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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9화 (19/226)

19화

“공격 준비!”

몬스터라는 말에 모두 무기를 꺼내 공격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걸어오던 성성이가 빠르게 숲속으로 사라졌다.

사방으로 빽빽한 나무를 오르내리며 헌터들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그러기를 한참.

“왜 공격하지 않는 거지?”

괴성만 내지르며 분주히 움직이기만 할 뿐, 헌터 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휘익-

숲속에서 날아온 화살이 바닥에 박혀 흔들거렸다. 뛰어다니는 성성이 때문에 미처 날아오는 화살을 보지 못했다.

피슝-

두 번째 화살이 황희준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탁-

은석이 아공간에서 귀검을 꺼내 날아오는 화살을 쳐 냈다.

“오른쪽입니다!”

은석이 소리치자, 모두 화살이 날아오는 쪽을 바라봤다. 화살을 쏜 성성이 한 마리가 나무 뒤로 숨는 게 보였다.

은석이 뛰어갔지만, 나무 사이를 넝쿨이 벽처럼 단단히 엮고 있어 안쪽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칼로 그으면 동시에 나무를 찍어.”

해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석이 귀검을 들어 나무를 향해 내려쳤고, 그 뒤에 바로 해머가 은석의 칼 동작에 맞춰 나무를 세게 쳤다.

빠각!

성인이 양팔을 둘러도 손을 맞잡을 수 없을 만큼 두꺼운 나무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은석이 나무를 밀자, 부서진 윗부분이 큰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주변의 나뭇가지들이 쓸리면서 같이 부서져 떨어졌다.

카악-

숨어 있던 성성이가 쓰러지는 나무를 피해 빠르게 움직였다.

카악-칵!

마치 신호처럼 일정한 소리를 질러 댔다. 주변에 숨어 있던 몇 마리의 성성이들이 밀림 안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아깝네. 한 마리만 죽여도 귀력이 꽤 올라갔을 텐데.’

성성이를 잡지 못해 아쉬운 은석이 몸을 돌리자, 영웅 길드의 헌터와 용병들이 모두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F등급에 힐러라고 하지 않았어요? 무슨 힐러가 칼로 저렇게 두꺼운 나무를 한 번에 부러뜨려요?”

김세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은석에게 물었다.

직접 눈으로 봤지만 믿을 수 없는지 헌터들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승원 팀장이 은석이 막아 낸 화살을 주우며 다가왔다.

“이건 공격이라기보다 우리의 전력을 살펴본 것 같습니다. 아마 한울 길드 쪽에도 이런 행동을 하고 있겠지요.”

이승원 팀장이 은석에게 방금 상황에 대한 설명을 원하는 눈빛을 보냈다.

은석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승원 팀장을 외면하기 위해 손등에 박혀 있는 나무껍질을 빼내는 척했다.

그 모습을 본 김세은이 다가와 은석의 손을 덥석 잡았다.

“뭐 하는 거예요? 그걸 손으로 뽑아내면 염증 생겨요. 이렇게 유능한 힐러를 옆에 두고 무식하게.”

[김세은, 29세, A급 헌터, 힐러]

김세은이 나무껍질이 박힌 은석의 손등에 힐을 넣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서 연한 노란빛의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게 보였다.

“어? 왜 이렇지?”

하지만 그녀의 힐은 은석의 손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흩어져 버렸다.

‘당연하지. 내 생력이 당신 힐보다 더 강하니까.’

자꾸만 흩어지는 힐에 당황한 김세은이 안간힘을 썼다.

“헌터님,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 보네요.”

“네?”

김세은이 고개를 들었다.

은석이 씩 웃으며 자신의 손등과 김세은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김세은이 은석을 노려보며 잡은 손을 강하게 내려쳤다.

“아야! 환자한테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쪽도 힐러니까. 알아서 치료하세요!”

은석이 웃으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자, 손등에 박혀 있던 나무껍질들이 빠져나오고 금세 상처가 사라졌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김세은이 휙 돌아서 빠르게 걸어갔다.

‘저 자식 뭐지? 분명 계약서에는 얼마 전에 각성한 F급 힐러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승원 팀장이 멀찌감치 서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

* * *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요? 덥고 습하고 배도 고픕니다.”

계속되는 이동에 모두 지쳐 갔다. 더 이상 성성이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해가 지지 않는다는 것.

던전 안에는 낮과 밤이 없었다.

