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은석의 눈앞에 선물을 받겠냐는 메시지가 떴다.
“집을 받을 수 있다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났다.
“내가 죽은 자들의 스킬은 받아 봤는데, 이젠 던전 안에 있는 집까지 받으라고?”
진지한 표정의 성주와 가솔들은 잠자코 은석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들의 태도를 보아 거짓이거나 함정 같지는 않았다.
“마녀의 마나석을 찾았으니 이것만으로 충분해.”
“이것은 죽은 뒤에도 마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던 저희 카포텐 가문을 구해 주신 것에 대한 보답입니다.”
“딸한테 죽은 것도 억울할 텐데 선물은 무슨.”
은석이 무심히 던진 말에 성주가 슬프게 웃었다.
“저는 돈을 벌기 위해 힐다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외롭게 자란 딸아이가 환상에 빠져든 것도 아마 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카포텐 가문에 남은 자는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어차피 누구도 살지 않을 곳입니다. 용사님이 사용해 주십시오.”
은석은 입을 꾹 다물고 성주를 바라만 봤다.
“그러니 저 집을 가져가십시오. 카포텐 가문의 모든 것입니다.”
그 순간, 던전 전체에 강한 진동이 울렸다.
“대장, 던전 게이트가 곧 닫힌다는 신호입니다.”
성주의 혼령과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을 지체했다.
“해머! 저놈 업고 날아.”
해머가 쓰러져 있는 망자를 업고 탑을 빠져나갔다.
인스턴트 던전은 클리어 후 즉시 게이트가 열린다.
짧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클리어가 되면 바로 빠져나와야 했다.
[성주 제임스 카포텐의 선물을 받으시겠습니까?]
계단을 달려 내려가는 은석의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알았어! 받아. 받는다고!”
[선물을 어디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저승 훈련장.”
이상한 건물을 은석의 집 앞에 놔둘 수는 없었다.
[저승 훈련장으로 옮기겠습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한 은석의 눈에 사막 전갈이 보였다.
황희준은 여전히 수풀 안에 누워 있었다.
“왜 아직 기절하고 있는 건데!”
깨울 시간이 없어 황희준을 들쳐 메고 다시 달렸다.
맑은 유리창 같은 게이트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팟 하고 사라질 것 같았다.
“으아악!”
은석은 질주했다.
미친 듯이 달려 게이트 밖을 빠져나와 바닥을 굴렀다.
그의 속도가 아니었다면 아마 던전 안에 갇혔을 것이다.
구르면서 놓친 황희준이 나무 아래에 거꾸로 처박혔다.
“후…….”
바닥에 벌러덩 누워 숨을 내쉬었다. 던전 밖은 어두웠다.
은석은 누운 채로 주머니에서 마녀의 마나석을 꺼냈다.
[유니크 아이템입니다. 어떠한 종류의 환각도 이겨 낼 수 있는 내성이 생성됩니다.]
기능을 보니 생각보다 꽤 괜찮은 아이템인 것 같았다.
‘어쩐다…….’
은석은 마나석을 보며 고민에 잠겼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이번 던전을 구입했다.
귀력 레벨은 엄청나게 올랐지만, 돈이 될 만한 것은 이 마나석 하나뿐이었다.
‘아니면 성주의 반지라도 팔까? 돈 좀 받으려나.’
나무집을 선물로 주며 성주가 꼭 가져가라던 그의 반지.
손가락에 끼고 나온 그의 반지를 보며 고민하던 은석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흡수.”
시동어를 말하자, 마녀의 마나석이 은석의 손바닥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모든 환(幻)에 대한 내성이 생성되었습니다.]
마나석 흡수가 완료되었다.
연달아 뜨는 메시지.
[레벨 상승으로 새로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활성화하시겠습니까?]
“상태창.”
[상태창]
이름: 김은석
프로젝트명: 저승 헌터
클래스: 힐러(F등급)
히든클래스: 네크로맨서(저승형 Lv20)
[특성]
귀안(승계)
생력(승계)
귀력: 2,000/2,000
[스킬]
정보탐색: Lv3
정신감응: Lv1
팔귀의 재생력
방어력: 환(幻)
쉴드/하이드
푸른 화염
[귀속령]
+고스트형
+몬스터형
+인간형
마나석으로 모든 종류의 환각에 대한 방어력이 생겼다.
게다가 새로운 패시브 스킬이 보였다.
‘정신감응?’
[새로운 스킬을 활성화하시겠습니까?]
