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87)

오사무 : .........

처음으로, 히메오씨의 진심어린 말을 들은 것 같았다.

히메오 : 이번일은 눈감아 주겠어요.

         나한테도 과실이 있는 것 같으니.

그리고 그, 어떤 의미로 볼 때 역사적 체험은,

나에게 한가지 해답을 알려 주었다.

히메오 : 하지만...앞으로는 조심해.

         나 역시 당신의 파멸을 바라진 않아.

그렇지만 그 대답은,

분명 당사자인 히메오씨는 알 리가 없어.

히메오 : 알았어?

그리고 그걸 지적하면,

그녀가 상처받을지도 모른다...

(물러선다) 

(깨닫게 한다) ===

하지만 가르쳐줘야.

이 사람은 지금 이대로는 절대로 깨닫지 못한다.

오사무 : 히메오 씨.

히메오 : ...뭐야?

         끈질기네.

오사무 : 당신이 지금 이대로 변하지 않는다면...

         미토코짱은 앞으로도 줄곧,

         당신을 의지하지 않아요.

히메오 : ...뭐라고?

잠깐이었지만,

히메오씨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이를 악물었을 때,

입안까지 같이 깨물어버린 듯한

그런 고통스러운 표정...

...비유가 심한 건 분명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보였기에 어쩔 수 없다.

오사무 : 당신이 지금까지 어떤 쉬운 인생을

         걸어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히메오 : 으...

오사무 : 저나 미토코짱에게 있어,

         역시 세상은 험난한 곳이에요.

난 한번 도태됐었다.

미토코짱은 버림받았다.

포기하고, 포기당하고.

웃고, 울고, 웃을 수밖에 없는 경우 등을 겪어왔다.

오사무 : 따라서 지금 히메오씨에게 손쉽게 도움을 받는 건,

         조금 [뜨끔]하다고요.

히메오 : 내가 돈이 많은 건,

         내 탓이 아닌데...

오사무 : 그런 얘기가 아니에요.

히메오 : 그럼 무슨 소리야?

         당신이 하는 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오사무 : 미토코짱은 말이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땀흘리고, 잔뜩 다치고,

         그렇게 해서 얻은 거라면 사양않고 받아줄 거예요.

히메오 : 에...?

히메오씨가 예전에,

쓰레기를 버리고, 나무를 심고, 환자를 간호했던 얘기를 혹시 했다면...

분명 미토코짱은 자신의 일처럼 자랑스러워 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아이니까.

따라서, 나도 히메오씨도,

그녀를 그냥 놔둘 수 없었기 때문에.

오사무 : 있잖아요, 히메오 씨.

         집으로부터 물려받은 힘은, 자신을 위해서 써도 좋아요.

오사무 : 그 대신에, 미토코짱에게 주는 힘만은,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보지 않으시겠어요?

오사무 : 저도 전력을 다해 서포트해드릴 테니까요.

         ...뭐, 업무상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요.

히메오 : 당신...

오사무 : 뭐, 그러니까...

         큰 배를 탔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믿으라는 의미)

히메오 : ...무슨 소리야.

         올해만 두 번이나 침몰한 배가.

오사무 : 이렇게 두 번이나 다시 올라왔어요!

         ...뭐, 그중 한 번은 당신 덕분이지만요.

히메오 : .........

오사무 : 그러니까 뭐...

         조금은 안심하셨으면 한다는.

히메오 : ...자리로 돌아가요.

오사무 : 네?

히메오 : 지금은 업무 시간이잖아?

         나도 조금 쉬고 바로 돌아갈 테니까.

오사무 : 아...

히메오 : 뭐야?

오사무 : 아, 아뇨...

히메오 : 삐져서 집에 가거나...하진 않아.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복도끝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약간 붉어진 눈을 감추려는 듯이.

.........

(따르르르르...철컥)

미토코 : 네, 테라스하우스의 히노사카...아, 히메오 언니?

         어쩐 일이야? 저녁준비 다 해놨...에?

히메오 : 미안, 정말로 미안해!

         친구한테 부탁받은 알바가 안 끝나서 말야.

히메오 : 응, 그냥 사무 알바.

         카피 같은 거나, 차타는 거 같은 간단한 일이니까.

히메오 : 예정대로라면 정시에 퇴근했어야하는데 말야,

         갑자기 임원? 높은 사람이 와서 회의를 해서 말야.

오사무 : 풋...

히메오 : 읏!

오사무 : (작은 소리로)...죄송합니다

미토코 : 그래...그럼 늦겠네.

         식사는...그래, 그럼 랩 씌워둘게.

미토코 : 으으응(아니야), 어쩔 수 없지, 친구한테 부탁받은 거니까.

