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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특성을 받았지만 적당히 살고 싶다-15화 (15/293)

[15화]

‘저거 뭐야?’

안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거대한 청룡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청룡이 그려진 망토였는데, 여름이 거의 코앞이라 슬슬 더워지려는 이 날씨에 저런 걸 입다니,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의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제정신 아닌 청룡 망토를 걸친 인물은 슥 돌아서서 모습을 보여 준다.

“아, 이제야 왔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영 양.”

키가 크고 올백 머리를 한 녀석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무게감 있는 인상이었지만, 아카데미아 교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학생은 확실했다.

즉, 노안이라는 뜻으로 겉으로만 보면 아무리 잘 쳐줘도 20대 후반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대체 뭘 잘못 먹었기에…….’

“제안이라면 거절한다고 했잖아요. 애초에 우리 성좌님 길드라서 못 옮긴다고요.”

“그럼 길드를 유지한 채로 저희 파티에 와 주시면 됩니다. 우수한 인재가 쓰레기장에서 썩는 꼴은 도저히 못 봐서 말이죠. 청룡 길드에 대해 아시잖습니까?”

그래, 누구나 잘 알지.

한국의 3대 길드이지만 그 명성과 실력은 주변국에서도 알아주는 대형 길드로 모든 각성자들이 우러러보는 곳이다.

투쟁의 성좌인 청룡이 있는 곳이라서 가장 공격적인 데다 한국 길드의 정점을 노리는 데 적극적인 길드로 소문이 나 있었다.

‘상위 길드가 더더욱 인재 영입에 치열하지.’

그리고 9를 가진 자가 10을 채우려 하듯이 B급 이상의 천(天) 클래스를 모으려는 욕망은 더 심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여기서 일하겠다는데~ 그만 좀 괴롭히세요. 무슨 천(天) 클래스는 무조건 3대 길드를 가야 하는 법이라도 있어요?”

“대우는 확실히 해 드린다고 했을 텐데요. 고유 스킬 ‘심판의 진’의 전략성과 ‘저지먼트 피스트’의 전위 능력의 가치, 또 45레벨에 B급 각성자 스테이터스를 달성한 그 성장세. 계속 레벨 업을 하려면 C급 던전을 가야 할 텐데, 백야 길드가 역량이 되나요?”

45레벨이면 D급 던전에서 올릴 수 있는 레벨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그보다 얘, 아카데미아 고등반 1학년 아니었나? 그런데 벌써 45레벨?

어지간히 부지런하거나, 길드에서 밀어준 게 아니라면 이런 레벨에 도달할 수 없을 텐데 놀라웠다.

“그건 내가 팀을 꾸려서 잘 알아서 할 거니까 신경 끄고 나가세요.”

“자자,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저희 성좌 청룡 님의 이념은 ‘투쟁’입니다. 아영 양은 아카데미아 학생이면서 자신의 자질을 최대한 다듬고 상승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성좌님에게 더 어울리는 분이죠. 어쩌면 동시에 두 성좌님의…….”

저놈, 개소리가 쩌는군.

동시에 두 성좌의 축복? 그게 가능한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성좌님들은 자존심 세고 소유욕이 강해서 자기 사도를 공유할 놈은 없다.

어지간히 뛰어난 자질과 지혜를 가지지 않은 이상 말이지.

분명 아영이는 B급 각성자로서 좋은 포텐셜이 있었지만, 성좌가 내려 주는 축복의 기준에서 보면 그리 큰 메리트가 없을 것이다.

‘뭐, 말해 봤자 좋을 거 없으니까 아가리 닥치고 있어야… 음?’

“제 전속 스태프이자 9년 차 아카데미아 스태프였던 분이 이런 얼굴을 하는 거 보면 어지간히 개소리 같은데요?”

“크윽!”

아니, 인마, 날 왜 그렇게 보는 건데?

나 아무 짓도 안 했잖아? 네 개소리가 너무 참신했지만 아가리 꾹 다물고 있었잖아!

근데 왜 나 때문에 협상이 망한 것처럼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냐?

솔직히 이건 억울하다.

“아무튼 갈 길이나 가세요. 전 우리 전속 스태프님이랑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말이죠!”

“…크흠!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죠.”

“아뇨. 평생 오지 마세요. 법규!”

게다가 너는 왜 저 인간에게 내 어그로를 적립하냐? 그냥 보내라고!

그건 업무에 안 들어가 있잖아!

불평하고 싶었지만 내가 끼어들 틈이 없이 일은 진행되었다.

고성준이라는 청룡 길드원 녀석은 분하다는 얼굴을 한 채 사라진 지 오래였다.

