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은석은 영업 중인 집 근처 치킨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저녁을 먹으며 용병으로 일해서 받은 돈을 부모님께 드릴 생각이었다.
‘돈만 드리기는 그렇고, 닭이나 몇 마리 사갈까. 사람 다섯 명에 괴물이 하나니까 몇 마리를 사야 하는 거지? 한 명당 한 마리면 될까?’
늘 혼자 음식을 시켜 먹었던 은석이었다.
당연한 듯 1인 1닭을 주문했다.
집으로 들어오는 은석을 보고 김은영이 놀라 소리쳤다.
“뭐야? 오늘 전부 닭 먹고 닭 되는 날이야?”
치킨 6마리를 양손에 들고 서 있는 은석.
김은희는 늘 그렇듯 시니컬한 표정으로 은석을 보고 있었다.
“한 명이 한 마리는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오늘 못 먹으면 내일 먹으면 되지. 우리 아들이 사 온 닭은 내일도 맛있고, 모레도 맛있으니까.”
은석의 엄마가 냉장고에 들어 있는 시원한 맥주와 콜라를 꺼내 왔다.
“여보, 은석이가 치킨 사 왔어요. 나와서 드세요.”
아버지 역시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치킨 6마리를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모습에 식구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
“좋네. 오늘은 닭 다리 서로 먹겠다고 싸울 필요도 없고.”
김은영이 닭 다리 하나를 들었다.
“자, 우리 닭 다리로 건배 한번 해 볼까요?”
모두 하나씩 집어 들고 공중에서 부딪쳤다.
유쾌한 웃음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혹시 내일 뭐 하세요?”
은석이 닭을 뜯고 있는 식구들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회사 가시고 엄마는 집에 계실 거고.”
“난 화실 갈 거고 김은영 넌 뭐 할 거야?”
“나는 우리 파돌이랑 집에서 놀 거야.”
김은영이 소파 위에 누워 있는 청안을 덥석 안고 얼굴을 비벼 댔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
“내일 라인동 쪽에 던전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을 들어서요. 그쪽으로 가지 마세요.”
“이야! 집에 헌터가 있으니까 어디에 던전이 생긴다는 것도 미리 알고 좋은데.”
은석이 멋쩍게 웃었다.
“절대 라인 사거리 쪽으로 가지 마세요. 진짜 위험할 수도 있어요.”
* * *
아침 일찍 라인동 사거리 근처에 도착한 은석.
“역시 그런 글을 읽고 그냥 지나갈 리가 없지.”
아침부터 인터넷에서는 진짜 고스트 던전이 열릴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로 뜨거웠다.
라인동 사거리는 새벽부터 경찰과 헌터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사거리 근처를 가득 메웠다.
던전이 생길 수도 있다는데, 사람들이 더 몰려드는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사람들 중에는 고스트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 중인 헌터도 있었다.
“미친 새끼, 역시 사람들을 더 모으기 위해 그런 글을 올린 거였어.”
은석이 이빨을 꽉 깨물었다.
“형님, 여기 계셨습니까!”
황희준이 급하게 뛰어왔는지 숨을 몰아쉬었다.
“네가 여기 왜 오는 거야?”
“역시 형님이 오실 줄 알았습니다. 형님이 계신 곳에 당연히 제가 있어야지요.”
해맑게 웃고 있는 황희준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은석이 여길 온 것은 당연히 고스트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물론 혼자서 말이다.
고스트 던전을 예견한 놈은 라인동 사거리에 생긴다고만 했을 뿐, 정확히 어디에 열리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던전의 특성상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던전 안으로 떨어질 수도, 단 한 명도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어차피 빨리 달려가면 못 따라올 테니 상관없겠지.’
“형님, 긴장되는데요. 경찰이 막아 놓은 저 사거리에 생기는 걸까요?”
은석은 황희준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장면 때문이었다.
귀물들이 라인동 사거리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었다.
‘저기에 마력이 모이고 있구나.’
마력이 많은 곳에 모이는 귀물의 습성 덕분에 누구보다 빨리 던전이 생길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은석이 사람들의 사이를 지나 귀물들이 향하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형님, 어디 가십니까? 저도…….”
황희준이 은석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사람들에게 밀려 자꾸만 멀어졌다.
은석이 귀물에 집중하느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존재가 있었다.
사거리에 도착하면서부터 그의 곁을 맴돌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멀어지는 황희준과 반대로 인영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인영 역시 혹시 은석이 눈치챌까 최대한 기척 없이 따라갔다.
귀물들이 건물 뒤편으로 사라졌다.
건물 사이로 들어간 은석의 눈에 바닥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귀물들이 보였다.
“저기에 생긴다 이거지. 어디 그 유명하다는 고스트 던전에 한번 들어가 볼까.”
