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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217화 (217/293)

[217화]

순조롭게 전선을 올라가며 스캐빈저들과 언더시티를 정리하고 있던 유성원에게 이 목사의 서찰을 가지고 온 스캐빈저가 있다는 소식이 곧바로 들려왔다.

“뭐? 이 목사?”

“예. 게다가 스스로 투항하면서 구속이든 뭐든 마음대로 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으음… 이쪽으로 들여보내.”

“네!”

다른 스캐빈저라면 개수작이니 뭐니 수상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이 목사라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인간이었기에 유성원은 곧바로 호출, 그녀를 만나기로 하였다.

가울프를 비롯한 기사들 셋에게 둘러싸이고 아다만티움 사슬로 구속되어서 오는 그녀는 몸 절반이 인간의 것이 아닌 악마의 것으로 변한 기괴한 상태.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평양 언더시티의 지배자였던 박숙자인가? 거의 준사도급이… 직접 이런 배달 일을 할 줄이야.”

“그러니 진위 여부는 의심할 필요조차 없죠? 자, 여기, 유성원 님에게 전하라는 서찰입니다.”

“으음… 이상한 짓을 해 놓은 건 아니겠지?”

“이상한 낌새가 있었으면 주변의 기사분들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박숙자의 넉살에 유성원은 고개를 끄덕이곤 그녀가 공손히 내민 박스를 받아 들었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박스를 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 목사가 또 무슨 흉계를 꾸밀지 모르기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그였는데, 곧 내용이 나타났다.

<나 ‘성좌 도살왕’의 사도 이 목사는 ‘별의 수호자’ 유성원 경에게 ‘기사도’에 입각하여 정의롭고, 정정당당한 결투를 신청하는 바이다. 일주일 뒤, 시간은 정오. ‘평양 언더시티’에 있는 ‘코어 던전’ 입구에서 서로 섬기는 신과 별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싸우도록 하자.>

“…오오? 머리 좀 쓰셨네?”

유성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역시 이 목사라는 인간의 간교하기 짝이 없는 지혜를 칭찬했다.

자신이 패시브 스킬인 기사도의 길에 얽매여 있는 것을 눈치채고는 정식 결투를 신청할 줄이야.

특히나 가장 간교한 것은 바로 결투 위치. 코어 던전 입구라고 하였으니 적어도 코어 던전을 살려 놔야 ‘결투’가 성립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기간도 허황되지 않은 일주일로 잡아 놔서… 무시하거나 거절할 건더기도 없게 해 놨네. 쳇! 막 한 달이니 반년 뒤니 같은 걸로 했다면 딱 봐도 간교한 책략이니 무시해 버렸을 텐데…….”

유성원은 그녀가 가져온 편지를 바라보며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이 전쟁 상황에서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냥 사악한 술수라고 무시해 버리고 당장 찢어 버렸을 텐데 말이다.

“솜씨가 아주 좋네. 역시 머리 좋은 인간을 상대하는 건 피곤해. 후우우~ 하지만 거절할 수가 없겠지.”

“오… 역시?”

“승낙한다고 전해. 일주일 뒤에 코어 던전 입구에서 보자. 다만 평양을 제외한 곳의 전쟁은 계속한다고 전해. 결투에 지장만 없으면 되는 거잖아?”

상대가 시간을 번 것에 대해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은 없는 유성원이었다.

평양 언더시티의 코어 던전 입구만 무사하면 그만인 만큼 그곳을 제외한 부분에 있어서는 계속해서 전쟁을 해 나갈 생각으로 그동안 다른 수를 못 쓰게 압박을 할 작정이었다.

“용건은 이걸로 끝. 그럼 얌전히 모셔다 드려라.”

“아, 그리고 개인적인 용건이 있는데…….”

“개인적인?”

“예. 같은 시설에서 자란 사람끼리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반가워서 말이죠.”

“…아아… 그 시설?”

그 시설. 유성원이 고아원 대신 지냈던 보육 시설로 사리사욕에 미친 공무원과 성좌의 시기와 그랜드마스터의 외국행으로 혼란과 재난이 겹쳐서 막장이 된 곳이었다.

살 가망성이 없는 환자나 아이들은 모두 이름만 남겨 두고 폐기 처분되든가 아니면 다른 곳에 팔려 갔으며, 아이들은 적당한 교육만 받고 내부 시설에서 강제 노역을 하며 지냈던 막장 시설로 유성원의 지금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으음… 근데 거기서 나왔다는 걸 어떻게 믿지? 어설프게 수작 부리려는 거면… 지금 여기서 끝장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게다가 당신, 북한 출신이잖아?”

