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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8화 (18/226)

18화

영혼 중에 온전한 형태의 망자가 하나도 없었다.

“왜 저런…….”

“팔귀는 영혼까지 먹어 치우는 악귀입니다. 희생된 망자들은 영혼이 갈기갈기 찢어져 환생하기도 힘든 상태가 됩니다.”

호탕했던 염라대왕은 이야기하는 내내 굳은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그러니 절대 단칼에 죽여서는 안 됩니다. 그놈을 잘근잘근 씹어 먹어야 이 불쌍한 영혼들이 원도 한도 없겠다는데, 그 소원이라도 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염라대왕이 이야기하는 내내 흐느껴 울던 여자들의 영혼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염라대왕이 은석에게 팔찌 하나를 내밀었다. 진한 파란색으로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검은색의 팔찌였다.

중간에 달린 금색의 장식품에는 은석이 처음 보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이게 뭔가요?”

“악귀를 잡아 가두는 팔찌입니다. 지옥으로 보내기 전 잠깐 들렀다 가는 구치소라고 할까요. 사용 방법은 팔찌를 착용하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을 겁니다.”

염라대왕이 금빛의 장식품을 톡톡 쳤다.

“요놈은 내가 특히 아끼는 놈입니다. 함께 잘 지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모로 도움이 되실 겁니다.”

은석이 팔찌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저는 이만 올라가 보겠습니다.”

* * *

“잠시 후에 게이트 입장을 시작하겠습니다. 용병으로 오신 헌터님들은 이쪽으로 모여 주십시오.”

은석이 이승으로 발을 내딛자, 얼음땡 놀이를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님, 저쪽으로 가시죠.”

은석과 황희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해머가 용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두 개 길드의 연합 던전이라 용병들은 반으로 나눠 각각 다른 길드 앞에 섰다.

은석 일행이 속한 곳은 영웅 길드였다.

‘한울 길드에 팔귀가 빙의한 놈이 있다고 했는데….’

은석이 한울 길드 쪽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정보탐색 스킬을 이용해 헌터들을 살펴봤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자는 없었다.

‘이러니 저승차사들도 못 찾는 거지.’

“한울 길드로 가고 싶어요?”

은석의 귀에 꽂히는 날카롭고 높은 여자의 목소리.

고개를 돌리니 이번 던전의 부팀장을 맡았다는 영웅 길드의 김세은 헌터가 서 있었다.

“아닙니다.”

“원하면 말씀하세요. 언제든 한울 길드 용병으로 뛰게 해 드릴게요.”

김세은의 목소리에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김세은은 영웅 길드에 서 있으면서 계속 한울 길드만 쳐다보고 있는 은석이 눈에 거슬렸다.

‘다른 길드에 관심을 가져서 기분 나쁘다 이건가? 왜? 시비라도 걸려고?’

은석은 속으로 픽 웃음을 흘렸다.

까칠한 눈빛으로 은석을 천천히 훑어보는 김세은의 눈에 은석이 입고 있는 검은색 티셔츠와 청바지가 들어왔다.

“이렇게 입고 던전에 들어갈 거예요?”

“네.”

각성 후 일반인보다 월등히 뛰어난 육체를 가졌다 해도 던전 안은 그 이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었다.

헌터는 각자의 직업을 맞는, 때로는 능력을 증가시켜 주는 기능을 가진 신체 강화복을 착용한 후 던전에 들어갔다.

아티팩트의 가격이 비싼 것은 그들의 목숨과 직결되는 것이었기 때문.

그러니 집 앞 편의점을 가는 것처럼 평범하게 입고 온 은석을 보고 놀랄 만도 했다.

“지금 던전에 놀러 가는 건 줄 아세요?”

“아뇨, 돈 벌러 가는 건데요.”

은석의 말에 어이가 없는 김세은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황희준은 그제야 자신만 강화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급하게 강화복을 벗어 은석에게 건넸다.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세심하게 챙기지 못했습니다. 제 것이라도 입으십시오.”

은석이 황희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까불지 말고 다시 입어라.”

은석의 서늘한 눈빛에 놀란 황희준이 입을 다물었다. 벗어 놓은 강화복을 주섬주섬 다시 입기 시작했다.

“신체 강화복을 입어야만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위험하잖아요. 다치기라도 하면…….”