“후우~ 속 시원해. 나이스 어시스트!”

“뭐가 나이스 어시스트냐? 왜 3대 길드 어그로를 끄는 건데? 그냥 성좌님이 가지 말라고 했다고 하면 무난히 해결되잖아.”

“이미 써 봤단 말이에요. 근데 말을 안 들어 처먹어요. 저 인간도 B급 각성자에 같은 천(天) 클래스라서 대놓고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라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게다가 알다시피 근접 전위 클래스들은 귀중하잖아요.”

마인, 스캐빈저, 몬스터들과 코앞에서 싸워야 하는 만큼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고, 가장 많이 필요한 게 전위 계열 클래스들이다.

아주 옛날에는 극딜 메타가 유행해서 한때 이들의 가치가 낮았던 시기가 있었지만, 극딜로 감당 안 되는 규모의 몬스터들이 나타나자 급격히 가치가 반등해 있었다.

“뭐, 수요도 그렇고, 공급도 그리 많은 클래스가 아닌 데다 상처 입거나 사망할 확률도 높으니……. 아무튼 그건 제쳐 두고, 어쩔 거야?”

“어쩌긴요. 답은 하나! 강해지는 거죠.”

“너 45레벨이라 C급 던전부터 레벨 업이잖아.”

“그래서 테크닉과 실력을 키우려고 하는 거잖아요. B급 스테이터스니까 경험치와 실력, 지식을 탄탄히 해서 졸업하자마자 C급 던전 가야 하니까요. 장비도 물론 중요하지만요. C급 던전 이상은 3대 길드가 80퍼센트 이상 독점하고 있는 거 아세요?”

“어, 대충 알지. 잡을 역량이 되는 곳이 거기밖에 없고 서울, 부산 아카데미아에서 나오는 고등급 각성자들을 독점하는 건 물론 민간에서 나오는 각성자 영입에까지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니까~”

그 덕분에 정부에서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조직이 되어 버렸다.

물론 그건 정부의 자업자득이었다.

1세대 각성자들을 헬조선 군대와 비슷하게 정부에 소속시켜서 부려 먹다가 결국 각성자들이 길드를 설립하며 독립을 선언해 버리고 군벌, 기업화되는 걸로 반란을 일으키자 부랴부랴 협회를 만들게 된 것이다.

‘참 역사란 게 븅신 같은 일만 반복이라니까~’

물론 그 이후로도 여전히 길드와 정부 간에는 분쟁이 있었다.

한데, 길드의 권리가 본격적으로 신장이 된 것은 바로 각성자 역사상 최강 중 한 명이었던 그랜드마스터의 길드 탈출 사건으로 인해서였다.

요즘으로 치면 3대 길드급 되는 길드의 길드장이 대한민국이 엿 같아서 도저히 못 있겠다고 길드의 건물과 각성자를 깡그리 데리고 한국을 떠나 버린 것이었다.

‘꼬우면 외국 나가라고 꼰대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실행해 버릴 줄은 몰랐지.’

그렇게 지금으로 치면 3대 길드급 초대형 길드 하나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자 대한민국의 안전 공백은 커졌고, 진짜로 멸망 직전까지 갔었지만 간신히 회복해서 다시 지금의 문명을 복구할 수 있었다.

그 뒤에는 더 이상 각성자와 길드에 대한 대우를 하찮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뭐, 네가 어떤 야망이나 꿈을 가졌든 간에 나는 상관없어. 하지만 방금 네 허튼짓으로 나까지 청룡 길드의 원한을 사 버렸잖아.”

“하지만 이상한 표정 지은 건 사실이잖아요.”

“됐다. 아무튼 유니폼이랑 너희 길드 엠블럼 새겨진 깃발이나 줘. 던전이나 가야겠다.”

그래, 이렇게 입씨름해 봤자 나아질 건 전혀 없었다. 그럴 시간에 레벨이나 더 올리는 게 낫다.

던전에 가야 했지만, 그 전에 어제 상당히 난리 쳤던 아칼론과 섬멸에 대한 대책을 하는 게 우선이라는 걸 떠올린 나는 유니폼과 각종 도구를 가지고 그대로 숙소로 돌아간다.

***

청룡 길드, 아카데미아 지부 사무실.

“야, X발년아, 내가 신아영 주변 잘 체크하고 있으라고 했지?”

퍼억!

고성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누군가에게 주먹질을 하며 가차 없는 폭력을 가하고 있었다.

자신의 파벌이자 인(人) 클래스의 여학생으로, 그녀는 단 한 방에 부어오른 뺨을 붙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일어선다.

“죄, 죄송합니다.”

