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그 노땅의 다음 행적에 대해서는 조사했나?”
“이다음엔 또다시 스태프 훈련 명목으로 E급 던전을 신청할 것 같습니다.”
“즉, 아직도 30레벨 이하에 C급 스테이터스라는 소리군. 그런데 그 정도 포텐셜이면 45레벨쯤엔 어쩌면 B급도 가능할지 모르겠어.”
이미 그 경지는 아득히 넘어갔지만, 합리적인 계산에 따라서 추측할 수 있는 레벨이었다.
물론 B급이더라도 천(天) 클래스로 분류되는 만큼 이미 각성자로서 최상위 위치나 다름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스테이터스 B급은커녕 C급도 빌빌대는 수준이니 말이다.
“그 정도 포텐셜이면 3대 길드에 바로 갈 수준 아닙니까? 왜 숨기고 산 거죠? 그 노땅은?”
“그걸 조사하는 게 네 일 아닌가? 그 정도 통찰력도 없이 어떻게 졸업하고 길드에서 일할 거야? 추측하자면 어쩌면 각성을 너무 늦게 했을지도 모르지. 아카데미아에 근무하면서 각성자의 실정을 알게 되고 각성한 거라면 숨기려 할 만해.”
아까 자신이 신아영을 떠보기 위해 했던 거짓말을 알아차린 것을 보면 헌터 업계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스스로 각성자인 것을 감추고 조용히 살았을 것이다.
부귀와 권력, 영광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얻으려면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 다툼을 해야 했기에 차라리 감추고 속 편하게 아카데미아 직원으로 사는 걸 택한 것이리라.
“흠… 그리고 그걸 신아영이 찾아냈다는 거군. 아무튼 더 이상 감출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놈은 스태프를 받아들인 거고…….”
“그래서 지금 E급 던전을 도는 거군요?”
“그래. 감추고 있었지만 결국 전속 스태프가 되는 바람에 레벨 업을 시작한 거겠지. 잠깐만, 그러면…….”
백야 길드에 B급 각성자가 둘이 있는 거고, 그 정도면 충분히 C급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멤버를 꾸리게 된다.
C급 던전. 대형 몬스터 종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가치가 D급보다 월등히 오르는 동시에 당연하지만 난이도는 B, A급보다 낮아서 돌기 그나마 편하다.
한마디로 가장 사업성이 높은 던전. 각 길드에서 가장 공략권을 확보하고 싶어 하는 던전으로, 전 세계의 길드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른바 꿀 던전이었다.
“으음, 그러면 몇 년 안에 백야 길드가 C급 던전 사업에 뛰어드는 게 가능하겠군. 후우~”
“그건 안 좋은 거 아닙니까?”
“당연히 안 좋지. 파이를 뺏기는 것뿐만 아니라 상위 레벨, 상위 등급 각성자가 더 생기는 거니 말이지.”
정부나 인류의 입장에서는 좋지만, 권력을 독점하는 길드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이다.
상위 각성자들의 가치가 낮아지고 길드의 영향력이 어찌 되었든 줄어들 수 있는 사건이니 말이다.
“이거 예상치 못한 수확이군. C급 이상 포텐셜을 가진 각성자라. 대박인걸?”
“어떻게 하실 겁니까?”
잠시 생각하던 고성준은 조사해 온 학생에게 묻는다.
“음, 지금 던전에 갔다고 했나?”
“예. E급 던전을 신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다만 아직 아카데미아 내부에 있습니다. 곧 그리로 가겠죠.”
“으음, 그럼 나갔을 때를 노려야겠군. 아카데미아 내부에서는 사고 칠 수 없으니까.”
자칫하면 아카데미아 교직원이나 경비들에게 걸릴 수 있기에 그가 나가는 타이밍을 노리기로 한다.
생각을 마친 그는 일단 청룡 길드 엠블럼을 모두 뗀 다음 캐비닛에서 가방 하나를 꺼내어 준비하면서 다른 학생에게 지시를 내린다.
“종수, 너는 바로 가서 그놈 위치 파악을 해라. 나는 바로 준비한 다음 쫓아갈 테니까…….”
“예!”
