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40화 (40/226)

40화

“형님, 여깁니다.”

대문을 열고 나가자, 어김없이 황희준이 은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너도 가는 거냐?”

그는 은석의 이름을 올리면서 자신도 용병 명단에 올렸다.

“형님, 당연한 거 아닙니까. 형님이 가시는데 제가 없으면 되나요.”

너스레를 떨며 껄껄 웃는 황희준.

은석은 처음 그를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그는 각성했지만 헌터가 될 생각이 없다고 했었다.

헌터계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는 정의로운 기자가 되겠다고 인스턴트 던전에 처음 들어온 풋내기.

그런데 지금은 폭로할 거라는 어두운 곳에서 은석을 위해 더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다.

‘즐거워 보이는데……. 미안해해야 하나.’

은석이 운전하고 있는 황희준을 힐끗 쳐다봤다.

“형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

“진짜 현기주 헌터는 용병들로만 레이드를 뛰는 겁니까? 가디언 소속 헌터 한 명도 없이요?”

“비서 역할 하는 놈 있어. 그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용병이지.”

“와, 설마설마했었는데 진짜였군요. 그런데 왜 그런 파티를 짜는 거죠?”

“노블레스 오블리주.”

“네? 노블…… 뭐라고 하셨습니까?”

“노블레스 오블리주, 레벨 높은 헌터의 지랄이지. S급이라고 뻐기는 거야.”

의사에서 힐러가 된 현기주.

그의 레이드는 특이했다.

던전을 들어갈 때마다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는 용병으로 채웠다.

각성자 협회에서 진행하거나, 길드에서 부족한 인원을 채우기 위한 일반적인 모집이 아니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의 레이드 방식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그때, 현기주가 말했다.

[저는 S급 힐러입니다. 길드의 선택을 받지 못한 수많은 헌터님에게 마음껏 사냥하실 기회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레이드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무슨 기회를 준다는 말입니까?”

“S급이니까 자기 혼자서 수많은 용병을 케어할 수 있다는 거지. 힐을 받을 기회도 적고 회복 포션을 주로 이용하는 용병들에게 무료로 S급 힐을 넣어 주겠다는 말이야.”

“와, 엄청난 사람이군요.”

“그렇지. 용병이 언제 S급 힐러와 레이드를 뛰어 보겠냐 이거지. 비싼 회복 포션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지, 혹시 다치더라도 S급 힐러가 뒤에 있는데 뭐가 걱정이겠어.”

게다가 현기주는 마나석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길드의 용병으로 들어갈 경우, 기본임금에 채취한 마나석에 따라 인센티브가 붙었다.

그런데 현기주는 개인당 한 개의 마나석만 내면 된다고 했다.

나머지는 모두 용병의 몫이었다.

“인스턴트 던전이나 다름없는데요.”

“그래서 용병들이 더 미친 듯이 몬스터를 잡고 마나석을 빼내는 거지.”

황희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됩니다. 돈도 관심 없어, 그렇다고 사람들의 인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거지요?”

은석이 낮게 웃었다.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모든 헌터들은 각자 던전에 들어가는 목적이 있어. 그런데 현기주의 행동에서는 목적을 찾을 수가 없다.”

“음, 형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 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몬스터 사냥과 함께 그놈이 숨기고 있는 목적을 찾아야 한다.”

“네? 목적을 찾는다고요?”

사냥만 생각하고 있었던 황희준에게 은석의 말은 뜬금없었다.

황희준은 현기주의 몸에 악귀가 빙의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현기주의 이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던전 근처 임시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번 던전은 시 외곽에 위치한 대학교 캠퍼스 안에 나타났다.

“던전 등급이 뭐라고 했지?”

“C-랭크입니다. 낮은 레벨이 아닌데 정말 용병만으로 될까요?”

“S급 힐러님이 계시니까. 그리고 다른 놈이 죽으면 그것까지 내 몫이 되니까 상관하지 않을 거야. 인스턴트 던전 들어가 봐서 알잖아.”

황희준이 대답 대신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차에서 내린 은석이 주변을 둘러봤다.

가디언 길드와 각성자 협회에서 나온 스태프의 수가 다른 길드보다 확실히 적었다.