         ...히메오 언니가 사람이 너무 좋다는 건 말 안하겠지만.

미토코 : 아하하하하하~, 응, 먼저 먹을게.

         그럼, 열심히 해~

(철컥)

미토코 : .........

미토코 : 쳇...오늘은 혼잔가.

         왠지 오랜만이네.

(철컥)

히메오 : ...후우

오사무 : ...높은 사람이 와서 못 가요, 라.

그건 어디사는 나인가.

히메오 : 남이 전화하는 동안에 소리내지 말라고.

         토코짱이 들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오사무 : 저는 별로...

         누가 상사든 자신의 일을 하는 것 뿐이니.

히메오 : 내가 문제라고.

         알겠어? 두번 다시 그런 짓 하지 말라고?

오사무 : 알겠습니다 이사님.

히메오 : 흥

오사무 : 근데, 괜찮나요?

         오늘 당번이시죠?

오늘은 목요일.

과외는 히메오씨의 담당일.

히메오 : 하루 못하는 것 정도는 토코짱도 아무렇지 않을 거야.

오사무 : 뭐, 그건 그렇지만요.

원래 목요일은 히메오씨가 끼어들기 전까진

과외가 없었던 날이니.

히메오 : 그리고, [오늘은 11시 출근이니까

         8시까지 있지 않으면 근무시간에 미달이야]

         라고 한 건 누구?

오사무 :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원래대로라면 임원에게 근무 시간 따위 관계없다.

잔업 수당도 휴일 출근 수당도 경영진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그들은 무거운 책임을 지고,

개인에 따라서는 24시간 365일 내내 일을 한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그런 책임도 격무도 지울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종업원의 규칙에 맞추는 게 가장 정당하다.

히메오 : 그건 그렇고...

오사무 : 뭔가요?

히메오 : 다들 이 시간이 되었는데도 집에 안가네.

오사무 : 상사 회사의 영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지금 빈 자리도 대부분이 외근중이에요.

히메오 : 그렇구나...

시간은 이제 곧 오후 8시.

그런데 어떻게보면 오전보다 더 북적이는 듯한 사무실 공기.

실은 한번 정도는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광경.

설마 자리를 바꾼 당일에 기회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지만.

오사무 : 심야 잔업, 토요일 출근은 당연.

         회사에 없으면 거래처나 현장.

         휴대폰은 24시간 항상 원콜에 받는 사람들 뿐이에요.

히메오 : ...그거 노동기준법 제36조에 위반되는 거 아냐?

오사무 : 뭐, 대학 교과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겠지요.

         사실 틀린 말도 아니구요.

히메오 : 그렇다면...

오사무 : 하지만 뭐...일본을 움직이는 건,

         현재로써는 아쉽지만, 태반이 위반자들이라구요?

히메오 : .........

그것도 회사의 규모가 작으면 작을수록,

그 위반율은 높고, [회사에 대한 서비스]업에 가깝다.

오사무 : 뭐, 그건 언젠가 사와시마 이사님이 개선시켜 주시겠습니까.

         [복리후생의 확충]이라는 걸로.

히메오 : ...그렇게 몰아붙이지 않아도 되잖아.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을 뿐이니까.

오사무 : 아뇨, 정말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요, 언젠가는.

히메오 : ...그게 언제가 될지.

오전의 일이 있어서 그런지,

왠지 갑자기 기운이 약해진 것 같네.

이런 그녀도 나쁘지 않...앗,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무슨 소릴 할지.

오사무 : 자, 그럼 그것을 위한 첫걸음입니다.

         힘차게 가볼까요.

히메오 : 뭐 하는데?

오사무 : 전화걸어요.

히메오 : 어디로?

오사무 : 당신 자리, 에요.

히메오 : 에? 에?

옆자리의 수화기를 들고, 그녀 자리의 내선 번호를 누르자,

당연한 일이지만 그녀 자리의 전화가 울린다.

오사무 : 봐요 울리고 있어요.

         받으세요.

히메오 : ㅈ, 잠깐...

오늘의 레슨은, 신입 사원 교육의 기본중의 기본,

[비지니스 전화 대응]에 대해서.

오사무 : 빨리!

         가능하면 원콜 이내로 부탁드립니다.

히메오 : ㄴ, 네...

(철컥)

히메오 : ㅇ, 여보세요...

오사무 : .........

히메오 : 아...[미치하마 상사입니다]

오사무 : 네, 미치하마 상사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히메오 : 에?

오사무 : 당신이 할 소리예요. 그게.

히메오 : ㅇ, 아, 아아...그런 거구나.

오사무 : 그럼 다시 한번 갑니다.

         자 받았다.

히메오 : 으음...네, 미치하마 상사입니다.

