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성좌 영원한 분노를 그럼 풀어 준다는 겁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죠.”
“제정신입니까? 제아무리 유성원 헌터라고 해도 그런 감당 못할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다른 변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못 믿겠군요. ‘별의 수호 기사’는 엄연히 포세이돈의 신전까지 갔던 자입니다. 거기 가면서 당연히 성좌 영원한 분노의 실체를 보았죠. 그런 사람이 과연 그런 멍청한 짓을 할까요? 설사 한다고 해도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이 아닌 이상 무리일 텐데요?”
성좌 영원한 분노에 대한 인식을 생각하면 그걸 풀어 주는 건 미친 짓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올림푸스 길드원들이었다.
‘별을 먹는 별’. 진체(眞體)로 강림한 ‘성좌’를 상대하는 건 ‘신’을 상대로 직접 싸우는 거나 다름없는 일. 올림푸스 길드도 지구를 완전히 정복한 다음 철저하게 준비해서 공략할 계획을 세우고자 미루고 있는데 그걸 지금 풀어 준다?
“그럼 가정해 볼까요? 당장 오늘 성좌 영원한 분노를 막는 포세이돈 님의 결계가 뚫리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행보가 아니라 적들의 행보를 생각해 봅시다. 얌전했던 성좌 복수의 티탄은 기회 잡았다는 듯 다시 타르타로스에서 기어 나올 것이고, 이 사태에 적극적이어야 할 유성원 헌터는 역으로 기회라는 듯 우리가 X줄 빠지게 성좌 영원한 분노를 상대하는 걸 멀뚱히 지켜보겠죠.”
“하지만… 그럼 그다음은요? 결국 성좌 영원한 분노를 못 잡으면? 이 지구가 통째로 먹혀 버리게 됩니다. 그럼 모두가 우주에서 사라지는 거나 마찬가지! 우리도 승리를 보장할 수 없는 판에 그놈이 승리를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지. 그보다… 노리는 점이 그거라면 그쪽 방비를 탄탄하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웅성웅성…….
이아소네스가 정리한 회의장이 다시금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성좌 영원한 분노의 세력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올림푸스 길드로서는 도저히 유성원이 그 결계를 깰 거다고 상상하기 힘들었다.
진체의 일부가 별을 물리적으로 먹는 ‘성좌’이면서 동시에 그 몸 안에서 키우는 수많은 괴수들과 마물들, 기본이 A급이고 S급, SS급 괴수들이 즐비한 그 성좌 영원한 분노를 결계에 가두기 위해서 초기에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가?
“성좌 포세이돈 님의 사도에게 여쭤보죠. 그놈을 성좌 포세이돈 님과 대면을 시키고, 결계를 보여 주었다고 했는데… 과연 그가 풀어 줄 생각을 할까요?”
“으음… 저희로서는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애초에 결계를 비롯한 주변 해역은 철저히 저희 성좌 포세이돈 님의 사도들과 해양 기지와 각 섬에 자리 잡은 기지들로 방어하고 있습니다. 유성원은 물론 수상한 배나 기동 함대 같은 것이 오더라도 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음… 하지만…….”
“예. 공중에서의 침투 또한 당연히 고려하고 있고, 보안을 늘리면서 대비하면 됩니다. 어차피 놈들에게 그럴 목적이 있더라도 단 ‘한 번’만 막으면 됩니다. 그 시도를 막으면 그다음은 이제 우리가 놈을 지구상의 ‘적’으로 규정해서 규탄할 수 있고, 헤라클리온의 말마따나 드림팀이든 어벤XX든 보내서 쓰러뜨리면 됩니다.”
설사 시도하더라도 바다, 하늘에 모든 대비를 해서 결계를 노리는 것을 막기만 하면 된다.
단 한 번 시도하는 걸 막으면 성좌 영원한 분노를 풀어 주려는 악당으로 매도해서 단숨에 흐름을 바꾸어 몰아칠 수 있다는 의견까지 나오자 그제야 우려가 멈추었다.
“하긴 대비만 철저히 해 두면 문제없지.”
“한국 쪽에 놈들의 움직임을 캘 팀을 더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유성원 헌터의 행보를 시시각각으로 알아볼 팀들도 추가하죠.”
“아니, 그냥 지금 한국 지부 담당에게 시키면 되지 않… 아… 뤼카이온이었지. 하아~”
그리고 자연스럽게 유성원 헌터를 묶고자 각종 대책들을 추가했고, 우려되는 회의는 일단 이 대책을 추가하고 다듬으면서 그다음 특별한 결정에 이르게 되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뤼카이온도 부르도록 하죠. 우리가 움직이면서 민감해질 텐데, 거기에 둘 이유가 없으니까요. 혹시라도 사고를 터뜨리거나 하면 계획에 지장이 생깁니다.”
“그러죠. 괜히 거기 있다가 사고 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그런 고증까진 지키실 거 없는데 말이죠.”
명성 높은 성좌 제우스의 ‘그’ 문제와 뤼카이온이 맡은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올림푸스 길드였다.