“내가 미리미리 말했을 텐데? 인재 영입은 길드 간의 전쟁이고 정보 싸움이라고 말이야. 신아영은 B급 각성자에 ‘저지먼트 피스트’라는 격투가 클래스. 청룡 투사를 비롯한 격투가 클래스가 많은 우리 길드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정말 죄송합니다! 도련님.”

“그래, 한 대 더 맞자.”

“컥! 콜록! 콜록!”

퍽!

그 또한 청룡 투사라는 격투계 클래스였다. 한데, 상대가 여성인 걸 가리지 않고 가차 없이 주먹을 복부에 가격하는 고성준이었다.

물론 진심으로 기를 끌어 올려서 가격했으면 바로 배에 구멍이 났을 테니, 죽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긴 했다.

하나, 신아영의 감시와 정보 수집을 맡은 학생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서 고통을 호소한다.

그럼에도 고성준의 눈빛은 한 점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카데미아 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청룡 길드의 이름과 엠블럼을 단 시점부터 이미 헌터의 일원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 괜히 여기가 길드 지부가 아니라는 거야. 다른 놈들도 알았겠지?”

“무, 물론입니다!”

“예!”

“물론 알고 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고성준의 위압감에 덜덜 떨며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B급 각성자에 천(天) 클래스인 이유도 있었지만, 고성준은 청룡 길드장의 아들이기도 했기에 그 발언권도 강했고, 청룡 성좌의 가호도 받고 있어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다.

아카데미아 학생이라서 아직 실전 능력은 떨어지지만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 학생들 사이에선 절대 권력을 가진 강자라고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이 무능한 계집 말고 조사시킨 녀석은 해 왔나?”

“바로 해 왔습니다. 신아영의 전속 스태프는 유성원. 올해 나이 서른둘, 아카데미아 시설 유지부 팀장 중 한 명으로 근속 연수는 9년입니다. 바로 그저께 신아영이 접촉했고, 어제 백야 길드 신아영의 전속 스태프로 가입, 보아하니 오늘 유니폼 및 각종 물품을 전달한 것 같습니다.”

“흐음… 전속 스태프라. 어차피 우리 천(天) 클래스들은 필기시험 외에는 시험 때 보스 역할이라서 그리 할 일이 없는데, 이 시점에서 전속 스태프를 고용했다는 건……?”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팀을 꾸릴 생각 같습니다. 그게 아니고서야 단순한 특정 영역의 전문 스태프가 아니라 9년간 아카데미서 일한 전문 스태프를 고용할 리가 없죠.”

“흐음…….”

시설 유지부 사람들은 자신들을 어디 땜빵이 나면 바로 가야 하는 SCV라 생각하지만, 그만큼 각성자에 관한 서포트 작업에 대부분 능숙하다고 보면 된다.

즉, 그녀가 본격적으로 길드 내에서 자신의 팀을 꾸리고 운영할 생각이라고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파티원을 모으는 것보다도 각성자 조직을 보조하고 운영할 줄 아는 노하우가 있는 인원을 모은 게 우선이니 말이다.

“졸업까진 아직 2년이나 남았는데 벌써 말인가? 게다가 전속 스태프라고 하면 길드 내에서 구하거나 공고를 내면 더 빠르지 않나? 백야 길드가 그 정도로 작진 않을 텐데?”

청룡 길드보다는 한없이 아래이지만 나름 중견 이상급 길드인 만큼 공고를 내면 보다 더 전문적인 스태프나 운영진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9년의 경험이 있다곤 하지만 그래 봐야 아카데미아 내에서만 일한 스태프. 밖에서 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리라.

“그 부분은 이제 그 ‘유성원’이라는 노땅이 각성자라서 그렇게 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CCTV 기록을 모두 찾아본 결과, 그녀가 먼저 ‘유성원’ 스태프를 미행했고, 무려 심판의 진까지 사용했더군요. 거기에 스태프 훈련으로 E급 던전에 간 기록까지 있습니다.”

“그러면 무조건 각성자군. 음, 잠깐만? 그럼 그년이 심판의 진까지 써서 묶어 놔야 하는 놈이라는 걸 텐데? 민첩 수치가 높다고 가정하면 C급! 어쩌면 그 이상의 역량일 터! 과연! 그 노땅, 숨은 각성자인가?”

유성원이 숨기려 한 것과 다르게 그들은 매우 쉽게 루트를 추적하고 행동을 분석해서 유성원이 각성자라는 사실을 알아내 버린 것이었다.

하나, 아직 추측의 영역이었기에 제대로 알아내기 위해서 고성준은 곧바로 길드원 학생들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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