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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56화 (56/226)

56화

이승 곳곳에는 저승으로 가는 구멍들이 존재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저승차사의 인도를 받지 못한 혼령들이 저승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곳.

이제 막 하데스 길드 본부가 된 건물 역시 그중 하나였다.

건물 뒤에 있는 나지막한 산 입구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지만 입구가 좁은 수직 동굴이 뚫려 있었다.

음기가 강하고, 영험한 곳이란 소문에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출입을 엄격히 막아 놓은 곳.

세월이 흘러 산 일부를 깎아 건물이 들어섰다. 공사를 시작하며 발견한 좁고 깊은 구멍.

그 뒤로 공사 현장에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 벌어졌고, 소문이 나 땅값도 계속 추락했다.

전 재산으로 이 땅을 산 주인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급하게 무당을 불렀다.

“불길한 곳이다. 여기를 막아야 사업도 잘되고 대대손손 부귀를 누릴 것이야.”

무당의 말을 따라 커다란 바위를 옮겨 구멍을 덮었다. 상면에 금으로 부적도 그렸다.

이도 모자라 주변에 짚으로 만든 줄을 칭칭 둘렀다.

“불길한 구멍을 막았는데 왜 귀신이 더 모여드는 거죠?”

흥미로운 듯 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던 해머가 은석에게 물었다.

그들은 지금 하데스 길드 건물을 향해 걸어가던 중이었다.

달밤에 혼자 걷기 심심해서 해머와 창왕을 불러내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중이었다.

“무당을 잘못 부른 거지. 그건 불길한 구멍이 아니라 저승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그걸 막은 거야.”

“아, 그래서 귀신들이 저승으로 들어가지 못해 건물에 모여 있는 거군요.”

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승으로 가는 곳인 줄 알고 모여든 귀신이 갈 곳을 잃은 거지. 그곳에 머물다가 원귀나 악귀로 변하거나 그 전에 잡아먹히기도 하고.”

“저승으로 가는 구멍이 거기뿐인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네가 혼령일 때를 기억해 봐. ‘여기가 아니니 다른 구멍을 찾으러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날 것 같아?”

창왕이 예전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 듯 입술을 오므렸다.

“잠깐! 하이드.”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선 은석이 은신 스킬로 몸을 감췄다.

건물 근처에 다다르자, 사람들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황희준이 ‘저승에서 온 헌터’에 글을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최근 들어 인기 사이트로 급부상한 덕분인지, 인터넷에 하데스 건물로 마지막 흉가 체험을 떠난다는 글과 너튜브 영상이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새벽에 참 많이도 왔네.’

기대 이상이었다.

은석의 예상대로 흉가와 신입 길드 본부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은석이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들 사이를 질주해 지나가자, 바람이 강하게 휘몰아쳤다.

“으악!”

갑자기 회오리치는 바람에 놀란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러운 현상에 사람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 건물로 들어갈지 심각하게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은석과 해머, 창왕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손꼽히는 흉가답게 건물 안은 흉흉한 귀물들의 음기로 가득했다.

“소문대로 엄청난 곳이군.”

평범한 사람이라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기운에 기겁하고 뛰쳐나갔겠지만 은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은신한 채 서 있는 은석의 주변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원귀와 하급 악귀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은신은 그의 모습뿐만 아니라 기척도 숨길 수 있었기 때문에 하급 원귀와 악귀들은 은석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크. 이걸 잡으면 몇 레벨이나 올라가려나.”

은석이 곁에 서 있는 창왕과 해머에게 말했다.

“이런 것들 말고 일반 영혼들도 있을 거다.”

“일반 영혼요?”

“그래, 저승으로 들어가기 위해 죽은 자들은 끊임없이 여기를 찾아오거든.”

“악귀에게 다 먹히지 않았을까요?”

이곳으로 오기 전, 은석은 맵을 켜서 귀물들의 움직임을 확인했었다.

원귀가 되지 않은 수많은 영혼이 한곳에 모여 깜빡이고 있었다.

“아니, 있어. 한곳에 모여 있을 거다. 너희들은 층마다 다니면서 그런 영혼들을 모아 지하로 데리고 와. 악귀나 원귀는 소멸시켜 버리고.”

“알겠습니다. 대장.”

해머와 창왕이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 나갔다.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 귀물들이 찢어질 듯한 괴성을 질러댔다.

한두 마리라면 들리지 않았겠지만, 수백의 원귀와 악귀들이 내지르는 소리는 커다란 공명이 되어 건물 근처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으악!”

마치 건물 전체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예민한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고, 평범한 사람들마저 겁을 먹고 발걸음을 돌렸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몇 명이나 도망치는 거야. 흉가 체험 BJ라면서 왜들 저렇게 겁이 많아.”