“그래.”
대답하자, 눈앞에 빛이 번쩍였다.
[정신감응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스킬 효과.
은석이 씩 웃었다.
‘해머.’
은석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해머가 깜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 앉아 있는 은석을 쳐다봤다.
‘대, 장. 어, 어떻게?’
놀란 해머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새로운 스킬인데 괜찮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연락하기도 좋고.’
‘그,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저승에 가서 마구간이나 잘 도착했나 찾아봐.’
‘네, 알겠습니다.’
해머를 소환 해제했다.
“으으…….”
그제야 깨어나려는 듯 황희준이 신음을 흘렸다.
구르면서 몸이 접혀 꽤 불편한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그는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으윽…….”
신음을 내뱉으며 아픈 허리와 목을 만졌다.
고개를 들자, 일어서고 있는 은석이 보였다.
“형님?”
“이제 정신이 들어?”
비틀거리며 일어선 황희준.
아픈 허리를 잡고 은석에게 다가갔다.
구르면서 어디에 부딪혔는지 이마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형님, 던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가 몬스터의 습격으로 정신을 잃었나 봅니다.”
은석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황희준의 상처에 손가락을 대고 소량의 생력을 주입했다.
상처는 물론 뻐근했던 몸이 거짓말처럼 부드러워졌다.
황희준이 은석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혹시 마나석이 있는지 찾았다.
“형님, 마나석은……?”
“희준아, 네 말대로 인스턴트 던전은 럭키 박스더구나.”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에도 꽝이다.”
은석의 말에 황희준이 휘청거렸다.
“죄송합니다, 형님. 제 잘못입니다. 제가 이런 던전을 입찰받는 바람에.”
연신 허리를 굽혀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왜 네 잘못이야? 내가 하라고 시킨 건데. 잘잘못을 따지자면 내 잘못이지.”
은석이 어깨를 툭툭 쳐 주며 위로하자 황희준은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제가, 제가 더 잘 골랐어야 했는데…….”
은석이 황희준의 등을 퍽 내려쳤다.
“야 인마! 내가 괜찮다는데 왜 사람을 나쁜 놈으로 만들어.”
돈이 될 만한 것은 없었지만 레벨 업과 환각에 대한 방어력을 얻었다.
은석은 나쁘지 않은 성과라고 생각했다.
‘돈은 다시 벌면 되는 거고.’
굳이 그 사실을 황희준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형님……. 정말이지 형님의 그릇은 태평양보다 더 넓습니다.”
은석은 웃음을 속으로 꿀꺽 삼키며 말했다.
“집에 가자. 피곤하다.”
황희준이 주차해 놓은 차를 향해 부리나케 뛰어갔다.
찰싹-
은석이 바닥에 누워 있는 망자의 뺨을 때렸다.
찰싹-
여전히 환각에 빠져 있는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야! 그만 일어나. 버리고 간다.”
눈을 번쩍 뜬 망자.
놀란 듯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 여기가 어딥니까?”
환각 독이 다 빠져나오지 않은 듯 두 눈이 샛노란 빛을 띠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망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생력을 조금 흘려 넣자, 노란빛은 금세 사라졌다.
망자 역시 정신이 맑아진다는 느낌을 받으며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제가 어떻게 된 건가요?”
“마녀의 저주에 빠졌었어.”
“네? 저주요? 그럼 제가…….”
“어. 영원히 마녀의 노예로 살아야 해. 미안하다. 구해 주지 못해서…….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놀란 망자가 머리를 감싸 안았다.
혼란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더니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때 멀리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가자.”
“……마녀에게 가는 건가요?”
“아니, 집에 가자고.”
“네?”
은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지식한 게 상당히 속이기 쉬운 스타일이야. 둘러봐라. 여기가 던전 안이냐?”
던전이 생겼던 폐역인 걸 확인한 망자가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앞서 걸어가는 은석을 따라 뛰어갔다.
‘대장. 해머입니다.’
‘어. 말해.’
‘건물을 찾았습니다.’
‘가짜 아니야?’
‘아닙니다. 진짜 건물이고요. 잠시 훈련장에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이상한 게 따라 들어갔어?’
‘아닙니다. 문이 열리지 않아서 안을 보지는 못합니다.’
‘알았어. 여기 정리 좀 하고 내려갈게.’
‘네, 알겠습니다. 대장.’
황희준이 차 앞에서 은석이 좋아하는 콜라를 들고 서 있었다.
