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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41화 (41/226)

41화

[현기주, 34세, S급 힐러.]

완벽하게 정체를 숨겼는지 악귀의 정보는 나타나지 않았다.

현기주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선이 고운 얼굴을 가진 남자였다.

은빛 개미의 던전에서 윤꽃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힐러란 성스럽고 우아하고…….’

윤꽃샘이 상상하던 힐러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외모를 가진 현기주.

그런 현기주에게 사람을 죽이는 추악한 악귀가 깃들어 있었다.

용병들이 양쪽으로 비켜서 걸어오는 현기주에게 길을 만들어 주었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훔치는 용병도 보였다.

‘기적을 행하시는 종교 행사에 온 기분이군.’

현기주가 용병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는 오늘 참여한 용병들의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

남자들 사이에 서 있는 예쁜 윤지은을 보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윤지은의 옆에 서 있는 은석을 본 순간, 현기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남자는 누구지? 헌터 중에 저렇게 아름다운 남자가 있었다고?’

걸어가던 현기주가 계속 힐끗거리며 은석을 쳐다봤다.

은석은 제일 뒤에 서 있었지만 큰 키 덕분에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왜 내가 저렇게 아름다운 헌터가 있는 줄 몰랐었지?’

은석에 대해 물어보려고 비서를 찾았지만 자신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부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일단 스태프가 준비해 둔 작은 단상 위에 올라섰다.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용병들을 훑어봤다.

“반갑습니다. 저는 헌터 현기주입니다.”

그가 말하자, 쩌렁쩌렁 함성이 울렸다.

황희준이 귀를 막으며 투덜거렸다.

“왜 다들 이 난리야. 힐이라면 우리 형님이 더욱…….”

은석이 황희준을 쳐다보자, 입을 꾹 다물었다.

시끄럽다는 그의 투정과 달리 은석의 귀에는 용병들의 함성이 한없이 서글프게 들렸다.

‘예전의 나였다면 저 사람들과 함께 미친 듯이 열광했겠지.’

대부분의 용병은 길드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패배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용병은 꿈도 꾸지 못할 S급 힐러와 레이드를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다른 던전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그걸 저놈이 더 부추기는 거고.’

단상 위에서 한없이 자비로운 표정으로 연설하고 있는 현기주를 쳐다봤다.

“저의 역할은 여러분들의 앞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이 던전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마음껏 몬스터를 사냥하시고 많은 돈을 벌어 가십시오. 다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접어 두십시오. 제가 여러분의 뒤에 서 있겠습니다.”

우와와-!

신이라도 떠받드는 양 용병들이 현기주의 이름을 외쳤다.

은석은 그의 연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말에는 이유가 없었다.

왜 용병들을 위해 힐을 쓰는지에 대한 목적이 숨겨져 있었다.

용병들의 환호 속에서 스태프의 외침이 들려왔다.

“게이트 입장을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 * *

[삼각 코뿔소의 던전입니다. 5일 동안 생존하십시오]

‘생존 퀘스트.’

허공에 시간을 알려 주는 시계가 나타났다.

“던전을 들어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풍경은 정말 좋습니다. 형님.”

이번 던전 안은 넓은 초원이었다.

곳곳에 덤불과 관목 지대가 있었고, 그늘이 넓은 나무로 이뤄진 숲도 보였다.

‘삼각 코뿔소라. C-랭크 던전 몬스터답군.’

삼각 코뿔소.

다른 말로 유니콘 코뿔소, 또는 어금니 코뿔소라고도 불렸다.

이름처럼 위를 향해 휘어지듯 솟아오른 두 개의 어금니와 이마에 뾰족하게 솟은 뿔을 가졌다.

삼각 코뿔소의 딱딱한 피부와 어금니는 강화복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고기의 맛은 한 번 먹어 본 사람은 꼭 찾게 될 정도로 풍미가 좋았다.

그중에서 최고는 바로 이마에 솟은 뿔이었다.

항생제 원료로 최고로 치는 것이 바로 삼각 코뿔소의 뿔.

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몬스터였지만 그만큼 잡기도 힘들었다.

‘삼각 코뿔소가 나타나면 다들 미치겠군.’

은석과 달리 다른 사람들은 몬스터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게이트 입구에 서서 잠시 주변을 경계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몬스터는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비서가 현기주에게 물었다.

“헌터님, 어떻게 할까요? 해가 지지 않았는데 이동하는 게 좋을까요?”

“무리해서 이동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일단 여기에 베이스캠프를…….”

그르렁-

순간, 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모두 경계를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르렁-

여전히 모습은 드러내지 않은 채 헌터들을 향해 경고하듯 그르렁거리고만 있었다.

“조심해!”

누군가 보이지 않는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길드 소속은 현기주와 그의 비서 역할을 하는 헌터뿐이었다.

대부분 혈기 넘치고 경험 없는 이십 대의 용병들. 자칫하면 오합지졸들의 모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르렁-

멀지 않은 덤불 안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

뿔 세 개만 흰색을 띠고 온몸은 어두운 갈색 가죽으로 뒤덮여 있었다.

“어금니 코뿔소다!”

