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87)

히메오 : 선물...?

그건, 원래대로라면 포지티브한 키워드일 텐데,

우리들 사이에 놓여지는 건, 무겁고 어두운 공기.

히메오씨의 홍조띤 뺨이,

단숨에 차가워지는 게 리얼타임으로 보인다.

오사무 : 이거 맞죠?

히메오 : .........

그리고 내 가슴에 퍼지는 건, 안도감과 죄악감.

게다가 하나 더 솟아나는 감정은...

아니, 확신이 없는 기분 따윈 표현할 수 없다.

히메오 : 으...

테이블 위에 놓인 핸드백을 건내자,

히메오씨는 불발탄 같은 감정을 주체 못하듯,

내용물을 전부 침대 위로 쏟아낸다.

오사무 : 저기, 그렇게 난폭하게...

히메오 : 시끄러워...

오사무 : 아...

지갑, 콤팩트, 립스틱...

계속해서 작은 물건이 떨어지는 와중에,

그녀의 말투도 감정을 잃어 간다.

히메오 : 뭐야 이거...

         무슨 생각이야 그 사람...

그건, 평상시의 격한 분노보다도,

더욱 내 미안함을 자극해.

(삐익)

히메오 : [아하하하하하...그래, 좋아해, 너무 좋아...

          나, 오사무씨를, 이렇게나 좋아...]

히메오 : 꺄아아아앗!?

오사무 : 으!?

히메오 : [언제지...언제부터일까...

          전에는 그렇게 경계했었는데]

히메오 : 자, 잠깐!

         뭐야 이거...꺼!

오사무 : 아...

IC레코더...

히메오씨가 손에 쥐고 있는 작은 기계는,

회의의 녹음을 위해 때때로 사용하던

회사 비품과 같은 기종이었다.

히메오 : [경계...맞어.

          엄청나게 신경썼었지.

          그게 문제였을지도...아하하]

히메오 : 저, 정지 버튼...어디?

         어떻게 끄는 거야, 이거!?

그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은,

평소보다 약간 높고, 대담하고, 거침없어...

평소의 상태와는 약간 다른 것 같았다.

히메오 : [나도 알아...

          그 사람이 날 좋아할 리가 없다는 거.

          얼마나 기분나쁘게 했는데? 얼마나 욕했는데?]

히메오 : 빨리 꺼, 제2비서!

         이, 이건 명령이야!

하지만, 분명히 눈앞에 있는 여성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히메오 : [바보 같은 짓, 해버렸다...]

히메오 : 제발 부탁이니까...꺼...

히메오 : [그치만, 그렇게 바보 같은 짓 하지 않았더라면,

          난 그 사람을 이렇게 좋아하게 되지 않았을 거야.

          ...정말, 세상은 내 뜻대로 안 되네]

오사무 : .........

히메오 : 으...으으...으, 아아아...

가장 눈에 띄는 큰 스위치를 누르자,

그렇게 떠들어대던 기계는 딱 멈췄다.

즉, 이런 간단한 조작도 못할 정도로,

그녀는 이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하고 있다는 얘기로.

오사무 : 저기...여기요.

히메오 : 으...으으...

그리고, 내게서 IC레코더를 다시 받아든 히메오씨는,

정면을 바라볼 용기를 잃고, 고개숙인채.

히메오 : 거짓말, 이라고.

불쑥...

레코더에서 흘러나온 음성과는 전혀 다른,

작고 잠긴 목소리를 냈다.

오사무 : 거짓말...?

히메오 : 이건...내가 한 소리가 아냐.

         진짜 나는, 이런 생각 같은 거 한 적 없어.

오사무 : 하지만 방금 그 목소리는...히메오씨 거였어요.

히메오 : 속았다고, 그 여자한테.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한 거야.

오사무 : 속았다고요...?

히메오 : 어느샌가 술을 먹게 됐다고.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게 돼서.

오사무 : 아...

