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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29화 (29/226)

29화

“괜찮아?”

불룩하게 쌓인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양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은석이 보호막을 없앤 후 웅크리고 있는 윤꽃샘에게 물었다.

“아, 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은석을 바라보는 윤꽃샘의 얼굴이 발그레했다.

“뭐야?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운 척은.”

“흥! 저리 가요.”

윤꽃샘이 은석을 확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 쌓여 있는 건물 잔해들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아! 아저씨, 짱이네요. 혹시 탱커예요?”

은석이 모래 속에 파묻혀 있던 그녀의 배낭을 꺼내 건넸다.

“나는요, 각성자가 된다면 탱커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충분히 탱거로 보이는……. 윽!”

은석의 발을 콱 밟았다.

“탱커의 힘을 가지고 도끼를 휘두르는 헌터. 생각만 해도 굉장히 멋있지 않아요?”

“별로.”

은석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진짜 헌터가 된 듯 던전 공략에 대한 계획을 쏟아 냈다.

무너진 건물 안에서 찌그러진 냉장고를 발견했다.

아직 차가운 생수 몇 병이 들어 있었다.

은석이 한 병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끝이 뾰족한 철근을 찾아냈다.

‘검 대신에 쓰면 좋겠군.’

은석과 윤꽃샘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막의 모래 위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저씨, 저기 사람들이 있어요!”

사람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근처에 다다르자, 은석이 팔을 들어 윤꽃샘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막았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찔린 듯 보였다.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배 안에서 흘러내린 내장이 건조한 날씨에 말라붙어 있었다.

“넌 여기 있어.”

윤꽃샘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끼며 은석의 팔을 밀어냈다.

“저 정도 시체가 뭐 어떻다고 여기 있으라는 거예요. 난 또 몇 토막 정도는 난 줄 알았네.”

혹시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까.

둘은 시신을 살피며 천천히 죽은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파스스-

모래가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아보니, 모래가 땅속으로 빠르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뚫린 구멍 옆에서는 모래가 불쑥 솟아올랐다.

모래 안에서 반짝이고 커다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꺄악! 저게 뭐예요?”

은석이 철근을 움켜쥐었다. 윤꽃샘도 가방에서 손도끼를 꺼내 들었다.

카-악-

살아 있는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거대한 은빛 괴물은 개미였다.

모래 구멍 안으로 시신들이 모래와 함께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개미는 구멍에 빠지지 않은 시체들을 넣기 위해 지상에 올라온 놈들이었다.

“이 개미 새끼야아!”

윤꽃샘이 겁도 없이 손도끼를 치켜들고 개미를 향해 달려갔다.

휘-잉.

개미의 커다란 더듬이가 바람을 가르며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 저 할머니가 진짜. 전갈, 어디 있어?”

은석이 한숨을 내쉬며 사막 전갈을 불렀다.

검은 전갈이 꼬리를 휘둘러 날아오는 개미의 더듬이를 쳐 냈다.

반짝이는 은빛의 개미와 검은 사막 전갈이 싸우기 시작했다.

“아저씨!”

갑자기 나타난 검은 전갈 때문에 멈춰 선 윤꽃샘이 은석을 향해 소리 질렀다.

사막 전갈의 꼬리가 개미의 머리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은석이 뾰족한 철근을 들고 뛰어올라 그대로 박아 넣었다.

끼이-익

개미의 마지막 괴성이 들렸다.

[은빛 사막 개미를 처치하였습니다. 귀속하시겠습니까?]

“앞으로 이 던전에서 죽이는 개미는 전부 귀속시켜.”

은빛 개미의 껍질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 위로 개미의 검은 영혼이 솟아올랐다.

“아저씨! 네크로맨서예요? 죽인 몬스터의 영혼을 조종할 수 있어요?”

죽지는 않았지만 윤꽃샘 역시 영혼인 상태여서 은석의 귀속령을 볼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죽일 듯이 공격하던 개미가 얌전하게 은석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신기한 듯 윤꽃샘이 개미의 머리를 툭툭 쳤다.

일꾼개미가 돌아가지 않아서일까.

