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30화 (230/293)

[230화]

“돌아가자.”

“뭐?”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뭐, 댁이 그렇다면야 그런 거겠지. 그럼 탈출 루트로 해서 인도 뜬다?”

결국 선택을 내린 유성원은 그대로 인도를 탈출, 새로운 계약을 핑계로 먼저 떠난다는 서류를 예의상 남긴 다음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갑작스러운 계획 수정이었지만 유성원은 그래도 이게 맞는다고 생각하기에 여기서 보낸 시간들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간 그는 곧바로 수정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준비를 새로이 시작했다.

***

일주일 뒤.

인도 부마네스와르, ‘성좌’의 신전.

수많은 주요 도시를 소유하고 있는 성좌 인드라의 신전 중 하나로 현재 이곳엔 그의 크샤트리아 중 한 명인 아이라바타 도가 회의에 참여하고 있었다.

성좌 바유에게 5연패나 하는 바람에 비상사태가 됐지만, 이젠 그럴 걱정이 없었다.

조사를 시작하려던 중 갑자기 나타난 용병:나이트 레드가 그냥 계약을 멈추고 인도를 떠났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 주 동안 계속해서 수색을 해 봤지만 결국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싱겁기 짝이 없는 일이군요. 그럼 성좌 바유 님에게 빼앗긴 저희의 영토와 백성들을 다시 찾는 건 시간문제이지요. 브라만 프리사다 님.”

“나도 그렇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네. 성정이 격하신 성좌 바유 님이 갑자기 강한 크샤트리아를 고용해서 하마터면 이 땅 전역을 얻기 전까지 신성 전쟁을 멈추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저로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말이죠. 하하핫. 솜씨를 드러낼 기회가 없어졌으니까요.”

성좌 인드라와의 신성 전쟁에서 5연승이나 한 의문의 용병이 사라진 것이 확실해지니 결국 빼앗긴 것을 되찾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미 그쪽 전력은 뻔하디뻔해서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라바타 도는 간만에 나설 만한 적일지도 모르는 이가 사라졌음을 아쉬워하면서 투덜댈 정도였다.

“아무튼 곧 신성 전쟁을 다시 걸어서 우리가 잃었던 것을 되찾도록 하지. 그리고 완벽하게 성좌 바유 님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이 북동쪽의 땅들을 우리가…….”

“크, 큰일 났습니다! 브라만 프리사다 님! 크샤트리아 아이라바타 도 님!”

“무슨 일이기에 그리 허겁지겁 오는 거냐?”

“그, 그게… 성좌 종말자의 군세를 막던 동남아 전선이 뚫렸다는 소식입니다. 이미 그들은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에 상륙하기 시작했고, 지금 중국도 비상사태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아, 아니, 잘 막고 있던 자들이 어째서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은 것은 브라만뿐만이 아니라 그 용맹하고 당당하던 아이라바타 도도 마찬가지였다.

성좌 종말자. 현 지구에 존재하는 4대 멸망급 성좌 중 하나.

돌로 된 골렘과 금속으로 된 골렘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점령한 지역에 이상한 기계를 설치해서 마정석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무지만이 남아 이미 그들이 처음 강림했던 호주는 흙과 먼지만이 가득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을 인도와 중국 공산당이 지원해서 그곳 남쪽에 전선을 만들고 그곳에서 성좌 종말자의 군대를 어찌어찌 막아 내고 있었는데, 뚫릴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대체 무슨… 무슨 일이 일어난 겐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지금 전선이 뚫리고 끝없이 몰려오는 성좌 종말자의 군대 때문에 시민들은 대피하는 상황. 미얀마와 필리핀 후방에서 새로이 전선을 꾸리겠다고 합니다.”

“…이거 큰일이군.”

“더, 더불어 성좌 브라흐마 님과 성좌 비슈누, 성좌 시바 님들의 브라만님들에게서 전갈이 오는 중입니다. 시급히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이죠.”

인도와 동남아에는 아직 거리가 있었지만, 성좌 종말자의 루트에 걸리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미얀마를 비롯한 동남아 지역이 성좌 종말자에게 점령되지 않도록 전선을 짜는 데 도움을 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거기서 알아서 한다고 넘겼다가는 멸망급 성좌의 공세를 막지 못하게 되었을 때 뒤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수를 써야 하네. 그리고 자네를 비롯해서 다른 크샤트리아에게 모두 상시 전투태세를 갖추라고 전하게.”

