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0화 (10/226)

10화

“이 정도면 그럭저럭 네 목숨 정도는 지키겠구나.”

최 차사의 말과 함께 드디어 훈련을 마친 은석.

방으로 돌아와 시계를 보니 훈련장으로 가는 문을 연 시간에서 오 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훈련장에 있었을까.

옷은 땀에 절어 지독한 냄새가 났고 군데군데 헤지기까지 했다.

침대에 누우려다 말고 은석이 옷을 벗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방문을 빼꼼히 열어 보니 각자 방으로 돌아간 듯 거실이 캄캄했다.

샤워를 마친 후, 조용히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하! 시원하다. 훈련장에 샤워 시설을 만들어야겠어.”

콜라 한 캔을 순식간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끄-윽. 이제야 훈련이 제대로 끝난 것 같네.”

그대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 훈련하면서 상태창에 대해 최 차사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여기 오기 전에 귀물 하나를 소멸시켰습니다. 네크로맨서 특성이 개방되었다는 알람이 뜨더군요.”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그런데 저승형이라는 낯선 단어가 붙어 있던데요.”

“저승 헌터는 귀력을 이용해 죽은 자에게 명령하기 때문에 그렇다.”

“생력은 원래 김은석의 생기에서 비롯된 능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귀력이라는 것은 뭐죠?”

“귀신을 부릴 수 있는 힘이다.”

생력이 생명력을 전해 줘 죽은 자가 잠시나마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주는 힘이라면, 귀력은 악귀를 소멸시켜 얻는 힘으로 그것을 이용해 죽은 자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럼 귀력을 이용한 네크로맨서의 특성은 제가 노력한 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군요.”

“그렇지.”

은석이 입술을 씰룩거리며 이불을 당겨 덮었다.

‘생명력 넘치는 힐러가 죽은 자를 조종하는 네크로맨서라. 재미있네.’

* * *

따따-따따따.

새벽 다섯 시가 되자 어김없이 휴대폰 기상 알람이 울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스트레칭을 간단히 하고 조깅 준비를 했다.

식구들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컴컴한 골목을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갑자기 휴대폰 진동이 울려 뛰던 것을 멈추고 꺼내 들었다.

‘일곱 시도 안 된 이런 새벽에 도대체 누가 전화를 하는 거야.’

그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지 않았지만 은석은 이미 알고 있는 전화번호였다.

‘이상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건 이상균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었다.

‘이 새끼, 의심 많은 건 여전하군.’

은석이 헛기침을 하며 먼저 말했다.

“김은석입니다.”

“이상균일세.”

“아침 일찍 무슨 일이십니까.”

“직장인에게 이 시간은 이른 시간이 아니지.”

은석이 소리 없는 콧방귀를 꼈다.

‘네, 네.’

“인스턴트 던전, 정말로 들어갈 건가?”

“네, 들어갈 겁니다. 던전이 생겼나요?”

대답 대신 그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은석 역시 조용히 휴대폰만 들고 있었다.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 하니 소개는 해 주겠다만, 사고가 난다거나 죽어도 우리는 책임이 없네. 알겠나?”

은석이 씨익 웃었다.

“당연하지요. 부장님.”

“모이는 장소는 건상시 외곽에 위치한 백주산 등산로 입구, 시간은 오늘 밤 아홉 시.”

“알겠습니다. 다녀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대답 없이 전화를 끊는 이상균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죽어서 오면 더 좋고.”

그 말을 들은 은석이 호쾌하게 웃으며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왠지 시작할 때보다 몸이 가볍고 활기가 넘치는 것 같았다.

시계가 저녁 여섯 시를 가리키자 은석은 백주산으로 갈 준비를 했다.

‘따로 가방을 가져갈 필요는 없겠지?’

은석이 아공간을 생각하며 손을 내밀자, 허공에 동그란 입구가 나타났다.

아공간은 저승 훈련장의 한 곳과 연결된 것으로, 일종의 인벤토리였다.

겨우 몇 칸 정도의 인벤토리만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와 달리 은석의 저승 아공간은 무한의 보관함과도 같았다.

‘일단, 원래 집에서 챙겨온 장검을 가져가고…….’

저승과 연결된 자신의 아공간에서 장검 하나를 꺼냈다.

