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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7화 (17/226)

17화

“창문 열어서 환기 좀 시키고. 쉬어라.”

집까지 모셔다드리겠다는 황희준을 집 안에 밀어 넣고 아파트를 나왔다.

따르릉-

그때 이상균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십니까. 이 부장님.”

“흠. 흠. 용병을 모집하는 던전에 이름을 올렸네. 내일 오전 열 시, 장소는 신전 지하철 3번 출구 근처 공사장.”

“이렇게나 빨리. 정말 감사드립니다. 소개 수수료는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수수료는 필요 없어. 삼촌 얼굴 보고 소개해 준 거니 이걸로 끝일세.”

웃음을 참는 은석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고작 두 번으로? 네놈들이 그동안 나한테 받아 처먹은 게 얼만데.’

대답 없는 은석이 답답한지 이상균이 재차 확인했다.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은석 군이 가지고 있는 그런 종이 따위는 증거가 되지 않아. 나나 실장님이 삼촌과의 정이 있어서 알아봐 준 거야. 그러니까…….”

긴장했는지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자신의 길은 자기가 직접 개척해야지. 안 그래? 젊은 사람이 자꾸 어른한테 의지하고 그러면 안 돼.”

이상균의 말에 은석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렇네요.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역시 젊은 사람이라 그런지 말이 잘 통하는군.”

이상균이 헛기침을 두어 번 내뱉었다.

“그럼, 약속대로 가지고 있던 자료는 다 넘기는…….”

“던전에 다녀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바빠서 이만.”

빠르게 말을 자르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상균이 계속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신경 쓰여서 밥이 목구멍으로 안 넘어갈 거다. 새끼야.’

* * *

신전역을 통과하는 모든 지하철 운행이 중지되었다. 은석은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린 후 던전 게이트로 걸어갔다.

게이트 입장까지 1시간이나 남았지만 벌써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은석은 스태프 천막이 쳐진 곳으로 가 이름을 먼저 확인했다.

“김은석 헌터님, F등급 힐러. 맞으시죠?”

스태프가 헌터 등록증과 은석의 얼굴을 확인한 후, 단기 용역 계약서를 내밀었다.

“여기에 서명하시면 되고요. 몬스터 마나석 및 부산물은 몰래 가져가시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은석이 이름을 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물다섯 살의 김은석이 공식적으로는 처음 들어가는 던전.

낮은 등급이 못 미더운 스태프가 이런저런 주의 사항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떤 길드가 들어가나요?”

“영웅 길드와 한울 길드의 연합 던전이에요. C급 던전이거든요.”

C급 던전을 강조하는 스태프. 은석은 피식 웃으며 천막을 나왔다.

‘C급 던전에 F등급인 네가 왜 왔냐는 거겠지. 그건 그렇고……. 이상균 이 새끼. 내가 F라는 걸 알면서도 C급, 그것도 연합 레이드에 집어넣어? 엿 먹으라 이거군.’

헌터 레벨이 낮으면 당연히 낮은 등급의 던전 위주로 용병 알선을 한다.

최대한 사망자가 적게 나오는 것이 각성자 협회나 길드에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은석이 들어갈 던전은 C급.

결코 만만하게 볼 던전이 아니었다.

게다가 두 길드의 연합이라는 것은 C급 이상일 수도 있는 위험성을 염두에 둔 던전이라는 뜻이었다.

‘옛정도 있고 적당히 우려먹다가 놔 주려고 했더니, 안 되겠네. 이것들.’

게이트 입장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은석은 드나드는 사람들이 잘 보이는 입구 근처에 자리를 잡고 섰다.

“해머, 나와.”

은석이 저승에서 해머를 소환했다.

“대장님, 아니 대장.”

해머가 은석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때? 저승은 지낼 만해?”

은석이 해머를 머무르게 한 곳은 그의 훈련장이었다.

은석과 최성운 차사만 드나드는 그곳이 편하게 지내기에 좋을 것 같아 해머의 숙소를 마련해 줬다.

“좋습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훈련할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고.”

“그렇지, 훈련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야. 거기만 한 데가 없을걸. 혹시 최 차사님은 오셨고?”

