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87)

미토코 : 쌀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데...

카야 : 집주인씨가 오사무 군한테 그런 소릴 해봤자 설득력이 없지.

오사무 : 아아아~ 카야 씨 그말은 하지마!

미토코 : 키 뿐만이 아니야. 좀 더 체력을 키우지 않으면.

         앞으로 더워지는데다, 일도 찾아야 하고 말야.

카야 : 그런식으로 말하면 유럽 사람들은

       전부 스태미너 부족이라는 건가.

미토코 : 그쪽 사람들은

         필라프랑 도리아랑 리조토랑 파에야로 스태미너를 기른다고!

오사무 : 아니 미토코짱.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

오사무 : 아, 여기 틀렸어.

         이 아이는 잠이 안와서 늦잠을 잔 거니까,

         그 시점에서 1번은 제외야.

미토코 : 아...그런가.

오사무 : 뭐, 함정이지, 이 선택지는. 따라서 정답은 4번

         [웃으면서 넘어가면 전부 용서받으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미토코 : 어라? 해답지에는 3번이라고 나왔는데?

오사무 : 야, 답보면 안된다니까.

         방금것도 함정이니까.

미토코 : 뭘 그리 복잡하게 가리켜.

가슴 훈훈한(?) 식사 시간도 금새 끝나고,

목욕하러 가기까지의 1시간 동안.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기말 시험을 위한 과외.

원래 진지하고 융통성이 없는 걸로

정평이 나 있는 미토코짱이기에,

이런 노력을 절대 빼먹는 적은 없다.

미토코 : 좋았어, 국어 끝.

         다음은 수...영어하자 영어!

오사무 : ...그래

그리고 나도, 꽤 묵은 지식을 꺼집어내,

조금이라도 그녀의 성적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역시 옛날은 옛날.

시작한지 3일 동안은, 가정 교사와 학생이

본래의 위치 관계로 돌아가는데 사용됐다.

오사무 : 있잖아, 미토코짱.

미토코 : 응?

오사무 : 슬슬 진학할 곳, 어디로 할건지 결정했어?

미토코 : 아직 이르다고.

오사무 : 그럼, 다른 질문.

         슬슬, 진학하기로, 결정했어?

미토코 : ...아직 이르다고.

오사무 : .........

5월에 있은 "그" 보호자 간담회 이후,

미토코짱의 진로에 대해, 그녀의 "담임"과

별 대화가 없다.

원래대로라면 미토코짱의 가정 사정을 생각하면,

가장 긴밀하게 연락을 취해야하는 상대지만.

...상대, 지만.

오사무 : 저기 말야, 미토코짱.

미토코 : 응~, 왜?

오사무 : 이제 신문 배달도 그만둬야 할 시기 아닌가?

미토코 : .........

오사무 : 이제 곧 여름 방학이고, 이 여름이 승부라고 생각하는데,

         학원의 방학 특강이라든가, 슬슬 나오고 있지?

미토코 : ...저기 말야, 리스토라 씨.

오사무 : ㅇ, 어, 왜?

미토코 : 지금, 집중하고 있으니까 말 걸지마.

오사무 : ...미안.

좀전까지 꼬박꼬박 대답했으면서.

미토코 : 으음...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말야,

         난 괜찮으니까.

방금 전에 말걸지 말라고 해놓고.

그처럼, 미토코짱에 있어서 이 화제는,

건드리고 싶지 않지만 피할 수 없는 거겠지.

미토코 :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있잖아, 중간 성적표 봤지?

오사무 : 응...

3학년이 되고 나서 첫 중간 시험으로,

미토코짱은 학년 47등이라는 호성적을 거뒀다.

2학년 학기말 시험에서 8등이었던 그녀에게 있어,

그게 호성적이라고 한다면, 말이지만.

미토코 : 그리고, 옛날부터 일하는 거 좋아했으니.

         졸업하고 곧바로 사회로 나가도 별 상관없으니.

엄마의 일, 아파트의 일.

...그리고, 분명, 나의 일.

1학기 전반은 너무 많은 일이 있어,

공부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음에 틀림없다.

오사무 : 공부는, 싫어?

미토코 : .........별로

모르는 지식을 물을 때마다, 눈을 빛내면서.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이해할 때까지 놓지 않으면서.

오사무 : 있잖아, 미토코짱.

미토코 : 왜?

때때로, 어린애 같은 행동이나 말투를 보여주면서도,

이런 부분이 너무나도 어른 같아서...

