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64화 (64/226)

64화

협회 직원은 첫 번째 던전과 전혀 다른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미 연락을 받은 모양이군.’

황희준이 내민 입찰 증명서는 보지도 않고 그대로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도착하신 건가요? 제가 조금 전에 연락을 받았는데 말이죠.”

직원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제 스킬입니다.”

단순명료한 은석의 대답.

직원은 조금 전, 하루 만에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말을 들었기에 그의 대답에 금방 수긍했다.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런데 헌터님…….”

은석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정말로 던전 후반 작업을 하지 않으시나요? 만약 그런 게 맞다면 채굴팀에게 미리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 부분은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희는 클리어 후에 바로 다른 던전으로 가야 해서요.”

협회 직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길드가 권한을 포기한 던전의 마정석 채굴 작업. 물론 마정석은 모두 각성자 협회 소유가 되겠지만 그것을 감독한 직원에게도 꽤 두둑한 인센티브가 떨어졌다.

직원이 양손으로 게이트를 공손하게 가리켰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헌터님. 저는 채굴팀을 섭외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게이트로 향하던 황희준이 은석에게 슬쩍 물었다.

“형님, 이번에도 하루 정도 걸릴까요? 만약에 그렇게 되면 저 사람들도 깜짝 놀라겠는데요.”

은석이 픽 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 더 빨리 끝내고 나와야지.”

* * *

“허, 대나무가 완전……. 형님! 이번 던전은 싸우기가 굉장히 힘들겠는데요.”

[약탈자 긴팔늘보원숭이의 던전입니다.]

몬스터의 정체를 알려 주는 메시지가 떴다.

긴팔늘보원숭이. 이름처럼 몸통은 원숭이였지만 나무늘보의 앞다리를 가진 포유류형 몬스터였다.

일생의 대부분을 대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데, 이유는 땅에서는 눈에 띄게 느려지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대나무 위에서는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무척 빨랐다.

긴팔과 손톱이 위협적이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더 까다로운 건 지능이 높은 편이라 공략하기 힘든 몬스터라는 것.

빠른 속도와 지능으로 헌터들의 식량을 순식간에 훔쳐 가기로 유명한 놈이었다.

‘괜히 약탈자라는 수식어가 붙은 게 아니지.’

“어? 형님. 바닥이 좀 이상합니다.”

던전 안을 걷던 황희준이 힘겹게 한 발씩 내디뎠다.

대나무가 빽빽하게 박혀 있는 바닥은 마치 물을 잔뜩 먹은 스펀지처럼 물컹거렸다.

뛰기는커녕 정상적으로 걷는 것조차 힘들어 발을 내딛던 황희준이 휘청거리며 대나무를 움켜잡았다.

“아얏! 뭐야!”

위에서 그를 치켜보던 긴팔늘보원숭이가 빠르게 내려와 그의 손을 할퀴었다.

황희준이 손등을 문지르며 인상을 썼다.

키익- 키익-!

긴팔늘보원숭이가 던전 안에 들어온 이방인을 향해 경고하듯 괴성을 질러 댔다.

“우는 소리가 꼭 원숭이 같네요.”

“원숭이 맞아. 긴팔늘보원숭이라고. 대나무 위에서는 워낙 빨라서 잡기 힘든 놈이야.”

“흠, 빠른 게 위험한 거 맞죠?”

“위험하지. 대나무 사이를 빠르게 다니면서 긴 팔로 공격하니까 조심해라.”

황희준이 양팔로 얼굴을 가리며 두리번거렸다.

키익-

서로 의사소통을 하듯 신호 같은 짧은 울음이 반복되었다. 은석이 고개를 들어 위쪽을 쳐다봤다.

“많이도 몰려왔네.”

황희준도 그를 따라 위를 쳐다보고는 깜짝 놀라 헉, 소리를 질렀다.

“굉장하네요. 그런데 왜 공격을 하지 않는 거죠?”

“공격보다 음식 도둑질이 먼저거든.”

“식량요? 저희는 식량이 없지 않나요?”

은석이 아공간에서 식빵과 육포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음식이 쌓여 가자, 놈들이 흥분한 듯 더 크게 소리를 질러 댔다.

“바닥에 편평하게 펼쳐 놔.”

은석의 말에 황희준이 쌓인 음식들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하이드.”