“북한에 살다가 스캐빈저에게 팔려서 그 시설로 들어갔고, 몇 년 있다가 다시 그 시설에서 스캐빈저에게 팔려 갔죠. 아무리 스캐빈저라지만 그런 걸로 약을 팔 것 같아요?”

끔찍한 사실을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박숙자였지만, 유성원은 무덤덤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북한 쪽의 스캐빈저는 성좌의 시대가 되기 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아주 어린 시절, 그들에게 잡혀서 시설에 팔리고 또다시 시설에서 그녀를 북한 쪽에 팔아도 이상할 건 없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거기 원장님 취미가 그런 걸로 알면 되고. 그러면~ 보자… 거기서 굴러먹던 애새끼들이었던 우리끼리 아는 걸 말하면 되겠죠? 물어봐도 좋고요.”

“그 망할 곳에서도 우리끼리 작은 사회가 있었지. 그리고 그 사회에서… 현실의 돈을 대신하던 물건이 있었을 텐데, 뭔지 아나?”

“사탕과 과자. 특히 알사탕이 가장 가치가 높았고, 제일 가치가 낮은 게 땅콩 캐러멜이었죠. 아, 홍삼 캔디는 또 특정 그룹 리더가 좋아해서 이상하게 가치 변동이 심했고요.”

“…정답이다.”

외부인은 거의 모를 내부 사정, 그것도 어른들의 욕심과 무관심, 잔혹하게 아이들을 굴려 먹어서 이윤을 최대화했던 그 시설 안에 있던 아이들끼리의 사회에서만 통하는 지식을 공유하자 금방 서로가 같은 곳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설에서 학대받고 과중한 노동을 하는 아이들끼리도 사회가 있었는데, 맛없는 식사와 시궁창 같은 환경 속에서의 유일한 낙이 바로 미각의 즐거움이었다.

그로 인해서 아이들 간에는 사탕과 과자가 일종의 화폐처럼 거래되었는데, 각종 일을 맡아 주거나 혹은 무언가를 거래할 때 쓰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밖에서 누군가에게 들었을 수도 있을 텐데?”

“그걸 누구에게 들어요? 밖에 나간 사람도 극소수인데……. 깔깔깔.”

“그건 맞아. 시체 처리 부서에서 일해서 아주 잘 알지.”

“으엑… 그 막장 부서? 그래서 내가 얼굴을 못 봤던 것 같네. 내가 시설 남자애들이랑 거의 다 굴러먹어서 안면이 있었는데 말이지.”

쓰다 못해, 듣는 주변 사람까지 괴롭게 만드는 추억담.

태연히 나눌 이야기가 아닌 시궁창 같은 이야기라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은 다 안색이 파래지거나 기사들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당사자인 유성원과 박숙자는 웃고 있었다.

아마 시궁창에 지옥 같은 곳이었지만 그래도 엄연히 자신들의 ‘과거’였기에 그것을 공유하는 인간이 나타난 것 자체는 기쁜 일이며,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서 성장한 것만 해도 기적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손님은 맞는 것 같군. 구속 풀어. 어차피 싸울 거면 진작 싸웠을 거다.”

“하지만…….”

“너희가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 그리고 허튼짓한다면 나도 자비 없이 처리할 거니까 걱정 마.”

오랜만에 시궁창 동지를 본 것이 반가운 건지 유성원은 박숙자의 구속을 풀고 본격적으로 추억담을 나누기 위해서 자리를 마련했다.

전쟁 중이라 술은 가져오지 않고, 적당한 마실 것과 음식 정도만 두고서 하던 이야기를 계속 나누는 두 사람이었다.

“아, 시체 처리 부서는 의사 선생님들과 같이 지내는구나. 그래서 더더욱 보기 힘들었군. 나는 3층의 세탁팀이었어. 그 왜 있잖아. 얼굴이 반반한 편이어서 세탁팀으로 알아서 보내는 거.”

“아~ 하고(?)서 바로 옷이라든가 속옷을 처리할 수 있어서인가?”

“딩동댕! 사실상 빡촌도 겸하는 부서였지. 그 세탁방 옆에 교실 하나 알지?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유도 없이 폐쇄했잖아. 막 검은 천으로 안에 덧대고 거기서 다 저지르곤 했지.”

“…아, 기억난다. 의사 선생님 부르러 한 번 올라갔던 적이 있었지. 안에서 하는(?) 소리가 작게 들렸지만 관리하는 직원분이 계셔서 내부는 보질 못했어.”