지금까진 유성원이 바깥으로 많이 돌다 보니 한국에 놔둬도 안전했지만, 근 몇 달간 얌전히 박히게 되었고, 그에 대해 경계도를 올리다가 괜히 충돌이 날 수 있으니 빼자고 하는 건 합당한 처사였다.
“괜히 먼저 명분을 주거나 사고 치면 안 되니 한시라도 한국에서 떠나라고 전하죠. 그리고 뤼카이온의 후임으로는 누가 좋을까요?”
“내가 가도록 하지.”
“헤라클리온?”
“긴급히 빼는 거라면 결국 남은 기간 동안 같은 성좌 제우스의 사도인 내가 그 자리를 메워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고, 또 내가 가 줘야 그놈들이 날 경계해서 시선이 집중되니 다른 일을 하기 편할 거야. 안 그런가?”
올림푸스 길드 최강이라 할 수 있는 각성자 중 한 명, 헤라클레스의 가호를 받은 헤라클리온이 자청하여 앞으로 나왔다.
그는 합당한 논리와 전략적 이론을 내세우면서 자신이 가는 게 적합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다들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의견 자체는 반대할 명분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데 저 다혈질인 헤라클리온이 바로 문제. 그가 가서 얌전히 있을 거라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안해하는 것이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 절대 먼저 손대선 안 되는 거 알고 계시죠?”
“암, 당연하지. 그냥 가서 주춧돌처럼 듬직하게 앉아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걱정들 말어. 게다가 타르타로스가 조용한 동안 나도 남은 휴가 좀 써야지 않나?”
“예, 그러시지요.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걸로 합시다.”
딱히 반대할 명분도 없고, 그의 말대로 타르타로스가 조용한 지금이야말로 헤라클리온이 쉴 타이밍이기도 했기에 그의 관리를 위해서 한국 지부장을 이어받는 것을 허락한다.
그렇게 방침을 정한 올림푸스 길드의 헌터들은 각자 전선 보고와 인원 관리, 육성, 신입 배치 등등 일상적으로 하는 회의 내용으로 넘어가 진행해 나갔다.
***
몇 주 뒤…….
아이언 포트리스.
“거절한다.”
오늘도 여전히 업무를 보는 중인 유성원 헌터는 눈앞에서 허리 숙여 빌고 있는 장년의 남성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듯 냉정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시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장년 남성은 국정원에서 온 요원으로, 자세한 건 모르지만 나름 직급이 높은 사람임에 분명했다.
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유성원에게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했다.
“제발… SNS 좀 그만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무슨 사건만 나면 마치 개입하실 것처럼 SNS에 댓글을 다시면 저희도 저희지만 정부에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예전에 주말, 휴일 쉴 거 다 쉬면서 범죄자가 자료 폐기할 시간 주면서 일하던 때보단 낫지 않나? 난 보기 좋던데 말이지.”
“제발…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원하시는 건 알겠지만, 인간 사회라는 게 그렇게 급격히 바뀔 수가 없습니다. 법안 하나를 만드는 데도 시간과 고려가 엄청 필요한데… 실정을 못 따라잡는다고 그렇게 과격하게 하시면…….”
“힘없는 사람들 속만 끓겠지. 그보단 너희 속이 끓는 게 나도 좋고, 사람들에게도 보기 좋을 거 아니야. 아무튼 나 바쁘니까 얼른 썩 나가. 아니면… 여기 있지 말고 나갈 일을 만들어 줄까?”
북한 지역과 중국, 인도를 아우르는 지배자인 유성원이 전화 한 통만 하면 정말로 국정원이든 대한민국 정부 요인들이든 달려와서 엎드려서 빌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을 아는 건지 국정원에서 온 요원은 안색이 파래지면서 진짜로 양손으로 싹싹 빌기 시작했다.
“그, 그건 안 됩니다.”
“그럼 더 이상 내 건전한 취미 생활(?)에 압박 넣지 말고 썩 나가. 가뜩이나 스트레스 받는데, 이런 사이다라도 마셔야지. 내가 뭐 24시간 내내 압박 넣고 사고 치나? 꺼져.”
“예, 예. 알겠습니다.”
결국 유성원이 험한 말까지 내뱉자 그제야 물러나는 국정원 직원이었다.
이런 사소한 일에 시간을 빼앗긴 유성원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차를 타고 가는 그를 창밖으로 흘겨본 뒤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별 시답지 않은 일로 시간 뺏고 있어. 참 나~ 지금 지구의 운명이 갈릴 판이 눈앞에 있는데… 젠장! 내 사소한 취미 가지고 난리야. 정작 경제나 땅, 주식으로 장난치는 건 자기들이면서~”
“지금 시대가 정말 좋긴 하군요. 왕좌에 앉은 군주는 본래 민초의 삶까지 완벽히 바라보기 힘든 법인데… 이 작은 기계 하나만 있으면 민초에게 일어나는 일을 모두 살필 수 있으니, 참~ 물론 결국 쓰는 사람 나름이지만요.”
