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87)

미토코 : .........그냥 잘까.

(부르르르르릉...)

오사무 : 아하하...하하...

히메오 : ...몇번이나 더 들여봐야 속이 풀리겠어.

오사무 : ㅇ, 앞으로 세번.

         아니 최소한 두번 정도는...

히메오 : 그 명세표가 지불을 의미하긴 하지만,

         현금으로 변하거나 하진 않는다고?

오사무 : 당신한테는 로망이 부족해요...

9월 25일...

나...와 그녀가, 미치하마 상사에 입사한지 3주하고 조금.

채용된 후 기다리고 기다렸던...이라기 보단,

테라스하우스 히노사카에 살기 시작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렸던 날.

오사무 : 집세랑, 전기세랑, 미토코짱에게 줄 식대비랑...

         아, 대단해...그러고도 한참 남아.

액면에 6자리의 숫자가 등장하는 명세표는 1년 반만이다.

히메오 : 그렇게 많이 받았어?

         좀 보여줘봐.

오사무 : 그런 게 아니잖아요, 급여 명세표는...

히메오 : 뭐 어때.

         자, 내것도 보여줄 테니까.

오사무 : ㄷ, 됐어요!

         보통 말이죠, 남의 월급에 흥미를 가지는 건 매너 위반.........

히메오 : 월급은 알 수 없는 항목이 잔뜩있지.

         대체 지금의 나한테 얼만큼의 가치가 있는 걸까.

오사무 : .........

히메오 : 봤지?

         그럼 당신것도 보여줘?

오사무 : .........단호하게 거절하겠습니다.

히메오 : 잠깐, 날 속였네?

         너무하잖아!

오사무 : 너무한 건 당신의 월급액수예요...

장난 아니고 1자리가 다른...

이게 임원의 힘인가...

히메오 : ...아, 역시 이건 너무 많이 받는 거구나?

         지금까지 무보수로 일하던가, 일하지 않고 돈을 받던가,

         둘중 하나만 해왔기 때문에 잘 몰라서.

오사무 : ㄴ, 네...

나는 지금, 울어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낙하산이라는 단어에 혐오감을 나타내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는 것 같다고 해야하나 뭐라고 해야하나...

히메오 : 자 그럼, 이건 어디다 줄까?

         저기 사사키, 이번주 가두모금 정보는?

오사무 : 이것도...전액 기부인가요?

히메오 : 이런 돈, 나한테는 없어도 전혀 문제 안돼.

         이 세상에는 기아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몇억명이나 된다고 생각해?

이 얼마나 헤픈 씀씀이...

그렇지만 사리사욕도 없다.

고생을 모르지만, 향락도 모른다.

그런 약간 삐뚤어진 부잣집 아가씨.

히메오 : 그리고, 이건 나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아냐.

         ...그 정도는 나도 알어.

오사무 : .........

그리고 세상물정 모르지만,

최근에는 자신의 분수를 조금은 알기 시작한,

약간은 겸손해진 부잣집 아가씨.

뭐랄까, 그...

오사무 : 잠깐 전화 좀 쓸게요.

히메오 : ? 상관없는데?

호감, 가네.

(뚜르르르르)

오사무 : 비서인 요시무라입니다.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총무쪽에 누구 계십니까?

최근에 회사로부터 지급받은 업무용 휴대폰을 꺼내,

메모리에서 미치하마 상사의 전화 번호를 고른다.

오사무 : 요시무라입니다. 죄송한데 하나 물어볼 게 있습니다만.

이 통화는 업무 관련인지 개인 관련인지는 미묘하지만,

뭐, 임원을 위해 쓰는 거니 아마 괜찮겠지.

오사무 : 실은 말이죠...

         금년도 신졸자 초임액을 알려주셨으면 하는데요.

         예, 실수령액으로요.

히메오 : ...?

(철컥)

사사키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자 여기, 요시무라 님.

오사무 : 감사합니다.

히메오 : ...어쩔 생각이야?

은행의 이름이 적힌 봉투에는,

별로 두껍지 않은 종이묶음.

방금 편의점 ATM에서

사사키씨가 뽑아온 그것은,

모 이사의 급여지급 통장에 들어있던 돈.

...그건 그렇고, 비밀 번호까지 관리하고 있는 건가.