         ㅎ, 항상 감사합니다.

오사무 : 사와시마 부동산 사람인데,

         곤도 군 있나? 3과의.

히메오 : 곤도 씨...말인가요?

오사무 : 곤도 말씀이십니까?

히메오 : 아...그런가.

동직장 인원에게 씨자 붙이는 건 금지.

히메오 : 곤도 말씀이십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으음, 보류 버튼...

오사무 : 근데, 상대방의 이름은?

히메오 : 아...

.........

여사원 : 어라? 누가 와있나?

(철컥)

히메오 : 안녕하세요.

여사원 : 아, 안녕하세.........에?

히메오 : 아, 죄송한데요.

         잠시 비켜주시겠어요?

여사원 : ㅁ, 뭐하시는 건가요...사와시마 씨?

         아직 7시 반이라구요.

히메오 : 아, 으음...오늘은 일찍 퇴근하려고 일찍 왔어요.

         그, 가정 교사일이...

여사원 : ㄴ, 네.

히메오 : 근데 오긴 왔는데 뭘 해야할지 몰라서...

         그래서, 그 사람...제2비서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그럼 제가 갈 때까지 청소해주세요]라고.

여사원 : ...네?

히메오 : 으음, 이 걸레로 하면 되죠?

         아직 뭐가 뭔지 잘 몰라서.

여사원 : 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무리 그래도 이사님한테 그런일을 맡길 순 없어요!

히메오 : 하지만 제2비서가...

여사원 : 부탁이니까 저한테 맡겨 주세요.

         나중에 제가 과장님한테 혼나요.

히메오 : 그래?

         으음~, 역시 회사는 여러 가지로 힘들구나.

여사원 : ㅇ, 으음...뭐 그렇죠...

히메오 : 하지만, 나도 양보할 수 없는 게 있어.

         이 일을 빼먹어, 제2비서의 모멸찬 시선을

         받는 것만은 절대 못 참아...

여사원 : 제2비서라면 요시무라 씨지요?

         그런 사람으로는 안 보이던데요.

히메오 : 어설퍼. 당신은 그 남자의 검은 모습을 몰라.

         ...그래, 어차피 할거 협력해서 빨리 끝내죠?

여사원 : 에? 에?

히메오 : 그래, 다른 사람이 오기전에 끝내면,

         누가 했는지 모르겠지.

         서로한테 좋은 일이잖아?

여사원 : 그, 그런 문제일까요?

히메오 : 괜찮다니까. 하게 해줘.

         나, 예전부터 이런 일, 잘 했다고...

여사원 : 에?

히메오 : 응? 부탁해 키노시타 씨.

         걱정마, [그렇게] 피해 안 줄테니까.

키노시타 : 아...

히메오 : 결정됐네.

         그럼 바닥은 나한테 맡겨요.

         당신은 책상을 부탁해.

키노시타 : 사와시마 씨...

히메오 : 자, 휙휙 해치워요, 응?

키노시타 : ㅎ, 휙휙...?

히메오 : 서둘러 끝내자구요!

.........

와시자키 부장 : ...그런 이유로, 현재는 사와시마 부동산이 개발중인

                아리마 재개발지구의 주택, 맨션 판매를

                일부이긴 하지만 담당하고 있습니다.

히메오 : 네에...

부장 : 우리 회사도 앞으로는 주택에 한정하지 않고,

       점차 오피스 빌딩이나 호텔 등의 대형 건물로도,

       영역을 확장할 생각입니다.

히메오 : 그렇군요...

부장 : 단지 사와시마 그룹 내에서는

       이제 막 들어온 말석에 있는 입장이기에

       신규 사업에 대한 진입은 여러 가지 장애도 많아...

히메오 : 그렇겠지요...

부장 : 따라서 사와시마 이사께서

       앞으로 본사에 잘 말씀하셔서,

       우리 회사를 위해 힘 좀 써주시길 바라는 상황으로...

히메오 : 음~...

부장 : ...이해가 되셨는지요?

히메오 : 죄송합니다, 너무 어려워서 잘 모르겠어요.

         특히 부동산부의 업무 내용에 관한 부분이.

부장 : .........그러십니까.

오사무 : .........

일주일에 한번 업무 설명을 하러 오는 부동산부의 와시자키 부장의 표정은,

포기와, 무기력함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미묘하게 블랜드된 씁쓸함이 가득했다.

하긴 뭐, 이런 상사를 모시는 건 태어나서 처음일테니,

불안과 불만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상대가,

그 상상을 초월하는 권력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나이에 너무나 걸맞는 신입사원 같은 반응을 보이는 날에는...

히메오 : 저기, 와시자키 씨.

부장 : 왜 그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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