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4일 뒤, 서울 북부 도시 경계.
청룡 길드를 중심으로 조직된 S급 마인 토벌대가 새벽부터 모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길드가 민간 군사 기업처럼 된 거야 이미 아는 사실이었고, 몇몇 토벌에 대해 뉴스로 보긴 했지만 이렇게 실제로 눈앞에서 보는 건 생전 처음이라 매우 놀라웠다.
“이봐, 땜빵. 멍 때리지 말고 일해.”
“아! 죄송합니다. 하하.”
그리고 나는 현재 당초 계획대로 백야 길드의 땜빵 스태프로 합류해서 이리저리 일하는 중이었다.
식량, 탄약, 포션을 비롯한 각종 물자의 수납과 베이스캠프를 지을 숙영 세트 등등 챙길 게 아주 많았다.
동시에 다른 길드의 차량들과 청룡 길드가 운영하는 마정석 전차와 헬기, 정부에서 투입해 준 군대까지 눈으로 보면서 규모는 작지만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는 게 실감이 되기 시작했다.
“어이! 땜빵. 길드장님이 오라고 하신다. 계약서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는데?”
“예? 그럴 리가?”
“닥치고 얼른 가! 곧 출발하니까 미비한 부분은 빨리 해결해야 돼!”
“예. 알겠습니다.”
으음, 뭐지? 서류엔 분명 아무 문제없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이 백야 길드의 후계자분이 직접 손을 써 주신 거니까 문제가 생길 리 없다.
그런데 길드장인 그분이 날 뵙자고 하는 건 내 목적이나 생각에 대해서 물으려는 걸로밖에 생각이 안 되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이제 곧 출발인데~ 서류에 문제가 있다고요?”
“그건 그저 구실입니다. 눈치챘을 텐데요?”
“그냥 해 본 말입니다. 하하핫.”
오늘은 역시 전쟁터에 나가기 때문인지 저번 같은 과감한(?) 패션이 아니라 슈트 타입 보호복에 로브를 걸친 많이 가린 스타일이었고, 옆엔 튼튼해 보이는 헬멧까지 있었다.
판타지 영화나 각성자 관련 매체에서는 명성을 위해 얼굴을 다 드러내 놓고 싸우던데, 역시 실전은 다르다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그것과 별개로 약간 수수하지만 이분 특유의 기품과 우아함은 감출 수 없다는 것도 느끼면서 나는 예의 있게 반문한다.
“서류가 문제없으면 뭐 때문에 이 ‘땜빵’을 부르신 거죠? 일단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싶은데 말이죠.”
“무슨 생각으로 이 토벌대에 참여하신 거죠? 우리 애는 걱정 없다고 하지만 저는 도저히 당신의 진의를 알 수가 없군요. 계속 물어보려고 했지만 딸애는 ‘계약’이라서 알려 줄 수 없다고만 말하구요.”
“뭐, 별로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냥 제가 각성자이고 정식 헌터로 등록되기 싫어서 편법을 쓰고 있는 거죠. 이번 토벌대에 참여한 건 스캐빈저처럼 몰래 주워 먹을 게 있나 싶어서 신청한 겁니다. 속물적인 이유죠.”
이런 지적인 타입은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집착을 강하게 품고, 어느 한 사건에 대해서 세세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안심하지 못하고 파고드는 성향이 있다.
그러니 적당히 납득 가능한 이유를 붙여 주고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 역으로 자신의 추측이 맞는다고 생각하게 해서 넘어갈 수 있었기에 나는 흔하고 자연스러운 이유를 말해 주었다.
“그게 전부인가요?”
“더 필요한가요? 속물적인 이야기라 아영이에게는 못했지만, 길드장님에게는 가능해서 솔직하게 말한 건데요?”
“그럼 역으로 묻죠. 왜 헌터가 되기 싫은 거죠? ‘그랜드마스터’ 사태 이후 협회와 길드 모두 대우는 나쁘지 않을 텐데요? 우리 아영이가 전속으로 삼은 걸 보면 딱 봐도 F급이나 E급은 아닌 듯한데, D급이더라도 정규 헌터로서 충분히 일할 만하지 않아요?”
“뭐, 그렇긴 하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죠. 제 나이 서른둘. 아카데미아 9년 차 직원입니다. 평온히 살고 있는데, 갑자기 각성을 하게 되었다고 해서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을까요? 헌터 일이 그만큼 위험하니 그 대우를 해 주는 거라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내 말에 벙찐 듯 놀란 표정을 짓는 그녀였다.
일단 이론적으로는 내 말이 틀린 게 없으니 할 말이 없는 거겠지.
