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은석이 팀 고스트에게 정식으로 황희준을 소개했다.
“다들 인사해. 이쪽은 하데스 길드 운영팀을 맡고 있는 황희준 헌터다.”
고스트 팀원 전체가 황희준에게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예상치 못한 단체 인사에 깜짝 놀란 황희준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황희준입니다.”
그러다 갑자기 혼자 피식피식 웃기 시작하는 황희준.
“왜 웃어?”
“사람들은 하데스 길드의 헌터가 형님 혼자라고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형님의 소환수를 보고 다들 놀랄 생각을 하니 웃겨서요. 전보다 수가 많아진 것 같은데, 앞으로 더 늘어나는 거 맞죠?”
“그래, 더 많아질 거야. 그렇게 만들어야지.”
“아, 두근두근합니다. 역시 형님은 제 심장을 뛰게 하는 남자이십니다.”
“뭔 소리야.”
은석은 황희준의 뒤통수를 슬쩍 치며 걸어갔다.
꾸륵-
늪 사이를 걸어가던 그들의 귀에 독두꺼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꾸륵- 꾸륵-
“형님, 이 소리?”
“독두꺼비다. 조심해. 혀에 닿으면 마비가 올 거야.”
꾸억-
불쾌한 괴성과 동시에 늪 안에서 독두꺼비 수십 마리가 튀어 올랐다.
“공격!”
은석의 명령에 용수철처럼 쏟아져 나오는 독두꺼비들을 향한 팀 고스트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스릉- 꾸에엑-!
하지만 크기가 작은 독두꺼비를 베는 것은 쉽지 않았다. 창왕 역시 날아오르는 독두꺼비를 향해 창을 쑤셔 넣었지만, 수가 많아지면서 빗나가는 횟수도 늘어났다.
물론 귀속령이니 독두꺼비의 독에 마비될 걱정은 없었다.
“악! 형님!”
황희준을 제외하고 말이다.
단검을 휘두르며 독두꺼비를 베던 황희준의 손목에 놈의 혀가 척 감겼다. 순식간에 온몸이 나무통처럼 뻣뻣하게 굳어 그대로 쓰러졌다.
“대장! 황희준 헌터님이……!”
해머가 외치는 소리에 은석이 돌아봤다. 독두꺼비 한 마리가 황희준의 손목을 감은 채 그를 끌고 늪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슈악-
은석이 귀검을 내려쳐 놈의 혀를 잘랐다.
몸은 마비되었지만 정신은 멀쩡했던 황희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은석을 향해 무어라 말을 하고 싶은 듯 보였다.
“그래, 너 죽을 뻔했어. 그런데 안 죽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마비는 1시간 정도면 풀려.”
황희준의 몸에 쉴드를 걸어 늪에서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돌아보니 고스트 팀원이 독두꺼비와 여전히 분주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래서야…….”
싸우고 있던 이현을 부르자, 빠르게 은석의 곁으로 달려왔다.
주위를 살피던 은석이 적당히 두꺼운 나뭇가지 하나를 잘라 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황희준의 단검을 주워 나뭇가지 한쪽을 툭툭 쳐 내 뾰족하게 만들었다. 뭉툭한 쪽을 바닥에 꽂으며 이현에게 말했다.
“독두꺼비 꼬치구이를 만들어 볼까 하는데.”
뾰족한 끝을 톡톡 쳤다.
“여기로 떨어뜨릴 수 있겠어?”
은석의 계획을 이해한 이현이 지팡이를 들었다.
“쉽지는 않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지팡이를 휘둘러 작은 마법진 하나를 그렸고, 그것을 수십 개로 늘려 주변에 둥둥 떠 있게 만들었다.
이현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작은 마법진들이 빠르게 날아 고스트 팀원들의 눈앞에 멈춰 섰다.
모두 갑자기 나타난 둥근 물체에 놀라 싸우던 것을 멈췄다.
“이것을 방패처럼 팔 바깥쪽에 붙여서 사용하십시오. 날아오는 두꺼비가 닿으면 이쪽으로 떨어질 겁니다.”
은석이 모두에게 외쳤다.
“들었지? 꼬치구이 만들기 시작.”
각자의 방법으로 마법진을 이용해 독두꺼비를 잡기 시작했다.
쿠엑-
텔레포트된 독두꺼비들이 뾰족한 나뭇가지 위로 떨어져 차례대로 꽂히기 시작했다.