일반 코뿔소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거대한 놈이었다.

모여 있는 헌터들을 보며 거친 콧바람을 내 쉬었다.

“형, 형님. 저게…….”

황희준은 처음 보는 삼각 코뿔소의 크기에 놀라, 말을 더듬었다.

“괜찮아, 단독으로 움직이는 놈들이라 한 마리밖에 없을 거다.”

“네에? 한 마리밖에라니요. 형님, 저 크기…….”

삼각 코뿔소를 본 용병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몬스터를 처음 본 놈이거나, 삼각 코뿔소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헌터였다.

‘무작정 달려든다고 잡을 수 있는 놈이 아닌데.’

몸이 날래 보이는 용병이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게 보였다.

킬리지처럼 생긴 초승달 모양의 칼을 들고 있었다.

삼각 코뿔소의 어금니는 얼굴 쪽을 향해 둥글게 휘어져 있어 크다는 것 외에는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삼각 코뿔소를 처음 본 용병은 어금니를 한 번에 자를 생각이었다.

‘내 칼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보여 주지.’

휜 칼을 어금니를 향해 가로로 그었다.

카강-

호기롭게 휘두른 칼이 어금니에 부딪쳤다. 하지만 강하게 튕겨 나오는 속도에 용병은 그만 칼을 놓쳐 버렸다.

크르렁-

삼각 코뿔소가 용병의 공격에 앞발로 땅을 마구 찍어 내렸다.

용병이 칼을 줍기 위해 뒤를 돌아 달렸지만, “어, 어…….”

그들을 보던 사람들이 입을 쩍 벌리며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용병의 속도는 빨랐다. 하지만 삼각 코뿔소도 덩치와 달리 무척 빨랐다.

용병의 등을 향해 달려가던 삼각 코뿔소가 머리를 숙였다.

그대로 뾰족한 뿔을 용병의 등을 향해 내밀었다.

“헉!”

등 중앙에 박힌 뿔이 앞을 뚫고 나왔다. 용병은 단발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악-!

동시에 삼각 코뿔소가 머리를 마구 흔들어 댔다.

뿔에 꽂힌 용병의 몸이 거칠게 흔들렸다. 뚫린 배를 중심으로 찢어진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용병들 중 나름 상위권에 속한 실력자였지만,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죽었다.

아직도 뜨끈한 피를 쏟는 사체를 보며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저렇게 죽으면 S급 힐러도 소용없지.’

은석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 만약에 제가 죽어도 형님은 저를 살려 주실 수 있지요?”

겁에 질린 표정의 황희준이 은석에게 물었다.

“내가 무슨 신이냐. 찢겨 죽은 사람을 살리게. 대신 귀신으로는 살 수 있게 해 줄게.”

“형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무섭습니다. 귀신이라니요.”

크르렁-

용병을 죽인 삼각 코뿔소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주춤거리던 용병들이 마지못해 몬스터를 향해 달려갔다.

삼각 코뿔소를 둘러싼 용병들이 무기를 휘둘렀지만, “으악! 뭐야!! 왜 상처 하나 나지 않는 거야?”

가죽에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삼각 코뿔소의 뿔에 받히고 베이는 용병들이 늘어났다.

수도 없이 칼을 휘둘렀지만, 가죽을 뚫지도, 뿔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형, 형님. 정말 강한 놈입니다.”

몬스터는 한 마리였고 반 이상의 용병들이 덤벼들었다. 그런데도 용병들의 피해만 점점 더 늘어갔다.

은석은 황희준과 멀찌감치 서서 사냥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삼각 코뿔소의 가죽은 못 뚫어. 질기기로 유명하거든.”

“저렇게 큰 놈이 빠르기까지 해서 다가가기도 힘들어 보입니다.”

“그래서 잡기가 힘들다는 거야. 무턱대고 휘둘러서는 안 되거든.”

삼각 코뿔소는 높은 던전에 들어갈 기회가 적은 용병이 만나기 힘든 몬스터였다.

게다가 이곳에 있는 젊은 용병들은 던전 경험이 적은 자들이 대부분.

그러니 당연히 공략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럼 저놈은 죽일 수가 없는 건가요?”

“아니, 약한 곳이 한 군데 있어.”

“약한 곳이요?”

“그래, 턱 아래야. 거기가 유일하게 가죽이 얇은 곳이야. 거기를 찔러 머리를 관통해야 죽어.”

“턱 아래가 약점이라니……. 죽일 수 있을까요?”

삼각 코뿔소와 싸우는 용병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다친 사람들이 늘어나는데도 현기주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냥 대회를 관람하는 듯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현기주를 대신해 그의 비서가 달려가 다친 용병들을 데리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석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 많이 다치기 전에 몬스터부터 없애야겠군.’

은석이 황희준을 데리고 가 마르고 길쭉한 나무 앞에 섰다. 나무를 빽빽하게 감고 있는 넝쿨을 가리켰다.

“이걸 뜯어내.”

“예, 형님!”

황희준이 은석을 따라 넝쿨을 뜯기 시작했다.

