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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11화 (11/226)

11화

백훈섭이 헌터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방심하지 마라! 김호섭, 너. 앞으로 가서 고블린의 상황을 살펴보고 와.”

백훈섭의 명령에 김호철이 소리 없이 빠르게 사라졌다.

‘기습에 특화된 놈이구나.’

은석이 사라진 김호철을 보며 생각했다.

‘그런데 저 새끼는 뭐지?’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은석의 눈에 거슬리는 존재가 있었다.

인간이 아닌, 영혼 하나가 계속 그들을 따라다녔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호철을.

망자는 그의 옆에 붙어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신체 강화복을 입고 던전 안까지 따라 들어오는 걸 보아하니 헌터는 분명했다.

‘일반인은 죽어서도 마력 때문에 던전에 들어오지 못하니까.’

누가 봐도 김호철에게 원한이 깊어 보였다.

그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느라 생력을 가진 은석의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일단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으니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귀찮게 하면 소멸시켜 귀속해 버리면 되고.’

김호철이 사라진 자리에서 바닥을 내려다보며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망자.

김호철이 돌아오자 망자는 다시 그의 옆에 붙어 무언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고블린은 어때?”

“움직임은 없습니다만, 생각보다 수가 많습니다. 밝을 때 공격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작 3일뿐인 제한된 시간 동안만 공략이 가능한 인스턴트 던전은 대부분 출입과 동시에 바로 공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운이 나빴는지 던전에 들어오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게다가 고블린의 수가 많다는 김호철의 말.

“그래, 네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게 맞는 거지.”

백훈섭은 오랜 시간 함께 레이드를 뛴 김호철의 말은 무조건 신뢰했다.

백훈섭이 그들 뒤에 서 있는 헌터들을 힐끗 돌아봤다.

“어차피 저 둘은 도움도 안 될 것 같고.”

그의 말에 김호철의 가는 눈이 호선을 그렸다.

“주목. 이곳에서 시간은 금이지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공격할 수는 없다. 날이 밝으면 바로 공격을 시작하겠다. 오늘은 이곳에서 최대한 조용히 밤을 보낸다.”

백훈섭의 말이 끝나자 은석과 황희준을 제외한 모두 빠르게 흩어졌다.

은석은 주변을 둘러보며 잠깐 눈 붙일 곳을 찾았다.

황희준만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어벙한 표정으로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은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은석이 황희준을 불렀다.

“네? 저요?”

“둘밖에 없는데 너지. 귀신을 불렀겠냐?”

은석의 말에 황희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보니까 저쪽에 쉴 만한 곳이 있던데, 어떡할래? 여기 서서 아침 해돋이를 기다릴 거야?”

“아, 아닙니다.”

은석이 앞서 걷자 황희준이 그를 따라갔다.

몸을 숨긴 채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헌터들이 재미있다는 듯 킥킥거렸다.

‘유치하게 텃세나 부리고. 한심한 새끼들.’

은석이 찾은 큰 바위 아래에는 앉아 있기 알맞은 공간이 있었다.

바위에 기대앉은 후 황희준에게 앉으라며 바닥을 툭툭 쳤다.

황희준이 고개를 꾸벅이며 은석의 옆에 앉았다.

“설마 편하게 누워 잘 곳을 기대한 건 아니지?”

“그, 그럼요. 감사합니다. 저보다 몇 살 많으시니, 형이라고 불러도…….”

황희준이 은석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분명 자기 또래 같은데 왠지 어른을 대하는 기분이 들었다.

형이라는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형님이라고 불러.”

“네? 저보다 세 살 많다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아. 형님이라고 불러.”

“넵.”

은석의 단호함에 황희준이 빠르게 대답했다.

은석이 눈을 감자, 황희준은 깜깜한 던전의 하늘을 올려다봤다.

‘젠장, 괜한 욕심을 부려서…….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눈물이 울컥 나올 것 같았다.

황희준은 D급의 각성자였다.

등급은 나쁘지 않았으나 본인 스스로 헌터가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정의 구현 기자를 꿈꾸는 대학생이자 해커였다.

이 세상의 불합리함을 자신의 펜으로 바로잡아 보겠다는 정의감에 불타는 예비 기자 해커의 눈에 들어온 단어, 인스턴트 던전.

