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토코 : .........
나의, 조금은 꼴사나운 독신 선언을,
미토코짱은 말없이 묵살한다.
...아니, 말하면서 묵살하는 건 불가능지만.
미토코 : 역시, 좀 춥네 밖은.
오사무 : 에?
미토코 : 역시, 불그스름하네, 달.
오사무 : 아, 어...
그것이, 명백하게 나를 신경써주는,
부자연스러운 화제 전환이라는 건 분명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나라도 추측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하게,
나를 신경써준 것이 기뻐서.
미토코 : ..........
오사무 : .........
하늘을 올려다보니, 거기에는 도시에 걸맞는 숫자의 별.
대화는 끊어졌어도, 우리들은 그걸 답답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단지, 천천히 지나가는, 아주 잠깐동안의 시간을 즐겼다.
미토코 : 마마가 좀 일찍 들어오는 날에는 말야,
항상 여기서 이렇게 달과 별을 봤어.
오사무 : ...행실이 안좋네.
미토코 : 흥, 이다
그래도 분수를 모르고 짜잘한 소리를 하는 나를 노려보는 미토코짱은,
이번에야말로 눈이 웃고 있었다.
테라스하우스 히노사카의 담벼락 위.
약간 높은 콘크리트 담벼락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는 그녀는,
평소와 달리, 딱 내 내눈높이와 맞는 위치에 있다.
미토코 : 어땠어, 첫 날?
오사무 : 아무래도, 좀 피곤하려나?
미토코 : 뭐 했어?
영업이라면 인사다니기라든가?
오사무 : 곧바로 그러지는 않았어.
우선은 여러 가지 자료를 읽고 공부.
그리고 가끔 전화받고.
미토코 : 뭐야~. 그런 거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걸.
오사무 : 할 수 있을 거야, 너라면.
물론, 이런 평화로운 공기에 묘한 암운을 드러내는듯한 발언은,
극력 삼가는 방향으로.
미토코 : 뭐, 하지만 첫 날은 다 그런 건가.
앞으로 점점 바빠지겠지?
오사무 : 응, 각오하고 있어.
오랜만에 하는 일이니까, 점차 익숙해져야지.
미토코 : 응응, 열심히 해, 리스토라 씨.
오사무 : .........열심히 하겠습니다.
또 따지고 싶은 부분이 있었지만...
오사무 : 근데, 그쪽은 어땠어?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미토코 : ...어떻게 알았을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지 못하는 둔감한 사람 아니었나?
오사무 : 그야, 알게된지 한 달이나 됐으니. 아무래도, 말이지.
미토코 : 이 정도의 기간이면 완전 지긋지긋한 관계네, 아하하.
당연히 알지.
오늘 아침, 그렇게나 화냈었는데 기분이 풀렸으니.
겨우 한달 동안의 경험으로 봐도,
본심은 둘째치고, 태도는 최소한 3일은 계속됐을 테니.
미토코 : 응, 좋은 일, 있었어.
오사무 : 좀 들려줄래?
가끔은 잔소리 이외에도...아무것도 아니에요.
미토코 : 작년까지, 옆집에 말야...
아주 친했던 언니가 있었어.
오사무 : .........옆집?
미토코 : 응, 저쪽집.
봐, 오늘은 불켜져 있지?
미토코짱이 오른손으로 가리킨 방향은,
테라스하우스 히노사카의 왼쪽...
이 건물을 엄청나게 능가하는,
대저택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닌 건물로.
지난주까지, 항상 불이 꺼져 있던 그 저택은,
지금, 분명하게 사람의 기척을 느끼게 할 빛을 내고 있다.
미토코 : 3년 정도 전에 이사왔는데 말야.
매일 하얀 리무진으로 등교하는, 엄청난 부잣집 아가씨로.
게다가 그 학교가 그 유명한 슈우센대 부속고! 알고 있지 슈우센?
오사무 : 으, 응...유명한 곳이지.
하얀 리무진...
미토코 : 그런 부잣집 아가씨인데,
그런 티를 전혀 내지 않아서 말야.
나랑 마마한테도 아주 잘 대해줬어.
오사무 : 그렇, 구나...
