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 * *
다음 날 아침 여덟 시.
축구광이 시계를 보면서 초조하게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다들 늦어.”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에 있는 웨스트 릴링 FC의 훈련을 참관하기 위해서는 빨리 움직여야 하는데, 사람들이 늦게 나오는 것이었다.
어제 예지의 소개로 JOB's PUB에 갔던 사람들 중에서… 유독 술을 많이 먹었던 크룸, 유케이, 그리고 쌍둥이 형제인 정찬우와 정신우는 숙취로 조금 늦게 나왔다.
8시 20분이 되어서야,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그리고 축구광은 다급하게 말했다.
“웨스트 릴링 구단 주변 식당에서 아침 식사 빨리하셔야 합니다. 다음 스케줄을 소화하려면 시간이 없습니다. 바로 식당으로 이동하시죠.”
축구광이 재촉하자, 유케이가 불만이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저… 힘들어 죽겠는데… 천천히 가시죠.”
그리고, 술기운이 남아있는 다른 사람들도 같이 동조했다.
“아침 안 먹어도 되는데…….”
“그냥 숙소에서 쉬면 안 될까요…….”
“정말 죽겠네요.”
비협조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자, 축구광은 속이 답답해졌다. 그런데!
“다들! 그냥 조용히 따라가시죠! 축구광 님이 대칸 감독님과 함께 여러분을 초대하고 좋은 식사도 제공해 주시고, 투어도 해주시는데?”
“…….”
예지의 사이다 같은 말이 터져 나왔고, 사람들의 불만이 모두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어제, JOB's PUB에서의 시간은 모두에게 환상적이었다.
인터넷 방송을 하는 크룸과 유케이, 이은정은 엄청난 시청자들을 끌어모았고, 축구에 미쳐있는 쌍둥이 형제와 김신화는 축구 선수를 직접 보고! 게다가 술까지 같이 마실 수가 있었다. 강정화 기자는 현지 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기삿거리가 너무 많이 생겨서 기쁜 어제…….
그런 어제처럼 다시 그 술집에 가려면, 입장권인 예지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었다.
“네! 가시죠.”
“아침 먹으러 가죠. 어떻게든 입에 넣겠습니다.”
“단체 생활이죠. 단체!”
순식간에 변해버린 투어 참가자들의 행동에… 축구광은 놀란 표정으로 예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살짝 그에게 웃어줄 뿐이었다.
아침을 먹은 일행은 웨스트 릴링 FC의 홈구장인 뉴레인 스타디움에 다시 방문하였다. 그리고 경기장에서는 선수들이 오전 훈련을 하고 있었다.
“다들 간단하게 회복 훈련에 들어간다.”
김종일 수석 코치의 지시에 따라 스트레칭을 마친 선수들은 각자 정해진 구역으로 흩어져서 훈련을 시작하였고, 그런 훈련 장면을 투어 참가자들은 지켜볼 수가 있었다.
“웨스트 릴링 FC가 리그를 치르고 있는 상황이라. 오전에는 보통 회복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대칸 감독님을 비롯한 코치들께서 특별히 오전 훈련 참관을 허락하셨으니, 여기서 선수들 훈련을 지켜보시면 됩니다.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동영상 촬영이나 방송은 안 됩니다.”
축구광의 말에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선수가 있는 구역으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사진을 찍으면서 훈련을 구경하였다.
그리고 예지는 역시나, 대니얼에게 다가갔다.
“어이 변태 주장! 괜찮아요? 어제 많이 먹던데?”
대니얼도 아직 숙취가 남아있는 상태! 하지만, 체력이 좋았기 때문에 훈련을 소화하고 있었다.
“나야 괜찮지! 어때? 오늘 저녁에도 한잔?”
하지만, 그런 대니얼을 보고 있던 매튜가 한 소리를 하였다.
“뭐? 오늘도 술을 먹는다고? 대니얼 너 프로야! 프로 선수라고!!”
대니얼이 매튜에게 ‘코치님, 제가 컨트롤 잘하잖아요.’라고 변명을 하자, 매튜는 ‘뭘 잘한다고… 쯧쯧.’ 하며 구박을 하였다.
