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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20화 (20/226)

20화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아래로 늘어져 있어 이동하기가 더욱더 힘들었다.

앞선 헌터들이 칼로 나뭇가지를 쳐 길을 내면서 걸어갔다.

“으으-으.”

가지를 자르던 헌터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옆에 서 있던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짧게 한 번 더 신음이 들렸다.

“저기다!”

몸이 날렵한 헌터가 뛰어갔다.

잠시 후 힐러를 부르며 돌아오는 그의 등에 피투성이가 된 채 의식이 없는 남자가 업혀 있었다.

“이미 죽은 거 아니야?”

온몸에 피가 잔뜩 묻어 있는 남자를 바닥에 내려놓자, 뒤쪽에 서 있던 헌터가 외쳤다.

“어! 한울 길드 팀장 백재현이다.”

피투성이인 백재현의 숨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신음을 낸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바닥에 누워 있는 백재현 옆에서 김세은이 치료를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백재현의 창백한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김세은이 힘겨운 한숨을 내쉬며 땀을 닦았다.

마력을 거의 다 쓴 그녀가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은석이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김세은을 부축했다.

“고마워요.”

김세은이 은석이 내민 팔을 잡고 걸었다.

나무에 기대앉은 김세은이 스르르 눈을 감았다.

“이번 던전은 진짜 이상해요. 몬스터가 공격도 하지 않는데, 왜 싸울 때보다 더 힘든 걸까요?”

‘아마 몬스터도 느꼈을 거다. 일반 헌터와 다른 존재가 섞여 들었다는 걸. 악귀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해서 계속 주변만 맴돌고 있는 거고.’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백재현의 치료로 피로가 쌓인 김세은은 금방 잠이 들었다.

조용히 일어서는 은석을 이승원 팀장이 불렀다.

“같이 온 황희준 헌터와 백재현 곁을 지켜 주실 수 있을까요? 백재현이 깨어나면 제게 알려 주시길 바랍니다.”

은석이 황희준을 불러 백재현 옆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도적 팔귀의 습격을 받아서 이렇게 된 걸까, 아니면 백재현이 빙의된 자일까.’

하루가 지났지만 백재현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던전 클리어에 제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깨어나지 않는 그를 두고 영웅 길드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언제까지 한곳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의식이 없는 백재현을 놔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툭-투툭-

그때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탁-탁-탁탁탁!

걸어오던 소리가 갑자기 빨라졌다.

스릉-

이승원 팀장이 칼을 꺼내 들어 공격하려는 순간, “공격하지 마십시오.”

늘어진 나뭇가지를 밀어내며 한 남자가 양팔을 든 채 걸어 나왔다.

“공격하지 마십시오. 저는 사람입니다!”

양팔을 들고 걸어 나오는 남자는 한울 길드의 마크를 달고 있는 헌터였다.

그를 중심으로 영웅 길드의 헌터들이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은석과 황희준은 백재현의 곁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한울 길드의 성유준이라고 합니다.”

그가 한울 길드에서 일어났던 일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러분들과 헤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성이들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이승원 팀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잠시 휴식을 한 후에 다시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성유준이 말을 하다 말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흑…….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흐흑…….”

김세은의 말처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던전이라 모두 굉장히 예민해진 상태였다.

성유준의 가벼운 울음에도 모두 평정심을 잃어 가고 있었다.

이승원 팀장이 다가와 성유준의 등을 두드렸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한울 길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흐흑, 숨어 있던 제가 들었던 소리는……. 무언가를 씹는 소리였습니다.”

“씹어요?”

“네, 우두둑. 우두둑. 마치 사람 뼈를 씹어 대는 것처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단어의 등장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럼 성유준 헌터님은 어떻게 살아남은 건가요?”

어느새 근처로 다가온 은석이 정적을 깨고 그에게 물었다. 성유준이 긴장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저는, 다른 분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빠르게 수풀 안으로 숨었던 덕분에 살아남을 수……. 아니 오히려 살아난 게 불행 같군요.”