대신 각양각색의 강화복을 입은 용병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이미 삼삼오오 팀을 이룬 듯 보였다.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던전 앞이었다. 하지만 모두 소풍을 나온 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천상의 힐러와 던전에 들어간다니 신났겠지.’

그때,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각성자 협회 이상균 부장이 보였다.

‘이상균? 저 새끼는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마주치기 전에 피하려는데, 이상균이 먼저 은석을 발견했다.

몇 발자국만 걸어도 힘들어하던 이상균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가 던전 게이트에 온 이유가 은석이기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은석군! 왜 이렇게, 허억! 연락이 안 됩니까.”

잠깐 뛰었을 뿐이었지만, 이상균은 폐를 토해 낼 듯 가쁜 숨을 내쉬었다.

“내가 얼마나, 헉헉. 전화를 많이 했었는데……. 헉헉, 몰랐습니까?”

“제가 그동안 일이 좀 많았습니다. 그런데 부장님이 여기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위험하다고 던전 근처에는 가지도 않으시는 분이.”

“은석 군을 만나러 온 거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은석 군! 도대체 이 레이드는 어떻게 참여하신 겁니까?”

이상균이 정색을 하며 은석을 쳐다봤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현기주 헌터의 용병은 늘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하나의 던전이 클리어되면 바로 다음 던전의 용병을 모집해 놓았다.

“분명 몇 주 전에 확인할 때는 은석 군의 이름이 없었는데…….”

이상균이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은석의 곁에 바싹 붙었다.

“도대체 누구를 통해서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겁니까?”

은석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 먼 곳까지 직접 오셨습니까.”

“겨우 그거라뇨. 은석 군은 우리…….”

이상균이 돈줄이라고 말하려다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가디언의 동영상 덕분에 절 찾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뭐, 어쩌다 보니 유명한 현기주 헌터님의 레이드에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은석의 대답에 이상균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그렇지요. 요즘 은석 군은 주목받기 시작한 헌터니까.”

그 역시 은석의 연락처를 묻는 길드의 연락을 많이 받았었다.

‘능구렁이 같은 새끼, 길드에 연락처를 안 주려고 내가 얼마나 욕먹으며 전화를 받았었는데……. 도대체 누구를 통해서 들어온 거야.’

빠르게 움직이는 이상균의 눈동자에서 다급함이 묻어났다.

“여기 말고 내가 더 좋은 던전을 소개해 줄 수 있습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 안에 들어 있는 던전 명단을 은석에게 보여 주었다.

“이것 보세요. 내가 은석 군을 위해 준비한 던전이 이만큼이나 많은데 섭섭합니다. 은석 군. 오늘도 여기 말고 더 좋은 곳이 있었는데…….”

은석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안타깝고 아쉽군요. 오늘 소개해 주실 던전은 어디에 있는 건가요?”

“여깁니다. 이 길드의 레이드를 소개해 주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은석 군은 모를 겁니다.”

이상균이 명단 가장 위에 있는 던전을 가리켰다.

B-랭크 던전이라는 것도 어이없었지만 레이드를 진행하는 길드의 이름이 낯익었다.

그에게 계속 전화와 문자를 보내던 길드 중 하나였다.

‘날 용병으로 보내 준다고 이번에는 길드에 돈을 받은 모양이군.’

뜨뜻미지근한 은석의 반응에 이상균은 마음이 급했다.

길드 쪽에 걱정하지 마라며 큰소리를 쳐 놓은 상태.

은석을 용병으로 넣어 주는 소개비도 이미 받아 정종렬과 나눈 후였다.

“아직 레이드 시작도 아니니까... 은석 군, 여기 말고 이쪽 길드와 함께 사냥하는 건 어떨까요?”

잠시 고민하는 척하는 은석.

정말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요, 부장님. 하지만 이번 던전은 무려 S급 힐러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F급이지만 저도 힐러입니다. 현기주 헌터님을 보며 많이 배워 보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은 좀 힘들 것 같네요.”

이상균이 식은땀을 닦았다.

“다시 한번 더 생각을…….”

“죄송합니다. 부장님. 다음 레이드는 꼭 부장님이 추천해 주시는 곳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아……. 그럼 다음에는 꼭 제가 소개해 주는 곳에 들어가야 합니다. 은석 군. 꼭입니다. 진짜 약속하는 겁니다.”