감독실.
대칸은 내일 예정되어 있는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휴대폰으로 축구광의 메시지가 왔다.
- 오전 일정 무사히 수행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 오후에 요크 시티 관광 진행할 예정입니다.
축구광은 무사히 투어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내일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되겠네.”
다행히 내일은 카디프 시티 FC와의 경기, 리그 중위권 팀과 홈구장에서의 경기라서 대칸은 이길 자신이 충분히 있었다.
오후.
요크 시티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투어 참가자들은 어제 과음에 이어서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피곤해서 대부분이 자고 있었고, 축구광은 문자로 대칸에게 이상 없음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예지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예지 씨.”
“네, 축구광 님…….”
예지도 피곤한 모습을 보였지만, 축구광은 궁금해서 물어봐야 했다.
“투어 참가자들이 왜 예지 씨 말에는 끔벅 넘어가죠?”
그의 질문에 예지는 간단하게 답했다.
“어제, JOB's PUB에 가서… 현지 술집이 뭔지를 보여주었죠.”
“아… 나도 가고 싶었는데…….”
축구광도 정말 좋아하는 술집이었다. 그런데, 어제 차현우 편집자와 미팅을 한다고 못 갔던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러자 이 장면도 촬영하고 있던 차현우가 제안했다.
“그럼, 오늘은 다 같이 갈까요? 촬영 스케줄이라면 축구광 님도 가도 괜찮을 건데?”
차현우의 말에 축구광의 표정도 밝아졌다. 그리고 뒤에서 듣고만 있던 사람도 불쑥 끼어들었다.
“저… 저도요!”
어제 아이들 때문에 못 갔던 백기우 씨도 애들을 재우고 가겠다고 말했다.
* * *
다음 날.
오전 자유 일정…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해진 일정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숙취 때문에 오전에는 휴식을 취했다. 어제도 JOB's PUB에 방문했는데… 역시, 아니 더 심하게 가게 영업시간이 끝날 때까지 마시고, 부족해서 숙소에서 새벽 여섯 시까지 술을 먹었던 것이다.
그래서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일행은 간신히 일어났다. 그리고 호텔에서 다 같이 점심을 간단하게 먹으면서 말했다.
“오늘 오후에는… 웨스트 릴링 FC의 경기 관람이 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주변에 굿즈 샵 방문과 유소년 아카데미 방문 스케줄도 있는데…….”
하지만 축구광이 여전히 죽어가는 일행을 보고서 말했다.
“하고 싶으면 하시고, 쉬고 싶으면 쉬세요.”
축구광 본인도 숙취 때문에 힘들어서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영국 시간 19시에 웨스트 릴링 FC의 홈구장에서 리그 경기 있습니다. 이 경기는 모두 관람하실 거죠?”
핵심인 축구 경기를 빠트릴 수가 없었다.
“네.”
그래서 모두가 관람하겠다고 하자…….
“그러면, 더 쉬어두세요. 이 상태로 경기에 들어가면 죽으실 수도 있어요.”
살짝 이해가 안 되는 축구광의 말에도 일단은 피곤했던 일행들은 대부분이 점심을 입에 넣고 숙소로 들어가서 휴식을 더 취했다.
오후 19시.
삐삑~
[자, 심판의 휘슬이 울립니다. 웨스트 릴링 FC와 카디프 시티 FC와의 경기가 시작됩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축구광을 비롯한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은 열심히 응원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역시나…….
“헤이~ 축구광! 같이 놀자고!”
“우리 핫 걸! 여기 있었네?”
“다들 어제 잘 먹던데 오늘도 먹으면서 놀아보자고~”
축구광이 예상했던 대로 JOB's PUB의 멤버들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그랬지만!
“FXXK! 저런 패스를 놓치다니! 아쉬우니 한잔!”
“오 마이 갓!! 카디프 멍청이들에게 공을 주지 말라고! 치얼스~”
“에드워드! 모두 다 죽여버려!!”
과격한 응원과 함께 음주가 시작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몰래… 높은 도수의 술을 가지고 들어왔고, 맥주에 조금씩 섞어 마시자.