은석이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성유준을 지그시 바라봤다.

[성유준, 27세, C급 헌터, 검사]

그리고 아래에 연달아 떠오른 정보창.

[중급 악귀, 도적 팔귀, 지옥 제2감옥 수배귀]

‘네놈이구나.’

이미 한울 길드를 먹어 치운 도적 팔귀는 악귀의 기운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다.

눈물은 흘리고 있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그의 얼굴.

다음 살육을 기다리는 도적 팔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승원 팀장이 누워 있는 백재현을 가리켰다.

“그럼 백재현 팀장은 왜 저렇게 된 겁니까?”

“네? 백 팀장님이 여기 있다고요?”

성유준이 화들짝 놀랐다. 그것은 동료를 만난 기쁨보다 경악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어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백 팀장을 우리가 발견했습니다.”

성유준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저놈입니다! 저놈이 사람들을 죽였어요!!”

이승원 팀장이 성유준에게 물었다.

“확실한 겁니까?”

“확실합니다. 제가 들었습니다. 저희 팀 여자 헌터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분명히 ‘백 팀장님’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백재현이 사람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씹어 먹었다는 것이다.

영웅 길드 헌터들은 어떻게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은석이 그들의 뒤에 서서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다온이 은석의 정수리에 앉아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어 댔다.

“어이구, 바보 헌터들. 도적놈 거짓말에 다 속고 있네.”

낄낄거리는 다온을 은석이 낚아채 휙 던져 버렸다.

“으으…….”

그때, 백재현이 신음을 내며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힘겹게 고개를 돌리는 백재현.

영웅 길드 소속 헌터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서 있는 성유준.

“으, 어서……. 어…….”

사람들에게 성유준의 정체를 알려야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백재현은 마음이 급했다.

목소리를 쥐어짜 냈지만, 이상한 소리만 흘러나왔다.

말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그를 본 황희준이 은석에게 소리쳤다.

“형님, 백재현 팀장님이 깨어나셨습니다.”

그 소리에 모두 백재현의 곁으로 달려갔다. 성유준도 그들과 함께 와 백재현을 보며 소리쳤다.

“뭣들 하십니까! 괴물로 변하고 있는 중입니다. 보면 모르시겠어요? 죽이세요! 한울 길드 헌터들을 몰살시킨 놈입니다!!”

영웅 길드 헌터들의 눈이 둘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누가 살인자인지 쉽사리 결정 내릴 수 없었다.

‘저 정도로 기운을 뿜어내고 있으니, 곧 성유준의 육체가 견뎌 내지 못할 건데.’

은석의 예상대로 성유준의 목덜미가 순간 불쑥불쑥 부풀어 올랐다가 꺼졌다.

성유준, 아니 도적 팔귀 역시 마음이 급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백재현이 영웅 길드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백재현이 죽지 않았다니. 영웅 길드 놈들은 데리고 놀다가 한 놈씩 천천히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팔귀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김세은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팔귀를 은석이 바라보고 있었다.

팔귀는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조금 전부터 성유준의 얼굴이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숨길 생각이 전혀 없는 악귀의 기운을, 인간의 피부가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아니지, 차라리 빨리 이것들을 죽여 버리고 저 여자만 데리고 나갈까? 크크.’

팔귀가 악귀로 변하기로 마음먹었다.

크르릉-

정체를 드러내기 위한 변신을 시작했다.

팔귀가 괴기한 소리를 질렀다. 헌터들이 모두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봤다.

조금 전까지 멀쩡했던 성유준의 얼굴이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퍼엉-

팽팽해진 얼굴이 큰 소리를 내며 터져 나갔다. 사방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성유준의 피부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성유준의 얼굴이 있던 자리에 나타난 흉측한 팔귀의 본래 모습.

한 번 더 힘을 주자 옆구리를 뚫고 수많은 팔이 튀어 나왔다.

“으아아……! 저게 뭐야!”

