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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57화 (57/226)

57화

박승형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자는 적진의 위치를 알려 준 죽마고우, 이시충이었다.

그의 손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는 철퇴가 들려 있었다.

이시충의 뒤로 철퇴에 맞아 머리가 으깨져 쓰러져 있는 자신의 부대원들이 보였다.

“이시충! 네, 네가? 도대체 왜 이런 짓거리를 하는 것이더냐!”

박승형이 그를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퍽-

박승형의 얼굴에 철퇴를 날렸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얼굴 한쪽이 으스러져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고 피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잠깐 정신을 잃었던 박승형.

한쪽만 남은 눈을 천천히 뜨자,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고 있는 이시충의 얼굴이 보였다.

“무엇, 때문…….”

철퇴에 맞아 뿜어져 나온 박승형의 피를 뒤집어쓴 이시충은 야차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수는 나여야 한다네, 친구. 내 앞길은 그만 막고 이제 좀 사라져 줘야겠어.”

그의 말에 박승형이 안간힘을 쓰며 눈을 부릅떴다.

“네 이놈……! 장수 된 자가 오랑캐들로부터 백성을 지킬 생각은 하지 않고 쓸데없는 명예 때문에 이런 짓거리는 하는 것이냐?”

죽음을 앞에 두고도 백성을 걱정하는 박승형을 보며 이시충은 콧방귀를 꼈다.

“그렇게 백성이 안쓰러우면, 죽어 귀신이 되어 오랑캐로부터 백성들을 구하시게. 나는 이승에서 떵떵거리며 살 테니.”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박승형의 눈앞에 이시충의 철퇴가 날아들었다.

* * *

“허억!”

은석이 숨을 내뱉으며 잠깐 휘청거렸다.

“대장, 괜찮으십니까?”

해머가 계단 아래로 넘어질 뻔한 은석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각자 맡은 일 해.”

오로지 백성만을 생각하는 대쪽 같은 장수가 친구에게 배신당해 죽임을 당했다.

마치 사극의 한 장면을 본 것 같았다.

은석은 철퇴에 맞아 얼굴 한쪽이 으스러진 그를 바라보았다.

“박승형?”

“그것이 내 이름인가?”

은석은 박승형과 접촉하는 순간, 그가 죽음을 맞이했던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정보탐색 레벨이 오른 효과인가 보네.’

대답을 기다리는 박승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이름은 박승형이다.”

“너는 신을 모시는 자인가?”

은석이 짧게 코웃음을 쳤다.

“그거보다 더 위대한 존재지. 빨리 가서 혼령들이나 지하실로 데려와.”

의도치 않게 박승형이 죽은 상황을 알게 되었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말을 마친 은석은 빠르게 지하실로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실 안은 건물 구석구석에 숨어 있었던 혼령으로 가득했다.

웅성거리는 혼령 앞에서 은석이 말했다.

“저승 구멍을 막고 있었던 돌을 없앨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저승으로 갈 수 있다. 모두 그동안 악귀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지켜 준 저들에게 감사해라.”

은석이 지하실 입구로 들어오려는 원귀를 막고 있는 박승형과 병사들을 가리켰다.

혼령들은 오랫동안 그들이 자신들을 지켜줬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박승형과 병사들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다치지 않게 모두 뒤로 물러서.”

은석이 귀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우웅-

귀검에서 서늘한 검명이 흘러나왔다. 빨리 저승으로 가기 위해 가까이에 서 있던 혼령 몇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화악-

귀검에 푸른 화염을 입히자, 지하실 안은 조명이 깔린 듯 푸르스름하게 변했다.

은석의 모습을 바라보던 박승형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양손으로 잡은 귀검을 머리 뒤로 넘기며, 그대로 넓은 바위 중앙을 향해 내려쳤다.

빠각-!

큰 소리를 내며 바위가 둘로 쩍 갈라졌고, 곧이어 갈라진 두 개의 돌이 바스러졌다.

은석은 귀검을 아공간에 넣은 후, 발로 부서진 돌덩이들을 양쪽으로 밀었다.

바위 아래에 지름 30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구멍이 나타났다.

“이게 저승으로 가는 구멍이다.”

후욱- 푸-

저승 구멍은 마치 숨을 쉬듯 바람이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참이나 계속되던 바람 소리가 사라지더니 희미한 막이 구멍에서 솟아 나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저승 구멍이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였다.

