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악마가 씌었다고?”
“네, 제가 분명히 봤습니다. 현기주의 몸 안에서 악마가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 모습을 말입니다.”
은석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악귀를 말하는 것 같은데, 악귀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지.’
유성찬에게 물었다.
“네가 말하는 그 악마의 생김새는 기억나?”
“다른 기억은 잊어도 그 모습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절대 잊을 수가 없는 모습이었으니까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려 S급 헌터에게 빙의된 악귀였다.
‘그 정도 대단한 놈을 저승에서 모를 리가 없는데…….’
은석이 팔찌를 찬 팔을 흔들었다.
“이리 와.”
그의 부름에 팔찌가 진동했다.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청안이 침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허억!”
갑자기 나타난 청안의 모습에 유성찬이 벌떡 일어났다.
숨을 곳을 찾지 못해 방구석으로 피신해 최대한 청안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부산한 유성찬과 달리 청안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성찬의 얼굴에서 공포가 사라지지 않았다.
“괜찮아. 너는 지금 잡귀가 아니라 내 손님이야. 걱정하지 말고 앉아.”
은석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청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은석이 두어 번 더 그를 불렀으나, 도저히 청안 가까이 갈 용기가 나지 않는지 머뭇거렸다.
“하……. 도대체 이런 돼지 고양이가 뭐가 무섭다고 다들 저래.”
청안이 이빨을 드러내며 그르렁거렸다.
“셋째 인간, 이제 이 몸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겠느냐.”
청안의 거들먹거리는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유성찬이 서 있는 구석으로 의자를 밀었다.
“그러면 거기 앉아서 말해. 그러고 서 있으니까 나까지 불안하잖아.”
청안이 은석을 노려봤다.
“바쁜 이 몸을 도대체 왜 부른 것이냐. 저 망자를 삼키라고?”
청안의 말에 유성찬은 다리가 풀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쁘기는. 유성찬, 네가 봤다는 그 악귀의 생김새에 대해 말해 봐.”
유성찬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제, 제가 본 악마는 한복 같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한복?”
“정확하게 요즘 입는 한복은 아니고……. 뭐랄까, 한복 비슷하게 생긴 옛날 옷이었습니다. 상투에서 삐져나온 머리카락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고요.”
“지옥에 저렇게 생긴 악귀 있어?”
청안이 앞발을 들어 수염을 정리했다.
“이승의 역사만큼 긴 곳이 저승이다. 옛날에 죽은 사람이 한둘인 줄 아느냐.”
“그런 거 말고 다른 특징은 없어? 특이한 거라든가.”
“음…….”
유성찬이 미간을 찌푸리며 악귀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 오른쪽 귓불이 찢어져 있었습니다.”
“찢어져?”
“네, 귓불이 얼굴에 붙어 있지 않고 너덜거렸습니다. 왼쪽은 정상이었고요. 그리고 몸이 투명해 보였습니다.”
설명을 듣던 청안이 이빨을 드러내며 하악거렸다.
그 소리에 유성찬이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성질내지 말고 알면 누군지 말이나 해.”
“묘귀를 부리는 주술사다. 이름이 아마, 김헌이었던가?”
“묘귀?”
“원한이 강한 귀를 잡아서 다른 이들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사용하는 것을 묘귀라고 하지.”
“강한 놈인가 보지? S급 헌터의 몸 안에 빙의된 걸 보면.”
청안이 고개를 저었다.
“약한 놈이다. 자신이 부리던 묘귀가 강해져 도리어 죽임을 당한 멍청이지.”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때 사람들은 주술사 김헌을 찾아갔다.
그의 신묘한 재주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김헌의 묘귀가 붙은 이는 병에 걸린 듯 앓다가 죽었다.
아무도 누군가의 사주로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나 약한 놈이길래 자신이 부리던 귀신한테 죽어?”
“묘귀를 부렸으나 제대로 알지 못한 무지 때문이지.”
김헌은 박수무당이었지만, 갈수록 신력이 약해져 결국엔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
우연히 부리게 된 묘귀 덕분에 그는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묘귀는 사람의 정기를 흡수해서 죽인다. 그리고 흡수한 정기로 점점 더 강해지지.”
