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며칠 뒤, 인도 하이데라바드 ‘찬달라 거주구’.
인도 중남부에 위치한 대도시 중 하나인 하이데라바드, 그중에서도 찬달라들이 사는 이 지역은 거주구라는 말을 쓰고는 있지만 사실상 빈민촌에 가까웠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곤 믿을 수 없는 레벨. 가축우리도 이 정도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낙후되고, 집엔 화장실도 없어서 사람들은 대부분 밖에서 더러운 공중 화장실을 이용할 정도였다.
“하아~ 힘들어.”
이곳에 사는 올해 13살의 소녀 두티는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를 분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냄새나고 더러운 쓰레기장은 어릴 때부터 그녀의 놀이터이자 일터였는데, 10년 넘게 지내다 보니 이젠 지긋지긋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찬달라로 태어난 이상 앞으로도 평생 그녀는 여기서 쓰레기를 분류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 그녀가 바랄 수 있는 건 오직 다음 생엔 크샤트리아나 브라만으로 태어나는 것뿐이었다.
“…으음?”
그렇게 한참을 냄새나는 쓰레기장을 뒤지면서 분류 작업을 하던 중 두티는 미세한 땅의 진동을 느꼈다.
평생 지진이라곤 만나 본 적 없지만 부모로부터 지진의 조짐이나 신이 노여워하시면 땅이 울린다는 걸 아는 그녀였기에 진동을 느끼자마자 무릎을 꿇고 신에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이 섬기는 신은 이 땅을 떠났고, 위대한 크샤트리아와 브라만마저도 자신들의 목숨을 먼저 챙기며 도망친 지 오래였다.
“으아아아! 다, 다들 도망쳐! 어디서 어떻게 온 건지 모르지만 그… 그… 성좌 종말자의 군세가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다네! 그러니 빨리 짐 싸서 도망치게.”
상부에서 아래로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어도 물리적으로 나타난 성좌 종말자의 군대에 대한 정보는 이제 인도인들끼리 연락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쓰레기장의 관리를 맡은 ‘바이샤 계급’의 사장이 다급히 현장으로 내려와 찬달라 계급의 사람들에게 사건을 전하면서 대피하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다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멀뚱거렸다.
“아니, 우릴 보고 어디로 도망치란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이 도시랑 쓰레기장에 묶여 살던 저희에게 그러셔도…….”
“게, 게다가 도망치다가 영역을 잘못 넘어가면 저희는… 죽습니다요.”
“아니, 이미 모두 도망쳤네. 그래서 계급의 영역 따윈 상관없어. 그러니 어서 도망치게. 지금… 지금 저기 보게나! 저 시꺼먼 거! 시꺼먼 돌덩어리들이 걸어오고 있는 거! 저게 성좌 종말자의 군세일세. 빨리 도망쳐야 하네!”
“도망…….”
혼란스러워하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두티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에게 도망이라는 말은 거의 금기시되었고, 해서는 안 되는 일로 태어난 뒤부터 쭉 들어왔었다.
그녀에게 세계는 이 찬달라 거주구뿐이었고, 이 쓰레기장이 그녀가 죽을 때까지 일할 곳이었다.
결혼도 아마 이 거주구의 누군가와 할 것이고, 죽음도 이 동네에서 맞이할 것인데 갑자기 떠나라고 하니 현실성이 없었다.
“…와아아아…….”
“아무튼 빨리 도망쳐! 도망쳐어어어! 북쪽으로! 나는 할 말 다 했으니 가겠네.”
결국 도망치라고 알리러 온 ‘바이샤 계급’의 사장은 자신의 차를 타고 먼저 도망쳐 버렸다.
남은 찬달라들은 정말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걸 짐작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성좌의 시대가 된 이후 찬달라들은 차량을 구입하고 소유하는 일조차 힘들 정도였고, 결국 걸어서 도망간다고 해 봐야 수천 킬로미터 북쪽으로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쩌지?”
“아, 그래도 일단 죽기 싫으면 도망쳐야겠지?”
“대체 크샤트리아님들은 뭘 하는 거야? 그렇게 강하면서… 젠장!”