최 차사라는 말에 해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은석이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알 만하네. 훈련받았구나.”

해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끄덕였다.

“제가 성장해야 대장에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말씀하셔서.”

은석이 상체를 뒤쪽 벽으로 기댔다.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해머와 훈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은석의 앞에 갑자기 황희준이 불쑥 나타났다.

“형님!”

“뭐야? 너 여기 왜 왔어?”

황희준이 은석에게 꾸벅 인사했다.

“형님이 오늘 연합 던전에 용병으로 참여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형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저도 따라가야지요.”

“들어? 누가 말해 준 거야?”

황희준이 손가락을 들어 키보드 치는 흉내를 냈다.

“각성자 협회 사이트에 뒷문으로 들어가 보니 형님 이름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도 급하게 지원했습니다.”

천진난만한 황희준의 모습에 은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D급이지만 던전 경험도 없고 전투계 헌터도 아닌 그는 은석에게 짐만 될 뿐이었다.

던전 밖에서는 해커의 능력을 이용해 은석의 빠른 정보통이 되어 주지만 던전 안에서는 아니었다.

은석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황희준을 보며 정보탐색 스킬을 사용했다.

[황희준, 22세, D급 헌터]

정보탐색이 Lv2로 올라서인지 정보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주요 스킬, 해부]

‘어? 해부?’

은석이 황희준에게 물었다.

“너 정해진 직업이 없는 일반 D급이라고 했지?”

“네, 맞습니다. 형님. 클래스 생성이 안 되네요. 레이드를 뛰지 않아서 그런가…….”

황희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클래스 말고 스킬 같은 건 없어?”

“있습니다. 제 스킬은 해부입니다.”

정보창이 알려 준 게 맞았다.

해부라니. 은석도 처음 들어보는 스킬이었다.

“해부는 뭐야?”

“음, 저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아마 제가 의대를 다녀서 그런 스킬이 생기지 않았을까 합니다.”

해머가 옆에서 은석만 들을 수 있는 감탄을 내뱉었다.

“와! 의대에 해커에 게다가 기자를 꿈꾸는 헌터라니.”

은석이 손뼉 치는 해머를 슬쩍 보며 조용히 말했다.

“저런 걸 잡캐라고 하는 거야.”

은석과 함께 던전을 들어가게 되어 마냥 신나 보이는 황희준.

“의대생이면 학교 가서 공부해야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 저 휴학했습니다.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서요. 죽은 사람 해부도 못 하는데 스킬이 해부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형님.”

그의 말을 듣던 은석의 머릿속에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은석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황희준에게 말했다.

“몬스터 해부에 최적화된 스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 그런 걸까요? 역시, 형님은 보는 시각이 남다르시군요. 그건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데.”

은석이 아공간에서 끝이 날카로운 단도 하나를 꺼내서 황희준에게 건넸다.

“던전에 들어가면 몬스터 심장에서 마나석만 뽑아내. 심장이 어디 있는지는 내가 알려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형님.”

두 손으로 단도를 잡고 신나게 휘두르는 황희준을 보며, 해머는 은석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던전 안에서 은석을 대신해 마나석을 찾아낼 놈을 구했다.

이제 황희준은 던전 안에서도 밖에서도 은석의 짐이 아니었다.

‘황희준이 인스턴트 던전의 유니크 아이템이었네.’

* * *

“잠시 후에 게이트 입장을…….”

준비하라는 스태프의 말이 뚝 끊겼다. 많은 사람으로 시끌벅적했던 주변이 갑자기 쥐죽은 듯 고요했다.

은석이 주변을 둘러봤다.

귀속령인 해머와 자신을 제외하고 살아 있는 인간은 모두 갑자기 멈춰 버렸다.

“대장, 이게…….”

의아해하는 은석 앞에 검은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최 차사가 나타났다.

해머가 최 차사를 향해 인사를 꾸벅했다. 은석이 사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차사님이 이렇게 만든 거였어요?”

“염라대왕님께서 부르신다. 저승으로 가자. 네가 돌아오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잠깐이지만 혹시 원귀가 나타나 황희준을 공격할 수도 있었기에 해머는 이승에 놔두고 최 차사와 함께 저승으로 갔다.