“그래, 이 좋은 거 있어도 아무것도 안 하는 인간들 천지였지. 아무튼 저 양반 땜에 열 받으니까 취미 생활 더 열심히 해야겠다. 어디 보자… 부동산 투기 건이랑 뉴스랑~ 또또 늘 일어나는 대기업의 횡포랑~ 아주 심심하진 않네.”
SNS에 로그인해서 또 부조리한 사건이나 일이 일어난 곳마다 등장해서 ‘좋아요.’와 댓글을 가볍게 남겨 주는 유성원이었다.
그러곤 다시 서류를 열람하면서 성좌 복수의 티탄과 약속한 날이 다가올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체크하고, 기술 개발 현장에도 나가고 무기 시연, 방어구 시연, 던전으로 간 멤버들의 마정석 및 자재 비축까지 눈코 뜰 새가 없었다.
“휴우~ 결국 누님도 성좌님이랑 계약했고… 이제 남은 건 아영이뿐이네. 뭐, 아영이를 여기 남기면 되니까 굳이 안 해도 되긴 하는데… 으으음…….”
“확실히 한 명은 여기에 남아 있는 게 좋겠죠.”
“그렇지. 후우우~ 그나저나 올림푸스 길드 움직임이 묘하다는 보고가 들어왔는데, 이거 어떻게 된 걸까?”
미국 정부의 협조 덕에 유성원 측은 빠르게 올림푸스 길드의 움직임을 보고받을 수 있었으며 이에 대응할 준비를 곧장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주요 각성자와 헌터들이 모여서 큰 규모로 회의를 했고, 자신에 대한 대응 방안이 그 주제 중 하나였다는 내용이었다.
“그쪽도 바보는 아니니, 폐하의 움직임이 이상하긴 하다고 생각할 만합니다. 주변에 위협이 되는 성좌들과 멸망급까지 처리했는데, 계속해서 기술 개발이랑 군대를 강화하고 있으니 말이죠. 게다가…….”
“그 별의 수호 기사인 거 말이지? 하아~ 이게 정말… 입장이 밝혀지는 거랑 안 밝혀지는 게 차이가 크긴 하구나. 완전 견제 대상이네.”
“그렇죠. 만약 그게 드러나지 않으셨으면 그냥 권력자로서 중국, 인도, 한국을 완벽하게 통제에 두기 위한 군축으로만 생각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그쪽 보고에 따르면 조만간 올림푸스 길드 한국 지부 담당이 바뀔 거라고 하네. 거기에 내 쪽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말이지. 인선은… 여러 후보가 있는데 고려 중이라고만 나와 있고…….”
미국 정부도 완벽하게 유성원의 편은 아닌 건지 아니면 올림푸스 길드에게 책잡히지 않기 위함인 건지 정보를 주되 살짝 제약해서 주고 있었다.
현장에서 확정이 난 올림푸스 길드 후임에 대해서 비밀로 하는 부분도 그랬고, 이미 그들의 계획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성좌 포세이돈의 사도들이 대비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춘 것이었다.
“…누가 오든 빡센 양반이 오겠지? 힘이든… 지혜든?”
“애초에 ‘뤼카이온’ 그자가 이상한 거지만 말이죠.”
“그건 아마 내가 바쁘게 외국을 뛰어다니면서 치고받을 때라, 역으로 한국이 조용한 곳이어서 놀기 좋은 거였겠지. 망할, 딕 오브 제우스. 요새 그놈 정보도 받는데, 얌전해서 이상할 정도였어. 처음 만났을 땐 분위기 쉣이었고, 아영이랑 대면했다는 소리 듣고 잔뜩 경계했는데 말이지.”
“아, 가울프 경의 보고 말이군요.”
끄덕.
신아영의 호위로 붙은 가울프가 얼마 전 유피테르 가드와 그 뤼카이온이라는 자와 대면했다는 보고를 올려 왔던 것으로, 그에 대해 들은 유성원은 곧바로 기사들을 증원해서 그자의 주변을 철저히 감독하고 감시했지만 우려할 만한 움직임은 없었다.
“오히려… 좋은 일만 해서 놀랐다니까? 막 고아원이나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자선 행사도 하고, 봉사 활동도 하고, 심지어 썩어도 올림푸스 길드라고, 유피테르 가드랑 헌터들과 함께 스캐빈저도 잡고. 경계하던 게 정말 우습게 생각될 정도였지.”
“망나니도 자리를 보고 날뛰어야 하는 법이지요.”
“역으로 인원 투자해서 손해를 본 느낌이었어. 아무튼 한국 지부 새 담당이 누가 될지 모르지만, 그자보다는 확실히 나을 거야. 어?”
[계약자여, 큰일이다. 지금 당장! 빨리 내가 있는 곳으로!]
한참 대화하던 도중 기사단의 성소 포탈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다급한 가울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성원은 깜짝 놀랐지만 이미 몸은 움직여 금빛 신수의 갑옷으로 무장하고, 티탄의 말뚝을 든 채 성소를 넘어 가울프가 보이는 포탈로 넘어갔다.
그러자 거기엔 경악할 만한 광경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