...속인 카야씨가, 그녀답다고 할까,

깨끗이 속은 히메오씨가, 그녀답다고 할까.

히메오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말도 안되는 소릴 했더라고.

         그러니까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냐.

오사무 : 기억 안 나나요?

히메오 : 기억........아, 안 나.

오사무 : 정말로?

         전혀 생각이 안 나요?

이 얼마나 눈에 빤히 보이는 위증.

악인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피곤한 성격의 소유자의,

너무나 귀엽고, 서투른 거짓말.

그런데...

히메오 : 안 나.

         그러니까 이 얘기는 이제 그만.

오사무 : 히메오 씨...

거짓말도 밀어붙이면 진실이 된다고 믿고 있는 걸까.

히메오 : ...이상한 걸로 괜히 붙잡아뒀네. 미안해요.

         그럼, 잘 자요.

오사무 : 하지만...

히메오 : 잘 자요!

오사무 : .........

히메오 : 내일은 제대로 출근할게.

         별로 깨워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니까...당신은 돌아가도 돼.

오사무 : 그런, 가요...

너무나 힘없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건성 대답.

혹시 난, 낙담하고 있는 건가?

그 뒷말이 꼭 듣고 싶었던 건가?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대답은 물론 예스지만,

그걸 입밖으로 내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관문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사무 : 그럼...갈게요.

히메오 : .........

다 듣고 난 후의 일까지 제대로 따져보았을 경우,

그래도 난 그녀에게 그걸 요구할 수 있을까?

히메오 : 아...

오사무 : .........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냥 [알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은 이렇게 끝난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 장소에서, 그 말의 진위를 확인해,

그게 지금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내용이라는 게 밝혀졌다면...

난 겨우 몇 분만에, 지금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인생의 결단을 내려야만 했을 테니까.

오사무 : 편히...쉬어요.

마주하고는 하지 못했던 말이 이제야 나온다.

내일부터 다시 우리들은, 하루의 반을 같이 보내게 될 테니까.

따라서 지금은, 어중간하게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정체를 골라야한다는 것을, 둘 다 알고 있기에.

히메오 : ...으

오사무 : ...?

히메오 : 으으...흐, 흐흑...으으으으...

오사무 : ...

하지만...

히메오 : 으아아아아앙...흐에에에에에엥

알고 있다고 하는 것과,

납득하고 있다고 하는 건 다른 일으로...

히메오 : 으, 아, 아아아아아아앙~!

         으에, 으, 으...으아아아아아아앙~!

내가 눈앞에서 사라져,

분명, 지금도 바로 근처에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히메오 : 싫어, 싫어, 싫어어어어어~!

         싫어어어어어~, 으으으으으으으~!

그런 상황에 놓여졌을 때...

그녀는 이렇게도 솔직하게,

나와의 어긋남을 슬퍼하고 있는...

히메오 : 으, 으, 으윽, 으...흐흑, 흑, 아...

.........

오사무 : 후우...

이번에도 또,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채,

먼저 대답을 듣고 말았다.

왜 그녀는 겉과 속을 구별하는 것에 실패해,

항상 이렇게 본심을 간파당하는 걸까...

오사무 : 음...

달착지근한 캔커피일 텐데,

이상하게 쓰리다.

시계는 이제 곧 시침과 분침이 정확히 위로 서는,

오늘의 마지막, 그리고 내일의 첫 순간에 다가가고 있다.

오사무 : ...네, 요시무랍니다.

??? : .........오사무 군?

오사무 : 아...

휴대폰에서는, 줄곧 듣고 싶었던...

그리고 지금 순간만은 들어서는 안 될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미토코 : 그, 오사무군이 계속해서 걱정했다고.

         전화해서 아무말이나 하라고, 사람들이.

오사무 : 아...응

미토코 : 다녀왔어...

         늦어서 미안해.

오사무 : 그래...응, 걱정했어.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어째서일까...