“그리고 미화,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신아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라. 다음에 또 실패할 시엔 네년 팔다리를 잘라서 스캐빈저에게 팔아먹을 테니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실패를 이유로 잔혹하게 폭행당했던 이에게도 지시를 내린 다음 곧바로 고성준은 사무실을 나선다.
‘마음 같아선 바로 처리하고 싶었지만…….’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이 정보가 자신들만의 것일 때 빠르게 조치를 해야 하고 또 그동안 신아영을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그녀를 일단 살려 둔 것이었다.
적어도 ‘유성원’을 자신들이 확보할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고성준은 고르고 골라 지(地) 클래스의 C급 각성자 학생 둘과 함께 유성원을 쫓기로 한다.
“셋이면 아마 문제없을 거다.”
“한데, 혹시나 그자의 역량이 만약 C급보다 상위 등급이면 어떻게 하죠?”
“기록에 따르면 어제오늘 E급 던전 2개째 돈 게 놈의 기록이다. 그 전엔 관리 안 되는 F급 던전에서 레벨 업을 했을지라도 그 한계는 15레벨. E급 던전에 두 번이면 기껏해야 20레벨 초과가 한계. 만약 그 레벨에서 B급 이상의 포텐셜?”
B급이라고는 하지만 자신만 해도 45레벨에 도달해서 운 좋게 청룡이 내린 시련을 돌파해서 도달한 경지다.
A급 이상들은 거의 성좌의 직속 사도이거나 그만한 업적을 세우거나 역량을 가진 것을 보여 준 이들이다.
고작해야 늦게 각성해서 이제 막 E급 던전을 맨몸으로 도는 놈이 그런 포텐셜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있어도 아무튼 놈은 각성자로서는 초보다. 아카데미아에서 이론, 실습을 모두 걸친 우리보다 못하지. 정 제압이 불가능하면 그 자리에서 처리하고 스캐빈저가 한 걸로 둔갑시킨다.”
“사, 살인 말입니까?”
“멍청한 새끼야, 몬스터는 죽여 봐 놓고, 왜? 사람은 못하겠냐? 나중에 마인(魔人), 스캐빈저랑은 어떻게 싸울래? 3대 길드가 우습냐?”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고성준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앞을 보며 놈을 어떻게 할지 생각한다.
손에 들어오지 않을 거면 차라리 없애서 길드의 위상을 떨어뜨릴 불씨를 꺼 버리는 게 최선.
현재의 3대 길드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기저에는 이러한 ‘사다리 차 버리기’ 전략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다.
***
같은 시각, 유성원의 숙소.
“와, 이걸 진짜 리폼하네? 아까 들었지만 직접 보니 다르네!”
[모든 KMG 시리즈에 포함된 기본 기능입니다. 은하 기사분들을 보조하기 위한 것이지요.]
곧바로 숙소로 돌아온 나는 던전에 가기 전에 섬멸이와 아칼론을 위장시키기 위해 내 여벌 유니폼을 개조해서 섬멸이에게 맞게 리폼 중이었다.
아칼론은 그 육중한 몸에서 드론 3대를 꺼내더니 같이 일하면서 순식간에 자신의 몸 사이즈에 맞던 유니폼을 섬멸의 것으로 완성한다.
“으음, 아칼론 경의 솜씨가 좋은 덕분에 딱 맞습니다. 이걸로 성소에서 대기하지 않아도 단장님을 모실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제 조언을 받아들여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뭐, 그쪽이 합리적일 수도 있으니까. 근데 문제는 아칼론인데…….”
섬멸은 그래도 무기질적인 표정을 한 얼굴 일부만 가리면 인간 같기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냥 로봇인 아칼론 쪽은 역시 성소에 넣어 두고 다니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어설프게 엠블럼이나 뭔가를 달았다가는 괜히 길드만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였다.
여러모로 눈에 띄는 녀석이니 말이다.
[저의 엠블럼 및 도색의 변경을 원하시면 그 디자인에 필요한 소재 및 재료를 계산, 그것을 가져다주시면 제가 스스로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새빨간 디자인에 뿔을 단다고 해도 3배 빨라지지는 않으니 그 점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풉, 뒤의 건 무슨 농담이냐? 음~ 아무래도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섬멸을 일단 호위로 데리고 다니면 될 것 같으니까 성소에서 대기해 줘. 아, 섬멸도 일단 도시는 안전하니까 저 밖으로 나가서 내가 부르면 그때부터 호위 임무를 해 주고.”
