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성좌 종말자와 성좌 진황의 격돌, 인간과 계약을 하거나 거래하지 않은 성좌 간의 격돌. 생명을 번영케 하려는 성좌와 생명을 빼앗으려는 성좌 간의 직접 대결은 인도 중부에서 양 세력이 만나 벌어지게 되었다.
[크르르르릉!]
[강력한 생명력. 좋은 사냥감. 전력 보충을 요구함.]
[네놈들 마음대로 세계를 불모지로 만들게 둘 수 없다! 크르르르릉!]
흙과 돌로 이루어진 골렘 군단과 푸른 나뭇잎을 두른 나무 거인이 정면에서 격돌했고, 그 아래에선 마찬가지로 흙과 물로 이루어진 정령이나 짐승들이 골렘을 파괴하는 걸 돕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물량은 성좌 종말자 쪽이 더 많았지만, 너무 경직된 골렘 한 종류의 병종만 있는 탓인지 다양한 생물이 협력하는 성좌 진황에게 전면전으로는 밀리고 있었다.
[크르르릉! 소용없다!]
[대상은 영체(靈體) 생명체. 무기를 교체한다.]
[젠장! 뭐가 이렇게 단단해? 크르릉!]
말하는 호랑이와 겨루는 종말기장은 무기를 교체하면서 계속 사격과 기동전을 펼치고 있었고, 거대한 호랑이는 종말기장의 팔을 물어뜯었지만 예상 이상으로 단단한 건지 뱉어 내고 앞발로 후려치고 있었다.
하나 결국 성좌 진황의 군세는 살아 있는 생명체. 싸우다 보면 지치고, 육체의 부담은 계속해서 가중되었다.
과연 그들은 이 무한에 가까운 군세를 밀어붙이고 인도에서 몰아낼 수 있을 것인가?
아무도 결말을 모르는 싸움 속에서 성좌 진황의 군대는 생명을 불태우며 계속 싸워 나갔다.
***
그렇게 약속한 2주가 지났다.
성좌 진황의 군세가 진격했음에도 결국 인도의 절반 이상이 성좌 종말자의 것이 되고 말았다.
신들이 버린 땅은 이제 ‘별’의 생명을 빼앗는 기기들로 가득 찼으며 도망치는 게 늦은 사람들은 성좌 종말자의 골렘들에 의해 생명력을 빼앗겨 마정석으로 변해 버렸다.
남은 것은 수천만에 달하는 난민들뿐. 하나 지금 이것도 극히 일부로, 아직 도망쳐 오지 못한 사람들을 포함하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파키스탄-인도 국경.
“와아~ 이거 생각보다 심각하네. 저게 다 난민들인가?”
“식량, 식수 공급이 지금은 되고 있지만 솔직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으음… 그렇겠지.”
약속된 시간이 지났고, 코어 던전 공략을 위해 인도로 향하던 유성원은 이곳의 현실을 보고자 국경에 잠시 들른 것이었다.
현장을 관리하는 것은 중국에서 일하던 ‘제21근위대장 리’로 식량, 식수 분배를 맡은 자였다.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에게 식량과 식수를 공급하고 있지만 그건 중국 본토를 먹고 있는 성좌 용봉왕의 국가 덕분에 가능한 일. 본래 유성원의 세력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하나 좋은 소식은 성좌 진황의 군대와 싸우느라 인도 북부가 완전히 점령당하는 건 막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겠지?”
“예. 드론과 위성으로 촬영해 보니 역시 멸망급과 그 아래의 체급은 차원이 다르더군요.”
두 세력의 교전은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큰 관심사였지만, 멸망급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닌 만큼 성좌 종말자의 세력이 압도적으로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그래도 둘 다 체급이 큰 만큼 아직 완전한 패배는 이루지 않아서 인도 중부에서 힘 겨루는 전투만 반복했지만, 성좌 진황 측은 온갖 사도들이 힘을 쓰는 반면 성좌 종말자 측은 종말기장을 대규모로 투입하지 않고 1~2기만이 전장에 남아서 싸우는 정도였다.
“쭉쭉 밀지 못하는 시점에서 이미 성좌 진황 쪽은 망한 것 같은데? 후퇴 안 하나?”
