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윤혁?”
은석이 다시 한번 남자의 이름을 말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 불산 길드의 윤혁.
각성한 지 3년 만에 누구도 넘보지 못할 자리를 차지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왜 당신이 형님을…….”
은석의 물음에 윤혁은 싱긋 웃으며 움켜쥔 머리카락을 좌우로 흔들어 댔다.
두피가 뜯겨 나갈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
“궁금하지? 내가 왜 저런 아저씨를 죽였을까?”
“으윽!”
뒤로 꺾인 허리와 척추가 부서질 것만 같아 은석이 신음을 내뱉었다.
그 소리에 윤혁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반달 눈웃음을 더욱더 깊게 지었다.
“많이 아파? 그러니까 왜 여기까지 기어들어 오고 그래.”
“살인자 새끼. 내가 나가면 너를…….”
“크크큭. 나가면? 어라, 이 아저씨…… 나를 너무 띄엄띄엄 본 거 아니야?”
웃음을 거둔 윤혁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윤혁은 살인을 즐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은석의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공포가 떠올랐다.
“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인 거냐?”
“풉! 뭘 알고나 묻는 거야?”
윤혁이 머리카락을 움켜쥔 손을 떼자, 은석의 턱이 바닥으로 강하게 떨어져 부딪혔다.
“윽!”
턱에서부터 올라오는 찌릿한 통증에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은석은 이빨을 꽉 깨물며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컥.”
그때 윤혁이 은석의 목을 손가락으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하하하핫! 뭐야.”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윤혁.
“아저씨, 헌터 맞아? 이따위 마력으로 무슨 헌터를 해. 쪽팔리게.”
점점 강하게 조이는 그의 악력에 숨이 막혀 컥컥거렸다.
“살, 인자…… 새끼. 네 정체를…….”
은석이 안간힘을 써 말을 이어갔다.
“응? 뭐라고? 똑바로 말해 봐. 잘 안 들리잖아.”
“네가, 최고의…… 헌터라고? 넌…… 나보다 더, 쪼렙이야…… 이 거지 같은, 새끼……야!”
은석의 더듬거리는 말에 윤혁의 얼굴이 붉어졌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올랐고 동시에 그의 목을 잡은 손가락에 힘이 더 들어갔다.
콰광!!
그 순간 동굴 바깥에서 굉음이 들렸다.
동시에 윤혁 근처의 벽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윤혁은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돌을 피하며 은석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으윽!”
바닥에 떨어진 은석이 양손으로 목을 감싸 쥐고 막혔던 숨을 몰아쉬었다.
콰과광!!
또다시 폭발음이 들렸고 은석이 누워 있는 던전 바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윤혁은 빠르게 동굴 입구 쪽으로 뛰어가 벽에 붙어 섰다.
미처 피하지 못한 은석은 위태롭게 걸려 있는 바닥 한쪽을 가까스로 잡고 매달렸다.
아래를 힐끗 내려다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뿐이었다.
“어이! 마력 쓰레기!”
윤혁이 잡을 것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은석을 불렀다.
“내 손에 영광스럽게 죽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 그렇지?”
은석이 윤혁을 노려봤다.
“살인자 새끼 손에 죽느니, 던전 바닥에 떨어져 죽는 게 영광이지.”
콰광!!
조금 전보다 약했지만, 다시 들리는 폭발음에 은석이 잡고 있던 바닥이 강하게 흔들렸다.
“두고 봐라. 내가 저승 끝까지 쫓아갈 테니까. 딱 기다려라. 이 살인자 새끼야!”
은석의 말에 윤혁은 고개까지 젖혀 가며 크게 웃었다.
“하하! 아저씨, 지금 이 타이밍에는 살려 달라고 빌어야지?”
윤혁이 바닥에 떨어진 주먹만 한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래야 죽일 맛이 나지.”
그 돌을 은석의 머리를 향해 힘껏 던졌다.
퍼억!!
돌이 은석의 이마 중앙을 강타했다.
강한 충격에 고개가 뒤로 휘청 넘어가면서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스르륵 빠졌다.
