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헤 : 으음~...
우리 셋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영감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키헤 : 뭐, 하나 재밌는 방법이 생각나긴 했는데요...
영감님의 눈동자에는, 새로운 만담거리를 찾아낸 듯한 반짝임이 보였다.
오사무 : 역시 연장자!
그래서, 대체 어떤 방법인가요?
키헤 : ...소주인, 당신, 집주인한테 반했다고?
오사무 : ㅇ, 왜 지금 그 얘기를!?
키헤 : 진정하고.
그 마음, 형태뿐만이라도 이루게 해주려고 그러는 거야.
어때, 나쁘지 않은 얘기지?
오사무 : 그, 그건 대체 무슨...?
키헤 :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말야...
선수를 쳐서 인정받으면 된다는 얘기로...
라면서, 영감이 주머니에서 꺼내든 것은,
여러겹으로 접힌 프린트.
오사무 : ㅁ, 뭐를...?
키헤 : 어린 주인한테, 어엿한 보호자가 있다는 걸, 말야.
거기에는, [보호자 간담회 알림]이라는,
뭐랄까, 예전에 보았던 아련한 문구가 늘어져 있었다.
.........
(철컥)
오사무 : 다녀왔습니다~
카야 : 아...수고했어.
오사무 : ...오늘도 아마기 씨 혼자인가요?
카야 : 응.
여기에 다닌지 이제 5일이 되지만,
아직까지 그녀 이외의 사원을 만난적이 없다...
사장도 가끔씩 아마기 씨에게 연락은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여기서 본 것은 면접 때뿐.
하지만, 뭐, 다른 사원들의 동향은 신경쓰이지만,
적어도 이번주내로는 보게될 거라는 방향으로,
아마기씨와는 얘기가 돼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본질적인 의문을 가질 때가 아니다.
이제 겨우 일도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으니.
...라는 소리를 하면, 현실 도피로 들릴지도 모르겠군.
오사무 : 자, 그럼, 저한테 뭐 연락온 거 없나요?
카야 : 몇 통인가 전화왔었어.
자, 이거 메모.
오사무 : 아,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카야 : .........
그녀가 건내준 메모는, 모아보니 10장 가까워,
곧바로 외근을 재개하려던 내 스케줄은,
아무래도 변경해야할 것 같다.
오사무 : 으음......아, 코우난 인쇄소.
어떻게 조정해줬으려나?
카야 : 저기 말야.
오사무 : 아, 네, 뭔가요?
카야 : ...최근, 뭐하고 있는 거야?
오사무 : ...네?
왠지 방금, 은근슬쩍 내 존재의의에 관한 질문을 받은듯한?
카야 : 아, 아니, 일하고 있다는 건 보면 알겠는데 말야.
...그렇게 바쁘게 움직일만한 일, 있었나?
오사무 : ㅇ, 아...그 말인가요.
확실히, 사장이나 선배 사원이 얼굴을 비추지 않기에,
나에게 주어진 일은 지금 시점에선 [공부]뿐.
지금까지의 거래처 자료나, 전표, 매뉴얼 같은 걸 읽고,
일단 일의 흐름을 알아두는 것.
카야 : 왠지 거래처에 신입씨의 이름이 침투하는 것 같은데?
오사무 : 아, 그건 말이죠.
있잖아요, 아마기 씨한테 들은 인쇄 회사에,
명함을 맡겨놔서...자 여기.
주머니에서 꺼낸 명함에는,
호우에이 상회의 사명과 전화, 팩스 번호.
그리고 찬연하게 빛나는 [요시무라 오사무]의 글자.
이걸 꺼낼 적마다, 마음속에 진하게
[사회인]의 온기가 스며든다. 주로 주머니쪽으로.
카야 : 아, 고마워...근데, 자비로?
...실제로는 아직 썰렁한 상황이지만.
특히 월급날까지는.
오사무 : 특급 요금이라서 좀 비싸게 들었지만요.