염라대왕의 집무실에 들어온 은석.

지난번과 달리 심각한 표정의 염라대왕이 은석을 맞이했다.

“김은석 헌터님, 이렇게 갑자기 불러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무슨 일이신지…….”

염라대왕이 허공에 손을 펴자 두루마리 하나가 나타났다.

두루마리가 펴지면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라 공중에서 흩어졌다.

테이블 위로 내려온 두루마리 안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놈은 도적 팔귀입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진 흉측한 악귀였다.

“그리고 이놈은 팔귀의 수하인 굼입니다.”

염라대왕이 가리키는 굼은 도적 팔귀의 허리 정도밖에 오지 않는 작고 왜소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눈과 입이 귀까지 찢어져 섬뜩한 느낌이 들었고 몸은 투명하다고 할 정도로 희미했다.

“팔귀는 보석과 특히 여자를 좋아하는 도적놈입니다. 마음에 드는 여자를 납치해 농락하다가 잡아먹는 극악무도한 악귀지요. 몇백 년 전에 저승차사들이 고생해서 지옥에 가뒀었는데, 얼마 전에 도망쳐 버렸습니다.”

이승의 마력 농도가 짙어지자 그 영향이 저승에까지 미쳤다.

마력에 반응하며 악귀의 힘이 점차 강해졌다. 마력으로 인해 흐려진 경계선을 뚫고 탈출하는 악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염라대왕의 말.

“마력 때문인 탓도 있었지만 굼이라는 수하 놈이 기생충처럼 망자에게 붙어 저승에 들어오는 바람에…….”

팔귀의 심복인 굼은 인간을 숙주로 삼아 생기를 빨아 먹고 사는 악귀였다.

굼이 붙은 인간은 생기가 사라지면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된다.

저승에 들어오기 전, 굼이 기생했던 인간은 무기 징역을 선고받은 살인범이었다.

악한 인간일수록 악귀에게는 달콤한 케이크와 같았다.

굼 역시 살인범의 썩은 영혼의 악취에 이끌려 기생했다.

곧 기생한 인간은 생명을 잃었다.

하지만 망자가 된 후에도 악취는 여전했기에 굼은 지독한 악취 덕분에 저승으로 숨어들 수 있었다.

“냄새가 워낙 심했고 망자와 굼이 뒤엉켜 있어 차사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거지요.”

“그럼 예전처럼 다시 저승차사들이 잡아 오면 되지 않나요?”

“그럴 수만 있다면 벌써 잡아 왔겠지만, 이미 인간에게 완전히 빙의한 상태라…….”

“아, 빙의. 그럼 누구에게 빙의한 건지는 파악됐나요?”

도적 팔귀는 한울 길드에 소속된 헌터에게 빙의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굼이 빙의된 자는 알아내지 못했다.

“헌터들의 마력 때문에 저승에서는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김은석 헌터님이 빙의된 헌터를 찾아내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연합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급하게 헌터님을 저승으로 부른 겁니다.”

은석이 다시 도적 팔귀와 굼의 그림을 쳐다봤다.

“팔이 16개. 그래서 이름이 팔귀인가 봅니다.”

“8인의 도적 떼가 있었습니다. 상인들의 행상을 습격해 많은 재물을 탈취했지요. 팔귀란 놈은 막내였는데 재물에 대한 욕심은 제일 많았습니다. 형제처럼 지내던 일곱 명의 도적놈들을 다 죽이고 결국 그 많은 재물을 혼자 차지했습니다. 그때 죽은 도적의 망령들이 팔귀에게 붙어 시간이 흐르며 악귀로 변하게 된 겁니다.”

“8명이 엉겨 붙어 있는 악귀라니. 그럼 던전 안에서 발견하는 즉시 소멸시키면 됩니까?”

“아니, 죽이면 안 됩니다. 쉽게 죽는 것으로 끝내면 절대 안 됩니다.”

말을 마친 염라대왕이 누군가를 불렀다.

저승차사와 함께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처참하게 찢긴 영혼들이 나타났다.

“최근에 팔귀가 먹어 치운 여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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