김세은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런 이유라면 저는 괜찮습니다. 이 옷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다치더라도 영웅 길드에 보상금을 요구하지 않을 거고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우리를 어떻게 보고…….”

원래 하이 톤인 김세은의 목소리가 까랑까랑 울리자, 영웅 길드의 팀장 이승원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레이드 앞두고.”

“팀장님, 이 사람 좀 보세요. 이렇게 입고 던전에 들어갈 거래요. 어이가 없어서.”

이승원이 말없이 은석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멀리 모여 있는 짐꾼들 중 자신의 개인 짐꾼을 불렀다.

오십 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커다란 가방을 메고 뛰어왔다.

이승원이 자신의 가방에서 검은색의 조끼 하나를 꺼내 은석에게 건넸다.

“입으십시오. 가벼운 조끼형 강화복입니다. 입는 사람의 체형에 맞게 조절되니 불편하지 않을 겁니다.”

생력 덕분에 웬만한 상처는 금방 회복되는 은석에게 특수 제작된 강화복이라도 거추장스러운 옷에 불과했다.

“싫습니다. 이걸로도 충분하다니까요.”

낯선 은석의 모습에 황희준과 해머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승원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은석에게 말했다.

“헌터 보호 차원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안 되나요. 용병이지만 어쨌든 저희 영웅 길드와 함께하시는 헌터가 아닙니까. 한 분이라도 더 무사하셔야 저희가 빨리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지요.”

부드러워진 이승원의 태도에 은석이 강화복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각성하고 첫 던전이라 제가 좀 예민했나 봅니다. 호의, 감사히 받겠습니다.”

은석이 강화 조끼를 입었다.

그의 말대로 커 보였던 옷이 은석의 몸에 맞게 줄어들었다.

“저는 몇 벌 더 있습니다. 첫 레이드를 저희 영웅 길드와 하신다니. 기념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팀장이라 그런가. 말이 아주 청산유수야. 나와서 줄 생각도 없었지만 먼저 선물로 준다니 고맙네. 이게 얼마짜리 강화복이야.’

은석이 미소를 지으며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김세은이 콧방귀를 뀌며 가 버렸다.

황희준이 쭈뼛대며 은석의 옆으로 다가왔다.

“형님, 죄송합니다.”

“네가 왜 죄송해?”

“형님을 모신다고 나선 놈이 강화복을 입지 않으신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황희준의 옆에 선 해머도 은석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멋진 강화복을 입고 있는데, 대장은…….”

‘이것들이 둘 다 쌍으로 미쳤나. 내가 불편해서 안 입겠다는데 왜들 이래.’

앞쪽에 선 용병들이 게이트 입장을 시작했다.

“닥치고들. 들어갈 준비나 해.”

* * *

[고대 유적지 던전입니다. 던전 내 모든 성성이를 제거하십시오. 제한 시간은 168시간입니다]

던전 클리어까지 일주일. 인스턴트 던전 때와 마찬가지로 허공에 시계가 나타났다.

앞서 들어간 헌터들이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장 뒤에 들어온 은석이 앞에 서 있던 헌터의 등에 부딪혔다.

“이봐, 왜 안 들어가고…….”

고개를 든 은석은 헌터들이 왜 우두커니 서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던전 안은 깊은 밀림 속에 버려진 고대 유적지의 모습이었다.

넝쿨과 이끼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거대 석상들을 휘감고 있었고, 거대한 돌을 세워서 만든 신전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멋진 광경이었다.

“이거 완전 인디아나 존스 영화에 들어온 것 같은데.”

누군가가 뱉은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은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던전을 드나들었지만 이번처럼 웅장한 분위기의 공간은 드물었다.

모두가 던전의 풍경에 감탄하고 있던 그때,

휙-

“으악!”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한울 길드 헌터의 왼쪽 눈을 꿰뚫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피융- 피융-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피해라!”

갑작스러운 공격에 처음에는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C급 던전을 공략하는 헌터답게 이내 일사불란하게 화살을 피하며 몸을 숨겼다.

잠시 후 거짓말처럼 쏟아지던 화살이 뚝 그쳤다.

“다친 사람 있나 확인해 봐.”