혼령들이 서로 손을 잡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은석은 구멍 옆으로 비켜섰다.

“그동안 모두 고생했어. 원귀가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해. 다음 생에서는 더 멋진 인생을 살길 바란다.”

그의 말에 구멍으로 들어가던 혼령이 멈춰서 은석을 바라봤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만 봐도 은석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혼령들은 모두 저승으로 사라졌고 박승형과 그의 병사들만 남았다.

하지만 그들은 저승 구멍 앞으로 다가오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너희들 차례야. 저승 안 가?”

대답 대신 박승형은 은석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너는 아직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무슨 질문?”

“너는 누구인가?”

은석이 가볍게 웃음을 뱉었다.

“그게 저승에 가지 않을 만큼 중요한 질문이야? 나는 그냥 평범한 인간인데.”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평범한 인간이 귀신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저승 구멍의 위치를 알 리가 없다.”

은석은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

“말 돌리지 말고 정확하게 원하는 걸 말해. 오늘 밤에 할 일이 아주 많거든. 내가 궁금한 거야, 아니면 내 능력이 필요한 거야?”

그의 말에 검을 든 박승형이 은석 가까이 다가왔다. 그 모습에 해머와 창왕이 무기를 내밀며 은석 앞으로 나섰다.

“괜찮아. 물러서.”

해머와 창왕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다가오던 박승형은 은석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대장님……!”

입구에 서 있던 병사들이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 웅성거렸다. 은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고개를 숙인 채 말하는 박승형의 목소리에서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나를 네 부하로 받아다오. 아니, 받아 주십시오.”

[망자 박가(家)가 영원의 충성을 맹세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박승형이 은석의 귀속령이 되고 싶어 한다는 메시지.

“갑자기?”

“비범한 분이라는 걸 압니다. 저희를 거둬 주십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고개를 들어 은석을 바라보는 박승형의 두 눈에 간절함이 가득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저의 소원은 오랑캐를 죽이고 싶은 것뿐입니다. 이미 제 이름도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오랑캐를 섬멸해야 한다는 것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조선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그의 말에 은석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봐서 알겠지만 네가 살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어. 이제 오랑캐는 더 이상 없어.”

박승형이 지하실 입구를 가리켰다. 그의 손끝에 지하실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눈치만 살피고 있는 원귀와 악귀들이 가득했다.

“아직 저렇게 오랑캐가 넘쳐납니다. 백성들을 지켜야 할 저희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말을 마친 박승형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생각을 알게 된 병사들 역시 그를 따라 무릎을 굽혔다.

“대장, 이들을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옆에 서 있던 창왕이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할까? 어쨌든 이들 덕분에 꽤 많은 혼령이 악귀에게 잡아먹히지 않았지. 그래서 무사히 저승으로 갈 수 있었고.”

“맞습니다. 군사들이라 그런지 체계도 잘 잡혀 있고 의지력 또한 대단합니다. 무예도 출중하고요.”

은석이 고개를 돌려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해머를 쳐다봤다.

“네 생각은 어때?”

“대장만 좋다면 저는 언제나.”

해머다운 대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은석은 그들을 내려다보며 명령했다.

“모두 일어나.”

곧바로 벌떡 일어나 자세를 바로잡았다.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정보탐색 스킬로 그들을 천천히 살펴봤다.

“싸우고 싶다는 건 네 생각일 뿐이잖아. 부하들 중에는 저승에 가고 싶어 하는 자들이 있지 않을까?”

박승형이 아무 말 없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사실 그도 그 부분이 염려되었지만 기회를 놓칠까 봐 부하들의 의중을 미처 물어보지 못했다.

은석이 30명의 병사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잘 들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너희 중에 저승으로 가고 싶은 놈이 있다면 지금 당장 저 구멍으로 뛰어들어라.”

갑작스러운 은석의 말에 병사들이 당황한 듯 서로 쳐다봤다.

“너희 대장 눈치 볼 필요 없어. 지금까지 함께한 것만으로도 굉장한 의리야. 다음 생을 시작하고 싶은 자들은 주저하지 말고 저승으로 가라.”

박승형 역시 병사들이 편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등을 돌렸다.