은석이 웃으며 막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시원한 콜라를 받아 들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형님.”
벌컥벌컥 콜라를 들이켜며 백미러를 힐끗 살폈다.
은석의 농담에 긴장했던 망자의 표정이 이제는 안심한 듯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녀의 노예보다는 내 노예가 되는 게 백번 낫지.’
은석이 씩 입꼬리를 올렸다.
* * *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방에 들어선 은석.
껌껌한 창문 밖에 떠 있는 망자가 보였다.
드르륵-
창문을 열고 멀찌감치 서 있는 망자를 보며 말했다.
“들어와 있으라니까 왜 귀신처럼 그러고 서 있어. 무섭잖아.”
망자는 조금 전 은석을 따라 집 안에 들어섰다. 그때, 거실에 누워 있는 청안과 마주쳤다.
뚱뚱한 고양이의 모습이었지만 엄연히 지옥 감옥을 지키는 수문장.
청안과 눈이 마주친 망자가 기겁하고 집 밖으로 도망쳤다.
“빨리 들어와.”
두려움이 남아 있어서인지 은석의 부름에도 섣불리 들어오지 못했다.
“괜찮다니까. 돼지는 지금 누나들 방에 있어.”
요즘 청안은 미술을 전공하는 첫째 누나 김은희의 새로운 모델이 되었다.
움직임이 거의 없는 돼지 고양이에게 완벽한 일이었다.
그 말에 한참을 망설이던 망자가 쭈뼛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탁-
창문을 닫는 소리에도 망자는 어깨를 움찔했다.
“몬스터까지 죽이는 헌터가 저런 뚱보 고양이가 무서워?”
입술을 꾹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멀뚱히 서 있는 그를 향해 책상 의자를 내밀었다.
“올려다보기 힘들어. 거기 앉아.”
의자에 앉자, 은석이 물었다.
“이름.”
“네?”
“이름이 뭐야. 살아 있을 때 이름 말이야.”
“유성찬입니다.”
“가디언 길드 헌터였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가디언 길드를 따라다니는 거지?”
유성찬은 이빨을 꽉 깨물었다.
대답은 없었지만, 그의 얼굴빛이 검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억울하게 죽은 자의 원한과 분노였다.
“이봐. 내가 죽은 자들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어.”
거친 숨을 내뱉기 시작한 유성찬.
“악귀로 변하면 바로 소멸이다. 정신 줄 잡아라.”
은석의 날카로운 눈빛에 고개를 숙였다.
그의 경고가 효과 있었는지 얼굴색이 다시 돌아오고 거친 숨도 가라앉았다.
“행색을 보아하니 죽은 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은데,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기억나?”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는 시간과 장소까지 선명하게 기억났었는데…….”
“이제는 안 난단 말이지.”
“네…….”
죽은 자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져 간다.
결국에는 자신이 이승에 머물게 된 목표도 잊어버린다.
원한만 남아 악귀가 되든가, 살아 있을 때의 행동만 반복하는 잡귀가 될 가능성이 컸다.
“죽은 자가 자신을 잊지 않기가 힘들지.”
은석은 어깨를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그를 바라봤다.
“누군가를 찾고 있다고 했었는데, 널 죽인 자냐?”
“그렇습니다.”
“복수?”
“복수는 맞습니다만, 저만의 복수는 아닙니다.”
유성찬 특유의 진중한 눈빛이 돌아왔다.
“그놈은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과 헌터들을 죽였습니다.”
“네 말대로라면 연쇄 살인범인데, 그 정도 살인자를 경찰들이 모른다고?”
“네.”
은석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자가 가디언 길드에 있어?”
“맞습니다. 가디언 길드를 대표하는 헌터인 현기주입니다.”
“현기주? 그, 천상의 힐러?”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변한 유성찬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기주.
가디언 길드의 간판스타이자, 한국의 몇 안 되는 S급 힐러였다.
게다가 각성 전에는 의사로 활동했다는 특이한 이력까지 가진 스타 헌터.
“흠. 현기주가 연쇄 살인범이라는 건 나라도 믿기 어려운데.”
“현기주뿐만이 아닙니다.”
“공범이 있다는 말이야?”
“네.”
은석이 미간이 찌푸려졌다.
“한 놈도 아니고, 두 놈씩이나. 네 말만 듣고 두 놈을 죽이는 건…….”
“사람 한 명에 악마 하나입니다.”
예상하지 못한 그의 대답.
“뭐? 악마?”
“네, 현기주는 악마에 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