‘이름부터 구린내가 폴폴 나는데.’

뛰어난 해킹 실력으로 가입 절차가 까다로운 인스턴트 던전 사이트에도 접속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백주산에 던전이 열린다는 것을 보고 겁 없이 덥석 지원해 버린 것이다.

목적은 하나였다.

구린내가 진동하는 던전 뒷거래를 경험하고 모든 걸 세상에 까발려 주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의감 대신 두려움이 더 크게 자리 잡았다.

‘내가 미쳤지. 일반 던전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놈이 뭘 믿고…….’

과한 의협심이 두 눈을 멀게 한다는 걸 22살 청년이 알 리가 없었다.

‘일단 살아 나가는 걸 목표로 하고 취재는 다음을 기약하자.’

황희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엄마…….”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은석이 감은 눈을 슬쩍 떠서 눈물을 훔치는 황희준을 바라봤다.

‘D급 찐따.’

은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던전 안에 밝은 빛이 조금씩 차기 시작하자, 흩어졌던 헌터들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은석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누워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황희준의 등을 툭툭 찼다.

“야! 일어나.”

정신없이 벌떡 일어난 황희준이 비틀거리며 은석을 뒤따라갔다.

“형, 형님. 같이…….”

준비를 마친 헌터들은 고블린의 마을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소리 없이 천천히 다가갔다.

아침이 왔으나, 어제와 마찬가지로 던전 안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좀비화된 고블린이라고 했으니 공격할 대상이 나타나야 움직이는 거겠지.’

은석의 예상대로 고블린은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헌터들만 곧 있을 살육과 마나석 채취에 마냥 기쁜 뜻 소리 없이 히죽거렸다.

‘보스를 찾기도 전에 전부 죽으면 곤란하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그들을 보며 은석이 백훈섭의 곁으로 다가갔다.

“대장님, 고블린이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은석의 말에 백훈섭이 아니라, 손전등 남자가 먼저 반응했다.

“초보자 새끼가 뭘 안다고 지껄여? 고블린도 오늘 처음 보는 거 아니야? 무서우면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

은석은 남자의 말은 무시하고 백훈섭에게 다시 말했다.

“고블린은 무척 시끄럽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도 그렇고 지금도…….”

“야! 이 새끼야!”

남자가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은석의 멱살을 잡으려고 하자, 백훈섭이 그의 팔을 막았다.

그리고 은석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공격!!”

백훈섭이 큰 소리로 공격을 명령했다.

그에게 저지당했던 남자가 은석의 뒤통수를 세게 치며 달려 나갔다.

은석이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무식하면 용감하지. 시신은 무거워서 수습 못 해도 영혼은 데리고 나가 줄게.’

“우아아! 고블린을 죽이자. 심장을 갈라라.”

헌터들이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은석의 예상대로 미동도 없었던 고블린이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에-엑!!

순식간에 헌터와 고블린이 뒤엉켰다.

인스턴트 던전만 수없이 드나들었던 팀답게 소수의 인원이었지만 공격력이 상당했다.

바닥에 고블린이 쓰러지자, 빠르게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냈다.

“어? 이거 뭐야.”

막 고블린의 가슴을 가른 헌터가 백훈섭을 찾았다.

“대장! 이거 좀 봐야 할 것 같은데요.”

고블린의 머리를 벤 백훈섭이 자신을 부르는 남자를 뒤돌아봤다.

“뭐야?”

남자가 백훈섭을 향해 내미는 심장은 죽은 지 오래되어 쪼그라들고 말라비틀어진 것이었다.

생명력이 없는 심장에 마나석이 있을 리 만무했다.

백훈섭도 그가 죽인 고블린의 가슴을 열었다.

역시나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심장이었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헌터들.

‘좀비 심장에 마나석이 있을 리가 없지.’

한쪽에서 고블린을 베고 있던 은석이 그들을 힐끗 보며 실소를 흘렸다.

‘지금 마나석이 문제가 아닐 텐데.’

심장을 쥔 채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백훈섭.

그의 뒤로, 조금 전 그가 머리를 자르고 심장을 꺼낸 고블린이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대, 대장! 뒤에!”

바닥에 쓰러졌던 고블린이 다시 일어나 공격하기 시작했다.