그리고 호기롭게 실시간 방송을 하며 건물 쪽으로 다가오는 또 다른 사람도 있었다.

은석은 그들을 보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은석은 은신 스킬을 풀지 않은 채 지하실로 내려갔다.

“후아. 엄청나게 모여 있구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이었지만 그 안에 가득 채워진 혼령의 음험한 기운들이 느껴졌다.

“당연히 전기는 안 들어오겠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기 스위치를 켜 봤지만 역시나 반응은 없었다.

아공간에 손을 넣어 미리 준비해 둔 작은 손전등을 꺼냈다.

딸각-

희미한 빛에 쏘이자, 약한 혼령들이 후다닥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하실에는 여러 번의 사업체가 바뀌면서 버리고 간 물건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다.

“손전등이 없었으면 위험할 뻔했겠어.”

폐기자재들을 피하며 지하실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여기군.”

은석이 멈춰서 바닥을 내려다보니 멍청한 무당이 만들어 놓은 짚 테두리가 있었다.

세월만큼이나 오래된 줄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았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커다랗고 납작한 바위 위에는 빛바랜 부적이 그려져 있었다.

바위에도 역시 오방색을 넣어 꼬아서 만든 줄을 걸쳐 놓았다.

“단단하게도 막아 놨네.”

원귀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인간성을 잃어버린 수십의 혼령들이 바위 주변을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때였다.

‘대장!’

해머가 다급하게 은석을 불렀다.

‘왜?’

‘대장, 여기 올라와 보셔야겠습니다.’

‘악귀가 많아?’

‘그게 아니라…….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3층입니다.’

‘알았어.’

은석은 빠르게 지하실을 빠져나가 3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망치를 들고 3층 계단 입구에 서 있는 해머의 뒷모습이 보였다.

“뭐야?”

은석의 목소리가 들리자, 해머가 돌아봤다.

“무슨 일…….”

그의 앞에 나타난 이상한 복장의 혼령들을 보자, 하던 말을 그대로 멈춰 버렸다.

“대장…….”

해머가 난감한 표정으로 은석을 쳐다봤다. 그를 다급하게 부를 만했다.

시커먼 옷을 입고 눈만 드러나는 두건을 쓴 혼령들이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이것들은 또 뭐야?”

“제가 원귀들을 소멸시키고 있는데 이들이 나타나서 막았습니다.”

“막아?”

은석이 그들을 다시 쳐다보며 정보탐색 스킬을 발동했다.

[망자 이가(家), 조선 정예부대, 검술]

각각의 혼령 위에 나타나는 공통된 단어, 조선 무관.

그리고 또 하나.

[‘오랑캐를 죽이자!’]

‘오랑캐?’

똑같은 복장처럼 생각 또한 같았으나, 적어도 원귀나 악귀는 아니었다.

‘조선 시대에 죽은 자가 여기 있다는 건……. 이승을 떠돌다가 이곳까지 오게 된 건가?’

저승 구멍이 막힌 후부터 원귀나 악귀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반 영혼들이 건물 안에 머물고 있었다.

그래도 건물이 세워진 연식이 있는데, 조선의 군졸들까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다시 그들을 바라보니 여전히 ‘오랑캐를 죽이자!’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혹시 여기 있는 일반 영혼들을 소멸시켰어?”

은석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해머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악귀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저들을 발견한 겁니다.”

“공격한 건 아니고?”

“네, 복장은 저래도 악귀처럼은 보이지 않아 피하기만 했습니다.”

“잘했다.”

은석이 조선 정예부대원이라는 혼령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창왕의 비명이 들려왔다.

“으악! 대자아앙!”

4층에 올라갔던 창왕이 뛰어 내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넌 또 왜 그래?”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길 보십시오.”

3층의 혼령들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자들이 검을 치켜들며 뛰어왔다.

“저자들! 악귀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저를 공격하는 겁니까?”

4층에 머물고 있던 혼령 역시 창왕을 공격했던 것이다. 그들 역시 똑같은 복장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

은석의 눈에 허리에 붉은 띠를 두른 혼령이 보였다.

[망자 박가(家), 부대장, 검술]

[‘죽었는데 왜 죽은 자가 아닌 것 같지. 이질적인 이 느낌은 뭐지?’]

그의 생각을 읽은 은석이 픽 웃었다.

‘해머와 창왕의 정체를 의심하는 걸 보니 부대장은 다르다 이건가.’

“네놈들은 누구냐.”

부대장이 해머와 창왕에게 물었다.

은석은 악귀들이 몰려드는 걸 피하기 위해 그들 옆에 은신을 한 상태로 서 있었다.