미토코 : 작년에 미국으로 유학간다는 소릴 들었을 땐 너무 슬퍼서 말야...
살짝, 아니, 너무 울어서 난처하게 만들었어.
오사무 : .........
이 아파트 왼쪽은, 히가시하기모리 3가 23번지.
명함에 적힌 주소와, 정확히 일치한다.
미토코 : 근데 오늘 갑자기 귀국해서,
정말, 깜짝 놀라서...
하지만, 미토코짱이 말하는 [언니]와,
내가 만난 [아가씨]는...
미토코 : 고등학교 때도 엄청 예뻤는데 말야,
대학생이 되니, 한층 더 세련된 느낌이었어.
아, 맞다, 아직 이름 얘기 안했지...
오사무 : 사와시마 히메오...씨.
미토코 : 만났구나!
엄청난 미인인데도 서글서글하고, 상냥해서,
정말 단점이 안 보이는 사람이지~
오사무 : 하, 하하...
.........
오사무 : 그래서...이게 그 이웃분의 선물?
분타로 : 죽이지?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제과점에서,
하루 한정으로 50개밖에 안 만드는 초(超) 레어한 슈크림이래.
오사무 : 그래...그 핵심인 슈크림은?
내 방 테이블 위에는,
분명 그 음식이 존재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하얗고 큰 종이 상자가 펼쳐져 있었다.
...밑바닥도 하얗다는 걸 알 정도로, 내용물은 텅 비어서.
요시노리 : 이야 그게, 딱 12개밖에 안 들어있어서.
역시 한정품.
오사무 : 그런가요, 그럼 어쩔 수...
아니 그럼 내 몫도 있었다는 거잖아요!?
분타로 : 아니, 셋이서 나누니까 딱 떨어져서 말야.
정말 이웃도 센스가 없다니까.
오사무 : 그거 셋이서 4개가 아니니까요!
넷이서 3개니까요!
키헤 : 으~...거북해.
역시 이 나이 들어 단 걸 너무 많이 먹으면 안돼.
전 지금 뜨거운 차에 공포를 느끼고 있어요~
(만담 "만두 무서워"를 패러디한거라네요;;)
오사무 : .........싸구려 엽차밖에 없는데요?
얼마전에 미토코짱한테 나눠받은 건데요.
요시노리 : 리스토라...너, 괜찮은 녀석이야.
성격도 쓸모도.
뒷말은 전혀 기쁘지 않다...
분타로 : 근데 리스토라한테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뭐랄까 물고기처럼 생긴 슈크림이라서 말야.
그것도 얼굴이 이상하게 생겼다니까 그게.
오사무 : 보여주고 싶었으면 하나 정도는 남겨둬도......?
저기, 혹시 그 물고기, 범고래라든가?
키헤 : 아, 그러고 보니...
이렇게, 큰 입을 쩍 벌린 모습이,
무슨 성의 천수각처럼 이렇게 번쩍거리는 것처럼 말야.
(천수각 : 성의 중심 건물에 축조한 가장 높은 망대)
오사무 : .........
정말로 캘리포니아에 있는 제과점인가...?
.........
오사무 : 그래서, 이렇게 잘 얻어먹고도 말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만...
난 먹지 않았지만.
오사무 : 실은 저, 그 사와시마 히메오 씨라는 분한테,
이상한 얘기를 들었는데요.
...이 아파트를 나가달라고.
키헤 : .........
요시노리 : .........
분타로 : ...역시, 리스토라한테도 왔었나, 히메사마.
오사무 : 히메사마라니...아
(히메사마라는 단어는 "공주님"이라는 뜻으로 히메오의 앞글자인 히메는 공주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렇구나...[히메]오 씨지.
요시노리 : 일년전에, 유학한다고 했을 땐,
드디어 포기했나 싶었는데 말야.
오사무 : 에...그럼 일년도 더 이전부터?
분타로 : 나한테는 말야
(히메오 목소리로)[당신이 여기 있으면 히가시하기모리의 풍기가 문란해져]라고 하면서 말야.
내가 어지럽히는 건 대학 주변이랑 극장 주변만인데 말야.
장소를 골라서 어지럽히는구나...
