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할 건 정말 많습니다만, 악질적인 것을 꼽으라면 역시 그 구호 단체들이 있죠. 유니… 머시기라든지, 적십새끼 같은 놈들 말입니다. 과거 혼란과 전쟁으로 상처받은 우리의 처지를 가지고 장사하던 개자식들. 우릴 가지고 세계의 동정심을 사서 천문학적인 돈을 끌어모았지만, 우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죠.”
“뭐, 대강 알고 있었죠.”
“그 더러운 위선으로 치장한 구호부터 시작해서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계속 놈들에게 노리개로 쓰였습니다. 물론 우리 아프리카에서 직접 세운 정부들도 잘한 건 아니었고, 국민들과 나라가 성숙해지기도 전에 우리가 제대로 자라는 걸 원치 않는 자들이 너무 많았죠.”
“아…….”
“그나마 이 한국에서 온 분 중에 그렇지 않은 분이 있긴 했지만… 결국 그분뿐이었죠. 특정한 한 사람이 모든 인간의 가능성이 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린 성좌의 시대가 되어서야 겨우 구원의 밧줄을 잡을 수 있었고, 성장에 필요한 태양빛과 영양을 얻을 수 있었죠.”
모를란테 부장의 기준에서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는 미래가 안 보이던 아프리카 대륙의 구원자였다.
그는 무상으로 막대한 마정석과 자신의 성좌 군세와 헌터들을 모아서 규율을 잡고, 동시에 회사까지 세워서 아프리카 대륙 개발과 운영을 시작하고 아프리카 통일 전쟁까지 이어 나갔다.
“자기네 땅엔 온갖 메가 시티를 세우고, 쓰레기를 만들고 지구를 죽이는 주제에 우리에겐 뻔뻔하게 환경이니 동물 보호니 하면서 반대하는 것도 아니꼬웠죠. 그러면서 기후 협약이니 온갖 환경 협약에선 다 빠져나가고… 참 나!”
“그… 우리 쪽에 성좌 진황 님이 껴 계시니… 환경 쪽도 조금은 신경 써 주시는 게…….”
“물론 신경 쓸 겁니다. 그 말만 하는 백인 놈들보다 훨씬 잘할 자신이 있지요. 게다가 우리는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님의 인도와 함께 설계하고 번영을 시작해 찬란한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크흠!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오죠. 어떻습니까? 생각을 마치셨는지요? 아, 성좌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일단 아직도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의 목적은 모르지만 협력을 요구하는 이 모를란테 부장과 그들 회사의 목적은 더없이 확실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성좌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걸어 놨으니 판단엔 더 이견이 없는 상황. 유성원은 보다 확실한 올림푸스 길드의 공략을 위해서 그것에 걸기로 한다.
“좋습니다. 하지만 너무 자기 목적에만 심취하는 건 자제해 주세요. 결국 성좌 영원한 분노를 쓰러뜨려야 하니까 말이죠. 자칫 잘못하면 이 ‘별’이 먹히게 됩니다.”
“하하, 예, 물론입니다. 이 ‘별’이 사라지는 건 절대 안 되니까요. 그 점은 필히 유의하겠습니다.”
“후우우~ 그럼 서로 연락 방법과 신호, 그리고 시기에 대해서…….”
다른 선택지가 없는 유성원은 결국 모를란테 부장과 손을 잡기로 했다.
다른 속셈이 더 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그래도 손 하나가 더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기 때문에 승낙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제국주의 시절에 새겨진 원한이 그들이 힘을 갖춘 지금 시점에서 폭발하게 된다는 점이었는데, 그 점에 대해선 일단 진행하면서 고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건투를! 하하하핫!”
협의가 성사된 것이 기쁜지 모를란테는 호쾌하게 웃으며 떠났다.
하나 옆에 있는 유청의 표정은 그리 좋지는 않았는데, 저들과의 협의가 딱히 좋은 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폐하.”
“…딱히 거부할 이유도 없고, 게다가 저런 위험한 타입은 차라리 곁에 두고 관리하는 게 낫지.”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가 뭘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거야. 저들이 아프리카의 원한이니 뭐니 하는 것도 목적이긴 하지만, 역시 그 배후가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의 의도가 뭔지 몰라서 찜찜한 유성원이었다.
사실 그냥 성좌 영원한 분노랑 올림푸스 길드와 싸우는 걸 지켜보기만 해도 이득을 보는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세력이었다.
심지어 이미 한창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유럽 전선을 놔둔 채로 협력하고자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뭘 원하는 걸까? 그 성좌님은…….”
“저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논리적으론 규격을 재는 게 불가능한 분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뭔가 같은 편을 들인 게 아니라, 걱정거리를 하나 늘린 기분이네. 하아아~”
솔직한 심경을 말하며 유성원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가뜩이나 이것저것 고려할 게 많고 일이 많은데, 또 일감이 늘어난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엔 지구상의 멸망급 성좌 모두와 올림푸스 길드와 유성원 세력까지 전부 참여하는 지구의 명운을 건 역사상 최대의 판이 벌어지게 돼 버린 것이었다.