죽은 지 오래된 일반 망자인 부대장이 모습과 기척을 감춘 은석의 존재를 느끼기는 힘들었다.

거기에 지금, 낯선 기운의 해머와 창왕에게 정신이 팔린 상태.

은석이 은신을 풀고 모습을 드러내자 그를 비롯한 혼령들이 화들짝 놀라는 건 당연했다.

“살아 있는 자다. 어떻게 살아 있는 자가 여기에 있는 거지?”

은석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 어슬렁거리고 있던 원귀와 악귀들이 몰려들었다.

퍼억-

챙-

해머와 창왕이 순식간에 놈들을 소멸시켰다. 그들의 기세에 눌린 악귀들이 뒤로 물러나, 달려들 틈만 노리고 있었다.

그들이 악귀를 소멸시키는 것은 본 부대장을 비롯한 대원들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부대장은 은석에게 무어라 말을 하고 싶은 듯 보였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알아챈 은석이 먼저 질문했다.

“넌 무관이라면서 죽여야 할 자와 안 될 자를 구별하지도 못해?”

부대장이 검을 거두고 똑바로 섰다. 검은 복면을 풀자, 한쪽이 뭉개져 없어진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내가 무관이었나?”

부대장이 은석에게 되물었다.

“네가 누군지 잊어버렸으면서 다른 자들을 보호한 거야?”

“이곳에는 선량한 자들이 많다. 우리는 오랑캐들로부터 그들을 지켜야 한다.”

그가 말하는 오랑캐는 힘없는 영혼을 해하는 원귀와 악귀였다.

그의 말에 대원들이 턱을 치켜들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죽었지만 무인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너는 살아 있는 자인데, 어찌하여 나를 보고,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는 것이냐?”

“우리는 네가 보호하는 혼령들을 저승으로 보내기 위해 여기 왔다.”

“이곳에 있던 저승 구멍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우리도 찾아봤지만, 없었다.”

은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있어. 너희가 보지 못하도록 누군가 막아 놓았을 뿐이야.”

부대장의 눈에서 이채가 돌았다.

“우리는 같은 뜻을 품고 있는 것이구나.”

“그래, 그러니까 저승에 가야 할 혼령들을 모아서 지하로 내려와.”

그때, 은석을 향해 악귀 하나가 이빨을 드러내며 빠르게 날아왔다.

서걱-

부대장이 입을 떡 벌린 채 은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무것도 없던 손에 검이 나타나 순식간에 악귀 하나를 소멸시켜 버렸다.

놀라는 사이 은석은 또 다른 악귀 하나를 더 베었다. 검을 거두고 몸을 돌리는 순간, 가까이 다가온 부대장의 팔을 통과하며 스쳤다.

[망자 박가(家), 죽음의 순간이 펼쳐집니다.]

갑자기 메시지가 뜨고 은석의 눈앞에 낯선 장면이 펼쳐졌다.

* * *

“확실한 정보인가?”

“그렇다니까. 내가 뿌린 첩자가 몇 명인데 날 못 믿나? 섭섭하네. 승형.”

박승형이 남자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럴 리가 있나. 죽마고우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겠나.”

박승형은 첩자가 보냈다는 서신을 읽으며 동선을 다시 한번 더 확인했다.

그날 밤, 박승형과 30명의 병사들은 검은 옷과 복면을 쓰고 모였다.

“오늘 우리는 저 오랑캐들을 소탕할 것이다. 이번 급습을 통해 전쟁의 승패가 갈릴 것이다. 모두 자신 있겠지?”

박승형의 질문에 병사 모두 소리 없는 고함을 내질렀다. 그들의 목표는 적의 주둔지를 기습하는 것이었다.

바닷가를 둘러싸고 있는 빽빽한 소나무 숲 안으로 조용하지만 빠르게 들어갔다.

몇 개의 천막과 막 불을 끈 듯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박승형의 신호에 병사들이 둥글게 둘러쌌다. 검을 꺼내 들고 그의 신호만 기다렸다.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동시에 적진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병사와 박승형.

“뭐야? 왜 아무도 없는 거야?”

누군가의 말에 박승형은 빠르게 달려가 천막을 들췄다. 그곳에는 애초부터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이게…….”

피슝-!

“으악!”

갑자기 소나무숲 바깥에서 화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적진에 당황한 병사들은 그대로 화살받이가 되어 하나둘씩 쓰러졌다.

천막 밖으로 뛰어나온 박승형.

퍽-

그의 양쪽 다리에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으윽…….”

굽혀지는 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검을 땅에 꽂았다. 고개를 들자, 그의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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