이 구역의 찬달라들은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나둘 짐을 싸서 떠나기 시작했고, 가뜩이나 제대로 되지도 않은 도시에 엄청 많은 사람들이 차량도 많이 없이 피난길에 나서다 보니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두티 또한 부모의 손을 잡고 피난길에 올랐지만 어린 소녀인 그녀가 빠르게 도망칠 수는 없었다.
“뒤, 뒤에! 저거! 저거!”
“아니, 어떻게 벌써?”
그리고 어느샌가 그들의 먼 후방에 성좌 종말자의 군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골렘 군단. 무섭게 달려오는 검고 하얀 골렘들도 무서웠지만, 하늘 위에 떠서 날아오는 기체들의 모습도 무시무시했다.
“와아아…….”
하지만 평생을 쓰레기장에서만 살아오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그녀의 눈에는 그 하늘 위에서 날아오는 종말기(終末機)들의 모습이 이채롭고 신비한 존재로 보였다.
그렇게 생전 처음 보는 것에 대한 경외심에 취한 사이, 사람들에 휩쓸려 자신을 이끌던 부모와 떨어지게 되었다.
“두티! 두티이이! 두티이!”
“…….”
인파들 사이로 점점 부모의 목소리가 멀어졌지만, 두티의 정신은 아직도 하늘 위에 있는 그 기체들에게 집중된 지 오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기체, 푸른 하늘의 구름 같은 순백의 몸통에 황금색과 청색으로 장식되어 있는 그 기체는 두티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으아아! 도망쳐!”
“빨리 뛰어! 뛰어! 뛰어!”
무섭게 다가오는 성좌 종말자의 군세에 사람들은 멍하니 있는 어린 두티를 놔두고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홀로 남은 두티는 어느새 골렘들과 성좌 종말자의 군대와 직접적으로 맞닿을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
이미 도망치기엔 너무 늦은 상황. 어리디어린 그녀는 두려움이라곤 없는 건지 계속해서 성좌 종말자의 군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정지. 정지. 정지.]
“어라?”
[이변 발생. 도주하지 않는 민간인 등장. 상대는 현재 비무장이며 어린 개체로 보인다. 유성원 헌터와 맺은 계약 내용 검토 바람. 해당 내용을 상위 기종에 전송함.]
“와아아…….”
성좌 종말자의 군대가 유성원 헌터와 협조하면서 맺은 계약엔 도망치는 민간인은 손대지 않기로 한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두티라는 소녀처럼 도망치지 않는 민간인에 대해서 어떻게 할지는 아직 유성원 측과 협의되지 않았던 것이다.
두티는 자신의 앞에 멈춘 그 거대한 골렘들을 자세히 볼 수 있어 좋아했는데, 이내 하늘 위에서 무언가가 점점 가까워져 오기 시작했다.
“천사님…….”
하늘에 떠다니던 새하얀 기체. 날렵하게 생긴 순백의 유선형의 몸에 날개를 가지고 있고, 청색의 빛을 뿜던 그 기체가 두티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가까이 보면 볼수록 이채를 발하는 그 기체를 보며 잠자리에서 부모님이 이야기하던 신의 사자, 천사라는 존재를 떠올렸다.
[‘종말기장 Υ(Upsilon)’. 해당 보고 내용을 받음. 검토 시작. 확실히 해당 민간인은 전투 능력 없음. 소지 무장 없음. 매우 어린 유아기의 인간. 위험은 없다고 봐도 좋음.]
“천사님 목소리 이쁘다.”
[계약에 따르면 ‘도망치는 민간인’을 손대지 않겠다고 했음. 그렇다는 건 그 반대인 ‘도망치지 않는 민간인’을 손대지 말라는 계약 사항은 없음. 고로 처분하겠음.]
“처부…ㄴ…….”
슈우우웅! 팍!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종말기장 Υ(Upsilon)의 팔에서 주삿바늘이 달린 튜브가 날아와 그대로 두티의 머리에 꽂혔다.
날카로운 것이 머리에 박히는 고통과 함께 그녀는 지금 일어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두뇌를 움직이려 했지만 그럴 새도 주지 않고 튜브에서 무언가 빨아들이기 시작했고, 두티의 몸은 금방 말라 버린 나무껍질처럼 쪼그라들어 버렸다.