파앗-
순식간에 검은 구멍이 나타난 바닥.
바닥 위에 세워져 있던 입간판과 주차된 자동차, 심지어 건물 일부까지 그대로 구멍 아래로 떨어졌다.
“저기다! 저기에 고스트 던전이 생겼다!”
갑자기 사라진 건물을 본 누군가가 소리쳤다.
던전이 사라지기 전에 뛰어들려는 순간.
“나도 같이 가요!”
은석의 주변을 맴돌던 인영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의 손을 꽉 잡고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뭐야! 이 여자?’
갑자기 나타난 여자의 행동에 반응할 틈도 없었다.
은석과 그에게 붙은 여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고스트 던전 아래로 빠르게 떨어졌다.
* * *
“이봐요. 아저씨. 눈 좀 떠 봐요. 남자가 무슨 기절을 이렇게 오래 해요.”
찰싹- 찰싹-
누군가 은석의 뺨을 쳤다.
눈을 뜬 은석의 눈앞에 낯선 여자의 얼굴이 있었다.
“……너 뭐야?”
고스트 던전에 뛰어들 때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그의 등에 붙었던 여자였다.
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가 고스트 던전 안이구나.”
금빛 모래가 아름답게 반짝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다.
“다행히 떨어진 사람은 없었던 모양이군.”
“아니에요. 제가 아저씨를 구한 거예요. 모래 속에서 몬스터가 나와서 사람들을 끌고 갔거든요.”
구경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사거리에 있었다.
아마 떨어진 건물 안에 머물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너 뭐야?”
“저요? 윤꽃샘인데요.”
“누가 이름 물었어? 너 뭔데 나한테 붙어서 여길 들어온 거야? 여기가 어딘지는 알아?”
“고스트 던전이잖아요.”
[윤꽃샘, 70세, 일반인, 의식 불명 상태]
정보창을 본 은석은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70세? 여고생 교복은 또 왜 입고 있어.’
옛날 교복을 입고 양 갈래 머리를 땋았다.
외모는 십 대의 여자로 보였지만, 나이는 일흔이었다.
‘의식 불명이라면 식물인간 상태라는 말인데. 자신이 영혼이라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 건가.’
상태창으로 본 윤꽃샘은 아직 죽은 자는 아니었다.
숨이 붙어 있는 육체를 빠져나와 떠돌아다니는 영혼은 자신의 생에서 원하는 때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었다.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시만 장단을 좀 맞춰 줄까.’
은석은 정체를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윤꽃샘은 해맑은 표정으로 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던전인 걸 알면서 들어온 거라고?”
“아저씨! 이제 우리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던전에 빠졌으니 보스부터 찾아야겠죠?”
은석의 질문은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윤꽃샘.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무척이나 즐거운 듯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다.
‘도대체 저 할머니 목적이 뭐야.’
은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근처에서 가장 높이 솟아 있는 모래 언덕으로 올라갔다.
주변을 둘러봤으나 역시 온통 모래뿐이었다.
아래에서 윤꽃샘이 소리쳤다.
“아저씨, 몬스터가 보여요? 우리 이제 한 팀으로 몬스터랑 싸우는 거 맞죠?”
모래 언덕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은석이 재킷을 벗어 던졌다.
“머리에 둘러. 곧 모래 폭풍이 올 것 같으니까.”
그의 말대로 모래 폭풍이 한차례 몰아쳤다.
은석과 윤꽃샘은 온몸에 잔뜩 묻은 모래를 털어 냈다.
“꺄아악!”
갑자기 윤꽃샘이 비명을 내질렀다.
고개를 든 은석의 앞에 독침을 세운 전갈이 나타났다.
은석이 아공간에서 귀검을 꺼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순간이동을 하듯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고스트 던전이라, 아공간과 연결되지 않았다.
귀검을 꺼내지 못해 날아오는 독침에 왼팔을 내밀며 외쳤다.
“쉴드.”
은석의 왼쪽 팔에 방패처럼 투명한 막이 생겼다.
방패에 튕겨 나간 독침이 이번에는 윤꽃샘을 향했다.
은석이 뛰어가 투명 방패를 휘둘러 독침을 막았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위라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귀검까지 없는 상황.
그때 은석의 뒤에 서 있던 윤꽃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헌터가 무기도 안 가지고 다녀요?”
은석의 옆으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손도끼였다.
윤꽃샘이 건네준 손도끼를 잡았다.
날아오는 독침을 피하며 꼬리 중간을 내려쳤다.
파각-
전갈의 꼬리가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다.
잘린 꼬리 끝에서 전갈의 독이 뿜어져 나왔다.
꼬리가 잘린 전갈은 더욱더 사나워졌다.
은석은 투명 방패를 없애고 손도끼를 움켜쥐었다.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은석의 도발에 전갈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지금이다.’