몇몇이 날아오는 화살에 긁히기는 했지만, 다행히 눈을 다친 헌터 외에는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많은 인원이 움직이기에 던전 안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영웅 길드의 이승원, 한울 길드의 백재현. 두 팀장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한참 심각하게 대화를 나눈 후 이승원이 영웅 길드 팀원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계획이 변경되었다. 이곳 특성상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영웅과 한울은 지금부터 따로 움직이기로 했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갈 것이니, 다들 이동할 준비를 해라.”

영웅 길드 쪽 용병이었지만 그마나 한울 길드와 같이 움직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따로 이동한다는 결정에 은석이 당황했다.

은석에게 팔귀와 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해머가 물었다.

“대장, 제가 한울 길드를 따라가면 안 될까요?”

은석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아직 내 귀력이 높지 않아서 거리가 멀어지면 자동으로 소환해제가 되어 버릴 거다.”

“그렇군요…….”

은석이 긴장한 듯 서 있는 황희준에게 물었다.

“희준아, 너 이 던전에 들어온 헌터들 주소 알아낼 수 있지?”

“그럼요. 형님. 말씀만 하십시오. 누구 마음에 드시는 여성 헌터분이라도 계십니까?”

따악-

은석이 황희준의 뒤통수를 때렸다.

“던전 안에서 못 찾으면 나중에 한 놈씩 찾아가는 수밖에.”

그때, 어디선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갈까?”

은석이 주변을 살펴봤지만 다들 이동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던전 안에 아이가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따라갈 수 있는데.”

왼쪽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은석이 고개를 돌리자, 용병으로 들어온 헌터의 머리 위에 작고 둥근 영혼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작은 영혼은 남자의 머리카락을 잡고 서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봐도 두루뭉술한 솜뭉치 같아 보였다.

은석과 해머가 기척도 느낄 수 없을 만큼 미약한 귀물이었다.

“내가 따라갈까? 보고 와서 이야기해 줄 수 있는데.”

“너 뭐야?”

은석의 말에 용병이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저, 저요?”

“아닙니다. 제가 아는 사람인 줄 알고.”

은석이 손을 내밀자 작은 귀물이 손 안으로 폴짝 뛰어 들어왔다.

“내가 스파이 해 줄게. 대신 소원 하나만 들어줘.”

은석의 눈에 비친 작은 귀물의 정보.

[최하급 귀물, 석우(石祐)]

은석은 석우라고 불리는 귀물을 그대로 바닥에 던져 버렸다.

“어디 잡귀가 붙어 들어와서.”

석우는 은석의 뒤를 계속 쫓아오며 끈질기게 졸랐다.

“내가 살펴보고 온다니까. 딱 소원 하나만 들어주면 되는데. 정말 쉬운 건데.”

석우는 은석의 어깨로 뛰어올라 계속해서 칭얼거렸다.

몇 번이나 잡아서 던져 버렸지만 이내 다시 그의 어깨로 올라왔다.

“대장, 제가 터트려 버릴까요?”

해머가 은석에게 물었다. 은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계속해서 어깨를 툭툭 치는 은석을 황희준이 이상하게 바라봤다.

“형님, 어깨에 뭐가 묻었습니까? 아까부터 계속 치시던데.”

“벌레가 자꾸 달라붙네.”

“아……. 벌레가 있구나.”

황희준이 은석의 말에 자신의 어깨와 정수리를 급하게 털어 냈다.

“히잉……. 벌레 아닌데. 이름도 있는데. 엄마가 지어 준 다온이라는 예쁜 이름인데.”

자신을 벌레라고 부르는 게 서운한 듯 은석의 머리카락을 세게 잡아당겼다.

갑자기 고개가 옆으로 휙 젖혀졌다. 은석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석우를 튕겨 냈다.

빠르게 날아간 석우가 나무에 그대로 박혀 스며들었다.

“쉿.”

제일 앞에서 걷던 이승원의 신호에 모두 일제히 멈추고 주변을 경계했다.

앞에서 사람처럼 보이는 형체가 걸어오고 있었다.

“팀장님, 한울 길드 쪽 사람일까요?”

이승원의 눈에도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공격해야 할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성성이.’

머리 위에 뜬 정보창을 확인한 은석이 소리쳤다.

“몬스터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온몸이 짙은 주황색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인간과 흡사했지만, 뒷모습은 전혀 달랐다.

마치 말의 갈기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풍성한 털이 뒤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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