태양은 24시간 내내 이글거렸다. 온도는 계속 높았고, 밀림 안은 숨이 턱턱 막힐 듯 습했다.

“일단 여기서 휴식한다. 식사도 하고 다시 집합할 때까지 쉬도록 해라. 불침번은 순서대로 선다.”

이승원 팀장의 명령이 끝나자마자 헌터들은 기다렸다는 듯 소수의 인원만 남겨 두고 모두 그늘진 수풀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식사 준비는 짐꾼들의 몫이었다. 각자 나눠서 들고 다니던 음식과 조리 기구들을 꺼냈다.

던전 안의 습한 공기에 음식 조리를 위해 피운 열기가 더해져 숨쉬기가 더 힘들어졌다.

그런데도 황희준은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은석은 끈질기게 그의 어깨에 올라와 졸라 대는 다온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자는 걸 포기하고 식사 준비 중인 짐꾼들에게 다가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만들고 있는 이승원의 개인 짐꾼이 보였다.

‘나도 용병을 못 했으면 헌터들의 짐꾼을 했겠지.’

레벨이 낮은 각성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것이 바로 헌터의 짐꾼이었다.

중년 짐꾼의 모습에 은석은 괜히 옛 생각이 나 울컥했다.

“다치셨어요?”

음식을 준비하던 남자를 상념에 젖어 보고 있는데, 그의 관자놀이에 피가 맺힌 상처가 보였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은석에게 놀란 듯 남자가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아, 아, 아닙니다. 이, 이, 이건 조금 긁, 혀서.”

“그렇군요. 제게 상처에 뿌리는 회복 포션이 있는데 드릴까요?”

“괘, 괜찮습니다. 저도, 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남자의 모습에 괜히 머쓱해진 은석이 돌아섰다.

“부탁 하나만 들어 달라니까. 어? 어?”

어깨 위에 서서 계속 깐죽거리는 다온을 잡아 수풀 사이로 던져 버렸다.

바닥에 떨어져 씩씩거리는 다온.

다시 은석에게 날아가려는 순간, 어디선가 검은 손이 튀어나와 다온을 움켜잡았다.

“식사 시간입니다. 모이십시오.”

그 소리에 흩어져 휴식을 취하던 헌터들이 모여들었다. 은석 역시 그들 뒤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역시 한국 사람은 국물이지. 전에 서양 놈들과 던전에 들어갔었는데 몬스터 때문이 아니라 빵 먹다가 느끼해서 죽을 뻔했다니까.”

“하하하, 맞아. 나도 그랬어. 파스타, 피자도 가끔 먹어야 맛있지. 매일 먹으니 죽겠더라니까.”

칼칼한 국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헌터들이 국과 밥을 식판에 담기 시작했다. 은석은 마지막으로 국을 떴다.

‘뭐지?’

국 통 안에 건더기와 어울리지 않는 내용물이 둥둥 떠 있는 게 보였다.

국자로 건져 내어 보니 귀물 다온이였다.

“왜, 마음에 드는 건더기가 없어?”

은석이 국자만 바라보고 있자, 이미 한 그릇을 다 비운 영웅 길드 탱커가 농담을 던졌다.

그는 더 먹기 위해 국자를 집어 들어 국 통 안을 휘저었다.

“국 안에 성성이 털이 들어 있네요.”

퉤- 퉤-

헌터들이 동시에 입 안에 든 것을 뱉는 소리가 들렸다.

“고, 고맙다. 성성이 털이 왜 국 통에. 우웩!”

탱커는 덩치와 달리 비위가 무척 약했다. 그렇게 그날 식사는 끝났다.

은석은 국물에서 다온이를 건져 손에 쥐었다.

캠프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자세히 보니 투명한 다온의 영이 붉은 국물에 얼룩덜룩했다.

“설마, 삶겨져서 죽은 건가?”

은석이 다온을 잡고 마구 흔들었지만, 미동이 없었다. 다온의 몸에 손가락을 대고 약간의 생력을 주입했다.

“에취!”

재채기하며 깨어난 다온.

그대로 날아가 은석의 왼쪽 어깨에 앉았다.

“휴우, 진짜 죽을 뻔했네. 그런데 너 진짜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구나.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국 통에는 어떻게 해서 빠진 거야?”

은석의 질문에 화가 나는 듯 발을 마구 굴러 댔다.