엄청나게 신뢰받고 있군, 사사키 씨.

오사무 : 자 그럼 셉니다?

         1, 2, 3, 4, 5...

히메오 : 자, 잠깐...

자리에 앉아, 봉투에서 꺼낸 만엔 지페를 쌓는다.

오사무 : 이어서 천엔 지폐가 1, 2, 3, 4, 

만엔 지폐를 20장 정도 쌓고,

다음으로 천엔 지폐가 몇장.

오사무 : 마지막으로 잔돈이 400하고 10엔.

         자, 받으세요.

히메오 : 뭐야, 이게...?

오사무 : 일단, 고용보험, 건강보험, 연금,

         소득액, 지방세를 제한 금액이에요.

         거의 신졸자 초임이랑 같은 금액이에요.

히메오 : 그러니까 이게 뭐냐고?

오사무 : 당신에 대한 정당한 평가예요.

         히메오씨가 땀흘리면서 일해 번 돈이에요.

히메오 : 에...?

오사무 : 아, 한가지 말씀드리겠는데요,

         신졸자의 초임은 누구한테나 다 커보이지요.

         이게 다 미래를 위한 투자니까요.

손바닥에 있는 현금은, 평상시의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모금함에 넣던 금액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오사무 : 그렇다고 해도 이 금액만은,

         다른 누구와 관계없이, 회사가 당신을 인정하는 코스트예요.

         당당하게 받으세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돈을 그렇게 간단히,

"정형적인 선의"로 사회에 환원할 수 있을까?

히메오 : .........

그녀는 아직까지 멍하니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다.

오사무 : 저기, 히메오 씨.

히메오 : ㄴ, 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나한테 존댓말을 쓰고 있다.

오사무 : 가끔은 자신을 위해서 써보지 않겠어요?

         첫월급이니까요.

미토코 : 에?

히메오 : ㅇ, 으음, 그러니까 말야?

         스스로 돈이 사서 가끔은 신세지고 있어서,

         토코짱한테 뭔가 해주고 싶어서. 아, 선물.

미토코 : .........에?

히메오 : 으음, 으음, 으음...ㅈ, 제2...오사무 씨?

오사무 : 알바해서 급료를 받았는데,

         신세지고 있는 미토코짱한테 선물.

         ...이 말이죠?

히메오 : 그, 그래, 그거야.

         항상 신세지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이 사람 뭔가 이상하다.

구체적으로는 첫월급을 자신의 의지로 사용한 후부터.

오사무 : ...퇴근하다가 역앞에서 우연히 만나서,

         어떤게 좋을지, 같이 얘기하다 왔습니다.

[토코짱에게 줄 선물을 산다]는

분위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그렇지만 그 뒤가 좋지 않았다.

뭘로 할지 엄청나게 고민하다, 결국 스스로는 고르지 못하고

내 추천을 그대로 따랐을 뿐.

장르를 결정한 후에도 우물쭈물했다.

이번엔 가게에서 이것도 아냐, 저것도 아냐, 고민만 하고,

[결정했어!]라면서 계산대에 갔다가 돌아오길 3번.

미토코 : 헤에, 히메오 언니 드디어 알바비 나왔구나~!

         저기저기 열어봐도 돼?

히메오 : ㅇ, 응...

참고로 산 건 1000남짓한 가격.

그 가치의 낮음도, 그녀가 구입을 주저한

이유중에 하나인 것 같아.

두근거리며 포장지를 뜯는 미토코짱도,

사실 책방 이름이 적힌 봉투와 그 크기로부터

내용물이 뭔지는 거의 예상할 수 있을 터.

미토코 : 으음...아, 영어 참고서다!

내가 후보를 추천하고, 최종적으로 히메오씨가 고른 선물은,

틀림없이 지금의 미토코짱에게 필요한 것.

히메오 : 옛날에 내가 썼던 것의 개정판이야...

오사무 : 즉, 슈우센대 부속고 합격자의 보증판이라는 소리.

지금 쓰고 있는 참고서는 절대 레벨이 높지 않다.

슈우센대 부속고 장학생을 노리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영어를 가르치면서 통감하고 있었다.

히메오 : 읽기 편하고, 설명도 자세하고, 예문도 잔뜩 있어,

         적어도 내가 써본 것 중에서는 이것보다 좋은 건 없을걸.