아, 이 회사의 연락처, 사용해도 되지요?
카야 : 그야 뭐, 신입씨는 일단 여기 사원이니까...
하지만, 나한테 말했으면 만들어주는데.
지금 상황에서...결제가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오사무 : 다음번에는 부탁드리겠습니다.
...실은 슬슬 처음에 받은 100장이 떨어져 가서요.
또 이상한 내용의 말을 들은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카야 : ...5일만에?
오사무 : 뭐니해도 신입이니까요.
만나는 사람마다 줘야.
카야 : 누굴 만나는 거야?
아니, 애당초 어디를 다니는 거야?
오사무 : 그야 물론, 일부러 연락해준 고객들한테지요.
카야 : 앵?
첫 출근부터 이틀에 걸쳐, 전부 65건의 불만 전화를 받았다.
3일째부터, 일단 받은 순서대로 다니기 시작해,
현재 33건째.
그렇다고는 하나, 3일째부터는 자리를 비울적이 많기에,
그 동안에 아마기씨가 받은 전화에 대해서도 응답해야만 한다.
...그걸 생각하면, 아직 멀었다.
카야 : 만나서 어쩌려고?
애당초, 어떻게 상대해야하는지도 안 배웠잖아?
오사무 : 일단, 여기 있는 자료로 파악되는 범위에서는 어떻게든.
나머진 고객한테서 지금까지의 일처리 방법을 들어서...
[왜 그쪽이 그런 걸 물어?]라고,
몇 번이고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카야 : 그걸로 어떻게 돼?
오사무 : 아니요...30퍼센트 정도에요, 이해해주는 건.
일단 납기를 연장시킬 수 있을 것 같은 곳은,
사정사정해서...
카야 : .........
오사무 : 메이커 쪽도 가봤습니다만,
아직 우리 회사로부터 입금이 안 된것 같아서, 작업을 할 수 없다고...
카야 : 뭐, 그렇지.
확실히 늦어지고 있어.
...그냥 단순히 늦어지는 건지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오사무 : 역시 그랬나요...
일단, 설명할 수 있는 부분만 설명하겠습니다.
...그래도 안된다고 하면, 무작정 사죄할 수밖에 없겠지만요.
신경쓰지 말자, 신경쓰지 말자...
카야 : 저기 말야...
오사무 : 네?
카야 : 혹시, 최근 갖고 다니는 과자 봉지는...
오사무 : 뭐, 언 발에 오줌누기지만요.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
상대방 태도도 좀 달라져요.
카야 : 그런 의미가 아니라 말야...
그리고 교통비 같은 건 어떡하고 있어?
오사무 : 아, 걱정마세요.
아직 한도 내이니...
월급만 받으면, 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입장이다.
따라서 난 열심히 한다.
상대방에서 화를 내도, 질렸다는 표정을 지어도, 머리를 쥐어잡고 노려봐도...
카야 : ......영수증 잘 챙겨놔?
나중에 경비로 정산...할 수 있으면 할 테니까.
오사무 : ...감사합니다.
신경쓰지 말자, 신경쓰지 말자, 신경쓰지 말자...
카야 : 있잖아.
오사무 : 네?
카야 : 혹시, 달아올랐어?
오사무 : ...불타올랐냐는 말이죠?
카야 : 그거 말고 다른 게 있어?
오사무 : 뭐, 책임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어요.
카야 : 흐음...
영감이 생각해낸 [작전]...
좀 엉뚱하고 무리한 방법이긴 하지만,
성공하면 분명히 어느 정도는 미토코짱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 작전을 실행하기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었다.
그건, 나의 사회인으로서의 신뢰도.
괜찮은 회사에서 일하고, 정기적인 수입이 있고,
인격적으로도 어느 정도 괜찮아야만 한다.
그래,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와 똑같이 사랑하고, 기를 수 있는.
카야 : 그럼, 이거.
오사무 : ...뭔가요?
카야 : 책임감이 생겼다며?
