치로 콘을 하나씩 지나치고 있었다. 그것 뿐이라면 놀랍지 않을 것이다. 프로라면 그정도는 자랑거리도 아니니까. 저는 코로 숨을 쉴 줄 압니다. 오른손으로 밥을 먹을수도 있죠! 라며 자랑하는 사람이 없는 것 처럼 말이다. 문제는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는 것이다. 10개의 콘을 단 11번의 터치만으로, 발목과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나 싶을 정도의 스피드로 말이다.

'이거 아무래도 잭팟 터진거 아닌가 싶은데.'

순식간에 장애물을 통과하고 공을 세운 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데이빗을 보며 조금은 기대가 생기는 것을 느끼는 개리였다. 코치도 자신의 생각과 동일한 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준다.

[데이빗, 멋진 퍼포먼스였어요. 그런데 조금 무리한 동작 아니었나요? 역동적인 모습이 멋졌는데 그렇게 빠른 방향전환을 딜레이 없이 구사하면 부상이 있을 수도 있어요.]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개리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한 데이빗은 문제 없다는 듯 조용히 답변한다.

[문제 없어요. 실은 테스트 중이라 실수 할 까봐 조금은 속도를 줄였거든요.]

'오 마이 갓! 농담이겠지?! 방금 그게 속도를 줄인거라고?! 지금 내가 들은게 사실이야?'

속으로 놀람을 주체할 수 없는 개리였다. 방금 보여준 퍼포먼스만 해도 일류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뭐? 실수 할 것이 두려워 조금 몸을 사린 게 그정도라고 한다.

[그...그렇군요. 놀라워요. 당신 같은 재능을 여지껏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군요. 학교에서 축구를 해보라고 권유하지는 않았나요?]

흥분한 개리의 모습에 저사람 왜 저러나 싶은 기색이 역력한 데이빗이다. 하지만 곧 의문을 접고 그의 질문에 대답한다.

[학교는 그리 즐거운 곳이 못되었어요. 다들 그들과 다른 나의 피부색을 두고 무시하고 놀렸죠. 누구도 저를 끼워주지 않았어요. 학교를 마치고 언제나 빈 공터에서 혼자 공을 차곤 했어요. 축구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던 것은 16살이 되고 정식으로 일을 하고 난 뒤에야 가능했죠.]

데이빗의 대답에 멍한 기색이 역력한 개리와 코치였다. 타고난 놈이다. 프로필에 적힌 이 친구의 생년월일은 90년 5월 22일. 2009년인 올해에 19세에 불과한 친구다. 제대로 축구를 배우지도 않은 사람이 이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개리씨, 저 친구 테스트 말인데요.]

[아, 말씀하세요.]

[체력 테스트 대신 바로 시합에 넣어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침 30분 뒤부터 리버풀 유소년 클럽 선수들의 연습이 있는데 말이죠.]

[가능하겠습니까? 사실 저 친구의 퍼포먼스를 보고 있자면 체력이 약하다고 해도 계약하고 싶습니다. 저런 테크닉과 스피드는 아무나 보여줄 수 있는게 아니죠. 실제 경기를 뛰는 모습을 보고 싶은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소년팀 감독에게 언질을 넣어보겠습니다. 그리 빡빡한 양반이 아니니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됩니다. 유망한 선수를 테스트한다고 하면 오히려 환영할게 분명해요.]

자신을 두고 뭐라 이야기 하는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들을 수 없었던 데이빗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공을 툭툭차기 시작했다.

'나쁜 반응은 아닌 거 같은데, 그나저나 생각보다 테스트가 어려운 것 같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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