“검은 손이 나타나 날 휙 잡았어. 그리고 입 안에 넣어서 우물거렸어.”

“먹었다고? 널?”

“어, 그런데 갑자기 뱉더라고. 내가 그렇게 맛이 없나?”

영혼을 먹을 수 있는 존재가 영웅 길드 내에 있었다.

도적 팔귀는 한울 길드에 있다고 확인되었으니 아마 굼일 것이다.

‘굼이 영웅 길드 누군가의 몸에 빙의되어 있구나.’

식사 후 이승원 팀장이 출발을 명령했다.

공격만 하지 않을 뿐 성성이들은 계속해서 헌터들의 뒤를 따라다녔다.

기척은 느낄 수 있었지만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언제 화살이 날아올지 몰라 다들 신경이 곤두섰다.

모두 점점 말이 없어졌다. 조용히 사방을 경계하며 걸어갔다.

단 한 명, 은석만 제외하고.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 은석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 다온을 손가락으로 잡아 들었다.

“조용히 가자. 내가 마음만 먹으면 최하급 귀물 정도는 한 손으로 터트려 죽일 수도 있어.”

“킥킥킥.”

동글동글했던 다온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순식간에 뾰족한 이빨이 나타났다.

“……결국 너도 악귀였냐?”

“소원 하나 들어주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 안 들어주면 내가 먹어…….”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하는 조그만 다온의 모습이 귀여워 지켜봤다.

그런데 갑자기 다온이 날아가 나무 뒤에 숨어 버렸다.

“왜 저래?”

다온이 은석이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를 가리켰다.

“그거 벗어!”

“이거?”

“너……. 그게 뭔지나 알고 차고 있는 거야?”

다온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염라대왕이 아끼는 거라고 준 건데. 왜? 뭐가 느껴져? 아직 사용을 안 해서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다온을 향해 팔찌를 흔들어 보였다.

“꺄악! 저리 치워!”

은석도 두려워하지 않는 다온이 팔찌에 기겁을 했다.

도적 팔귀와 굼을 잡을 때 사용해 보려고 했는데, 다온의 반응을 보니 문득 팔찌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궁금해졌다.

은석이 팔을 아래로 탁 내리며 명령했다.

“모습을 드러내라.”

순간, 팔찌에 새겨진 푸른 문양이 일렁였다.

[지옥 제1감옥의 수문장, 청안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모습에 따라 일시적으로 생력이 소진될 수 있습니다]

메시지가 뜨자, 순간 온몸에 전기 충격과 같은 강한 느낌이 꿰뚫었다.

고통은 금세 사라졌지만, 몸 안의 생기 일부가 사라진 것 같았다.

나무 뒤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는 다온이 보였다. 그리고, “고등어?”

바닥에 고등어 한 마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것은 고등어가 아니었다.

고등어 등 무늬처럼 보이는 물결무늬가 특이한 고양이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뚱뚱한 고양이.

“이게 뭐야? 수문장이 고양이였어?”

은석은 어이가 없었다. 염라대왕이 아끼는 거라고 준 것이 저런 돼지 고양이?

고양이는 은석이 곁에 다가와도 미동조차 없었다.

처음 나타난 그 상태로 바닥에 누워 꼬리만 탁탁 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뚱땡이 고양이가 팔찌의 수호자? 어이가 없네.”

은석이 손가락으로 고양이 등을 쿡 찔렀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허! 이거 봐라.”

은석이 고양이들이 싫어한다는 꼬리를 꽉 움켜쥐었다.

차라리 일어나서 공격을 해라.

하지만 고양이는 고개를 휙 들어 은석을 찌릿 쳐다볼 뿐이었다.

은석과 마주친 녀석의 눈이 팔찌에 새겨진 문양과 똑같았다.

‘고양이한테 무시당하다니.’

은석이 한숨을 내쉬며 팔찌로 돌아가기를 명령했다.

고양이가 사라지자, 다온이 은석의 어깨로 빠르게 날아와 앉았다.

“어휴, 무서워서 죽을 뻔했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지옥 제1감옥의 수문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무서워하는 걸까.

“봤지? 까불지 마라. 조그만 악귀 놈이! 어디서 감히 이빨을 드러내고.”

“나 악귀 아니거든. 흥!”

자신의 예상과 전혀 다른 팔찌의 모습이었다.

은석은 도적 팔귀와 굼을 잡을 때 이 청안이라는 놈을 소환해야 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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