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87)

그렇지만...

히메오 : 잘 몰라서 그러는데,

         담당자의 얘기를 직접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부장 : 에...?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완전히 [도움 안되는 신입사원]이니까.

.........

남사원 : 저기,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제가 이 안건을 담당하고 있는...

히메오 : 아, 잠깐만요!

남사원 : ㄴ, 네.

히메오 : 음~.........으음

남사원 : 저기...?

히메오 : 부동산부...영업 1과...

남사원 : 에...

히메오 : 그래! 요네야마 씨!

         요네야마 계장...맞지?

오사무 : 네.

순간, 나를 뒤돌아본 그녀의 눈에,

엄청난 우월감에 가득찬 도전적인 빛이 보였다.

요네야마 계장 : 어떻게 제 이름을...?

히메오 : 아, 별로 대단할 거 없어요.

         3일 전부터 제2비서한테 모든 사원의 사진을 건네받아,

         지금 열심히 외우고 있는 중이에요.

그렇지만, 그런 불손한 표정은 나에게만 보일 뿐으로,

곧바로 평상시의 부드러운 미소로 돌아간다.

부장 : 호오...

계장 : ㅇ, 아아, 그러셨군요.

히메오 : 아, 물론 그것때문에 오시라고 한 건 아닙니다.

         이 자료, 조금 알기쉽게 풀어주시겠습니까?

         창피한 얘기지만 무슨 뜻인지 잘 몰라서.

계장 : ㄱ, 그런...죄송합니다.

히메오 : 아뇨, 제 능력 부족이에요.

         바쁘실텐데 시간을 오래 뺏는 것도 그러니,

         5분만 부탁드립니다.

계장 : ...알겠습니다.

       우선 어떤 부분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까?

오사무 : .........

현재 자신의 위치는 없다고 생각할 것.

순수하게 나이나 경험으로 자신보다 위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깍듯이 존경심을 가지고 상대할 것.

최소한 [자신의 부하]의 얼굴과 이름 정도는 기억해둘 것.

잘 지키고 있군.

제법인데...[사와시마의 아가씨].

.........

히메오 : 제2비서!

         당신 아까 옆에서 실실 웃고 있었지!

오사무 : ㅁ, 저기...

         저는 그냥 감탄한 것 뿐으로.

히메오 : 거짓말 마!

         내가 언제 폭발해서 소리지를지,

         속으로 두근거리며 기대하고 있었지!?

회사에서 내 말에 따르던 반동이,

설마 이런데서 폭발하리라고는...

오사무 : 사, 사사키 씨...도와주세요.

사사키 : 거절하겠습니다.

         자신이 뿌린 씨앗은 자신이 거둬야 합니다.

오사무 : 혼자만 살겠다 이거죠!?

히메오 : 정말 당신은 사람에 따라서 온도차가 심하네.

         역시 같은 현(縣)내라도 지역에 따라 온도차 심한 기후 사람답네.

오사무 : 아니, 저는 온난한 농촌 지역의 사람인데요...

슬슬 생트집잡기가 나오기 시작하는군.

이 지방 얘기도...

히메오 : 아~, 진짜 짜증나.

오사무 : 지치셨나요?

히메오 : 지쳤냐고? 뭐가?

오사무 : 여러 사람한테 고개를 숙이는 일 말이에요.

         익숙하지 않은 일을 시킨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남에게 봉사하는 건 어디까지나 취미였고,

남에게 강요받아 머리를 숙이는 일은 한번도 없었을 것으로.

평범한 사회인 일년생보다도,

더욱 난처함과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유로.

히메오 : 또 그런 소리한다...

         당신은 나를 얼마나 오만불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첫대면 순간에는 정말 심했는데 말이지...

뭐, 지금에 와서는 그것도 작전중에 하나였다는 걸 알게 됐으니,

성질날 이유따윈 없지만.

...아니, 애당초 처음부터 그 태도가 전혀 자연스러워 보이질 않아,

성질도 안 났지만.

오사무 :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를 대하는 태도도

         고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히메오 : 그치만 동기잖아.

         아니 오히려 실제로는 내가 하루 선배니까.

오사무 : 시용 기간도 포함하면 제가 한달 선배인데요.

히메오 : 부장을 건드렸다 짤린 걸,

         힘들게 다시 뽑아준 건 누구였더라?