이현은 그 옆에서 다른 곳으로 떨어지는 독두꺼비를 지팡이 끝으로 찔러서 죽였다.
날뛰는 독두꺼비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개미.”
은석이 검은 개미군단을 불러냈다. 바닥에서 피어올라 형태를 잡은 개미 군단.
“지금부터 던전 벽에 박혀 있는 마정석을 캐낸다. 실시.”
그의 명령에 개미들이 사방의 벽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이걸로 마정석은 됐고.”
은석이 누워 있는 황희준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쯤이면 마비가 풀릴 때도 됐을 텐데.”
차렷 자세로 누워 있는 황희준의 벌어진 입에서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혼자 보기 아깝다.”
자신을 바라보는 은석을 향해 애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푸하!”
순간, 온몸을 칭칭 감은 밧줄이 풀어지듯 마비가 사라졌다. 소매로 흐른 침을 닦으며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은석이 민망해하는 황희준의 목덜미를 팔로 휙 둘렀다.
“쉬었으니 일하러 가야지.”
꽤 많은 독두꺼비가 줄줄이 꿰어져 있었다.
“윽! 이게 다 뭡니까? 형님.”
“뭐긴, 네가 손질해야 할 재료들이지.”
경악한 듯 입을 쩍 벌리는 황희준.
“독두꺼비도 먹습니까?”
은석은 대답 대신 막 죽은 독두꺼비 하나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배를 위쪽으로 돌린 뒤 발로 꾹 누르자, 커다란 주둥이가 벌어지며 혀가 길게 삐져나왔다. 혀 아래에 검은 콩 크기의 작고 둥근 무언가가 보였다.
“이거야.”
은석이 손가락으로 알려 준 후 칼로 그것을 삭 잘라 냈다. 옆에 떨어져 있던 큰 나뭇잎 위에 작은 덩어리를 던졌다.
“이게 뭡니까?”
“독두꺼비 독이야. 작지만 마비에 아주 효과가 좋지. 넌 이걸 잘라서 모아.”
황희준이 안심한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못 먹어서 아쉬워?”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형님.”
양손을 마구 흔들며 진저리치는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어느새 단검을 쥐고 독두꺼비 한 마리를 바닥에 놓은 황희준이 물었다.
“형님, 그런데 이걸 왜 모으나요?”
“뭐든 가지고 있으면 다 쓸모가 있어. 계속 쓸데가 없으면 팔면 되고. 이것도 꽤 가격이 나갈걸.”
황희준이 그제야 이해한다는 듯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독주머니를 제거하는 것을 한 번 지켜본 후 은석은 다시 팀과 합류했다.
그렇게, 각자 나름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던 중 던전 전체에 진동이 찌르르 울렸다.
강한 몬스터는 아니었지만 수가 많고 크기가 작아 힘들었던 독두꺼비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진동이었다.
[독두꺼비 던전이 클리어되었습니다.]
은석에게도 메시지가 떴다.
이현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마법진도 곧 사라졌다. 고스트 팀원들이 몸에 묻은 늪의 진흙을 툭툭 털어 내며 은석 곁으로 다가왔다.
“다 끝났어?”
황희준 역시 이제 막 마지막 독주머니 제거를 끝낸 참이었다.
넓은 나뭇잎 위에 작은 독주머니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은석이 조심스럽게 나뭇잎을 모아 독주머니가 흘러내리지 않게 잘 감쌌다.
“고생했다.”
단검에 묻은 독두꺼비의 타액을 바닥에 닦은 후 일어나는 황희준.
“아닙니다. 몬스터와 싸우시는 분들이 더 힘드시죠.”
우다다-
사방에서 검은 개미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은석의 앞에 멈춰 선 개미들이 고개를 숙여 바닥에 마정석을 뱉어냈다.
가장 가까이 서 있는 개미 주둥이 아래로 손을 내밀자, 마정석 몇 개가 그의 손안으로 떨어졌다.
은석이 개미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고했다. 돌아가서 쉬어.”
끼엑-
은석의 말에 대답하듯 개미가 소리를 질렀다.
“소환 해제.”
순식간에 검은 개미군단이 사라졌다.
“와, 형님. 1타 2피. 던전 클리어와 동시에 마정석까지 채취하시다니.”
황희준이 팔을 휙휙 돌리며 환호했다.
“희준아, 마정석이나 모아라.”