오사무 : ...아니 그것보다, 진짜 기분 나쁘니 그만하세요 그거
(목소리 똑같이 흉내내는 것)
야스나가 군의 성대모사는 진짜 거짓말안하고 신들렸어...
요시노리 : 나한테는 갑자기 [그래, 얼마나 원해?]라고?
증말 사람을 바보로 보고 말야.
내가 여기에 계속 사는 건 집세가 싼 이유만은 아니라고.
애당초 내지를 않으니까, 이 사람...
키헤 : 난 요양시설을 소개해주더라고요.
남의 노후를 걱정할 시간이 있으면, 그쪽의 그런 태도를
어떻게 해보는 게 어떨까요, 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았지.
확실히 영감님의 노후는 나도 걱정되지만...
오사무 : 그래서, 여러분은 그런 소리까지 들었으면서,
왜 그걸 다 먹었나요?
키헤&요시노리&분타로 : 그건 그거. 이건 슈크림.
오사무 : .........
분타로 : 가장 문제되는 건,
주인 언니가 그 여자의 본모습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거지.
요시노리 : 우리가 아무리 말해도,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믿어주질 않는다고.
어째든 그 여자, 히노사카 모녀를 대할 때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니까.
오사무 : 그녀는 왜 우리를 내쫓으려고 하는 걸까요?
키헤 : 냄새가 나지요?
이권의 냄새가 풀풀 나요.
역시 영감님도, 나와 같은 추측을 하고 있는듯하다.
하긴, 사와시마란 이름을 들으면 누구든 그렇게 생각하겠지.
부동산업으로써는 신흥이지만, 여러 가지 무리한 방법으로 지분을 늘려,
지금은 재벌 회사조차도 능가할 대기업으로 성장한 사와시마 부동산.
하지만, 그런 대기업이기 때문에, 납득 안되는 부분도 있다.
오사무 : 그 사와시마 부동산이, 왜 여기를 골랐을까요?
확실히 자산 가치는 높지만, 이 주변은 주택가라고요?
분타로 : 혹시, 이 동네 전체를 사들이려는지도.
이 아파트는 단순한 발판에 지나지 않는다든가?
요시노리 : 결국엔 고층 빌딩가나, 대형 테마 파크라든가...
오사무 : .........
아무리봐도 메리트에 비해 리스크가 너무 큰 그 호러 얘기에,
그렇지만, 다들 무거운 침묵으로 대답한다.
지금까지의 급성장 행태를 알고 있는 우리들 입장에서 보면,
[사와시마라면 설마]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키헤 : 아무튼, 잘 들어 당신들.
히메사마의 목적이 이 [테라스하우스 히노사카]에 있는 이상,
이쪽 입장에서는 꼬리를 잡히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오사무 : 꼬리...말인가요?
키헤 : 잘 들으라고, 그 히메사마가 1년만에 유학을 중단하고,
이제와서 다시 손길을 뻗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고.
그동안 뭔가 이상한 일은 없었나?
분타로 : 그건, 즉...
요시노리 : 집주인의 가출인가...
오사무 : 아...
그렇다...
너무나도 흐리멍덩한 이곳의 생활 탓에 잊고 잇었지만,
지금, 이 아파트에는, 진짜 세대주인
히노사카 호노카씨가 없다.
그리고 현재, 이곳을 실질적으로 꾸려나가는 히노사카 미토코짱은
아직 학생으로, 아마 세대주로서도, 아파트 주인으로서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이 사실이,
관청이나 학교에 알려진다면...?
오사무 : 크, 큰일이에요 영감님...
상황은 이쪽에 압도적으로 불리하잖아요!
그렇다, 저쪽은 관청이나 학교에 알리기만 하면 된다.
그것만으로, 친절하지만, 미토코짱의 바람을 모르는
[어른]이 나타나, 그녀를, 그들이 믿고 있는 [불우한 환경]에서
구해줄 수 있다.
분타로 : 안좋아...
그런 정보는, 이미 주인 언니의 입을 통해
들었을테니.
요시노리 : 뭔가 좋은 작전은 없나, 영감?
이대로는 우리들도 길거리에 나앉게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