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복잡한 사정이 오갔지만, 결국 일주일의 시간을 버는 데 성공한 이 목사였다.
그리고 유성원은 역시나 기사도 문제 때문에 결투가 일어날 평양 언더시티의 진입을 좀 미루게 되고, 주변 다른 한반도 영역에 작전만 확대하여 밀고 올라갔다.
이 목사가 무슨 자신감으로 일주일을 번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어떤 흉계가 있더라도 막을 수 있게 주변 초목을 말려 놓는 것이 주요 작전이었다.
“아아악! 이놈들! 감히 수령님의 성스러운 땅에! 크아아아악! 이 무례하고 사악한 것드으으을!”
“저게 S급에 준하는 스캐빈저 중 하나인 리미주인가? 뭐… 근데 화력만 좋지, 몸이 물몸이네.”
“예. 그래서 폐하께선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A급 헌터 다수면 충분하죠.”
함흥 언더시티의 지배자인 리미주는 자신의 성지에 들어온 침략자들을 향해서 맹렬히 저항했지만, 이미 군대는 물론이고 헌터들 다수로 해서 전략과 전술을 완벽히 짜 온 유성원의 군대에게 덧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리고 다수의 스캐빈저들이 잡히거나 어설프게 저항하다가 죽는 등등… 철저히 짓밟히는 중이었다.
“그건 그렇고 박숙자… 그 여자는 아직이지? 발견되면 바로 말해. 어찌 되었든 내가 죽여 주기로 약속했으니까 말이지.”
“물론입니다, 폐하.”
“후우우~”
전황이 매우 좋았지만, 그녀에 대한 생각만 하면 입맛이 씁쓸해지는 유성원이었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거나 특별한 교우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지옥 같은 시설을 헤쳐 나온 동지였기에 손수 죽여 달라는 내용이 왠지 모르게 안쓰러웠던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살릴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평양 언더시티의 수장이면… 도살왕 수하들 중에서도 톱급이라는 이야기였지?”
“예. 톱 오브 톱이죠. 최고의 실력, 그리고 최고의 세력을 가지고 있어야 얻을 수 있는 땅입니다.”
“그렇지… 게다가 그것도 성좌 도살왕의 부하이니…….”
아마 그 자리에 오르고, 힘을 얻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갔을 것이다.
그런 만큼 악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유성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쓴맛을 지우려고 애썼다.
그리고 ‘이 목사’와의 결투 날짜를 기다리며 계속해서 원정의 지휘와 던전 클리어 보고를 받으며 업무를 지속해 나갔다.
***
결투 D-1.
옛 평양 언더시티 터, 코어 던전 입구.
붉게 타오르는 포탈 입구 앞에서 새로운 야영지를 차린 이 목사는 체구와 배가 훨씬 커진 모습으로 계속해서 꾸역꾸역 인간을 먹어 치우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이젠 아예 도망쳐 온 스캐빈저들에게 조리를 시키고서 자신은 계속 먹기만 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살과 덩치를 계속 찌우는 이 목사를 박숙자는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며 의구심을 품었다.
“저기… 정말 그거 괜찮겠어? 맞는 대책 맞아?”
[우걱우걱… 뭐가 문제인가?]
“아니, 그런 몸으로 싸울 수 있겠냐는 거지. 상대는 헌터 중에서 괴물이 된 놈인데…….”
[걱정 마라, 걱정 마. 다 생각이 있다. 그러니 얌전히… 냠냠… 이 트리토니아스 튀김을 더 가져다주도록.]
박숙자는 이 목사라는 인간이 최소한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나 지금 그의 모습에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먹는 게 힘이라곤 하지만 저렇게 그냥 몸만 비대해져서야 신뢰성이 도무지 보이질 않았다.
상대인 유성원은 옛날의 그 애송이 헌터가 아니라, 이미 수많은 사도와 성좌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흡수한 괴물이었다.
“체급 차이만 메운다고 될 일이 아닐 텐데 말이지.”
[먹는 데 방해되니, 시끄럽게 굴 거면 딴 데로 가게나.]
“네네. 마음대로 하세요.”
결국 박숙자는 물러났고, 이 목사는 계속해서 먹는 것을 반복했다.
본래 선지자란 박해받는 법이며, 신의 말을 따르는 자에게 고행은 예정된 일이다.
하나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바로 신앙의 길이라는 걸 아는 이 목사는 먹는 것을 전혀 멈추지 않은 채 트리토니아스의 고기로 만든 패티를 넣은 햄버거를 입에 욱여넣으며 말했다.
[이기진 못해도 지진 않는다. 나의 신앙은… 이미 불멸의 경지에 닿았으니 말이다.]
우걱우걱…….
혼자 중얼거리면서 코어 던전 내부를 바라보는 이 목사였다.