은석이 뜯어낸 넝쿨을 손안에 넣고 마구 비벼대자, 금세 끈적한 점액질이 생겨났다.

“이건 끈끈이 넝쿨이다. 그냥 보기에는 다른 넝쿨과 다른 점이 없지만 이렇게 비비면 접착제 같은 성분이 생겨나지. 비빌 때만 손에 붙지 않으니까 멈추지 말고 계속 문질러.”

황희준이 은석의 말을 듣고 넝쿨을 비볐다.

넝쿨을 계속 비비면서 그들은 삼각 코뿔소를 둘러싸고 있는 용병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또 한 명의 용병이 뿔에 부딪혀 날아가 떨어졌다.

“지금이다. 던져!”

삼각 코뿔소의 양쪽에 자리를 잡은 은석과 황희준.

은석의 신호에 넝쿨을 놈의 등 위로 휙 던졌다.

넝쿨의 한쪽은 삼각 코뿔소의 등, 다른 한쪽은 땅바닥에 붙인 후 밟아 고정시켰다.

크르렁-

등에 찐득한 넝쿨이 붙은 삼각 코뿔소가 몸을 거칠게 흔들었다.

하지만 강력한 접착 성분이 있는 끈끈이 넝쿨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은석과 황희준은 다시 뛰어가 넝쿨을 떼어 왔다.

그 모습을 본 용병 몇 명이 그들을 따라 넝쿨을 잘라내 삼각 코뿔소에게 던졌다.

크아앙-

사방에서 날아든 넝쿨이 온몸에 붙어 꼼짝할 수 없게 된 삼각 코뿔소가 포효했다.

“창왕.”

은석이 창왕을 소환했다.

아직 은석의 귀력이 부족해 귀안을 가지지 않은 이들에게는 완전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선명하지 않은 검은 인영이 갑자기 나타나자, 용병들이 깜짝 놀랐다.

“죽여.”

그들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고 명령했다.

창왕은 긴 창을 들고 삼각 코뿔소의 몸 아래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숨을 쉬듯 움직이고 있는 턱 아래의 둥근 부분에 창을 찔러 넣었다.

창왕의 긴 창이 그대로 코뿔소의 한쪽 눈을 뚫고 나왔다.

크어어-

머리가 뚫린 삼각 코뿔소는 제대로 된 비명조차 내뱉지 못한 채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삼각 코뿔소에게 깔렸던 창왕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가 다시 은석의 앞에 나타났다.

와아-

거대한 삼각 코뿔소가 쓰러지자 지켜만 보던 용병들까지 앞으로 달려 나왔다.

적이 죽었으니 이제 전리품을 나눠 가질 시간이라는 듯, 모두의 손에 단검이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해머.”

은석의 앞에 나타난 또 다른 검은 인영.

“사람들이 몬스터에 다가서지 못하게 막아.”

은석의 명령에 검은 인영의 해머와 창왕이 죽은 삼각 코뿔소의 양쪽에 서서 무기를 치켜들었다.

삼각 코뿔소의 부산물을 가질 생각에 들떴던 용병들이 감히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용병들을 힐끗 쳐다보며 은석은 삼각 코뿔소의 옆으로 걸어가 뾰족한 뿔을 잡았다.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는 용병들을 보며 외쳤다.

“제가 죽인 걸 다들 보셨지요? 그러니 이놈의 마나석은 제가 꺼내겠습니다.”

웅성거리던 용병들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물었다.

“저기, 삼각 코뿔소는 해체하기가 힘듭니다. 빨리하지 않으면 피 냄새를 맡은 다른 놈이 올 수도 있는데, 같이하시죠?”

물론 그의 말이 맞았다.

가죽이 질긴 만큼 해체도 무척 힘들었다. 그렇다고 거대한 놈을 통째로 끌고 다닐 수도 없었다.

당연히 마나석은 은석의 몫이었지만 용병들은 나머지 부분이라도 챙겨 가고 싶었다.

단검을 든 손에 힘을 주며 은석의 입에 집중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도와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은석이 황희준을 돌아봤다.

“해 봐.”

가만히 서 있던 황희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제, 제가요? 형님 저는 삼각 코뿔소를 본 것도 오늘이 처음…….”

말끝을 흐리며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용병들이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

“이봐! 더 늦기 전에 우리가 도와준다니까. 마나석만으로 충분하지 않나?”

비아냥거림에 황희준이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할 수 있으니까 나와. 내가 준 단검 있지? 그거 들고 삼각 코뿔소 앞에 서.”

마지못해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아가야! 집에 가서 사과나 깎아라. 저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다.”

비웃는 용병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푹 숙이며 죽은 삼각 코뿔소의 곁으로 다가갔다.

잠시 삼각 코뿔소를 내려다보던 황희준이 놀란 눈으로 은석을 돌아봤다.

은석은 씨익 미소 짓고 있었다.

“보이지? 그냥 선 따라 자르면 되는 거야.”

황희준이 다시 삼각 코뿔소를 내려다봤다.

코뿔소의 몸에 누가 그은 듯 수많은 붉은 선이 나타났다.

오직 그에게만 보이는 선.

그것이 황희준이 가진 해부 스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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