긴팔늘보원숭이가 그들을 보지 못하도록 머리 위에 넓은 막을 쳤다. 은석과 황희준의 모습이 사라지자, 주변의 대나무가 마구 흔들렸다.

은석이 독두꺼비에게서 떼어 낸 독주머니 알갱이 뭉치를 꺼냈다.

투둑-

나뭇잎으로 감싼 독주머니를 잡고 힘을 주자, 수많은 독 알갱이가 터졌다.

끈적한 액체로 바뀐 독두꺼비의 마비 독을 바닥 위에 펼쳐 놓은 음식 위에 뿌렸다.

“형님, 이건…….”

“그래, 독두꺼비의 독이다. 저놈들도 곧 조금 전 너처럼 뻣뻣하게 굳을 거야.”

“그런데 왜 은신 스킬을 쓰나요?”

“똑똑한 놈이거든. 아마 음식 위에 뭔가를 뿌려 대는 걸 보면 훔쳐 가지 않을 거다.”

독을 모조리 붓고 나뭇잎을 바닥에 버렸다. 은신 스킬을 없앤 후 은석과 황희준은 대나무숲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시간이 흘렀지만, 놈들은 음식을 가지러 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대나무 위에서 괴성만 지를 뿐이었다.

“진짜 의심이 많은 몬스터군요.”

그때였다.

수많은 긴팔늘보원숭이가 빠르게 내려와 음식을 낚아채 가기 시작했다.

“흐익! 저렇게나 많았어요?”

엄청난 수에도 놀랐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음식이 사라지는 걸 본 황희준이 혀를 내둘렀다.

“형님, 저렇게 빠른 걸 어떻게 죽이지요?”

그 순간.

후두둑-

하늘에서 놈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미처 음식을 가져가지 못했거나 떨어지는 놈들을 보고 음식을 먹지 않은 몇몇 놈들만 대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긴팔늘보원숭이를 보며 찢어질 듯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 댔다.

“가자.”

은석이 황희준과 함께 떨어진 긴팔늘보원숭이를 한곳으로 모았다.

“너는 여기에서 놈들의 마나석을 뽑아. 크기는 작지만, 이번에는 질보다 양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형님.”

황희준이 팔을 걷고 단검을 꽉 쥐었다.

“나와라.”

은석이 팀 고스트를 소환했다.

“대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려. 땅 위로 떨어지는 놈들은 움직임이 느려지니까 빠르게 죽일 수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대장.”

팀 고스트가 순식간에 대나무 숲 안으로 사라졌다.

이내 잘린 대나무가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개미 군단.”

마정석 채굴을 위해 검은 개미를 불러냈다.

“금방 던전 클리어가 될 거다. 최대한 채굴할 수 있을 만큼 마정석을 캐 와.”

끼에엑-

은석의 명령에 개미 군단도 빠르게 달려 나갔다.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던전이 클리어 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으그그.”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마나석을 빼내던 황희준이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긴팔늘보원숭이의 작은 마나석을 뽑아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은석이 황희준의 등을 툭 쳤다.

“고생했다. 괜히 따라왔지?”

“아닙니다. 제가 형님이 아니면 어디서 이렇게 편하게 레이드를 뛰겠습니다. 해체가 제 적성에도 맞는 것 같고요.”

황희준은 해맑게 웃었다.

“그럼 다행이고.”

은석의 앞으로 다시 모여든 팀 고스트와 개미 군단.

“마지막 던전이 남았는데, 할 수 있겠지?”

해머가 가슴을 퍽퍽 쳤다.

“이 정도는 껌입니다. 대장.”

은석이 씨익 웃으며 게이트로 걸어갔다.

“소환 해제.”

* * *

던전 밖에 서 있던 협회 직원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툭 떨어뜨렸다.

“뭐야, 들어간 지 7시간 만에 클리어하고 나온다고?”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에서 상대방이 소리를 질러 댔다.

“야! 말을 해! 그래서 내일 오라는 거야? 모레 오라는 거야?”

협회 직원은 조금 전까지 채굴팀이 올 날짜를 조율하고 있었다.

급하게 휴대폰을 다시 들었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직원 옆을, 은석과 황희준이 스윽 지나가고 있었다.

“벌써 클리어되었다고? 던전에 이상이 있는 거 아니야?”

차 안에서 쉬고 있던 경찰이 급하게 뛰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은석이 직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나머지는 각성자 협회에 알아서 하십시오.”

“아, 네…….”