그 안의 광경 속에서 이 세상의 ‘진리’를 얻은 이 목사는 모든 인간은 그분을 위한 양식이며, 인간끼리 먹고 먹히는 것은 더 맛 좋은 그분의 식사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증거로… 내가… 이렇게 승천(昇天)하지 않았는가! 우적우적……! 진리를 깨닫지 못할 때와 다르게 말이야!]
인간을 먹으면서 그는 거짓 신앙에 몸 바치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했다.
믿음, 소망, 사랑, 자애를 인간의 진리라 믿으며 작은 교회를 운영하면서 더 약한 자를 돌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몸이 아무리 힘들고 고되어도 신의 진리를 생각하던 그는 고아들도 거두고, 노인들도 돌보며 어떤 때는 남들에게 험담을 듣거나 돌을 맞아도 웃으면서 신앙생활과 활동을 모두 하던 자였다.
‘…하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건 내가 그릇된 진리에 빠졌었기 때문이지.’
신앙생활과 행동 모든 것을 겸비했지만 현실은 매우 잔혹했고, 그 누구도 그의 선의를 선의로 알아주지 않았다.
도움의 결과는 늘 허무했고, 굳은 신앙의 마음으로 신의 가르침을 행했지만 세상은커녕 자신의 주변은 더 메마르고 황폐화되어 갔다.
도움을 준 아이들은 도움을 받을 땐 의지하다가도 어느새 자신을 배신하거나 스캐빈저나 범죄자들, 아니면 질 나쁜 다른 아이들의 손에 넘어가 타락하곤 했고, 어른들은 더 말할 게 없었다.
‘목사님, 정말정말 죄송한데… 제발 한 번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진짜진짜진짜! 한 번만! 한 번만! 이 은혜, 반드시 갚겠습니다.’
‘제가 언제 그랬다고요?’
‘아! 그런 사람 모른다고요. 당신, 나 압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받은 은혜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도움을 요청하면 입을 씻는 일 등등… 이 목사의 인내와 신앙심을 시험하는 일이 언제나 많았으며 교회 운영은 나날이 어려워졌다.
그 힘든 운영을 메우기 위해 이 목사는 돈을 벌어야 했고, 그로 인해 자신의 몸을 더 혹사시켜야만 했다.
‘그렇게 어리석은 신앙에 몸을 맡기고, 십자가에 못 박힌 양놈의 우상에게 끝없이 기도하던 나에게 그분은 진리를 알려 주셨다. 이 진리를!’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기도를 마친 뒤 싸늘한 자신의 방에 누워 추위를 견디고 있을 때, 그에게 진짜 ‘신’의 계시가 내려왔다.
언뜻 보면 지옥과도 같은 성좌 도살왕의 코어 던전 내부의 풍경이 보이면서 세계의 진실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래. 그때 열린 이 코어 던전. 나의 신, 성좌 도살왕의 세계. 인간이 그토록 잔인하게 서로를 잡아먹고 크려는 이유! 그것은 모두 신의 배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탐욕스럽고 잔인하게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낱 미물인 짐승조차 하지 않을 교만, 배신, 질투, 분노… 등등의 온갖 악업들. 진정으로 인간의 내면에 선(善)의 씨앗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니! 있어도 그건 또 다른 도구일 뿐이었다.
그래, 닭이나 돼지, 소를 정성 들여서 키우긴 하지만 결국엔 먹지 않는가? 결국 가지는 건 그런 레벨의 애정일 뿐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먹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살찌고 커져서 신에게 먹히기 위해서 자신들은 태어난 것이다.
그 진리를 깨달은 순간부터 ‘이 목사’는 지금의 ‘이 목사’가 되어 성좌 도살왕에게 이 세상의 인간들을 맛있고 즐겁게 먹이는 것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인간 농장부터 시작해서 인간 공장까지 이어졌고, 여전한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그는 더 많은 힘을 키우려 계속해서 식사를 해 나갔다.
***
다음 날. 평양 언더시티 폐허, 코어 던전 입구.
결투 당일. 하늘에 유성원을 태운 수송선과 그가 탄 황금 용이 나타나는 걸 알자, 자기 몸 보전 하나는 기가 막힌 스캐빈저들은 모조리 도망치고 없었다.
S급 헌터에 비견할 수 있는 스캐빈저인 곽원호조차도 이번 결투를 보려다가는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물러난 상황.
그 누구도 이 목사의 승리는 생각도 하지 않는지, 코어 던전 입구에 있는 것은 이 목사와 박숙자 둘뿐이었다.
“오? 오늘은 그 한우 모습이 아니네? 게다가 도망 안 치고 잘 있었고 말이지.”
오늘은 기묘하게도 인간의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는 이 목사를 본 유성원은 천천히 내려오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 유성원에게 이 목사는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답변했다.