‘보기에는 이래도 내구성이 좋으니까 오늘은 이걸 사용하자. 첫 던전인 걸 다 알 텐데 굳이 좋은 무기 들고 가 봤자 눈에만 띌 테고.’

소지품을 넣은 백팩과 검을 다시 아공간 안에 집어넣었다.

검은색의 후드와 청바지를 입고 거실로 나왔다.

쌍둥이 누나가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은돌, 던전에 가는 거야?”

“어, 다녀올게. 삼 일 뒤에 봐.”

급하게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간 은석.

은희와 은영은 닫힌 문을 보며 똑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3일 동안 던전이라……. 차라리 귀신 보는 게 나은 것 같네.”

* * *

건상시는 은석이 사는 곳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였다.

그가 가야 할 백주산은 버스를 갈아타고 더 들어가야 하는 외진 곳에 있었다.

백주산은 높지 않은 산이지만 두 개의 봉우리가 겹쳐지듯 이어져 있어 계곡이 깊고 험했다.

은석이 들어가기로 한 인스턴트 던전은 바로 그 계곡 사이에 있었다.

외진 곳에 위치한 산은 밤이 되자 더욱 을씨년스러워졌고, 어두운 시골길을 걸어가는 은석의 주위로 귀물들이 몰려들었다.

귀물들을 소멸시킴으로 귀력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안 은석이 그것들을 못 본 채 그냥 지나갈 리가 없었다.

아공간에서 장검을 꺼내 달려드는 귀물들을 보이는 족족 베어 버렸다.

[귀력이 증가하였습니다]

알림이 그의 눈앞에서 쉬지 않고 깜빡였다.

마지막 귀물을 베고 난 은석의 얼굴에 누군가 손전등을 비췄다.

갑자기 정면에서 비추는 밝은 빛에 은석이 눈을 찌푸렸다.

“누구야? 이상균 소개로 온 놈이냐?”

은석을 기다린 듯 이상균의 이름이 먼저 나왔다.

“그렇습니다.”

은석의 대답에도 남자는 손전등을 치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굴에 쏘아 대는 불빛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남자 아홉 명이 등산로 안내소 앞에 모여 있었다.

은석이 가까이 다가오자, 남자는 그제야 손전등을 바닥으로 내렸다.

“김은석, 맞아?”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은석에게 물었다.

“어, 맞아.”

은석의 대답에 남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 이 새끼 봐라. 말이 짧다?”

“너도 짧잖아.”

남자가 턱을 치켜들며 은석에게 다가가자, 팀의 리더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그들을 막아섰다.

“그만, 지금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다.”

리더의 말에 손전등을 비추던 남자는 은석을 노려본 후 뒤로 물러났다.

“이상균 씨 소개로 오신 분, 맞으시죠?”

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듣자 하니, 힐러인 데다가 F급이라고 하던데.”

은석의 반말에 기분이 상한 남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상균이 형님 부탁만 아니었으면 너 같은 F급은 이 근처에 얼씬도 못 해! 알아?”

리더도 동의하는지 남자의 빈정거림을 말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 예상했지.’

은석은 대답 대신 별것 아니라는 듯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조용. 그만해라.”

은석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리더가 남자의 말을 멈추게 했다.

그때, 가는 눈웃음을 지으며 남자 하나가 리더 옆으로 다가왔다.

“자자. 이만하면 됐고. 던전에 들어가야지, 여기서 힘을 다 뺄 생각입니까. 형님.”

남자가 은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김호철입니다. 힐러와 함께 가는 건 처음인데……. 왠지 든든한데요. 잘 부탁드립니다.”

은석이 내민 손을 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김은석입니다. 처음이라 많이 긴장했나 봅니다.”

김호철이 그들 곁으로 오지 못한 채 쭈뼛거리는 남자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쪽도 오늘 처음 온 헌터. 나이가 제일 어리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희준입니다.”

“자, 처음 온 신입끼리 서로 도우며 잘해 보시고. 이제 던전으로 가 볼까요? 계곡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던전은 백주산 계곡의 가장 깊은 곳에 생겼기 때문에 등산로가 아닌 산길을 한 시간 정도 걸어가야 했다.

“저깁니다.”

김호철이 가리키는 곳에 인스턴트 던전 게이트가 보였다.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일반 던전과 달리, 유리창처럼 투명하고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크기 역시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던전 게이트 앞에 선 열 명의 남자.