“후퇴하면 아마 인도 전역에 호주 같은 미래밖에 남지 않겠죠.”
“…그렇지. 아무튼 빨리 해결 보는 게 좋다는 이야기네. 알았어. 가 볼게.”
“그럼 수고하십시오, 폐하.”
“너네는 그거 하지 말라니까…….”
말 한번 지지리 안 듣는 근위대장을 뒤로하고, 유성원은 자신의 전용기로 향했다.
기사단의 성소라는 좋은 포탈 덕분에 혼자서 타고 있는 그는 일단 남은 자료를 보며 종말기장들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전투 기록 및 정보를 확인한 결과, SS급 헌터에 비견되는 마력을 가진 고출력 마정석 엔진에 각기 다른 첨단 무기를 가지고서 싸우는 전투 기계들. 그것들이 하나가 아니라 20기가 넘게 존재하는 것만 해도 긴장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모든 기사들의 장급이랑 사도들을 다 대기시켜 놓았기는 한데…….’
성좌 종말자와 성좌 진황의 싸움을 보고선 전쟁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전투도 각오하고 있는 만큼 가용할 수 있는 최대 전력으로 싸움에 대비한 유성원이었다.
천검군 전 기사들, 도살자의 사도, 대장군들, 4대 기사, 근위대장들까지 모두 대기하는 상황. 인도 북부를 넘어 남부로 가는 상공을 거쳐 호주로 가는 길. 내려다본 지상의 상황은 참혹했다.
“저건 뭘 하는 거야?”
뿌오오오!
인도코끼리가 이상한 기계에 잡혀서 괴로워하는 광경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코끼리의 몸에 꽂힌 튜브에서 무언가 뽑아져 나오는 듯했고, 그 옆의 기계에선 마정석이 하나둘 튀어나오고 있었다.
“아, 과연… 땅 아래에서만 뽑아내는 게 아니라 생명체한테서도 뽑아내는 거군. 와아아…….”
진실을 본 유성원은 전율했고, 그렇게 마정석을 뽑아내는 성좌 종말자의 군단과 이제 결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이 되었다.
그를 태운 전용기는 인도 상공을 지나서 호주에 다다랐는데, 타고 있는 비행기의 좌우로 수상한 기체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오… 종말기장인가? 손수 모시러 올 줄은 몰랐네.”
[안내 및 인계함. 따라와 주시길.]
기계를 해킹한 것인지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전용기의 방송 시스템으로 의사를 전하는 종말기장이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조종사에게 간 유성원은 그대로 따르라고 지시했고, 격전이나 전투, 충돌 없이 그대로 에어즈록까지 안전하게 도달하여 착륙했다.
그리고 그곳엔 마치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 종말기장들이 좌우로 나란히 도열한 채 대기 중이었다.
“오오~ 환영이 너무 극진한걸?”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것뿐 다른 의미는 없음.]
“어떤 사태?”
[감정 변동에 의해 주요 설비들을 무작위로 파괴할 가능성이 있었음.]
“그러니까 나를 그냥 코어 던전에 들어가게 하는 것보다 설비 파괴가 더 심각한 문제라는 거냐?”
[긍정함.]
종말기장의 대답을 들으면서 유성원은 갑주를 걸치고 티탄의 말뚝을 든 채 에어즈록 꼭대기의 거대한 기둥과 포탈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향하기 시작했다.
딱 봐도 가장 중요한 곳이고 신성하게 여기는 만큼 그곳에 코어 던전 입구가 있을 것이 확실했다.
다가가니 거대한 기둥 앞에 역시 검은 마력이 흐르는 포탈이 눈에 들어왔다.
“후우우우~ 하아아아~ 그럼 어디… 들어가 볼까? 나 들어간다?”
[들어가시길.]
“그래. 그럼 어디… 해보자고!”
기합을 넣은 유성원은 지체 없이 검은 포탈 안으로 뛰어들었다.
첫 멸망급 성좌의 던전. 그 어떤 것이 나오든 힘들고 가혹한 것이 되리라는 생각에 유성원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눈앞에 펼쳐질 광경을 대비했다.
***
“이건 참 의외네.”
성좌 종말자. 그의 군세가 지나간 길은 메마른 황무지만 남았기에 그의 던전 또한 대충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늘 성좌의 코어 던전은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곳이었다.