[역시 성장이 덜 된 개체라 생명력이 많지 않음. 마력 추출 작업을 하는 데 쓴 동력 에너지와 비교하면 확실히 적자. 하나 방치할 수 없음. 나머지 군단은 계속해서 진격을 명령함.]
‘종말기장 Υ(Upsilon)은 일을 마치자마자 무감정하게 시신을 던져 버리고, 성좌 종말자의 군세를 이끌고 다시 진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미라처럼 말라 버려 땅에 널브러진 두티의 시체는 성좌 종말자 군단이 진격하는 진동에 산산이 바스러졌다.
성좌 종말자는 꼭 대지에 기계를 박아서 생명력을 추출하는 것만 하는 게 아니었다.
이렇듯 살아 있는 생물에게서도 생명력을 추출해서 마정석을 만들 수 있는 그들은 그동안 지내온 호주와 동남아 지역 섬들의 생태계를 모두 절멸시킨 지 오래였다.
그들이 있는 한 인도는 북쪽으로 도망치는 인간들 외의 모든 생명도 멸절될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물론 도망친 자들이라고 해서 상황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 네팔, 파키스탄 국경에 먼저 도달했더라도 안전한 것도 아닐뿐더러 국경을 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국가의 구성을 이루던 브라만, 크샤트리아들은 죽거나 아니면 이미 각자 비행기나 다른 수단으로 넘어갔고, 남은 것은 그 아래 하층민들이었기에 더더욱 제대로 된 대우나 대접을 요구할 만한 지식이 있는 자가 적었다.
“이거 어떻게 하죠? 유서프 대위님?”
“어떻게 하긴……. 우린 이 자리를 지킨다. 그 옛날 유럽에서 함부로 난민을 받았다가 나라가 절단 난 거 기억 안 나냐? 상부에서도 무조건 통과시키지 말고 국경을 철저히 잠그라고 하더라.”
“그렇죠.”
인도주의를 따르자니 현실적인 한계가 너무 많았다.
일단 인도의 인구수도 인구수였고, 카스트 제도에 심취한 국민들도 문제. 게다가 과거에 이미 난민을 수용했다가 어떤 혼란을 초래했는지에 대한 자료도 남아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들은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식량과 식수를 유성원 헌터 측에서 보내 줘서 얌전하니 다행이지.”
“불길한 소리는 하지 마라. 음? 무전기가?”
[지금 당장 문 열고 길을 열게! 여긴 사미르 대령이다! 명령이다! 빨리!]
무전기로 갑작스러운 상부의 명령이 들리자 유서프 대위는 의아해하며 앞의 난민촌을 바라보았다.
지금 문을 열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이게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싶어 유서프 대위는 다시 한 번 파키스탄 군부 상급자에게 이 명령이 진짜인지를 물었다.
“지, 진심이십니까? 대령님?”
[명령이라는 말 못 들었나!? 지금 당장 문을 열라고!]
“하, 하지만 그렇게 되면 거의 수십만에 달하는 난민들이 국내로…….”
[야이! 멍청한 자식아! 뒤를 봐라! ‘성좌 진황’의 군대가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단 말이다!]
“예? 헉!”
뒤를 돌아본 순간, 유서프 대위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저 멀리서는 무전기에서 말한 대로 거대한 군세 하나가 이 국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달려오는 것은 거대한 살아 있는 나무, 진흙으로 된 짐승과 유령처럼 날아다니는 정령 등 자연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극심한 환경오염을 일삼는 무리들의 적인 성좌 진황의 군세였다.
“…아, 알겠습니다! 당장 문 열어! 어차피 저걸 보면 난민들은 들어오지 않을 거다!”
“예! 대위님!”
“…진짜 세상이 어찌 되려는 건지.”
그렇게 엄청난 진동과 흙먼지를 일으키며 국경을 돌파한 성좌 진황의 군세는 약 3시간가량이 지나서야 모두 사라져 버렸다.
저 많은 군대들이 성좌 종말자의 군세와 싸우기 위해 간다는 것을 상상하니 정말 세계가 멸망할 징조인가 싶어진 유서프 대위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국경을 다시 봉쇄하기 위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