리더 백훈섭이 말했다.

“인스턴트 던전은 목숨을 걸고 들어가는 곳이다. 목숨은 알아서 지키도록. 각자 죽인 몬스터의 마나석은 직접 채취하고 가진다. 만약에 죽으면 죽은 자의 마나석은 살아서 나온 사람들이 나눠서 가진다. 알겠나?”

“네!”

팀원들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백훈섭의 말에 황희준은 긴장한 듯 눈알만 빠르게 움직였다.

“보스를 죽여서 나온 유니크 아이템도 죽인 놈이 임자다. 몬스터 죽이러 들어가자!”

백훈섭이 가장 먼저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딱딱해 보였던 입구는 사람이 들어가자 작은 파장을 일으키며 일렁거렸다.

열 명이 차례대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고 처음 온 황희준과 은석은 제일 마지막 순서였다.

조금 전 은석을 비웃던 남자가 그들을 돌아봤다.

“몬스터를 본 적도 없을 텐데. 심장에서 마나석이나 빼낼 수 있겠어? 우리 병아리 새끼들. 하하하.”

던전의 몬스터는 심장에 마력 결정체인 마나석을 품고 있었다.

몬스터를 죽인 후, 심장을 꺼내야 얻을 수 있는 마나석. 하지만 몬스터의 심장 위치는 다 달랐다.

초보 헌터의 경우, 심장을 찾지 못해 단 하나의 마나석도 얻지 못한 채 던전을 나오기가 일쑤였다.

5년 동안 던전을 드나들던 은석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남자의 도발에도 여전히 반응이 없는 은석을 황희준이 힐끗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은석이 들어가자, 입구가 사라지고 고요만이 남았다.

[주술사 고블린의 소굴입니다. 좀비화된 고블린을 72시간 내에 모두 제거하지 못할 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납니다]

은석의 눈앞에 메시지가 사라지자,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시계가 떴다.

시간이 줄어드는 시계를 보고 있는 은석을 황희준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뭐 보세요? 이상한 게 있나요?”

은석이 황희준과 허공에 뜬 시계를 번갈아 봤다.

“안 보이십니까?”

“네? 뭐가 보인단 말이죠?”

황희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은석이 보던 곳을 노려봤다.

‘역시 나만 보이는 거야. 그럼 아무도 몬스터의 종류를 모르겠군.’

던전의 정보까지 뜰 줄 몰랐던 은석은 아무것도 아닌 척 시치미를 뚝 떼었다.

“아닙니다. 제가 잘못 봤네요.”

백훈섭의 주위로 마지막으로 들어온 은석까지 모두 모였다.

“지금부터 삼 일이다. 어떤 몬스터가 공격할지 알 수 없으니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백훈섭의 말이 끝나자, 모두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가만히 서 있는 은석을 보고 손전등 남자가 또다시 이죽거렸다.

“힐러는 손이 무기냐?”

보라는 듯 은석이 아공간에서 장검을 꺼냈다.

그 모습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뭐야. 인벤토리? 저런 비싼 아이템을 사용한다고? 막 각성한 새끼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검을 꺼내는 은석을 본 황희준 역시 감탄을 내뱉었다.

“F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티팩트를 가졌네요.”

김호철이 가는 눈을 더욱 가늘게 뜨며 반짝였다.

그는 은석이 검을 꺼낸 공간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헌터들은 입구를 벗어나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던전 안에 가득한 낮은 덤불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저 덤불의 색깔은 저게 아닌데. 왜 이곳의 식물들은 모두 잿빛인 거지.’

은석이 손을 뻗어 나뭇잎 하나를 따려고 했지만 그의 손이 닿자 나뭇잎이 파스스 재처럼 부서져 내렸다.

식물들은 죽은 지 오래되었거나 죽어 가고 있는 상태였다.

던전에 들어왔을 때 울리던 메시지가 생각났다.

‘좀비화된 고블린이라고 했었지. 이곳에 살아있는 것은 고블린 주술사뿐이구나.’

제일 앞에서 걸어가던 백훈섭이 주먹을 들어 보이자 모두 일제히 자리에 멈춰 섰다.

백훈섭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마을처럼 보이는 넓은 공간에 수백 마리의 고블린이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피가 달라붙어 얼룩덜룩해진 커다란 도끼를 들고 있는 헌터가 낮은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손맛 좀 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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