책장 구석에 달랑 한권만 있던 참고서.

히메오 : ...시시한 선물이라서 미안하지만, 말야.

그 표지를 봤을 때, 히메오씨의 얼굴이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아졌던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미토코 : 무슨 소리야! 엄청 기뻐!

         갖고 싶었어 이런 거~

히메오 : ...다행이다.

         [이게 뭐야]라고 들을까봐 조마조마했어~

그 표정도 말투도, 전혀 거짓없는 얼굴을 보고,

히메오씨의 긴장도 점점 풀린다.

미토코 : 고마워 히메오 언니~!

         소중하게 쓸게.

히메오 : 으으응(아니야), 소중하게 쓰면 안돼.

         잔뜩 써서 너덜너덜해지는 게 제대로 된 사용법이지?

미토코 : 아, 그런가...그럼, 엄청 열심히 쓸게?

히메오 : 응, 고마워...토코짱.

         아, 그리고 말야, 하나 더 있는데.

미토코 : 에? 또 있어?

히메오 : 이번 일요일에 옷사러 안 갈래?

         슬슬 계절도 바뀌니, 응?

미토코 : 그런...그렇게까지 받을 순 없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니까.

히메오 : 신경쓰지마.

         애당초 비싼 건 무리니까.

         알바비 별로 안 남았으니.

미토코 : 아...

미토코짱도 점점 알아차리고 있다.

히메오 : 그냥 첫번째 아르바이트 기념으로,

         토코짱하고 커플티는 어떨까 해서.

         ...안돼려나?

오늘의, 그리고 주말의 [선물]은,

평상시의 [선물]과는 가치도 마음도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미토코 : ...그럼, 그렇게 할까나?

         조금, 으으응(아니), 꽤 뻔뻔스럽긴 하지만.

히메오 : 토코짜아아아아앙!

미토코 : 우앗!?

         ㅈ, 잠깐...히메오 언니.

오사무 : 아하하...

때문에 히메오씨의 마음은 통했다.

이제 나 같은 건 안중에 없는 듯,

엄청 강하게 미토코짱을 껴안고,

두 사람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뭐, 오늘은 그냥 놔두자.

왜냐하면 오늘은, 히메오 씨에게 있어서 "처음"이라는 단어가 많이 붙은 날.

아마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 중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로, 보람찬 하루일 테니까.

단지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 하면...

내 선물...

건네줄 타이밍을 놓쳤다.

.........

??? : .........

(똑똑)

오사무 : 쿠울...스으...

오사무 : 으음...음~...으으으으음

.........

??? : 저기...

(똑똑)

??? : 뭐야...

(똑똑)

??? : 문 열어...

(똑똑)

??? : ㄱ, 간도 크네.

(똑똑)

??? : 알고 있어?

      나는 당신의 인사권도 쥐고 있다고?

오사무 : 으음...?

(똑똑)

??? : 그런 신과도 같은 상사의 절대 복종 명령에,

      눈을 뜰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건 무슨 꿍꿍이?

오사무 : .........쿠울, 스으으으으

??? : ㅇ, 언제까지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겠어!

(철컥)

??? : 뭐야, 캄캄하잖아.

      사람이 모처럼 와줬는데,

      이런 실례되는 대접은 아니지 않아?

(저벅저벅저벅...)

??? : 으음...불, 불이...

      진짜 뭐야,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저벅저벅저벅...)

꾸욱

오사무 : 윽!?

??? : 앗!

      뭔가 밟혔다!?

오사무&히메오 : 끄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악~...

.........

오사무 : 후아아아암...

         도대체 뭔가요?

히메오 : 방 한가운데서 자지 말라고.

         잘못해서 밟았잖아.

오사무 : 왜 자기방인데도 구석에서 자야하나요?

히메오 :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방이네.

오사무 : 어떻게 일만 끝나면 원래 성격으로 돌아가네요.

         미토코짱이 당신의 본성을 알게 되면

         엄청 싫어할걸요?

히메오 : 토코짱은 이런 걸로 태도를 바꿀 정도로

         가벼운 사람이 아니에요.

왠지 꿈과 과거와 현실이 뒤엉킨 듯한?

...아직 잠이 덜 깬것 같군.

오사무 : 지금 몇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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