시체들을 빨아들인 모래 구멍이 막히지 않았다.

“개미, 다시 껍질로 들어가.”

은석의 명령에 개미의 영혼이 사체 안으로 스며들었다.

축 늘어져 있던 은빛 개미가 머리에 철근을 꽂은 채 다시 일어났다.

은석이 철근을 뽑아내고 머리에 올라탔다.

윤꽃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르신, 타시죠.”

그녀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죽었던 놈인데 가다가 주저앉으면 어떡해요?”

못 미더웠지만 은석이 내민 손을 잡고 개미 위로 올라갔다.

“진짜 네크로맨서예요?”

“아니, 나 힐런데.”

“네? 힐러요? 말도 안 돼. 아저씨가 힐러면 내가 각성자다.”

그녀의 말에 은석이 피식 웃었다.

“내려간다. 꽉 잡아.”

은석의 명령에 은빛 개미가 모래 구멍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곧 모래가 차올라 구멍이 사라졌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한 줄기 빛도 없는 암흑의 공간에 도착한 그들.

“이렇게 어두워서야…….”

은석의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짜잔!”

윤꽃샘이 작은 손전등을 내밀었다.

환하지는 않았지만 희미한 빛이 어둠을 흐리게 밝혔다.

탁-

은석이 빠르게 손전등을 껐다.

불빛에 비친 바닥에는 사람들의 시신이 쌓여 있었다.

부패가 진행되지 않을 것 보니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은석이 도착한 곳은 은빛 개미의 먹이 하역장이었다.

그들의 먹이는 바로 고스트 던전에 떨어진 인간들이었다.

* * *

“쉿!”

은석과 윤꽃샘이 있는 먹이 하역장 쪽으로 개미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눈은 어둠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희미하게나마 물체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은석이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봤다.

반짝-

어둠 속에서도 은빛으로 빛나고 있는 개미였다.

은석이 윤꽃샘의 머리를 누르며 개미의 등에 바싹 붙어 최대한 자세를 낮췄다.

개미들이 시체를 하나씩 물고 다시 돌아 나갔다.

은석은 꼼짝도 하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시체의 수가 줄어듦과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 동료에게 관심을 가지는 놈들이 생겨났다.

‘큰일이다.’

은석이 윤꽃샘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험하고 싶다고 했지? 지금 빨리 개미 입 안으로 들어가.”

“네? 미쳤어요?”

개미 한 마리가 그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 우리도 일단 저놈들을 따라서 여길 나가야 할 것 같다.”

다가오는 개미를 본 윤꽃샘이 조용히 내려가 입 안으로 들어갔다.

은석이 개미 귀속령에게 명령했다.

“물지 않게 조심하고 천천히 뒤를 따라가.”

흔들림이 시작되자, 윤꽃샘이 개미의 위턱을 움켜잡았다.

그들은 먹이를 나르는 은빛 개미 무리와 함께 먹이 하역장을 빠져나왔다.

개미굴답게 통로는 좁았고 복잡했다. 누런색의 흙벽은 똑같았다.

‘길 찾다가 이 안에서 죽기 딱 좋은데.’

그때였다.

“여기예요!”

어디선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들렸고, 낮은 목소리라 어디서 들리는지 찾지 못했다.

“여깁니다.”

다시 한번 더 들렸다.

은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흙벽에 몸을 반쯤 감춘 사람의 형체가 어둠 속에서 보였다.

은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천천히 속도를 늦춰라. 조금씩.”

앞선 개미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앞서가던 마지막 개미가 모퉁이를 돌았다.

은석은 자신을 부르던 사람이 서 있던 굴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들어간 후에도 한동안 바깥 상황에 집중했다.

더는 개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제 나가 봐.”

투둑-

은석의 명령에 껍질 안에서 개미 귀속령이 빠져나왔다.

영혼이 사라진 개미의 껍질이 바닥으로 힘없이 내려앉았다.

“괜찮아?”

윤꽃샘이 개미의 입 안에서 기어 나왔다.

어구구 소리를 내며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들의 곁으로 은석을 부른 사람이 다가왔다.

“가람 길드 소속 헌터, 김정훈입니다.”