전갈의 머리가 공격권 안에 들어왔다.
크지 않은 손도끼였다. 딱딱한 머리 껍질 대신에 약한 눈을 노렸다.
콰악-
손도끼에 눈알이 박힌 전갈이 괴로운 듯 몸을 마구 비틀었다.
은석은 손도끼를 다시 뽑아내 여러 번 찍어 내렸다.
[사막 전갈을 처치하였습니다. 귀속하시겠습니까?]
‘귀속해.’
은석의 명령에 사막 전갈이 검은 연기의 형태로 다시 나타났다.
“역시! 무기는 도끼가 최고예요. 그죠?”
눈에 박힌 손도끼를 뽑아내는 은석을 향해 윤꽃샘이 손을 내밀었다.
“무기 반납하셔야지요. 아저씨.”
사막 전갈이 영혼인 윤꽃샘을 정확하게 노렸다.
게다가 그녀는 허상이 아닌 실체화가 된 도끼를 은석에게 건넨 것이다.
‘흠……. 던전 안으로 떨어질 때 생력을 많이 흡수한 걸까.’
은석은 떨어질 당시 정신을 잃어 기억이 없었다.
아마 그때 영혼인 그녀가 그의 생력을 과하게 흡수하지 않았을까.
그 가정밖에 이 상황을 설명할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은석이 건네는 도끼를 받아 다시 배낭에 집어넣었다.
“너 각성자야? 무슨 여고생이 가방에 도끼를 넣고 다니냐?”
“각성자 아닌데요.”
“그럼? 여고생 도끼 살인마세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는 아주 선량한 시민이고요. 곧 각성하게 될지도 모르는 헌터 지망생입니다.”
“헌터 지망생? 헌터가 소원을 빈다고 되는 게 아닌데.”
은석의 말이 비아냥으로 들린 모양이었다.
윤꽃쌤이 가방에 넣은 손도끼를 다시 꺼내 은석을 향해 치켜들었다.
가방에 바느질로 새겨진 그녀의 이름이 보였다.
‘윤꽃샘.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인데…….’
하지만 의식 불명 상태인 70세 할머니를 은석이 알 리가 없었다.
“이제 뭐 할 거예요?”
윤꽃샘이 물었다.
“움직여야지. 전갈이 또 나올지도 모르고 던전에서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면 안 돼.”
“와우! 이제부터가 진짜 레이드군요. 사막이니까 먼저 물이 있는 오아시스를 찾아야겠죠?”
은석은 그녀와 함께 오른쪽 언덕을 올랐다.
전갈과 싸우느라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조금 전 오른쪽 하늘에서 싱크홀의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구멍 안에서 떨어져 내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먼저 그 사람들부터 찾아야지.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 * *
“도대체 얼마나 더 걸어야 해요? 한참 온 것 같은데 아직 멀었어요?”
던전 속 사막이었으나 뜨겁고 건조한 것은 지구와 똑같았다.
목적지가 보이지 않으니 더 빨리 지치는 것 같았다.
뒤에서 계속 징징거리며 따라오는 윤꽃샘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야! 조용히 좀…….”
그녀를 돌아보려는 순간, 그들의 머리 위에 싱크홀이 생겨났다.
그 안에서 부서진 건물 잔해가 쏟아져 내렸다.
은석은 빠르게 머리 위에 보호막을 쳤다.
하지만 거리가 있었던 윤꽃샘은 그대로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버렸다.
구멍이 사라진 후 은석은 건물 잔해 주위를 돌며 소리쳤다.
“어디 있어? 내 목소리 들려? 들리면 소리를 내 봐!”
아무 반응도 없었다.
“사막 전갈.”
은석의 옆에서 따라오던 사막 전갈이 그의 앞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쌓인 게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한쪽을 조심히 쳐 내라.”
명령을 받은 사막 전갈이 콘크리트 더미를 꼬리로 쳤다.
후두둑 소리를 내며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생겼다.
“쉴드.”
은석이 머리 위에 투명 보호막을 만들었다. 건물 안으로 조심스럽게 기어 들어갔다.
툭-투툭.
보호막 위로 잔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부서진 건물 안쪽에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웅크린 채 누워 있는 윤꽃샘이 보였다.
“괜찮아? 일어설 수 있겠어?”
윤꽃샘이 눈을 떴다.
그녀는 울먹였지만 반가운 표정으로 은석을 바라봤다.
‘진짜 자신이 살아 있다고 믿고 있는 건가?’
영혼은 건물을 통과하거나 쉽게 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건물에 갇혀 버린 윤꽃샘.
“아저씨, 위에!”
그때, 은석의 머리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거리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쉴드.”
보호막을 치며 윤꽃샘을 감싸 안았다.
부서진 콘크리트들이 순식간에 둘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