성좌의 선택을 받고, 헌터로서 너무 오래 살아서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린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이라면 보다 안전하고 평온한 삶을 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각성자가 된 것을 외면할 수 없죠. 헌터로서는 살기 싫지만 각성자가 된 것을 물릴 수 없으니 결국 타협한 겁니다. 그리고 그런 삶의 앞날에 필요한 건 돈보다는 지식과 경험, 식견이죠. 이쯤 되면 제가 왜 ‘땜빵’ 소리까지 들으며 잠입한 건지 이해가 되시죠?”
“예. 충분한 대답이 되었습니다.”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일하러 가 보겠습니다! 부디 마인 토벌 무사히 끝내시길!”
충분한 대답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힘차게 대답하고는 일로 복귀하기 위해서 트레일러를 나온다.
밖으로 나오니 대부분의 적재 및 준비는 끝나 있었다.
선두의 청룡 길드 차량들부터 이미 출발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백야 길드의 차량도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
『그럼 각 길드분들이 모두 모이신 것 같으니 바로 화상 전략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토벌전을 지휘하게 된 S급 청룡권성(靑龍拳星) 클래스의 고천용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이번 토벌전은 S급 마인이 된 정민수를 토벌하기 위한 작전으로서 놈을 추격하여 사망 혹은 포획을 하는 게 목적입니다. 우선 지금까지 얻은 놈의 정보와 상황을 말씀드리면…….』
차량이 출발하는 동시에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신소미 또한 화상 통화로 회의에 참여 중이었다.
화면에 나타난 고천용은 짧은 머리칼을 가진 거구의 남자로 푸른 무복 차림으로 앉아 화상 통화를 진행했다.
『S급 마인 정민수는 ‘살점 사냥꾼’ 클래스로 게릴라전과 덫을 이용한 사냥이 주된 원거리 타입의 각성자입니다. 그 성향으로 볼 때 그는 분명 본거지인 ‘개성’에서 저희를 맞이하지 않고 가는 숲길에서 기습을 할 게 뻔합니다.』
“으음…….”
정민수 측도 길드의 정보를 구입해서 알아내는 것처럼 청룡 길드도 자신들의 정보원들과 스캐빈저들에게 돈으로 정보를 구함과 동시에 전략팀의 회의를 거친 동선 예측 등등 할 일은 모두 하고 있었다.
『아무튼 각자 기습에 철저히 대비해 주시길 바랍니다. 특히 숲에서의 야간 기습, 놈이 가장 선호하는 공격 전술이니까요. 일단 드론과 헬기, 위성 장비, 용병들에게 경계를 맡겼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다른 곳으로 도망칠 가능성은 없습니까?』
『물론 다른 곳으로 도망칠 가능성도 있지만, 그래 봐야 ‘도살왕’의 영역 밖으로 나갈 가능성은 크지 않은 걸로 추정됩니다. 타 성좌의 마인이나 다른 영역에 있는 스캐빈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요. 남의 영역에 가서 그들의 기습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언제 올지 아는 우리를 상대하는 게 적측의 시선에서 봐도 합리적입니다.』
어차피 상대의 수단이나 짤 수 있는 전략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그런 만큼 미리 준비를 하면 충분히 대비가 가능했고, 100전 100승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게 전략의 기본이다.
『그냥 개성에 있는 그놈 도시에다가 폭격을 때려붓지. 참 나~』
『그 정도로 죽을 S급이면 우리가 안 나섰죠. 아무튼 그가 모을 병력은 ‘스캐빈저’와 마인(魔人), 혹은 성좌의 가호로 동반될 도살왕 계열 악마들이 전부일 테니 그에 대한 대비도 해 두십시오.』
『그건 그런데, 당초 목적인 ‘정민수’ 놈 상대는 어떻게 할 겁니까?』
『어차피 기습만 주의하면 놈은 별거 없습니다. S급 마인(魔人)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어서 그렇지, 결국 원거리에서 얍삽하게 활이나 쏘고 덫이나 까는 놈이니까요. 적의 군세가 나타났을 때, 신속히 타격팀이 이동해서 포위망만 잘 형성하면 제가 마무리 지을 수 있습니다. 괜히 대인전 담당인 제가 파견 나왔겠습니까?』
S급 헌터, 청룡권성 고천용.
실적과 능력을 모두 증명한 대한민국 10명의 S급 헌터 중 한 명으로, 그 이름값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기에 다들 함부로 반문을 내밀 수도 없었다.
이미 수년째 그 실력으로 청룡 길드를 이끄는 기둥이었고,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르는 최전선에서 싸우는 권사 클래스였기에 더더욱 설득력은 강했다.