고스트 팀도 소환 해제한 후, 다시 일렁이기 시작하는 게이트로 걸어갔다.
“한, 2, 3일쯤 지났을까요?”
“하루.”
“네? 겨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고요?”
“겨우 하루라니. 하루나 걸렸지. 독두꺼비라 그만큼 걸린 거야.”
“그 사람들……. 저희 보고 엄청나게 놀라겠는데요.”
평균 E급 각성자들이 3일은 걸리는 던전을 하루 만에 깼으니 놀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 * *
하데스 길드가 들어간 지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그런데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진동이 울렸다.
경찰이 일렁이기 시작한 게이트를 쳐다보고 있는 사이, 협회 직원은 급하게 휴대폰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네, 네. 맞습니다. 어제 들어갔는데 지금 막 클리어되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같이 있던 경찰분도 보셨습니다.”
협회에 보고한 후에 그들은 게이트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 던전 안에서 은석과 황희준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 와, 진짜 하루 만에……. 허허!”
던전에서 나오는 그들을 바라보는 표정은 황희준이 예상한 그대로였다.
그 모습을 본 황희준이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수고하십시오.”
은석은 가볍게 목례를 한 후 그대로 지나쳐 걸어갔다.
정신이 퍼뜩 든 협회 직원이 뛰어오며 은석을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헌터님, 후반 작업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하데스 길드에서 마정석 채굴팀이 따로 오나요?”
은석이 싱긋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따로 후반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 저 던전 안에 있는 마정석은…….”
“이후 던전의 작업은 각성자 협회에서 알아서 하셔도 됩니다.”
협회 직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정말, 던전 후반 작업을 저희 협회 쪽에 넘겨 주시는 겁니까?”
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는 다른 던전 때문에 바빠서…….”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헌터님!!”
인사를 하고 돌아서며 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던전의 사후 관리를 포기한다는 은석의 말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가 한껏 들떠 있었다.
황희준도 협회 직원이 신나 하는 게 느껴졌는지 은석을 보며 히죽거렸다.
“들어가면 실망할 텐데, 안타깝네요.”
독두꺼비는 마나석을 뽑아 낼 필요도 없는 최하급 몬스터였다. 그나마 건질 만한 것은 독주머니뿐.
그것마저도 황희준이 대부분 잘라 내 가져왔고, 마정석 역시 검은 개미 군단이 캐내 남은 것이 얼마 없었다.
“잘 찾아보면 남은 마정석이 있을 거야.”
황희준이 차에 올라탔으나 은석은 그대로 서서 이현을 불러냈다.
“형님, 왜 차에 안 타십니까. 최대한 밟아도 1시간은 가야 합니다.”
“너 두 번째 던전 주소 알지?”
“네, 경진시에 있는 체육관입니다.”
은석이 휴대폰을 꺼내 주소를 검색했다.
“여기 맞아?”
“네. 체육관 안에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휴대폰을 이현에게 보여 주었다. 주소를 확인한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희준이 차까지 다 가져가야 하는데, 할 수 있어?”
“물론이죠.”
지팡이를 크게 휙휙 휘두르자 반짝이는 마법진이 바닥에 크게 나타났다.
마지막 점을 찍는 것처럼 지팡이를 탁 내려쳤다.
동시에 자동차와 그들 모두 순식간에 마법진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어? 벌써 떠났나?”
은석 일행이 사라진 직후, 전화를 마친 협회 직원이 그들을 찾으러 왔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갔다고?”
어리둥절한 직원이 머리를 긁적이며 두리번거렸다.
* * *
“우와! 대박!”
두 번째 던전 근처에 도착한 황희준이 소리를 질렀다.
최소 1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는데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 몇 초 만에 이동한 것이었다.
“형님, 죽이는데요. 와!”
진심으로 감동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이현을 향해 엄지를 척 들어 보이며 칭찬을 마구 쏟아 냈다.
황희준의 과한 리액션에 적응되지 않은 이현은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즐겨. 나중에는 저렇게 안 해 주면 섭섭할 때도 있어.”
은석의 말에 황희준의 액션이 더욱 커졌다.
“이제 그만하고 가자.”
이현을 소환 해제하고 황희준과 함께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입구에 서 있던 협회 직원과 경찰이 걸어오는 은석을 보자 후다닥 달려왔다.
황희준이 직원에게 던전 입찰 증명서를 건넸다.
“하데스 길드의 김은석 헌터님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