“씨팔!! 다들 죽여버려~”
“영국 최고! 에드워드 최고! 대칸 최고!!”
투어 참가자들도 어느 순간 술에 취해서 그들과 같이 진상 관객이 되어 응원을 하였다.
전반 28분.
미드필더에서 공을 가지고 있던 카디프 시티의 선수가… 딜런이 압박하자, 급하게 공을 패스하려다가, 딜런의 발끝에 공이 걸렸다. 그리고 그 휘어진 공이… 에드워드에게 향했다.
[이게 에드워드에게 걸립니다!]
공을 잡은 에드워드는 주변도 보지 않고 바로 골대를 향해 달렸다.
[에드워드! 달립니다. 달려요! 빨라요!]
[카디프 수비수들 같이 뛰지만 못 따라갑니다.]
공을 몰고 가는데도 더 빠른 속도로 에드워드가 돌파했고,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가자, 골키퍼도 튀어나왔다. 에드워드는 살짝 접어서 키퍼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연속 동작으로 공을 때렸다.
[골키퍼와 1:1 상황, 바로 슛!]
철렁~
[골! 들어갔어요!]
[웨스트 릴링 FC의 선취점! 멋지게 포문을 여는 에드워드의 골입니다.]
중계진은 리플레이를 보면서 감탄을 더하였다.
[와. 정말 멋진 장면이죠?]
[거의 절반… 40미터를 질주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슛? 영리하죠? 한번 접어서 키퍼가 완전히 방향을 잃었습니다.]
에드워드의 골이 터지자, 관중들의 환호가 터졌다.
“에드워드!!”
“역시 에드워드다. 이 정말 대단한 녀석!!”
“웨스트~ 웨스트~ 웨스트~ 릴링! 릴링!”
그리고… 유난히 과격하게 함성을 지르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역시나 JOB's PUB의 멤버들이었고, 그 옆에는 투어 참가자들이었다.
“태극기 흔들어! 더 빨리!!”
정찬우와 정신우 두 쌍둥이 형제는 태극기를 꺼내서 흔들었고, 주변에 있는 다른 투어 참가자들은 고성을 질렀다.
“대칸 감독!! 만세!! 에드워드 만세!!”
“너무 잘한다!! 너무 좋다!!”
“꺄악~ 저를 가져요!!”
술기운과 응원의 열기가 가득했고… 약간 떨어진 곳에서 두 아들과 같이 경기를 지켜보던 백기우 씨는 조금 떨어져 있는 것이 다행이면서도 저 열기가 부럽기도 했다.
이날 경기는 웨스트 릴링 FC가 3: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대칸의 시청자 이벤트는 계속되었다. 그들은 다음 날에 리즈 관광을 하고, 리즈와 맨유가 붙는 프리미어 리그 경기도 관람하였다. 그다음 날에도 관광 일정이 계속 있었는데…….
매일 JOB's PUB에서 술을 마셨다. 그러다 보니 런던에서의 관광 일정은 모두의 동의하에 자유 일정으로 대체될 정도였다.
그들은 JOB's PUB에서 대니얼만 만난 것이 아니었다. 대칸 감독도 만나고 김종일 수석 코치도 만나고… 제이든 코치도 만나고… 근방에 사는 선수들도 자주 보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 자리에서 유니폼에 사인을 받거나, 같이 사진을 찍고… 방송에 출연까지 해주었으니, 재미가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메인 일정보다는 술집에서의 방송이 더욱 재미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영국 남자들 특유의 과격한 술부심과 평소와는 다른 술주정은 방송을 더욱 신기하고 재미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이번 시청자 초대 이벤트는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에서 두고두고 회자가 되는 전설이 되었다.
* * *
웨스트 릴링 FC의 챔피언십 첫 번째 시즌은 아주 잘 진행되고 있었다.
“리그 컵 대회 이상 없고.”
리그 컵 대회의 대진이 너무 좋다. 리그 컵 16강에서 승리하면서 8강 진출이 확정되었는데, 이 상대 팀도 챔피언십 팀이다.
“FA 컵도 무난하고.”
FA 컵도 순항이다. 아직 상위권 팀들을 만나지 않아서 계속해서 위로 올라갈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