오사무 : 아뇨, 엄밀하게 말하면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내 눈앞에 놓인 한 장의 종이...
거기에는 [부양수당 지금신청서]의 글자가 적혀 있었다.
(딩-동-댕-동)
코오노 선생 : 히노사카 양, 저기, 히노사카 양~
미토코 : 우앗....
코우노선생 : ...그렇게 싫은 표정 지을 필요는 없잖아.
좀 서운하다.
미토코 : 아, 아뇨, 죄송합니다...
결코 선생님한테 무슨 감정이 있는 게...
코우노선생 : ? 뭐, 됐어.
그런데, 보호자 간담회 말인데...
미토코 : 엄마가 그 이후로 더 바빠져서!
으음~, 지금은...그래! 브릭스 공화국에 출장 중이라서!
코우노선생 : 정말로 바쁘신가 보네.
어제, 학교로 편지가 왔어.
미토코 : 그렇다구요, 그러니까 간담회는.........네?
코우노선생 : 히노사카 양의 진로에 대해 정말 많이 신경쓰시는 것 같아.
집안 사정으로 네가 진학을 포기하려하고 있는 걸 걱정하시는 것 같았어.
미토코 : 에, 으음...어라?
코우노선생 : 너한테는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이 일로 상담할 시간도 없어서 걱정하고 있다고.
미토코 : 누가?
코우노선생 : 그러니까 어머니가 말야.
사실은 진학시키고 싶지만,
좀처럼 말을 꺼내지못하고 있습니다, 라고.
미토코 : 누가!?
코우노선생 : 그렇게 화내지 말아.
어머님, 널 정말로 걱정하고 계시단다.
미토코 : 아, 저기, 아니에요.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코우노선생 : 자기 때문에 너를 힘들게 했다고,
편지 안에서도 몇 번이나 사과하셔서...그러니까, 응?
미토코 : ...사과했다고?
코우노선생 : 정말, 안쓰러울 정도로 미안해하셔서.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까지 사과하시면 난처해지는데.
미토코 : ...그렇게까지 사과를?
코우노선생 : 좀처럼 어머니와 대화할 기회가 없어서,
네가 힘들다는 건 알아...
하지만 말이야 히노사카 양...
미토코 : ...혹시
코우노선생 : 어머니가 주야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시는 건,
네가 진학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시는 건 아닐까 해.
미토코 : 그, 그치만, 설마...
코우노선생 : 그래서 말야...오늘 어머님 대신으로,
어머님의 약혼자되시는 분이 오신다고.
미토코 :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뒤죽박죽으로.........앵?
코우노선생 : 아직 혼인신고는 안했지만 시간문제라고.
미토코짱도 많이 좋아하니까 걱정말라고.
미토코 : 약혼자...?
코우노선생 : 그런 얘기가 있었구나.
가능하면 선생님한테도 미리 알려줬으면 좋았겠지만.
뭐,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으려나, 이런 일은.
미토코 : .........
코우노선생 : 그렇지만 말야...
선생님은 이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해.
미토코 : 으!
코우노선생 : 민감한 시기이니까, 잘 모르는 남자와 같이 사는 건,
처음에는 저항감이 있을지도 몰라.
미토코 : 이, 이 자식...
코우노선생 : 하지만 말야, 역시 부모님이 다 계시는 게 좋아.
게다가 좋은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남은건 네 마음만......히노사카 양?
미토코 : 뒤죽박죽에다가 삐뚤어진 짓을~!
(다다다)
코우노선생 : 아?
자, 잠깐, 어디가 히노사카 양?
아직 얘기가...
미토코 : 국제전화하고 올게요!
코우노선생 : ㄷ, 대체 어디로!?
미토코 : 물론, 브릭스 공화국에!
(다다다)
코우노선생 : 코, 콜렉트 콜로 걸라고~?
.........
......
...
코우노 : .........?
B(razil) R(ussia) I(ndia) C(hina) s가 공화국이었나?
...아니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된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