조금, 가슴이 아프다.

오사무 : 만약 내가 정식으로 취직하게 되면,

         진학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했으면 해.

미토코 : 리스토라 씨...

오사무 : 아니, 뭐,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최대한 서두를 테니까.

손에 다 넣었던 일자리를, 겨우 2주만에 잃은지

한달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오전에는 취직 활동, 오후에는 아르바이트,

밤에는 미토코짱의 가정 교사라는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반복했다.

지금 현재의 결과...0승 12패.

미토코 : 그런 것땜에 서두르지 않아도 돼.

         리스토라 씨한테 맞는 일, 천천히 찾으라고?

오사무 : 그렇게 느긋하게 있다간,

         순식간에 졸업식 된다고.

미토코 : .........

오사무 : 그리고, 미토코짱의 자칭 보호자 입장에서는,

         네가 좋은 학교에 진학하면 어깨가 으쓱해져.

         때문에 이건 내 바람이기도 해.

미토코 :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리스토라 씨한테 부담줄 수 없어.

오사무 : 부담 같은 게 아니라고.

         ...지금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그, 그치만 분명 조금만 있으면 아무 부담도 아닐 게 될 거니까!

내일은 2군데, 면접이 있다.

사원이 한자리 숫자인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와,

중견 규모의 상사.

내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려면 후자쪽이지만,

합격률이 높은 건 전자겠지.

이번에야말로...

미토코 : 그리고 말야...리스토라씨의 사정도 있으니.

         언제까지나 나를...으으응(아니), 여기에 계속 있을건지도.

오사무 : 호노카씨가 돌아올 때까지.

미토코 : 에...

왜냐하면 지금은, 내 의지보다도 중요한 일이 있다.

오사무 : 적어도, 그때까지는 약속할게.

         앞으로 절대로 여길 나가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나가라고 해도 버틸거야. 영감님 일행이랑 같이.

미토코 : 마마가...돌아오지 않으면?

오사무 : 돌아올거야. 반드시.

아니, 미토코짱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현재 나의 의지라는 사실.

오사무 : 만약 호노카씨가 돌아오는 게 조금 늦어진다고 하면...

         그래, 미토코짱이 시집갈 때까지는 여기에 있을게.

미토코 : 무슨 아빠 같다, 그말.

오사무 : 보호자니까 말야.

         아빠라고 생각해주는 건 연령적으로 좀 난처한 기분이 들지만,

         그것에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해주는 건 감사합니다라는 얘기로.

미토코 : .........

어느샌가 미토코짱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정확하게 비춰지고 있다.

호노카씨의 얼굴과 비슷하지만,

그녀에 비해서 더 뚜렷한 용모가,

거리도 방향도, 엄청나게 가까운 곳에 있다.

오사무 : ㅇ, 이래도, 약속할 수 없겠어?

빨려들어갈 듯 하면서도, 이 악물고 허세를 유지하고,

나는 미토코짱에게 물어...

미토코 : 응, 못 하겠어.

오사무 : 에? 에? 어째서?

미토코 : 리스토라 씨, 취직까진 쉽잖아.

         그래, 첫월급을 받게 되면 약속할 수 있을지도.

오사무 : .................

그리고 내 온몸이 칼로 도려내는듯한 통증.

미토코 : 에? 에? 혹시 정말로 상처받았어?

         미안, 미안해~. 그냥 농담이니까 말야`

오사무 : 됐어, 이제...

미토코 : 아앗, 미안미안, 정말로 미안해 용서해줘~!

         응응응? 리스토라 씨~

됐다 됐어, 어차피 나 같은 거.

.........

......

...

사장 : 채용이다, 채용이라고 요시무라 군!

       그것도 준비금까지 지급해서!

오사무 : ㅈ, 정말인가요 사장님!?

         아자~! 드디어 첫월급 겟(get)~~!

디렉터 : 자자 축하해축하해.

         자, 거기 앉어. 일에 대해서 설명할 테니까.

오사무 :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죽을 각오로 할 겁니다, 저!

디렉터 : 아~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의욕에 넘치지 않아도 금방 죽을 테니까.

오사무 : ...넹?

홍보 : 2007년 10월 26일 발매 예정입니다...

       2007년 11월 30일 발매 예정입니다...

       2007년 12월 21일 발매 예정입니다...

오사무 : 저기, 그런데 저분은 무슨 일을...?