“알겠습니다.”
[명령 접수 완료.]
아카데미아 사람들이나 도시 사람들에게 섬멸을 보이기는 부담스러우니 일단 도시 밖의 던전 영역으로 가면 부를 생각이었다.
그렇게 위장에 대한 일을 일단락한 다음 나도 백야 길드의 유니폼 점퍼를 걸치고서 아카데미아를 떠나서 던전에 가기로 한다.
‘음~ 일단 이거 입고 있으면 스캐빈저 놈들은 건드리지 않겠지.’
물론 안심할 수 없지만, 이제 도시를 나가서 위험 영역으로 가면 섬멸과 파티로 구성되기 때문에 스캐빈저들은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안심한 나는 택시를 잡아서 오늘도 도살왕 계열의 던전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으음, 택시비도 은근 아깝단 말이지. 그렇다고 차를 사는 건 시기상조 같고……. 음?”
섬멸을 불러내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진다.
또다시 스캐빈저가 붙은 건가?
한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이제는 사소한 시선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 버린다.
그렇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한 남자가 어색하게 숨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저놈이군. 근데 스캐빈저라기엔 너무 어설픈데? 아무튼 발견되면 나야 좋지.’
초보 스캐빈저인가? 뭔가 어설프다.
이대로 쫓아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놈은 계속해서 나를 쫓고 있었다.
그것도 어설픈 솜씨로 자기 딴엔 숨는다고 숨는데, 솔직히 이미 눈치챈 지 오래였다.
“게다가 눈치챈 기색을 보였으면 스캐빈저는 도망칠 텐데?”
내가 눈치챈 것 같은 반응을 보여 줘도 녀석은 도망치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스캐빈저는 아니라는 뜻이었고, 자동으로 누군가의 지시로 나를 미행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럴 인간은 단 하나뿐이었다.
‘딱 봐도 고성준 그놈이네. 하여간 3대 길드 애들이 더 독하다니까…….’
원래 위에 계신 분들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더 악독하게 구는 게 사실이긴 했다.
하나 고작 전속 스태프가 된 것 하나만으로 나를 노리기엔 뭔가 이유가 부족할 텐데?
‘아니지. 아영이를 조사하다가 내가 각성자라는 냄새를 맡은 것 같군.’
노리던 인재의 예정에 없던 난데없는 전속 스태프 고용.
보통 사람이나 같은 길드원이면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3대 길드는 레벨과 시야가 다르다.
분명 할 수 있는 조사를 다 해서 내 행적을 추적했을 것이고, 어쩌면 숨겼다고 생각한 수련실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냈을지도 모른다.
‘다만 심판의 진에서 일어난 일은 알아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사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겠지.’
아무튼 정보를 어떻게 얻었는지 모르지만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저렇게 미행까지 붙일 거면 거의 작정했다는 거다.
그나마 하나 다행인 것은 나에 대해 길드 윗선까지는 보고를 올리지는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저런 수준 이하의 ‘미행’을 붙인 걸 생각하면 확실하다.
‘그렇지. 좋은 건수는 남 주기 아깝기 마련이니까…….’
길드 내에서도 파벌과 권력 싸움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나를 노리는 것은 오직 ‘고성준’과 그 휘하의 학생들이 전부일 것이다.
적에 대해서 알아냈다면 이제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가 문제다.
‘직접 싸우는 건 아직 시기상조겠지?’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다음이 문제다.
청룡 길드. 투쟁을 좋아하는 성좌인 청룡이 이끄는 놈들로, 싸우면 끝장을 보는 끈덕지고 미친개스러운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깃발 한번 꼽으면 사생결단을 내려고 해서 불편해지기에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다.
‘아! 그러면 되겠군.’
하나,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나는 금방 방안을 생각해 내었다.
그리고 놈들을 유인하기 위해 원래 가려고 했던 던전의 위치를 다른 곳으로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