은석은 그대로 깊이를 알 수 없는 던전 바닥으로 떨어졌다.
* * *
자신을 내려다보며 즐거운 듯 웃고 있는 윤혁이 보였다.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은석의 위로 동굴 벽이 무너져 내렸다.
‘이렇게 죽으려고 그동안 그렇게 아등바등 산 게 아니었는데…….’
열아홉에 보육원에서 나온 후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아직은 어린 그를 보살펴 줄 가족도, 힘든 상황을 나눌 친구도 없었다.
그에게 하루하루는 버티고 이겨야 할 치열한 전쟁터였다.
어느 날 던전이 나타났고 누구나 선망하는 각성자가 되었다.
고되기만 했던 그의 인생이 드디어 빛을 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F급 힐러.
은석은 여전히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닥에서만 살다가, 죽을 때도 던전 바닥에서 죽는구나. 뭣 같네, 인생.’
은석이 눈을 번쩍 떴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고!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렇게 죽어야 해!”
아무도 듣지 못할 소리를 질러댔다.
“젠장…… 살고 싶다고! 죽고 싶지 않단 말이야!”
퍼벅!
던전 바닥에 떨어진 은석은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퍽!
쾅!
같이 떨어지던 돌덩이들이 그대로 은석의 위에 쌓여 그의 무덤이 되어 갔다.
‘나도 X발…… 제대로 살아 보고 싶었다고…….’
마지막 돌이 마치 비석처럼 그의 돌무덤 앞에 떨어져 꽂혔다.
그때였다.
[당신의 삶에 대한 강한 열망이 저승 헌터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마지막 숨을 내쉬려는 순간, 은석의 머릿속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살 기회?’
죽어 가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지금 이 상황을 금방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것 역시 죽기 직전에 겪는 일인가?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조금 전에 들렸던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결정하지 않으실 경우, 사망 즉시 저승차사의 인도 절차가 시작됩니다. 제안을 수락하시겠습니까?]
죽어 본 적이 없으니 이런 상황을 누구나 겪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저승차사라는 단어에 두 눈을 번쩍 떴다.
‘죽기 싫어!!’
은석의 의지에 머릿속 목소리가 즉시 반응했다.
[저승 헌터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을 축하드립니다]
후욱!
분명 조금 전 바닥에 등이 닿았다.
하지만 온몸이 아래로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의식이 사라졌다.
* * *
“허억!”
은석이 숨을 내뱉었다.
“하아, 하아…….”
무거운 돌무더기에 눌려 가슴이 답답했었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아무렇지 않았다.
“하아…….”
숨을 깊게 들이쉬고 다시 내쉬었다.
천천히 눈을 뜨니 하얀 천장이 보였다.
‘어디지……?’
눈을 껌뻑이고 있는 은석의 앞에 낯선 중년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은석아? 은석아! 정신이 들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쏟아내는 여자.
‘누구지?’
“잠깐만, 선생님 모셔 올게. 조금만 참아, 은석아.”
뛰어나가는 여자의 발소리가 들렸다.
은석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주변을 돌아보니 그가 누워 있는 곳은 병실이었다.
“어떻게 내가 병원에…….”
곧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왔다.
간단한 문진 후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고 다행히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지금 환자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절대 안정입니다. 편하게 쉬셔야 합니다.”
의사의 권고에 내내 울고 있던 중년 여자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석아, 엄마 내일 다시 올게. 푹 쉬고 있어. 어디 가지 말고.”
병실에서 사람들이 나간 후 은석은 침대에 다시 누웠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혼란스러운 상황.
은석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벼 댔다.
“어?”
얼굴의 느낌이 평소와 달랐다.
두껍고 거친 그의 피부가 아니었다.
부드러운 감촉에 은석이 손을 내려다봤다.
“이거 뭐야?”
벌떡 일어나 앉았다.
다시 살펴본 그의 손은 고생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젊은 남자의 손이었다.
‘거울…… 거울이 어디 있지?’
은석이 거울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병실 입구에 화장실이 있는 걸 확인한 후, 급하게 침대 밖으로 다리를 내렸다.