“그동안 모두 고마웠다. 언젠가 다시 연이 닿는다면 또 만나자.”

눈을 감으며 병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대로 서 있기를 한참.

주위가 조용해지자, 박승형이 눈을 뜨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와아!!”

“저희가 가긴 어딜 갑니까! 끝까지 함께 갑시다!”

병사들이 내지르는 커다란 함성이 지하실 가득 찼다. 그의 병사 중에 저승으로 들어간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너희들…….”

박승형이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글썽였다.

‘좋은 대장이군.’

은석은 아무도 떠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조금 전 정보 탐색을 통해 읽은 그들의 마음은 모두 박승형을 향한 충성뿐이었다.

은석이 손뼉을 짝짝 쳤다.

“자, 마지막 버스는 떠났다. 앞으로 귀속령이 되면 내가 죽기 전까지 내 명령에만 복종한다.”

“네!!”

박승형을 포함한 31명의 혼령이 동시에 대답했다.

“너희가 그렇게 잡고 싶어 하는 오랑캐, 내가 지겹도록 잡게 해 주지.”

“우와아!”

[망자 박가(家)와 30명의 망자가 귀속령이 되었습니다. 귀속령에 대한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병사들은 수가 많으니까 일부터 서른까지 숫자대로 부른다. 너는 대장이니까 이름을 정해 주지. 뭐라고 불리고 싶어?”

박승형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

“제 이름이 박승형이라고 하셨지요?”

“그래.”

“다시 제 이름으로 불리고 싶습니다.”

“오케이.”

[귀속령 망자 박가(家)의 새로운 이름은 ‘승형’입니다.]

메시지와 동시에 승형과 대원들의 온몸에서 빛이 났다.

죽었을 때 생겼던 깊은 상처들이 사라지며 더럽고 찢어진 옷은 새롭게 바뀌었다.

검은색의 옷과 복면은 그대로였으나 헌터들의 강화복처럼 견고하고 강하게 변했다. 그들 역시 자신의 바뀐 모습이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귀속이 완료된 승형이 은석에게 허리를 굽혔다.

“주군.”

승형의 부름에 은석이 콧바람을 뿜었다.

“풉! 주군? 됐거든. 대장이라고 불러.”

“그래도…….”

“지금이 무슨 조선이냐? 그리고 저들은 네 병사니까 네가 알아서 통솔해. 명령은 너한테만 할 거야.”

“네! 알겠습니다. 주, 아니 대장.”

은석이 저승 구멍 주변에 널브러진 돌덩이들을 깨끗하게 치우고 근처에 쓰러져 있는 작은 테이블 하나를 끌고 와 구멍을 덮었다.

먼지가 묻은 손을 털면서 고스트 팀을 향해 돌아섰다.

“잘 들어라. 이제부터 본격적인 악귀 사냥을 할 거다.”

더 이상 이승을 떠돌던 혼령이 아닌 승형과 병사들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반짝였다.

“우선 내가 지금부터 건물을 돌아다니며 악귀 몇 놈에게 생력을 넣을 거다.”

“네? 생력은 왜…….”

“그래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악귀의 모습을 볼 수 있지. 그리고 그때부터 이곳은 귀신이 나오는 흉가가 아니라 고스트형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던전이라고 착각하는 거지.”

건물 밖 주차장 구석과 담 너머에는 촬영 중인 BJ들이 보였다.

조금 전 악귀들이 내지른 소리의 진동 때문에 안으로 들어오길 주저하고 있을 뿐.

찍어야 할 대상이 나타난다면 당장에라도 뛰어 들어올 것이다.

“너희들의 모습은 감출 테니 신경 쓸 필요 없고. 인간들만 다치지 않게 주의하면서 건물 안과 밖의 악귀들을 모두 소멸시켜 버려.”

“그럼 대장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실 겁니까?”

해머의 물음에 은석이 씨익 웃었다.

“물론이지. 나를 찍어 주려고 여기까지 오신 손님들을 빈손으로 가시게 하면 쓰나. 집주인의 도리가 아니지.”

은석이 몸을 가볍게 풀며 달릴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생력 한번 제대로 흘려 볼까.”

온몸에 힘을 주자, 그의 몸 전체에서 눈부시게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생력을 처음 본 승형과 병사들이 입이 쩍 벌어졌다.

‘역시 주군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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