“…아, 예… 예, 그러지요.”

아이라바타 도는 뭔가 껄끄럽다는 눈빛을 했지만 어쨌든 브라만이 시키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인벤토리를 열어 쪽지를 꺼내어 다른 곳에 흩어져 있는 모든 성좌 인드라의 크샤트리아들에게 비상사태를 전하기 시작했다.

***

성좌 종말자 동남아 전선.

한때 성좌 종말자 세력의 공세를 막아 내던 이 전선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바다와 섬에 세워진 거대한 장벽이었다.

동남아 전체는 물론 인도, 중국 공산당, 성좌 용봉왕에게서 수많은 헌터와 군인들을 지원받아 그 군세를 막아 내던 요새는 지금 폐허가 된 채, 검고 하얀 골렘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그 자리를 치우고는 무언가 기계를 설치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저 기계들은 어디에 쓰는 거지?”

그리고 그 기괴한 기계가 설치되고 있는 한가운데에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는 평범한 복장을 한 인간인 유성원이 서서 자신의 옆에 있는 거대한 강철의 골렘, 아니 로봇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 골렘은 종말기장(終末機將) ‘카파(K)’. 성좌 종말자의 사도 중 하나로 이번 작전에서 하위 골렘들을 이끌고 새로운 땅에 기묘한 공장을 지으면서 공사를 이어 나가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다.

[마정석을 생산하는 시설. 대지 속에 있는 ‘별’의 생명력을 뽑아서 쓰는 것입니다.]

“그것참… 최악이네.”

[‘별의 수호자’에겐 최악이겠지요. 하지만 현재 우리는 계약 관계입니다.]

“그래. 인도 영역을 먼저 쳐부수는 걸 몰래 협조해 주는 대신 다른 곳을 건들지 않기. 동남아 쪽은 가능한 한 인명 피해를 적게 내기. 그러면 나도 너희를 건드리지 않을 거고, 너희도 날 건드리지 않는다.”

특단의 조치를 발휘하기 위해서 유성원은 세계 어느 나라를 쳐부숴도 지장이 없는 세력을 고민했고, 그것은 바로 적으로 치부하고 있는 성좌 종말자의 세력이었다.

홀로 호주로 날아간 그는 직접 성좌 종말자의 사도들과 교섭을 이루어 냈고, 그들 또한 애초부터 유성원의 공세에 대대적으로 준비하던 터였지만 지겹게 유지하던 전선을 타파하고 진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에 승낙하여 지금 사태에 이른 것이었다.

[물론 계약은 철저히 지킵니다. 우리의 주인 종말자 님의 이름을 걸고 말이죠.]

“그래서 내가 도운 거지.”

그리하여 유성원은 전선의 방어 시스템과 일부 장벽을 파괴하는 것으로 유리하게 수성을 하고 있던 동남아 전선에 균열을 일으켰고, 유성원을 상대하기 위해서 증강시킨 전력으로 성좌 종말자의 군대는 그대로 밀어붙여서 드디어 오랜 고착화를 이루던 것을 깨뜨린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계약이 끝나는 즉시 나는 코어 던전을 노릴 거다.”

[그러면 그때 기꺼이 상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싹싹한 말투였지만 기계음으로 된 그 음성에선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일반 몬스터들이 골렘 같은 거라서 비슷한 존재라 생각했지만, 결국 금속으로 된 만큼 로봇이라는 느낌이 더 강한 종말기장이었다.

물론 유성원 측에도 그와 같은 존재가 있어서 완전히 낯설지는 않았다.

‘결국 아칼론이랑 비슷한 애들 같으니 말이지.’

[인도 점령까지 남은 시간, 약 12일하고 11시간 30분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기는……. 그냥 있으면 너희랑 싸우라고 난리 칠 거니까 계약을 지키려면 다른 곳에서 잠수 타고 있어야지. 그러니 시간 약속 꼭 지켜라. 12일 11시간 30분. 기억했다.”

[물론입니다. 당신 또한 계약을 확실하게 준수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유성원은 이 자리를 떠났고, 종말기장 카파는 그를 바라보는 동시에 눈 부분에서 계속 빛을 깜빡거리면서 전선의 골렘들에게 지휘를 내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데리러 온 비행기를 타고 떠나던 유성원은 그들의 손에 폐허가 된 전선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정말 잘한 게 맞을까?”