“…실화인가? 진짜 이거 자칫하면 지구 멸망 각 나오는 거 아니야?”
“이미 판은 벌어졌습니다, 폐하.”
“스읍… 하아~”
유성원은 도저히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잘나신 기사들의 대장 및 사람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어찌어찌 해 왔지만, 이 도박판은 그동안 해 온 그 어떤 일보다도 압박감과 부담감으로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단순히 ‘사명’만을 생각해서 해야지 하는 레벨을 넘어서, 지금 이 판 하나에 지구의 운명이 걸린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거… 후세에 분명 역사로 남겠지?”
“이만한 임팩트를 가진 일이면 남고도 남지요.”
“아오…….”
지구의 운명이 걸린 일이라는 상상만 해도 위장이 극심하게 아파 왔다.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물론 상황적으로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올림푸스 길드의 비상을 막을 방도가 전혀 없고 적절하게 성좌 복수의 티탄이 제안을 걸어온 것부터 시작된 일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데까진 아무 문제없는데, 갑자기 지구의 운명을 건 결전 승부처럼 되어 버렸다.
“으아아악, 하나만 상대해도 힘든데… 이거 다 얽혀 있어. 무슨 세계 대전 스케일이야?”
“폐하, 진정을 하시옵소서. 일단 복수의 티탄은 확실한 아군이니… 괜찮고. 문제는 올림푸스 길드, 성좌 영원한 분노,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미국 정부 정도뿐입니다.”
“하나밖에 안 빠졌잖아…….”
“그래도 확실히 손잡은 이가 하나 있는 것만 해도 큰 위안이죠. 다른 쪽들은 절대 양립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유청은 이 무서운 사태에 흔들리는 유성원의 멘탈을 잡아 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야말로 세계 대전급 사태. 물론 성좌 종말자의 사태도 어떻게 보면 큰 전쟁이었지만, 그나마 국가 한 개 단위에서 움직인 사건이었기에 간신히 견딜 수 있는 반면 이번엔 명백히 허용치 오버였다.
“…내가 이 지구의 멸망의 기로에 서 있다니, 이게… 이게……. 일이나 하자.”
결국 안 좋은 생각을 해 봐야 거기에 묻힐 거라는 것이기에 다급히 정신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유성원은 억지로 일을 손에 잡았다.
좋든 싫든 자신이 시작했고, 이미 저질러 버린 이상 할 일은 단 하나. 끝까지 이 악물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
지금까지 반년, 제아무리 올림푸스 길드가 눈치 없다곤 해도 지금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일련의 움직임과 흐름, 그리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문들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무언가 움직이는 조짐들이 느껴지고 있었다.
아프리카를 제패하고, 개발을 계속 진행하고 있는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소속 회사와 정부들은 갑자기 치열하게 치고받던 유럽 전선의 힘을 빼고 중국 및 아시아 기업에 갑자기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다든가?
아시아의 제왕이 된 유성원 세력은 이제 주변에 있던 대부분의 대형급 성좌와 그 던전들을 모두 없애서 안전한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군 장비 개발 및 기사들과 소속 헌터들의 무장이 첨단화되어 간다든가?
본래 미국 정부에서 세계 각국의 정보를 철저히 가져다주곤 했는데, 요새 자신들이 알아낸 정보와 차이를 보인다든가?
늘 던전 타르타로스에서 기어 나오려는 성좌 복수의 티탄 군대가 벌써 몇 달째 조용하다든가?
이런 기묘한 조짐들이 이어지자 올림푸스 길드는 또다시 긴급히 회의를 하기 위해 모일 수밖에 없었다.
각국의 주요 전선에 나가 있는 성좌들의 주요 사도들, 각 전설이나 신화의 영웅들의 ‘가호’를 받은 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이곳 올림푸스 길드의 본거지에 모여서 대책 논의와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이상할 게 있나? 아프리카 쪽의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아래 놈들은 이런저런 연기를 해도 결국 돈을 좋아하니 지금 떠오르는 해인 유성원 측에 투자하는 건 당연한 거지. 그리고 유성원 헌터는 이 별의 수호 기사이니 계속해서 기술 개발하는 거고, 미국 정부야 이번에 뭐 좀 달라고 강짜 부리는 걸 테고, 복수의 티탄이야… 힘 한번 모았다가 크게 몰아치려는 거겠지.”
“그렇게 가볍게 볼 사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헤라클리온. 그런 조짐들이 하나라면 모를까, 여럿이 한 번에 오는 건 명백히 이상합니다.”
“이상한가? 그러면 뭐라도 할 거야? 아니잖아. 우린 이 ‘별’의 질서와 정의를 수호하는 입장이라고~ 멋진 영웅, 수호자를 연기하는데… 갑자기 이제 와서 우리 조직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움직인다! 얍얍! 하라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지만…….”