디렉터 : 아, 저 사람은 원래 홍보였는데,

         지금은 녹음용 대본을 만들고 있어.

오사무 : ? ㄴ, 네, 힘드시겠네요.

디렉터 : 앗하하~, 저건 자네한테 비하면.

오사무 : ...넹?

디렉터 : 자 그럼, 시작할까.

         X토샾은 쓸 줄 알지?

오사무 : 아뇨 모르는데요?

디렉터 : 뭐 금방 익숙해질거야.

         자, 여기 문자 콘티가 있지?

오사무 : 어디어디...장소는 학교의 교실. 시간은 저녁.

         주인공 료이치의 책상에 앉아, 다리를 높이 들고, 검은 스타킹에

         감싸인 다리를 료이치의 얼굴에 들이미는 여교사 케이코...?

홍보 : 2008년 1월 25일 발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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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무 : 케이코, 유혹하는 듯한 표정. 오른손은 스커트 안에.

         왼손은 책상에 앉은 몸을 지탱하고 있다. 정면으로부터의 구도로 할지,

         약간 대각선으로 할건지 원화가측에서 검토해주세요.........?

디렉터 : 아, 그런가...2패턴이 있네 이거.

         우선은 양쪽 러프를 그려놓고 얘기할까.

오사무 : 아뇨, 그 이전에 전 뭘 하면...?

디렉터 : 원화라고 원화.

오사무 : ...넹?

사장 : 이야 살았어. 우리 간판 원화가가 정신줄을 놓아서 말야.

       화가는 망가지기 쉬우니 항상 대체할 사람을 준비해야 된다니까.

오사무 : 못 그려요, 그림 같은 거!?

디렉터 : 걱정마 걱정마. 어느 정도는 색칠로 커버할 수 있으니까.

         ...그 담당도 쓰러지면 자네가 하게 되겠지만 말야.

오사무 : 그러니까 못 그린다니까요!

디렉터 : 겨우 몇 장이라고. 콘티는 달랑 그거밖에 없으니까.

사장 : 라이터가 계약금을 건내주면 금새 사라지니까 말야.

       역시 외주는 금새 도망쳐서 안된다고. 맨날 후회한다니까.

오사무 : 사람 말을 좀 들으세요...

디렉터 : 그런 이유로, 잡지에 실을 그림 다 하면, 그 후에는 시나리오야.

         녹음이 다음주 월요일이니까 그때까지 해놔야.

오사무 : 참고 사항으로, 지금까지 끝내놓은 부분은?

디렉터 : 음~? 프롤로그는 대충 다 됐으려나?

         뭐 플롯은 다 짜놨으니까 걱정말라고.

         ...히로인 1명분은.

오사무 : 아니 잠깐만요, 제발 잠깐....

사장 : 고생하라고 요시무라 군!

       이 고난을 뛰어 넘으면 준비금이 보인다고!

오사무 : 아뇨 그런 건 준비금이라고 안 하니까요!

홍보 : 2009년 11월 27일 발매 예정입니다...

       2009년 12월 28일 발매 예정입니다...

오사무 : 내후년 연말 발매까지 커버하고 있네!?

(벌떡!)

오사무 : 윽!?

         하, 하아, 하아, 하하...

너무나도 현실적...아니 비현실적인 광경에,

한계를 넘은 뇌가 비명을 질러, 눈이 떠졌다.

오사무 : 이, 이 무슨 생동감...말도 안되는 꿈을...

내일 면접볼 곳인 [작은 소프트하우스]에 대한 생각을 하는 동안에,

무슨 이유에선지 최악의 시뮬레이션을 떠올린 것 같다.

전신이 끈끈한 기분나쁜 땀.

몸에 달라붙는 잠옷이 기분 나쁘다.

손바닥에는 묘하게 부드러운 감촉.

오사무 : 하아, 하아...불길하다.

         내일 면접, 어떡하지...

격하게 울리는 고동.

바싹타는 목.

코끝을 간지럽히는 샴프 향기.

오사무 : 윽, 무슨 배부른 소릴 하고 있냐.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하지만 그림은 못 그리는데...

??? : 으...으음...

짙게 깔린 암운.

곧바로 침략 기회를 엿보는 겁쟁이 벌레.

귀에 스며드는, 예전에 들은 적이 있는 숨소리.

오사무 : .........에?

카야 : 으음...하아, 으음...흐으..으음.

오사무 : .........

카야 :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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