오사무 : ...이제 목적지에 다 왔네요.

히메오 : 무엇보다, 남한테 협조성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자신이 저지른 짓을 생각했으면 하는데.

오사무 : 아뇨, 이제 그 얘기는 끝났으니까요.

히메오 : 남한테 맨날 설교하면서,

         자기가 불리해지면 금방 도망친다니까.

사사키 : 저기...도착했습니다만.

오사무 : 네네, 다 왔습니다, 다 왔어요.

         자, 가시죠 이사님.

히메오 : 정~말로 일할 때는 성격 안좋네.

         토코짱이 당신의 본성을 알게 되면

         엄청나게 경멸할 걸?

오사무 : 미토코짱은 이 정도 일로 사람을 경멸할 정도로

         마음이 좁은 아이가 아니에요.

히메오 : ...집에 가서 두고 보자고.

         토코짱 앞에서 완전 창피줄 테니까.

오사무 : 자, 이제 정말 서둘러야.

         예정상으로 여기서 주어진 시간은 30분이니까요.

히메오 : ...그것도 그러네.

         그럼 가자 사사키, 그리고 제2비서.

오사무 : 그 미묘한 차별은 어떻게 안 되나요...

사사키 : ㅈ, 저기...정말로 여기에 가실 겁니까?

라며 사사키씨가 차창문으로 밖을 올려다보고,

무슨 이유에선지 당황하는 기색으로 말한다.

오사무 : 물론입니다.

         자, 사사키씨도 가시죠.

사사키 : 이건...

오사무 :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무슨일이 있을지 모르는 거니까요.

사사키 : ㅎ, 하지만 이건...엇, 아가씨!?

그리고 이번엔 백미러에 비친 히메오씨의 모습을 보고,

무슨 이유에선지 당혹스러워하며 소리를 지른다.

히메오 : 꼭 쓰라고.

         안 그러면 안 데리고 간다?

사사키 : ㅇ, 앞으로 대체 어디에 가실 생각이십니까?

오사무 : 어디냐뇨...그야 당연히.

히메오 : 그치?

오사무&히메오 : 현장이요.

                현장이야.

오사무 : 여기가 아까 와시자키 부장님과 요네야마 계장님이 설명하신,

         아리마 재개발 지구입니다.

히메오 : 꽤 넓네...

사사키 : .........

오사무 : 작년까지 이즈미가와 중공업의 공장이 있었습니다만,

         이전하게 되면서 사와시마 부동산이 구입하여.

히메오 :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아버지의 명령으로 여러 가지 공부했는 걸.

         ...별로 흥미는 없었지만.

뭐, 아무리 아버지의 가업이라고 해도,

부동산업에 흥미진진한 여대생은

거의 없을 거고, 보통은 싫어할테니.

오사무 : 저쪽에 공사중인 가장 거대한 건물이,

         아리마 재개발 지구의 노른자인 유럽풍 쇼핑몰입니다.

         내년 가을 오픈을 목표로 한창 작업이 진행중입니다.

(브릭몰? ㅋ)

히메오 :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곳에 쇼핑객이 올까?

오사무 : 내년 4월부터 지하철이 개통될 예정입니다.

         그로 인해 도심에서 30분 권내로 됩니다.

히메오 : 그러고 보니, 그런 얘기도 들은 것 같아.

오사무 : ...정말로 흥미 없었던 거죠.

히메오 : 이런 두꺼운 서류만 받아봤자

         볼 기분 같은 거 안 든다고.

         딴나라 얘기 같이 느껴졌어.

오사무 : ...그렇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정말 누가 했는지 좋은 말이다...

그 증거로 지금 이렇게 현지에서 실물을 눈앞에 두고,

히메오씨의 눈은 흥미진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반짝거리고 있다.

사사키 : ...요시무라 님, 저기 요시무라 님.

오사무 : 왜 그러시죠?

사사키 : 울어도...괜찮을까요?

오사무 : 참으세요.

         현장은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절대 못 참겠으면 선글라스를 벗으세요.

사사키 : ...정말로 일할 때는 성격이 나쁘시군요.

히메오 : 자, 우리가 맡은 건물은 어디지?

오사무 : 아, 북쪽에 보이는 맨션이에요.

         우리 회사 사람은 누가 있으려나?