모든 것엔 장단점이 있기 마련. 올림푸스 길드는 현재 세계 최고라는 명성과 함께 실질적으로도 세계의 평화를 지키고 있는 자들이지만 너무 깨끗함만을 광고하고 있고, 미국 정부와 함께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UN에서 발언력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 역으로 안 좋게 작용하고 있었다.
세계를 위협하거나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대의명분이 없는 한 그들은 먼저 개입을 하거나 공격에 나설 수 없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미국에 자리를 잡고 그 영향력을 이용해서 빠르게 세계 최고의 길드로 올라섰고, 많은 사람들의 선망을 받아 헌터 지망생들을 모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소릴 할 거면 케이란 님이라도 도와주라고. 아무리 케이론의 가호를 받았다곤 하지만 그 많은 인원들을 교육하고 선별하는 건 힘들다고. 애초에 C급 이하 등급들은 굳이 안 맡아도 되잖아.”
“그건 케이란 님께서 C급 이하라고 한들 사람은 교육으로 그 재능을 꽃피울 가능성이 있다고 하셔서 저희가 말씀드려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튼 지금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늘어나는 헌터 숫자와 가호의 적성자들~ 몇 년만 있으면 이제 이 ‘별’을 그분들의 손아귀에 드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된 거잖아. 가만히 있으면 승리한다? 최고의 승리네.”
“근데… 놈들이 과연 가만히 있을지…….”
“그럼 뭘 해야 하는 건데? 대책도 없이 우릴 부른 거야? 한창 바쁜데?”
비단 헤라클리온뿐만 아니라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각 영웅의 가호를 받은 현장팀과 올림푸스 길드에서 운영하는 운영팀 간에 갑론을박이 계속 이어졌다.
바깥의 조짐이 나쁘다는 걸 알아도 현실적으로 대응할 방법이나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러니까 내가 전에 말한 대로 드림팀 구성해서 하나씩 뽀개자니까. 아킬레온, 오라이온, 헥토리아, 지금 당장 가서 그 ‘별의 수호 기사’ 머리통을 가져오자. 뭘 진짜 번거롭게……! 답답해서, 원.”
“아아! 가시면 안 됩니다, 헤라클리온 님! 가시면 안 된다고요. 큰일 납니다.”
“그러면 뭔가 대책을 내놓으라고!”
몇몇은 갑갑했는지 아예 직접 해결하러 나서자고 난리였고, 그렇게 되자 회의장은 어느새 시장판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다들 뛰어난 지성과 무력을 가진 존재들이라서 동요하기 시작하면서 그 혼란이 급속히 커지려는 순간, 누군가가 확성기에다 대고 큰 소리로 떠들어 대었다.
일어선 것은 짧은 금발에 녹안을 가진 호쾌해 보이는 인상의 청년으로, 이 혼란이 짜증난 건지 이맛살은 한껏 찌푸린 채였다.
“자! 승리가 확정인 상황에서 무슨 걱정거리가 그렇게 많아서 떠들어 댑니까? 별일 아닌데! 정신들 차리고 각자 한 명씩 생각을 떠들어 봅시다. 그러면 먼저 제 이야기 좀 들어 보시죠.”
“오오… 이아소네스.”
“제 생각은 일단 이럴 때는 상대방 입장이 되어서 고려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백날 걱정하면서 하니 마니 싸움만 날 테니, 시선을 바꿔 보는 거죠.”
성좌 헤라의 사도 중 하나이자 이아손의 가호를 받은 이아소네스의 말은 합리적이었다.
다들 일단 진정하고 자리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시선을 집중했다.
“보자… 하나, 성좌 복수의 티탄 이 양반들이야, 타르타로스를 나오려고 애쓰는데 헤라클리온의 말처럼 잠시 힘을 모으는 타이밍일지도 모릅니다. 미국 정부? 갑자기 우리에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는데, 이게 그냥 요구 때문에 그런 거라면 굳이 이런 식으로 우리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게 이상하죠. 뒷배가 있다는 겁니다. 그 뒷배는? 성좌 마천루의 습격자? 에이! 그 백인 혐오주의자들이 미국 정부와 손을? 무리죠. 그럼 누구겠습니까? 지금 세계에 남은 우리의 숙적! 유성원 헌터뿐이죠.”
“그럼 둘이 손을 잡았다는 겁니까?”
“가능성은 있습니다. 뭐, 중요한 건 그 사실이 아니죠. 그렇게 손을 잡은 놈들이 이 판국을 흔들려면 뭘 해야 하느냐? 에 주목해야 합니다. 네, 이건 누가 봐도 딱 견적 나오죠. 성좌 영원한 분노의 포식을 막고 있는 포세이돈의 대결계! 이거 부수면 난리 나죠.”
사람이 모이면 지혜가 모이는 것과 마찬가지. 하나하나가 영웅의 가호를 받은 자들인 만큼 몇몇은 혼란에 휩쓸려 가도 누구 하나는 정신줄 박고 있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이아소네스는 완벽하게 유성원 헌터의 계략을 눈치채긴 했지만, 과연 이 의견에 여기 모여 있는 모든 헌터들이 동의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