털썩.
하지만 은석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다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 당혹스러웠다.
침대 난간을 붙잡고 겨우 일어서 자신의 몸을 살폈다.
살이라고는 전혀 없는, 마르다 못해 아사 직전처럼 보이는 몸이었다.
‘빨리 거울을 봐야 해.’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질질 끌며 화장실까지 힘겹게 걸어갔다.
문을 열고 화장실 안 거울 앞에 선 은석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울에 비친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누, 누구야?”
원래 은석은 키가 크지 않았지만 다양한 노동으로 만들어진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은 조폭이라고 생각할 만큼 거친 분위기를 풍겼다.
“이게 나라고?”
거울 안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남자는 이제 겨우 스물을 넘긴 듯 보였다.
창백하다 못해 병색이 짙었지만, 호리호리하고 큰 키에 조막만 한 얼굴은 마치 연예인을 보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그때, 거울에 글자가 떠올랐다.
[저승으로 안내할 저승차사가 곧 도착합니다]
“어?”
은석이 손을 내밀어 거울에 나타난 글자를 문질렀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니 글자가 그를 따라 움직이는 듯 다시 나타났다.
“이거, 거울이 아니라 눈앞에 떠 있는 거였어?”
손을 내밀어 글자를 휘휘 흩트려 봤다.
마치 홀로그램처럼 손이 그대로 통과해 버리는 글자들.
은석은 다시 침대로 돌아와 걸터앉았다.
눈을 깜빡여 봤지만, 여전히 그대로 떠 있었다.
다시 한번 더 눈을 감았다 뜨니 글자는 사라져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누구…….”
창백한 남자의 입에서 하얀 서리가 흘러나왔다.
“너를 저승으로 안내할 저승차사다.”
“네? 저승차사요?”
“그렇다. 자리에서 일어나라. 김은석.”
“으아악!”
그제야 은석이 소리를 지르며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은석의 고함에 병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들어왔다.
“김은석 환자분, 무슨 일이세요? 왜 갑자기 소리를.”
은석은 간호사와 자신을 저승차사라고 소개한 남자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간호사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 듯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은석에게 다가왔다.
“왜 그러세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침대에 부딪치는 바람에 아파서…….”
“그렇군요. 혹시 어디 불편하시면 벨 누르세요.”
간호사가 양 볼을 붉히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진짜 안 보이나 보네.’
은석 역시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한번 더 죄송하다는 사과를 건넸다.
간호사가 병실 문을 닫고 나가자, 다시 저승차사들을 돌아봤다.
여전히 아무 표정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저승차사.
“혹시 제가 죽었나요?”
은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다.”
짧은 대답.
“그런데 왜 저승으로…….”
“저승과 계약을 했을 것인데 기억나지 않는 것이냐?”
“아! 그거…….”
죽기 직전 머릿속에 들렸던 말들이 그제야 떠올랐다.
[저승 헌터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그게 환각이 아니었어?’
“빨리 일어나라. 대왕님께서 기다리신다.”
저승차사가 은석에게 다가와 그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차갑다 못해 팔이 얼어붙을 것 같은 냉기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옆에 서 있던 저승차사가 품에서 붓을 꺼내 허공에 둥근 원을 그렸다.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는 긴 계단이 나타났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한 바람이 병실 안을 가득 채웠다.
은석이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봤지만 엄청난 소리에도 누구 하나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가자.”
저승차사의 뒤를 따라 은석이 계단을 내려가자 병실 한쪽에 생긴 검은 구멍이 이내 사라졌다.
계단을 한참 내려가니 그의 앞에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눈앞에 붉은 하늘과 건조한 땅이 보였다.
“지옥?”
“여기는 지옥이 아니다. 지옥은 더 깊은 곳에 있지. 이곳은 저승이다.”
“아, 그렇군요…….”
저승차사가 손을 들어 무언가를 잡는 듯 움켜쥐었다.
아무것도 없던 그곳에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큰 철문이 나타났다.
철문에는 고통에 괴로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조각상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저승차사가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들어가라. 염라대왕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