기괴한 장면에 헌터들이 소리를 지르며 빠르게 물러났다.

은석은 움직이지 않은 채 날을 세운 눈빛으로 팔귀를 노려봤다.

“형님, 빨리…….”

황희준이 가만히 서 있는 은석의 팔을 잡았다.

“멀찌감치 물러나서 숨어 있어라.”

도망가는 황희준을 보며 은석이 해머를 불러냈다.

“해머, 나와라.”

해머가 모습을 드러낸 팔귀를 보고 무기를 치켜들었다.

“많이 급했던 모양이야. 저렇게 모습을 먼저 드러내는 걸 보니.”

하지만 팔귀는 은석과 해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마음만 먹으면 금방 죽일 수 있는 하찮은 것들이었다.

“크르릉, 굼 이 자식은 어디 있는 거야? 굼!”

굼을 찾는 도적 팔귀의 괴성에 모두 귀를 막았다. 몇 번의 외침에도 끝내 굼은 나타나지 않았다.

부하가 나타나지 않자 화가 난 팔귀의 얼굴이 더욱 흉포하게 변했다.

주변에 서 있는 헌터들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이해하기 힘든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했지만, 그들은 몬스터와 싸우는 헌터였다.

이승원 팀장을 필두로 빠르게 공격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팔귀는 이계의 몬스터와는 다른 존재.

그것도 중급 악귀.

인간이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대체 저건 무슨 몬스터야!”

팔귀가 휘두른 팔 중 하나에 맞아 헌터 한 명이 나가떨어졌다.

“크큭, 고작 인간 따위가 내 몸에 상처를 내겠다고? 얌전히 내 먹이나 되어라. 여자, 특히 너는 마지막에 먹어 주지.”

도적 팔귀가 김세은을 노려보며 입맛을 다셨다.

은석이 해머와 함께 헌터들 앞으로 나섰다. 앞으로 나온 은석을 보고 놀란 이승원 팀장이 은석의 팔을 잡았다.

“김은석 헌터님, 위험합니다! 보통 몬스터와 다른 존재입니다.”

은석이 자신의 팔을 잡은 이승원의 손을 천천히 떼어 냈다.

“제가 저런 새끼들을 좀 압니다.”

은석이 아공간에서 귀검을 꺼내 들었다. 귀검을 본 팔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건…….”

“검 죽이지?”

은석이 귀검을 세로로 들고 팔귀를 향해 뛰어갔다. 그의 옆에 해머가 함께 달렸다.

해머를 보며 은석이 말했다.

“난 오른쪽.”

팔귀의 오른쪽 팔을 순식간에 내려쳤다.

후드득-

여덟 개의 팔이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왼쪽 팔이 펑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팔귀가 자신의 왼쪽 팔을 공격하는 해머를 보고 놀라 소리쳤다.

“어떻게……. 죽은 인간 따위가!”

팔이 잘린 자리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며 순식간에 다시 팔이 자라났다.

“재생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던데. 진짜네.”

고통을 맛본 팔귀는 더욱 포악해졌다.

남은 팔과 재생되고 있는 팔을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오른쪽에서는 은석이, 왼쪽에서는 해머의 공격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퍼억-

빠르게 휘두르는 팔귀의 팔에 해머가 맞고 뒤로 밀려났다. 날카로운 손톱에 긁힌 어깨가 너덜거렸다.

은석이 귀검을 힘주어 잡았다. 검은 검신에서 푸른 오라가 마치 화염처럼 뿜어져 나왔다.

“저, 저 무기 종류가 뭐야? 엄청난데!”

“저 새끼 도대체 정체가 뭐야?”

푸른 오라가 흘러나오는 귀검을 들고 뛰어가는 은석을 본 헌터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휘잉-

귀검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팔귀의 오른쪽 어깨를 후려쳤다.

오른쪽 팔 여덟 개가 다시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아악!”

조금 전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내 다시 자라나기 시작하는 팔.

은석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또 자라나면, 계속해서 잘라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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