미토코 : 그...뭐 좀 생각하다가 잠이 들어 버려서...

오사무 : 그렇구나...

미토코 : 그냥 그런 것뿐이니까...

         아무 걱정할 것 없으니까...

         그냥 바보 같은 짓 한 거니까...

진심으로 안심이 되는데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가 지어지질 않는다.

오사무 : 몸 따듯하게 했어?

         춥지 않아?

미토코 : 응...

         목욕, 갔다왔으니까.

         카야씨가 보내줬어.

오사무 : 그래...다행이네.

그건 분명...

미토코 : 저기, 오사무 군.

오사무 : 왜?

미토코짱이 제일이라고.

누구보다도 소중한 내 피보호자라고.

미토코 : 지금...오사무군 옆에, 히메오 언니 있어?

오사무 : .........

항상 말은 그렇게 해놓고,

다른 한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상사를 우선시하고 말았기 때문에.

미토코 : 히메오 언니, 거기 있어?

         오사무군 옆에서, 자고 있어?

최근, 부모의 애정을 갑작스럽게 잃은 미토코짱은,

분명 내 마음의 동요를 민감하게 느낄 것이다.

오사무 : ...바로 옆에는 없어.

         난 지금 호텔 밖에 나왔어.

미토코 : 왜?

         곁에 있어주지 않아도 돼?

그래도 그녀는, 귀가시간을 어기고 나를 걱정끼치는 나쁜 아이로 있기보다,

술 마시고 사고쳐 날 걱정시킨 나쁜 사람을 더 걱정한다.

오사무 : 아까 깨어났으니까 이제 괜찮아.

         내가 없어도...괜찮을 테니까.

미토코 : 그, 래?

오사무 : 응, 그래.

         그래서 나도 이제 거기로 가려고.

지금부터도 늦지는 않는다.

체크아웃하고, 택시 잡고,

미토코짱의 얼굴 보고, 안심하자.

미토코 : 히메오 언니는...?

오사무 : 그녀는...지금 자고 있지 않을까?

         깨우기도 미안하니, 다시 내일 아침에 데리러...

이대로 아파트로 돌아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침을 맞이하자.

미토코 : 안돼...

         그냥 두고 가면 불쌍해.

오사무 : 괜찮다니까.

         그녀는 어른이니까...

그래, 그녀는 어른이니까...

내일도 분명 아무렇지 않게 날 상대해줄 터.

미토코 : 됐어...곁에 있어줘.

         히메오 언니를, 안심시켜줘.

따라서 나는, 이렇게 말하면 된다.

[안녕하세요. 어제 고생했어요.

 ...그건 그렇고, 잘 챙겨 먹었나요? 숙취 제거약]

오사무 : 그럴 순 없어...미토코짱.

그러면 그녀도,

[알콜은 당신이 전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었나?

 ...정말 쓸모없는 비서]

같이, 겨우 몇 초만에 평상시의 우리들로 돌아갈 터.

미토코 : 왜? 그럼 너무하잖아.

         왜냐하면 히메오 언니, 사실은 말야, 오사무군을...

오사무 : 왜냐하면 난, 아무래도 그녀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히메오 : 왜...돌아왔어?

오사무 : 들어가게 해주세요, 히메오 씨.

히메오 :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당신, 자신의 입장을 생각해.

오사무 : 전 히메오씨의 제2비서라구요?

         입장상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은데요?

히메오 : 으...

         이미 [잘 자요]라고 했잖아?

체인락이 걸린 문 틈새로 보이는 히메오씨는,

눈이 빨갛게 부어있는 것 같았다.

오사무 : 죄송한데요, 정말 급한 일이에요.

         꼭 오늘중으로 확인해야 할 일이 있어서.

히메오 : 뭐야 진짜...

         그냥 혼자 내버려둬...

목소리도 부분부분 갈라지고,

그 후에도 얼마나 큰 소리로 울었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프다.