“허허허, 신께 맹세한 몸인데 어찌 도망치겠는가?”
“그래? 옆에는 결투의 증인이야? 나도 한 명 데려와야 하나?”
“허허. 아니, 관람자일세. 증인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여기, 그리고 저기 안에서 다 보고 계시는데 말이야.”
“그러면 됐고… 읏챠. 엘드라엔, 수고했어. 그러면…….”
쿵!
유성원은 티탄의 말뚝을 꺼내서 이 목사에게 겨누었다.
패황 기사 유천의 검은 성좌 상대로 쓰는 비장의 무기인 만큼 여기서 함부로 꺼낼 생각이 없었기에 잘 알려진 자신의 무구를 쓰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 목사를 바라보면서 반응을 기다리는데,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웃으면서 시계를 보고 있었다.
“결투… 절차를 모르나? 무장부터 하고, 이름을 대고, 싸운다. 이 간단한 건데?”
“허허, 아니, 잠시만. 시간이… 한 3분만 기다려 주게.”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수작이라니. 나는… 신앙인으로서 해야 할 절차가 있어서 말이야. 아무튼 3분… 아, 이제 나오는구먼.”
끼익끼이이익~
폐허가 된 땅을 구르는 바퀴의 쇳소리가 들려오며 코어 던전에서 거대한 테이블이 나왔다. 거기엔 거대한 접시가 얹어져 있고, 그 위에 쇠로 된 거대한 덮개가 덮여 있었다.
마치 호텔에서 메인 요리를 가져오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 길이가 3미터가 넘고 높이는 2미터가량 되어서 유성원은 뭔가 싶어서 의아해했다.
그리고 안에 있는 것은 음식인 건지 왠지 맛있는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지만, 유성원은 이 목사가 가져올 만한 ‘요리’가 뭔지 대강 눈치채고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우리 같이 밥 먹을 사이는 아니지 않나?”
“허허허, 당연한 걸 왜 묻나? 이건 자네를 위한 요리가 아닐세. 자네가 그 기사도 놀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종교인인 나에겐 예배가 가장 중요한 것이니 말일세.”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유성원은 불쾌하긴 했지만 성좌 도살왕 세력이니 더 이상 따지는 걸 포기했다.
종교인이 성좌에게 예배를 드린다니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무튼 한시라도 빨리 예배가 끝나고 결투를 시작하는 순간 순살 낼 생각으로 티탄의 말뚝을 쥔 채 기다릴 뿐이었다.
“성좌 도살왕 님이시여, 지금 당신의 종이 마지막이 될 예배를 ‘대신’ 드리옵니다.”
‘대신?’
“당신이 알려 준 ‘진리’와 그 이상을 위해 만든 ‘계획’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니 안심해 주시고, 앞으로도 이 세계의 인류를 모두 당신의 곁으로 보내는 것을 지켜봐 주시옵소서. 당신의 은총과 또 ‘그’가 만든 지식과 진리, 신앙심을 계속 이어 나가겠습니다.”
‘…뭔 소리야?’
“그러니 부디 모자라지만 ‘그’가 살아생전 만든 이별의 걸작을 바치옵니다. 더 많은 봉사를 하지 못한 것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니 부디 당신의 일에 방해를 일삼는 이 ‘황금 기사’를 벌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건… 헉!’
이 목사의 기도는 이어지고, 동시에 박 숙자가 음식 덮개를 열어 버렸다.
그것을 본 유성원은 경악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예전 성좌 도살왕의 사도 중 하나인 와규와 비슷한 형상으로, 거대한 소의 형태를 띤 악마가 통째로 구워진 채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이 목사의 기도와 그가 말하던 문맥, 소문과 정보를 통해 얻었던 이 목사의 승천 소식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미친 새끼, 설마…….”
“허허허, 신에게 올리는 최후의 만찬,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 클론인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리지널을 대신하여 신께 기도를 올리는 것뿐.”
“…아니, 미친 시… 결투를 하자며! 이런 미친 걸 보여 주는 이유가 뭔데?”
“허허허, 미친 것이라니,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결투라는 것엔 엄연히 ‘대리인’을 구하는 일이 허용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이용해서 거래를 하여 ‘대리인’을 구하는 것. 그것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허허허, 벌써… 답해 주고 계시군요.”
까드득!
그 순간, 통째로 구워진 ‘오리지널:이 목사 통구이’의 꼬리 부분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먹혀 한 번에 사라졌다.
그리고 마치 지우개로 지우거나 유령이 먹는 듯 이 목사는 이빨 자국을 남긴 채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 목사의 복제가 씨익 웃으면서 ‘대리인’… 아니, ‘대리신(神)’의 존재를 언급한 것을 눈치챈 유성원은 눈앞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모이는 것을 느끼며 ‘오리지널 이 목사’의 육신이 모두 먹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