이야기를 좀 나누다 보니 어느새 말도 트게 된 두 사람.

같은 시궁창에서 나왔는데, 서로의 운명이 참 기구하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한 명은 S급 헌터에 준하는 스캐빈저, 다른 한 명은 아시아 삼국을 제패한 제왕이라니. 말도 안 되는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너는 대체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나야 스캐빈저랑 헌터들한테 팔리고 엮이다가 거길 빠져나왔는데… 말이지.”

“나는 뭐, 그냥 쫓겨났지.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거든. 그리고 10년 넘게 시체 처리 및 청소를 하다 보니까… 뭐랄까? 죽음의 상징 같은 게 되어 버려서 말이지.”

“아… 맞아, 맞아. 안에서 완전 사신(死神)이나 장의사 같은 취급이었지. 물론 밖에 나가니 우스운 이야기였지만~”

살아남기도 힘든 시궁창에서 용케 살아남은 둘이 이야기꽃을 피우자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다행히 전투 보고 및 출동은 다른 기사에게 일임하고 온 상태였기에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충분했고, 어느덧 화제는 과거에서 근황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래서 어찌어찌 스캐빈저가 되었다는 거군.”

“그래. 내 몸의 반을 바쳐서 이런 모습이 되었고, 평양의 지배자가 되었지. 누구 때문에 다 망했지만~ 대체 그 시설 출신이 어떻게 이런 멀쩡한 인간이 된 건지.”

“나도 이렇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어. 그 전엔… 그냥 평범했지. 그나저나? 이젠 어떻게 할 거지? 뭐, 같은 시설 출신이라는 걸 이용해서 동정심이라도 살 생각인가?”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시설 안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남았던 관계라면 모를까? 우린 부서랑 하던 일이 달라서 만난 적도 없잖아. 출신만 같지. 그냥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 X같은 곳이… 사실이었구나, 같은 거?”

“…그렇군.”

“어차피 누가 죽든, 누가 살든 결국 강자의 양식이 될 뿐이잖아? 그걸 부인할 순 없지.”

박숙자의 말에 유성원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진리. 남들은 사회에서 구르며 천천히 깨달아야 할 진리를 그 막장 시설에서 이미 깨닫고 사회에 나온 둘이었다.

한 명은 그나마 운 좋게 자기 앞가림할 수 있는 좋은 직장을 가졌지만, 다른 한 명은 더 심각한 나락에 빠졌기에 이런 결말을 가져온 것이다.

“운이 안 좋았으면 나도 스캐빈저가 되었거나 아니면 진작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겠지.”

“그래, 그래. 운이 좋아서 참 좋겠다. 아무튼 슬슬 가 봐야겠네.”

“가려고?”

“그냥 이야기만 하러 온 거라니까……. 그럼 진짜로 뭔 짓거리를 할 거라고 생각했어?”

박숙자의 말에 유성원은 일말의 부정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어.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 무려 거기 출신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스캐빈저라면 더더더더 의심해야지.”

불쾌하게 들릴 법한 소리였지만 박숙자는 미소로 받아 주었다.

지극히 당연한 소리.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은 인간이라면, 또 성좌 도살왕의 부하라면 경계하고 의심해야 하는 게 역으로 정상이었다.

추억의 감상에 젖었어도 그걸 잊지 않는 유성원 또한 독한 놈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갈 건데… 그~ 어렵지 않은 개인적인 부탁 하나만 들어줘.”

“뭔데?”

“이 싸움판이 어떨지 모르지만, 나를 죽이는 건 네 손으로 해 줘. 패배해서 누군가의 양식이 된다면 너에게 먹히고 싶네.”

“누가 도살왕 부하 아니랄까 봐 말하는 거 하고는…….”

“아니, 성좌 도살왕 님과는 상관없지. 세상은 원래 이 모양, 이 꼴인데… 아니, 더 잔혹하지. 먹는 건 적어도 목숨을 끊어 주고 먹는다고……. 산 채로 죽지도 못하게 빨대 꽂아서 괴롭히는 것보다 훨씬 인도적이잖아. 그럼~ 이만 간다.”

그렇게 말한 박숙자는 그대로 수송선을 빠져나가 멀리 사라져 버렸다.

기사들과 헌터들이 ‘잡을까요?’라고 물었지만, 유성원은 고개를 저으면서 그녀가 떠나는 것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복잡한 심경 속에 유성원은 아직도 전쟁이 지속되는 전장을 바라보며 인벤토리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고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취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 가슴속에 울렁거리는 더러운 기분을 떨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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