도끼를 든 헌터가 고블린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머리가 반으로 쩍 갈라지며 양쪽으로 벌어졌지만 헌터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으악! 뭐야, 이것들!!”

헌터들의 당황한 비명이 커졌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죽지 않는 고블린.

“좀비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머리를 잘라!! 머리를 베면 다시 일어나지 못해.”

좀비라면 일단 머리부터 공격하는 게 일반 상식.

그 말에 모두 고블린의 머리를 공격했다.

하지만 머리가 잘린 고블린도 다시 일어나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헌터들은 점점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그건 영화에 나오는 좀비에게나 먹히는 방법이고.’

은석이 달려드는 고블린 하나를 베었다.

다른 놈들과 다르게, 바닥에 쓰러진 후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고블린.

[귀력이 증가하였습니다.]

[고블린의 영혼은 귀속할 수 없습니다.]

‘주술사에게 속한 영혼이라는 말이지.’

좀비화된 고블린은 그들이 알고 있는 좀비의 형태가 아니었다.

주술사에 의해 죽은 육체 안에 영혼이 가둬진 존재였다.

그러니 머리를 베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고, 직접 영혼을 베어야만 좀비 고블린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은석의 주변에 죽은 고블린이 쌓여 가자 헌터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저 새끼는 뭔데 고블린이 다시 살아나지 않는 거야?’

그리고 또 한 명.

김호철의 옆에 붙어 있던 망자가 은석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망자가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당연히 산 자인 은석은 죽은 자신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거리낌 없이 고블린을 베는 은석 곁에 도착한 망자.

그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서걱-

은석이 휘두른 낡은 검에 왼손이 잘려 연기처럼 사라졌다.

순식간에 사라진 자신의 왼손과 은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분명 자신은 이미 죽었는데 미칠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을 만큼 강한 통증.

은석이 망자의 얼굴을 향해 검을 내밀었다.

“뒈지기 싫으면 꺼져.”

* * *

쉬지 않고 덤벼드는 고블린 때문에 회복 포션을 마실 시간도 없었다.

찌르고 베어도 계속해서 일어나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는 경험도 소용없었다.

그들 마음속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대장! 여기서 다 죽을 겁니까?”

김호철의 고함에 백훈섭이 후퇴를 명령했다.

그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혼자 움직일 수 있는 헌터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 뒤로 공포에 찬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던전에서의 두 번째 밤이 찾아왔다.

돈을 위해 인스턴트 던전이 열리면 모였다가 헤어지는 관계였다.

동료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살려 달라는 외침을 외면하고 도망쳤다는 알량한 죄책감에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위험을 맞닥뜨리면 그 사람의 진심이 드러나는 법.

김호철의 말을 100% 신뢰한다던 백훈섭이 화살을 그에게 돌리려고 했다.

“김호철, 네놈이 제대로 정찰을 하지 못해 이런 결과가 나온 거다. 어떻게 책임질 거지?”

“듣자 듣자 하니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이게 왜 제 책임입니까. 네? 대장 역할을 제대로 못해 놓고 지금 누구 탓을 하는 겁니까!”

백훈섭과 김호철을 둘러싸고 헌터들이 언성을 높였다.

싸움을 말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을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은 쪽이 대다수였다.

‘오합지졸들.’

은석은 그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그런 은석의 근처에 두 사람이 얼쩡거렸다.

하나는 황희준이었고 다른 하나는 은석의 칼에 왼손을 잃은 망자였다.

은석이 쭈뼛거리며 서 있는 황희준을 쳐다봤다.

“뭐야? 나한테 할 말 있어?”

“형님……. 그건 아니지만, 또 아닌 것도 아니고…….”

고개를 숙인 채 웅얼거리는 황희준.

그는 고블린을 베는 은석을 보며 깨달았다.

‘저 사람 옆에 붙어 있어야 살아서 던전을 나갈 수 있다.’

해커의 빠른 상황 판단력으로 본 은석은 보통 헌터가 아니었다.

‘절대 F급이 아니야. 뭐? 힐러? 웃기고 있네. 힐러가 몬스터를 그렇게 잘 죽인다고? 뭔가가 있어. 혹시 나처럼 인스턴트 던전의 비리를 캐내려고 온 사람일까? 저 정도 실력이면 혹시 나라에서 파견된 숨은 실력자?’

황희준의 상상 나래가 마음껏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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