남자가 은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망자 김가(家), 31세, B급 헌터, 화염 마법사]

은석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남자의 손을 잡았다.

“김은석입니다.”

김정훈은 신체 강화복을 입고 있었다.

그가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인 은석을 자세히 쳐다봤다.

“혹시 헌터신가요?”

“맞습니다.”

은석의 대답에 김정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 반갑습니다. 하……. 여기 떨어지고 얼마 만에 사람하고 이야기하는 건지…….”

김정훈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듯 보였다.

“언제 떨어지셨습니까?”

“흠……. 한 3개월쯤 된 거 같은데 확실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시계도 작동이 안 되니.”

김정훈은 영원히 이곳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늘 두려웠다.

시체를 물고 지나가는 개미들을 보며 삶의 의지가 매일 조금씩 사라져 갔다.

“그런데 헌터님께서 지나가는 게 보이더라고요.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김정훈은 던전 레이드를 위해 이동 중 갑자기 나타난 고스트 던전에 떨어졌다.

“같이 떨어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저는 일반 시민들과 함께 떨어졌습니다. 고스트 던전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지만 엄연히 이곳도 마력을 가지고 있는 던전입니다.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은 이곳에 떨어지면서 모두 사망했습니다.”

“아…….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죽어 있었던 거네요.”

윤꽃샘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저분도 헌터신가요?”

김정훈이 옛 교복에 배낭을 메고 있는 윤꽃샘을 보며 물었다.

“역시 헌터는 헌터를 알아보는 법.”

턱에 손가락을 대며 먼 곳을 바라보는 윤꽃샘.

은석이 그녀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분은 헌터 지망생입니다. 이번 생에 몬스터를 많이 죽이면 다음 생에는 각성자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은석의 대답에 김정훈이 웃음을 참았다.

“그런데 일반인이 어떻게 던전을 통과하고도 무사하신 거죠?”

“아마 저를 잡고 통과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윤꽃샘이 불쑥 끼어들었다.

“자! 통성명은 이만하면 됐고 이제 던전을 클리어해야죠. 개미굴이니 여왕개미가 보스겠죠?”

“아니요. 여왕개미는 보스가 아닙니다.”

그녀의 기대감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여왕개미가 아니라고요?”

떨어지면서 의식을 잃은 탓에 던전 공략 조건 알림을 듣지 못했다.

은빛 개미를 본 순간, 은석 역시 당연히 여왕개미를 죽이는 것이 클리어 조건이라고 생각했었다.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김정훈을 바라봤다.

그는 그동안 개미굴에서 봤던 것들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여왕개미는 이미 죽어 있는 미라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일개미들이 씹어서 넣어 주는 인간의 시신을 영양분 삼아 끊임없이 알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으, 상상만 해도 징그러워.”

윤꽃샘이 양팔을 벅벅 긁었다.

“수백, 아니 수천 개의 개미 알이 있습니다. 개미 알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반짝이는 것이 보입니다. 그것이 이 던전의 보스이자 핵입니다.”

“핵이 개미 알을 계속해서 옮겨 다니고 있다는 말인가요?”

“네, 제가 확인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마치 고스트 던전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처럼 던전핵도 끊임없이 개미 알 속을 옮겨 다니고 있었습니다.”

모두 입을 굳게 다물었다.

“고스트 던전은 고정된 던전이 아니니 브레이크가 일어날 일은 없겠군요.”

김정훈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대신 클리어하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이곳에 갇혀 있겠지요…….”

은석은 김정훈 헌터가 느꼈던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에이! 무려 헌터가 두 명이나 있는데 그렇게 쫄면 어떡합니까?”

윤꽃샘이 그들의 적막을 깼다.

“잘 들어봐요. 옛날 우리 집이 허름한 한옥이었는데 개미가 진짜 많았거든요. 그런데 나는 또 개미를 정말 싫어했어요. 그럼 어떡해요. 다 죽여야지.”

“어떻게 죽였는데?”

윤꽃샘이 양손을 모았다가 펑 터지는 모양을 만들었다.

“불이지. 개미구멍에다가 불을 지르면 끝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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