         가능하면 현장 감독한테도 인사하고 싶은데.

히메오 : 여기 담당 영업은...야시마 씨, 였나?

         제2비서보다 약간 작지만 꽤 키큰 사람이지.

오사무 : 정답. 그럼 서두르시죠.

         이번주내로 현장을 다 둘러봐야.

히메오 : ...모처럼 성과를 보였는데 평가해주지 않는 건

         사회인으로서 좀 그렇지 않나?

오사무 : 저는 부하니까요.

         평가라니요 당치도 않은.

히메오 : 이럴 때만 아랫사람 흉내내고!

사사키 : ...왜 그렇게 호흡이 잘 맞으시는 건가요?

         이런 콩트 같은 상황에서.

아주 진지하게 [아가씨를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목욕탕에서 부탁하던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미토코 : 그래...오늘도구나.

.........

미토코 : 어쩔 수 없지.

         사장님한테 부탁받았다면 거절할 수 없으니.

         근데 대단하네,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랑 회의하는구나.

.........

미토코 : 으으응(아니야), 괜찮아.

         문제집 다 풀어놓을게.

         오늘은 152페이지까지였지?

.........

미토코 : 응, 히메오 언니도 아직.

         최근 알바 시작해서 바쁜 것 같아.

.........

미토코 : 응, 응...걱정마.

         문도 잘 잠궜고,

         영감님이랑도 다 있으니까.

.........

미토코 : 걱정하지 말라니까, 진짜.

         알았지? 이제 끊는다?

         일 열심히 해.

.........

미토코 : 아, 저기, 오사무 군.

.........

미토코 : 그래서 몇시에 올 것 같아?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

미토코 : 응...안녕.

(철컥)

오사무 : ...후우

히메오 : ...사장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으셨다고요.

         그건 어디 사시는 사장님이신가요?

오사무 : ...그럼 돌아가도 될까요?

         뒷일은 이사님께 맡기고.

히메오 : 그야 상관없지만...

         그렇게 되면 난, 지구환경대책부의 신설을 의제로 올릴 거라고?

오사무 : ...하면 되잖아요 하면.

제목 자체는 그럴듯해 보이고,

장래적으로는 괜찮을 것 같지만,

아무 비전도 없이 당장 내놔봤자 아무 도움도 안되는 이유로.

요 몇주의 기간 동안, 회사일을 조금씩 이해하게된 탓에,

나에 대한 반항 방법도 예리해졌군.

히메오 : 그건 그렇고, 이 시간에 임원회의는 그만뒀으면 하는데.

         어차피 나한테 돌아오는 역할은,

         [본사에 대한 진정단의 단장]일게 뻔한데.

오사무 : 너무 좌절하지 마요.

         그것도 훌륭한 역할이에요.

         그것도 당신밖에 할 수 없는.

오후 8시를 약간 넘은 시간.

확실히 이렇게 늦게 시작하는 회의에

모티베이션을 가지고 임하기는 힘들다.

히메오 : 그런데 토코짱이 뭐래?

         [오사무 군 따윈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같은,

         멋진 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어?

오사무 : .........아무렇지 않게 허락해줬어요.

         근데.

히메오 : 근데?

오사무 : 자꾸 [괜찮아]나, [걱정마]같은 말을 하네요...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히메오 : .........

오사무 : .........

이 무거운 침묵은,

틀림없이 서로의 공범 의식 때문이기에.

히메오 : ...1시간 이내에 끝나기를 바라자고.

오사무 : 요시토미 부사장의 발언만은 제지하죠.

         그 사람 그냥 놔두면 2시간은 떠드니.

히메오 : 우리 학과 교수랑 같은 타입.

         좀 살려줘, 라고 말해주고 싶다니까.

오사무 : 당신이 말하면 효과가 좋다구요.

         ...회의실은 얼어 붙겠지만.

히메오 : [윗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잊지 말도록]

         내가 가장 싫어하는 악마 교관의 짜증나는 가르침이지.

오사무 : 꽤 괜찮은 말을 하네요, 그 사람.

히메오 : 자, 가자고 악마 교관...이 아니라 제2비서.

오사무 : ...저를 가리키는 거였나요?

히메오 : 정말,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인간은 변하는구나.

(철컥)

미토코 : 후우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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