“폐하께선 결단을 내리셨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겠죠. 인도 10억 인구의 미래와 고착화되어 앞으로 수 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받게 할 제도를 부수겠다고 결심하고 희생을 감내하면서 이번 선택을 하신 거 아닙니까?”

“…그렇지. 멋대로 일을 저질러서 참 미안하네. 아무튼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최대한 구호물자를 많이 편성해 줘. 놈들에겐 가능한 한 민간인은 건들지 말라고 해 놨으니까… 사람들이 몰려가서 힘들 거야. 그거라도… 해 줄 수밖에 없지.”

“예. 그 말씀, 전하겠습니다.”

미래를 위해 제멋대로 현재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건 자신이 너무나 싫어하던 세상의 행태와 같았기에 마음이 무거운 유성원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분명 지금 한 번 부숴 놔야 앞으로 고통받을 사람들이 사라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멋대로 내린 이 판단에 타인이 고통받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더더욱 무거워졌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어. 이 책임을 지기 위해선… 반드시 성좌 종말자를 쓰러뜨려야 한다.’

이 일을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유성원은 식은땀이 흐르는 주먹을 꽉 쥐었다.

처음으로 스스로가 생각해서 저지른 희생의 강요. 그저 단순히 성좌를 지구에서 추방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미래까지 생각한 것이지만, 아무리 뒷수습에 도움을 준다고 해도 마음의 부담을 벗어던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

8일 뒤, 인도 뭄바이.

한번 전선을 깨부순 성좌 종말자 군세의 진격은 제1동남아 전선에 묶여 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거세고 빠른 속도를 보이고 있었다.

거대한 돌과 강철로 이루어진 골렘과 종말기장이라 불리는 수수께끼의 메카닉들의 공세,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인지 예상과 다른 빠른 진격 속도에 동남아 지역은 결국 제2전선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돌파되어 버렸다.

[제2전선 돌파!]

[미사일 포격 및 화력 투사를 하고 있지만 끝없이 몰려옵니다!]

위성사진으로 본 결과 호주에서 끝없이 이 기계와 골렘들이… 으아아악!]

[시급히 인도와 중국에 구원 요청을!]

“…생각 이상으로 사태가 심각한 것 같군요.”

그리고 현재 뭄바이에서는 성좌의 브라만이 모두 모여서 긴급회의를 개최한 상태로, 본래라면 구축되었어야 할 동남아 제2전선이 밀리자 어떻게 할지 심각하게 회의 중이었다.

“그러게 진작 모든 크샤트리아들을 보냈으면 좋았잖습니까? 제2차 전선이 밀렸으니 이제 난민들이 수도 없이 이곳에 몰려올 겁니다.”

“난민들이야, 뭐. 각성자 빼고는 찬달라, 수드라 계급이 늘어나니 오히려 좋은 일이지요. 허허허.”

“성좌 종말자 님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 멸망급 세력이 드디어 이빨을 제대로 드러낸 채로 우리 목을 뜯으러 오고 있단 말입니다. 보고에 의하면 필리핀, 중국 방향으로 가는 것보다 우리 인도 방향으로 달려오는 성좌 종말자의 군세가 월등히 많다고 합니다. 진작 좀 나섰으면…….”

분개하는 한 브라만이었지만 다른 성좌의 브라만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의 분개에 동의하지 않았다.

지원하기엔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크샤트리아가 가서 혹시라도 다치거나 죽으면 앞으로의 신성 전쟁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모두 소극적으로 초기 대응을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동남아 쪽에서 온 구원 요청에 대해선 말로만 그럴싸하게 도움을 주겠다고 하거나 아니면 각성자가 아닌 일반 군인이나 경찰로 이루어진 크샤트리아나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제2동남아 전선이 밀리면서 이제 진짜로 자신들의 크샤트리아를 전장에 보내게 생긴 그들은 난색을 표하며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크샤트리아를 아낄 수 있을지 서로 눈치만 볼 뿐, 신을 섬기니 마니 하면서 특별하다고 여기는 그들도 결국 다른 국가의 헌터 길드나 정부들과 다를 게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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