그의 말에 협회 직원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야! 새끼야! 대답 안 해? 뭐 하는 거야? 채굴팀이라고 우습게 보는 거야?”

휴대폰 너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지금 채굴이 문제가 아니야. 던전이 클리어됐다고…….”

“뭔 개소리야. 오전에 들어갔다면서 무슨 던전이 그새 클리어됐다는 거야?”

“빨리 홍보팀에 연락해. 하데스 길드 김은석 헌터가 E-랭크 던전을 7시간 만에 클리어했다고.”

전화를 마친 협회 직원이 다급하게 은석이 걸어간 쪽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이미 이현의 마법진으로 세 번째 던전으로 이동한 후였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형님.”

세 번째 던전의 위치는 산속.

들어가기 전 협회 직원에게 확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은석과 황희준은 던전 근처가 아닌 산 초입의 주차장 근처에 도착했다.

황희준이 마지막 입찰 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헌터님.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아무리 스킬이라도 이렇게 빨리…….”

두 번째 던전 직원에게 연락을 받았는지, 놀라는 반응은 이전보다 약했다.

하지만 던전을 클리어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곁에 서 있던 경찰과 함께 혀를 내둘렀다.

“그럼 이번 던전도 후반 작업은……?”

역시나 빼놓지 않고 물어보는 후반 작업에 대한 권리. 은석은 빙긋 웃으며 마음대로 하시라 대답했다.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해, 은석은 빠르게 등산로로 걸어 들어갔다.

“이쯤이면 되겠지?”

황희준이 뒤를 돌아보니 직원과 경찰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D-랭크 던전은 등산로에서 꽤 벗어난 계곡 쪽에 생성되어 있었기에 이현을 불러내, 순식간에 게이트 앞으로 이동했다.

예상보다 큰 계곡과 동굴이 보였고 일렁이고 있는 검은색의 던전 게이트가 나타났다.

그사이 주변에는 이미 어둠이 깔렸다.

“해도 졌는데 게이트 색깔까지 검으니까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데요.”

“그래 봤자 D-랭크 던전이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은 했지만 은석의 생각도 비슷했다.

한 등급 차이라고 해도 앞선 게이트와 달리 뿜어내는 마력의 분위기가 달렸다.

‘마력 측정을 잘못한 게 아닐까?’

황희준을 던전 밖에 있으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은석의 눈에 게이트 주변에 득실거리는 귀물들이 보였다.

‘산이라 그런지 귀물도 엄청나게 많고.’

황희준은 마력을 가진 헌터였고, 은석의 생력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귀물들을 보자 그에게 원귀나 악귀가 붙지 않을까 염려되는 은석.

‘곧 밤이 될 텐데, 여기보다 던전 안이 더 안전하려나.’

점점 어두워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황희준의 얼굴에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으, 형님. 빨리 들어가시죠. 귀신 나올 거 같아 무섭습니다.”

영혼을 귀속령으로 부리는 은석과 함께 다니는 황희준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귀신이었다.

귀속령 이현의 텔레포트를 극찬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귀신이 무섭다는 황희준.

만약에 귀속령의 정체가 귀신이라는 걸 알려 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그래, 빨리 들어가자. 여기가 더 위험할 것 같다.”

거무스름하고 탁한 색을 띠며 일렁이는 게이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 * *

‘이상한데.’

던전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은석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의 뒤를 따라오던 황희준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은석의 등에 부딪혔다.

“아야! 형님. 앞으로 조금만.”

“그대로 있어.”

짧지만 강한 은석의 말에 황희준은 입을 꾹 다물고 차렷 자세를 했다.

던전 안, 은석의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둠…….’

바늘구멍만큼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완벽한 어둠 속이었다.

[암흑의 던전입니다. 생명력을 갈구하는 블러드 트리의 핵을 찾아서 소멸시키십시오.]

‘암흑 던전?’

은석이 어둠 속을 노려보며 눈에 귀력을 집중하자 새로 생긴 스킬, 암안이 발동했다.

그러자 눈앞의 손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던 던전 안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형님……. 저 움직여도 되나요?”

“아니, 꼼짝 말고 그대로 있어.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죽는다.”

앞으로 발을 내밀던 황희준이 그대로 굳었다.

황희준에게 보이지 않는 던전 바닥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구덩이가 뚫려 있었다.

만약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걸어갔더라면 그대로 구덩이 안으로 빠져 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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