은석이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자신보다 강해진 묘귀를 견디지 못해 당한 거구나.”
“그렇다. 저주를 행한 자가 자신의 저주에 죽은 거지. 수없이 저지른 악행으로 악귀가 되었지만 묘귀의 저주로 인해 아무런 힘도 없는 빈껍데기 악귀일 뿐이다.”
“그래서, 투명하게 보였던 것입니까……?”
용기를 낸 유성찬이 청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 업보와 저주로 악귀가 된 놈일 뿐이다. 힘이 없으니 지옥에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놈이지.”
“그런 놈이 어떻게 현기주에게 빙의를 한 거지.”
청안이 일어나 길게 기지개를 켰다.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려 천천히 거실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그걸 알아보고 잡아 오는 게 네가 할 일이지. 이번에는 악귀보다 그놈이 빙의한 인간이 더 문제일 듯싶구나.”
“먼저 현기주에 대해 알아봐야겠네.”
은석이 혼잣말을 하며 유성찬을 바라봤다.
“진짜 악귀가 쓰인 놈이면 내가 소멸시킬 테니까 넌 그만 가 봐.”
열린 창문을 바라보며 턱짓을 했다.
그 말을 듣자, 유성찬이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저를 팀원으로 받아 주십시오. 싸우고 싶습니다!!”
“결국 복수냐?”
은석의 질문에 금방 대답하지 못하는 유성찬.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절대 악귀가 되지 않겠습니다.”
유성찬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은석을 바라봤다.
은석이 픽 웃었다.
“솔직해서 좋네. 적당한 복수심은 발전에 아주 좋은 원동력이야.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고 있어.”
[망자 유가(家)를 귀속하시겠습니까?]
“쪼잔하게 계약직 이런 거 안 한다. 인턴 기간도 없고. 나는 무조건 종신 계약이야.”
은석의 말에 유성찬이 환한 웃음을 지었다.
“너는 이제 내 귀속령이다. 한번 죽도록 싸워 봐. 죽을 일은 없겠지만.”
유성찬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감사합니다.”
“귀속.”
[망자 유가(家)가 귀속령이 되었습니다. 귀속령에 대한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너는 이제부터 유성찬도, 망자 유가도 아니다. 귀속령으로 새롭게 태어났으니 새로운 이름이 있어야겠지? 불리고 싶은 이름 있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창왕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창왕? 설마 창술의 왕, 이런 뜻은 아니겠지?”
유성찬이 당당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맞습니다. 저의 꿈은 창술의 왕입니다. 저의 모든 닉네임 역시 창왕이고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
은석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냐. 앞으로 창왕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은석은 낯간지러운 이름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저승 시스템이 유성찬의 의지에 반응했다.
[귀속령 망자 유가(家)의 새로운 이름은 ‘창왕’입니다.]
귀속령 창왕의 온몸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는 이미 인스턴트 던전 안에서 은석의 생력을 경험해 보았다.
하지만 이 느낌은 생력과 전혀 달랐다.
생력이 짧은 시간 힘을 주는 에너지 드링크 같았다면, 귀속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힘의 원천을 얻는 기분이었다.
피가 묻어 더럽고 찢어진 옷이 변했다.
살아 있을 때보다 더욱 강력한 강화복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느낌, 나는 다시 태어났구나.’
변한 자신의 모습에 감격하고 있는 창왕.
‘이름 진짜……. 무협 소설도 아니고 창왕이 뭐야. 창왕이.’
그는 아직 새로운 귀속령의 이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귀속이 완료되자, 창왕이 은석에게 허리 굽혀 깍듯이 인사했다.
“일어나. 이런 인사 필요 없다.”
은석이 악수를 청했다.
“팀 고스트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창왕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은 무슨. 적당히 해. 적당히.”
은석이 목숨을 잃을 때까지 그와 함께할 두 번째 팀원이었다.
자작나무 액자 앞으로 걸어갔다.
“같은 팀이 되었으니 앞으로 지내야 할 훈련장을 소개해 주지. 마구간도 확인해야 하고.”
은석의 손안에 커다란 손잡이가 나타났다.