오사무 : 아까 레코더에 들어있던,

         히메오씨의 말 말인데요.

히메오 : 그딴거...아까 대답했어.

오사무 : 히메오씨의 본심이 아니라고.

         전부, 거짓말이라고...

히메오 : 그래, 몇 번이나 들어야 속이 풀리겠어?

오사무 : 그럼, 다시 한번 들어봐도 되죠?

         어차피 거짓말이니까.

히메오 : 에...?

하지만 더이상 놓치지 않는다.

히메오씨도, 그리고 나도.

오사무 : 당신은 그냥 웃으면 되요. 거짓말이니까.

         싫다면 귀를 막고 있어도 되요.

         하지만 전, 그 이후의 내용을 듣고 싶어요.

히메오 : 무슨 소리야...안 되는 게 당연하잖아?

오사무 : 미안해요, 하지만 꼭 부탁해요.

히메오 : 당신, 하나도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지!

오사무 : 저기, 복도에 다 들리는데요...

열린 문 틈새로, 히메오씨의 고함 소리가

플로어 안에 울려 퍼지고 있다.

만약, 오늘밤의 파티 관계자가 지나간다면,

우리들의 이상한 분위기는 사와시마 그룹에까지 전해질지도 모른다.

히메오 : 어째서야!

         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주제에!

하지만 히메오씨는 지금, 그런 세상의 일은 완전히 잊고,

나와의 관계에만 마음을 전부 집중시키고 있다.

오사무 : 부탁해요. 다시 한번 들려주세요.

히메오 : 거짓말이라고 했잖아!

         그딴걸 왜 듣고 싶은데!?

오사무 : 거짓말이라도, 기쁘기 때문이에요.

히메오 : 아...아아...

그렇다면 나도, 이제부턴 눈앞의 여성 이외에는 신경쓰지 않겠다.

오사무 : 당신의 목소리가, 내 이름을 말하고, 그리고...

히메오 : 아아 말하지마!

         그 다음은...안돼

오사무 : 히메오 씨...

다시 한번 듣고 싶다...

히메오씨의, 나를 사랑스럽게 부르는 목소리를.

히메오 : 거짓 고백 따위, 들어봤자 허무할 뿐이야.

오사무 : 설령 거짓말이라도, 기쁘다는 건 변함 없어요.

다시 한번 듣고 싶다...

히메오씨의, 나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않은 말을.

히메오 : 설령, 거짓이라도....?

오사무 : 사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어요.

히메오 : 만약 듣게 되면...

         거짓이 거짓이 아니게 된다고 해도?

오사무 : 그 말은...

그리고 히메오씨는...

분명하게 나와의 거리를, 다시 한번 줄였다.

히메오 : 이 뒷부분을 듣게 된다는 건,

         내 말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라고?

자신이 한번 한 말은,

결코 부정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히메오 : 당신이 내 말을 받아들인다면,

         난 그 대답을 믿어버리고 말아.

나중에 생각해낸 논리를 덧붙여,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사람이지만.

히메오 : 거짓이든 진실이든, 그런 거랑 관계없이,

         그때의 기분만이 진실이 되고 말아.

자신이 한 거짓말을 스스로 믿고,

자신이 부정한 사실을 믿지 않는,

착각이 심한 사람이지만.

히메오 : 그래도...좋아?

오사무 : 물론이에요.

그게 사랑스러워...

어느샌가 그리워하게 된 내가 있다.

오사무 : 당신의 말, 뭐든 믿을게요.

         거짓말이라고 해도 안 믿을 거예요.

그건 어법에는 맞지 않아도,

우리 두 사람에게는 맹세가 되는 말.

히메오 : 이젠...돌아갈 수 없다고?

         난, 착각하게 된다고?

오사무 : 그거...착각이 아니에요.

히메오 : 빨리 얘기하라고, 그런 소리는...

오사무 :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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