우선 눈에 들어온 것은 엄청 거대한 마정석들로 된 산이었다.
아니, 단순히 산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마치 산 정상에서 장대한 산맥을 바라보는 것만큼 엄청난 양의 마정석들이 쌓여 있었다.
“와, 저게… 뭐야?”
익숙한 골렘과 기계들이 분주히 포탈을 열고 들어와서 마정석을 쌓고 또 쌓아 올리는 광경과 함께 그것은 실제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정석의 산맥은 유성원의 시야를 넘어서 지평선 끝까지 쭉 뻗어 있었는데, 도저히 끝이 보이질 않았다.
“무슨 마정석을 이렇게…….”
[그것만 보고 놀라면 재미가 없지. 하늘을 봐라.]
“하늘? 허억!”
어디선가 들린 목소리대로 하늘을 본 유성원은 기겁하며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하늘엔 마치 별처럼 마정석들이 쌓여 있는 공중 섬들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대지를 메운 산은 그저 일부. 하늘에 별처럼 떠 있는 마정석으로 가득한 공중섬을 보자 유성원은 기가 막혔다.
“하, 근데 이건 대체… 왜 이렇게나 많이?”
[다 쓸데가 있지. 그럼 이야기 좀 할까? ‘별’의 수호자. 나는 뭐, 소개 안 해도 되겠지? ‘코어 던전’을 몇 개나 들락거리던 역전의 용사인데, 내 정체쯤은 알고 있을 거 아닌가?]
“…예. 성좌 종말자 님.”
어느새 옆에 나타난 ‘그것’은 빛으로 된 둥근 덩어리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기계나 골렘들의 대장이라서 딱딱한 강철의 신 같은 걸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유하고 친철한 말투로 다가온 성좌였다.
말만 들으면 이자가 ‘별’의 생명을 빨아들이고 메마르게 한 멸망급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맞아. 정확히 말하면 그 본체에서 일부 떼어진 분신 같은 거지만 귀찮은 이야기는 싫지? 나도 싫어. 시간은 금이니까 가능한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지.]
‘뭔가… 이번 분은 상당히 수다스럽네.’
멸망급이라는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말투와 친근한 척을 하는 성좌라 당혹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멸망급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고 정신을 다잡는 유성원이었다.
그렇게 ‘빛 덩어리‘는 유성원의 주변을 퐁퐁 날면서 계속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자네와 싸우고 싶지 않네.]
“예?”
곧바로 나온 소리는 엄청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멸망급 성좌가 싸우고 싶지 않아? 그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싸움을 거부하는 것만큼 아이러니한 소리도 없으며 이미 수십 년간 동남아를 괴롭혀 온 전적이 있는 양반이 그런 소리를 하니 어이가 없었다.
[아~ 뭔가 오해를 살 소리 같군. 다시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손해’가 되는 싸움은 하고 싶지 않네.]
“손해가 되는 싸움?”
[그래. 저 만들기 단순한 골렘 친구들이면 몰라도 ‘종말기병’과 ‘종말기장‘은 손도 엄청 많이 가고, 마정석 소모량도 많다네. 내 목적은 ‘마정석’인데, 싸움으로 인해서 피해가 많아지면 다시 만들거나 새로 캐내야 하는 마정석이 늘어나니까~ 당연히 싸움을 피하려는 거지.]
“아…….”
요지는 ‘전쟁’은 결국 최후의 수단일 뿐, 손해가 더 커질 ‘전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대에 와서 왜 세계가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는지, 가능하면 평화롭게 해결하려고 하는지의 이유와 비슷한 것이었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긴다.
“결국 그럼… ‘마정석’을 모으기 위해서 그러신다는 건데, 왜 모으시는 거죠?”
‘마정석’의 손해를 막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면 그럼 그것으로 무얼 하려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인간이야 전쟁보단 평화가 훨씬 낫고, 그 삶이 당연히 좋아서 그렇겠지만 이 초월적 존재인 ‘성좌’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많은 ‘마정석’을 모으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둥둥 뜬 빛 덩어리의 빛이 훨씬 강해지면서 대답이 바로 나왔다.
[하하핫! 잘 물어봤네! 무슨 이유냐면 바로! ‘우주’를 새로 만들기 위해서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