『아무튼 여러분이 하실 것은 딱 두 가지. 기습에 대한 철저한 대비와 정민수의 행방이 나타나면 타격팀 모두가 일제히 나가서 놈을 포위해서 섬멸한다는 두 가지 작전만 제대로 실행해 주시면 됩니다.』
너무나 깔끔한 정리였고, 이견을 말할 부분도 없었다.
남은 건 이제 실전을 대비하고 ‘정민수’가 나타나면 그를 친다는 심플한 전략을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
잡스러운 스캐빈저들과 혹시나 대동할 도살왕의 악마들은 용병 부대와 각 길드에서 데려온 전력으로 처리할 테니, 모든 게 대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혹시 갑자기 예상외로 급수가 높은 몬스터나 악마가 나오면? S급 마인이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사안입니다만?』
『그럴 경우 제가 정민수를 맡고 나머지 A급 분들이 악마를 처리하고 합류하시는 걸로 합시다.』
『아,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사안을 상정하고 대비책을 세운 뒤 회의를 마치면서 화상 통화는 종료된다.
그리고 신소미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사실 A급 헌터라는 이유로 강제로 끌려왔지만, 알다시피 자신의 클래스는 서로의 역량을 전부 아는 각성자끼리의 전투엔 걸맞지 않아서 걱정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해.’
물론 그녀도 나름 A급 헌터까지 올라온 몸이기에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대비는 해 놓았다.
입고 있는 슈트와 로브, 지팡이까지 모두 생존력을 위한 옵션과 마법이 걸린 것들로 특별 주문한 것이었다.
딸에게서 대략적인 이야기를 듣고, 청룡 길드 사건의 내막을 깨달은 그녀는 자기 나름의 생존을 위한 방안을 짜낸 것이었다.
‘사방이 적으로 가득한 느낌이야.’
물론 자기 길드의 인원들이 있긴 했지만 인재 부족에다 중견 하위인 길드 규모 때문에 대동한 길드 각성자 중에서는 C급 각성자가 최고였고, 그마저도 2명밖에 데리고 오지 못했다.
길드장이라고는 하나 내부 권력을 압도적으로 쥐고 있는 게 아니라서 이번 토벌에 끌려온 길드 중 명실상부 최약체 전력인 상황이다.
‘엄마! 엄마! 여차할 땐 무조건 그 아저씨한테 붙어! 알았지? 자세한 건 이야기 못하지만 적어도 길드 사람들보다는 의지할 만해!’
그렇게 고민으로 가득한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늘 오기 전 자신의 딸이 해 준 조언이 맴돌았다.
그러면서 그 불확실함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점에서 불안을 느낀다.
***
토벌 출발 후 10시간 뒤.
저녁 7시, 개성 인근 숲.
“이래 가지고 잡겠어요? 너무 느리지 않나요?”
서울에서 개성까지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거의 하루 종일 엉금엉금 기어와서 도착한 토벌대였다.
나는 식사 준비를 하는 스태프들을 도우면서 하루 종일 이동한 것에 대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지만, 그들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날 보며 말한다.
“이 땜빵 친구, 처음이라 뭘 모르는군. 우리가 경기장 가서 싸우는 건 줄 아나? 이미 서울을 떠나면서부터 전쟁은 시작되었어.”
“애초에 서울 위로는 벌써 수십 년이나 도로도 정비되지 않았고, 숲도 우거지고 던전들이 잔뜩 생겼는데 그걸 편하게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나? 지금 여기서는 안 보이지만 마정석 전차에 달아 놓은 중장비로 앞을 정비하면서 가고 있을 거야.”
“게다가 스캐빈저들도 있지. 게릴라 전술과 기습이 특기인 놈들이 사방에서 시시각각 노리고 있는데, 안심하며 갈 수 없으니 조심하면서 가는 거지. 그런데 느려도 괜찮냐고? 상관없어. 어차피 다른 성좌의 영역에 가지도 못할 놈이니 계속 쫓으면 분명 지치게 되어 있어. 우리가 계속 쫓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스캐빈저들의 이탈이 심화되고…….”
스태프분들은 자부심이 넘치는 건지 아니면 신입에게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은 건지, 슬쩍 물었는데 뉴비에게 달려드는 고인물들인 양 속사포처럼 대답해 준다.
한번 잘못 물었다가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다양한 이유를 들은 나는 그대로 납득하고 저녁 식사 준비에 매진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닫아 둔 상태창이 열리면서 기사단의 성소에 있을 아칼론의 메시지가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