‘저승으로 가는 길이 방 안에 있다고?’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창왕에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놀라움의 정점을 찍은 것은 저승의 훈련장이었다.
‘도대체 대장은 어떤 분이시길래…….’
그는 이승을 떠돌던 망자.
저승차사에게서 도망친 후로 저승은 그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내 발로 저승에 들어가다니.’
훈련장에 들어서자 그들이 걸어온 긴 길이 사라졌다.
은석의 연락을 받은 해머가 서 있었다.
“인사해. 이쪽은 네 선배인 해머다.”
해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창왕은 악수 대신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창왕이라고 합니다.”
진지한 그의 소개에 은석은 살짝 인상을 썼다.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저 이름을 말할 수 있는 거지.’
“이름이 멋집니다. 창왕이라니.”
해머의 칭찬에 창왕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은석이 해머를 쳐다봤다.
그의 표정으로 보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인 것 같았다.
‘허! 나만 부끄러운 거야?’
인사를 나누는 그들 곁으로 최성운 차사가 다가왔다.
검은 갓에 검은 도포를 휘날리며 서 있는 저승차사를 보자, 창왕이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차사님.”
최 차사가 은석에게 물었다.
“저자가 너의 두 번째 귀속령이냐?”
“네, 저희 팀의 새로운 식구입니다.”
은석이 창왕을 쳐다봤다.
“인사드려. 우리 훈련을 담당하시는 최성운 차사님이시다.”
잠시 주저하던 창왕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올렸다.
“창왕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최 차사가 그를 천천히 살펴봤다.
“움직임을 보아하니 너는 무예를 수련한 무인이구나.”
최 차사의 말에 창왕의 눈이 반짝였다.
“그걸 어떻게? 저는 창을 수련하고 있습니다.”
“창술이라……. 나 또한 과거에 창술을 즐겼었지.”
창왕이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은석이 그를 막았다.
“자, 무인들의 대화는 잠시 후에 하시고요.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창왕의 표정에 아쉬움이 흘렀다.
“해머, 가자.”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카포텐 성주의 낡은 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역시 다시 봐도 별것 없어 보이는 나무집인데 말이지.”
외부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나무를 이어 붙여 만든 낡은 집이었다.
집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작은 창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은석의 키 정도 되는, 입구처럼 보이는 문 하나가 전부였다.
“들어가 봤어?”
해머에게 물었다.
“들어가 보려고 했습니다만, 열리지 않았습니다.”
“망치로 부숴 버리지.”
“그랬는데……. 보기와 다르게 튼튼하더군요.”
“그래? 지금 다시 해 봐.”
해머가 그의 망치를 꺼내 들고 문을 향해 있는 힘껏 휘둘렀다.
쾅-!
소리만 듣는다면 문이 아니라 건물 전체가 무너졌어야 했다.
보기에는 툭 치기만 하면 부서져 내릴 것 같은 낡은 문이었지만 끄떡없었다.
“오, 내구성 대단한데.”
은석이 천천히 집 주변을 돌았다.
다시 봐도 작은 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벽에 손을 대자 보이지 않는 막이 쌓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 집이 아니군.”
다시 문 앞으로 돌아온 은석.
문손잡이가 있어야 할 부분에 작은 홈이 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그것은 직경 1센티 정도 되어 보이는 둥근 구멍이었다.
구멍은 뚫려 있지 않았으나 요철의 흔적이 보였다.
“대장, 이게 뭘까요? 집 전체에 구멍은 이거 하나뿐입니다.”
은석이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이 반지가 열쇠라고 했던가.’
반지를 빼내 구멍에 맞췄다. 요철 부분은 반지에 새겨진 카포텐의 문장이었다.
딱 맞아 들어가자 집 전체가 크게 진동했다.
단단했던 문이 저절로 열리자, 은석이 나무문을 밀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창문 하나 없으니 당연히 아주 어두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커다란 창문이라도 있는 듯 자연광이 건물 내부에 가득했다.
은석의 뒤를 따라 들어온 해머와 창왕, 최 차사의 입이 떡 벌어졌다.
밖에서는 천천히 돌아도 1분이 채 걸리지 않는 작은 집이었다.
내부에는 넓은 거실을 중심으로 사방에 수십 개의 문이 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