“물론이죠. 제가 용병으로 생활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 부장님이신데요. 부장님이 아니면 제가 어떻게 던전에 들어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의 말에 이상균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다음, 다음에 꼭, 다음에 꼭 믿겠습니다. 은석 군.”

돈을 받은 길드에 할 말이 생겼으니 일단 급한 불을 껐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쉬운 듯 계속 은석에게 다짐을 받는 이상균.

질척대는 이상균이 귀찮은 은석이 그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걸어가던 이상균이 지나가던 용병 하나를 잡아 세우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은석을 대할 때와 전혀 다른 표정이었다.

‘예전에 많이 보던 얼굴이군.’

질책하듯 상대방의 얼굴에 삿대질하고 있었다.

‘정보탐색.’

이상균을 보며 스킬을 발동했다.

[이상균, 41세, 일반인.]

[‘이 새끼는 수수료 입금이 너무 느려. 능력도 없는 게 돈이라도 빨리 보내야지. 이번 레이드를 끝으로 잘라 버려야겠어. 예전 김은석처럼 알아서 던전 안에서 죽어 주면 좋겠는데.’]

이상균의 생각을 읽은 은석의 한쪽 눈썹이 움찔했다.

‘역시 쓰레기는 어쩔 수가 없군.’

그의 옆에서 멀뚱히 서 있던 황희준을 돌아봤다.

“희준아.”

“네, 형님.”

“이번 던전에서 마나석 많이 뽑아내라. 레이드 끝나면 내가 아주 멋진 기삿거리 하나 알려 주마.”

은석의 제보는 언제나 최고였기에, 황희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알겠습니다, 형님. 최선을 다해서 몬스터의 심장을 꺼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힌트라도…….”

“나와서.”

그의 말에 황희준이 빠르게 양손을 흔들었다.

“맞습니다. 던전에 집중해야지요. 기사는 던전을 클리어한 후에!”

황희준을 보며 은석이 피식 웃었다.

‘이번 기사로 네가 그렇게 되고 싶었던 정의의 기자가 될 거다. 희준아.’

그때,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기주 헌터님께서 곧 도착하십니다. 다들 모이십시오.”

* * *

‘용병들이 대부분 젊군. 일부러 이렇게 뽑은 건가?’

한곳으로 모인 헌터들을 살폈다.

대부분 이십 대에서 삼십 대 초반의 젊은 헌터들이었다.

‘이래서 예전에 내가 현기주의 용병에 못 들어간 걸까? 사십 대라서?’

“저기요?”

누군가 은석에게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이십 대 중반의 여자가 은석의 얼굴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가디언 던전 브레이크, 맞죠?”

대답 없이 여자를 내려다봤다.

“혹시나 했는데, 맞네. 그 동영상 속 헌터.”

황희준이 은석을 가리키는 손을 밀어냈다.

“뭡니까? 처음 보는 사람한테 삿대질이나 하고.”

여자가 눈을 치켜떴다.

“삿대질이라뇨. 반가워서 그런 건데.”

“허! 더 반가우면 손가락으로 콧구멍도 쑤시겠네.”

“뭐라고요? 아니 이 사람은 왜 시비야!”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에 주변의 헌터들이 쳐다봤다.

“됐다. 희준아.”

황희준을 노려보던 여자가 은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여기서 라이징 스타님을 다 만나네요. 같이 던전에 들어가는데 통성명이나 하죠. 난 윤지은이예요.”

“싫은데.”

은석의 대답에 윤지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신경 쓸 것이 많은데 은석은 굳이 또 다른 헌터를 알고 싶지 않았다.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윤지은을 보며 황희준이 고소하다는 듯 킥킥 웃었다.

그녀가 다시 뭐라 말하려는 순간, 용병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천상의 힐러! 현기주 헌터님이시다!”

황희준과 은석, 그들을 노려보던 윤지은도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막 도착한 벤 안에서 현기주가 내리고 있었다.

‘여기가 무슨 영화제 레드카펫이야? 악귀가 미친놈인지, 미친놈한테 악귀가 들어가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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