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협회 용병으로 오신 분들은 이쪽에서 참여 확인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스태프의 외침에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등록된 헌터가 모두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간단한 절차였다.
하지만 헌터의 입장에서는 던전에서 죽을 경우 보상금이라도 받기 위해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은석 역시 그들 뒤편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이! 소독이 왔는가?”
멀리서 사내의 걸걸한 음성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의 목소리에 은석 주변에 대기 중인 헌터들이 일제히 사내를 쳐다봤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또 뵙습니다.”
은석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마흔다섯 살의 은석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몇 안 되는 연장자 중 하나였다.
“역시! 우리 소독이는 오늘도 올 줄 알았지. 근면 성실 빼면 또 시체 아닌가.”
“그렇지요. 집에 있어 봤자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벌 수 있을 때 나와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죠.”
“에헤이, 결혼을 못 해 봐서 모르는 것 같은데. 혼자가 편한 거야. 혼자가. 지금을 즐겨.”
사내가 은석의 팔을 툭 쳤다.
그때, 인원 확인 스태프가 은석의 이름을 불렀다.
“김은석 헌터님! 김은석 헌터님, 계십니까?”
“저 부르네요.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가라는 사내의 고갯짓에 은석이 가볍게 머리를 숙이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사내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물었다.
“소독이요? 특이한 이름이네요. 성이 소고, 이름이 독인가요?”
사내가 그의 질문이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었다.
“하하하, 별명이야. 별명. 소독약 헌터.”
“소독약 헌터요? 무슨 별명이 그렇습니까?”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내가 힐끗 쳐다봤다. 남자는 이제 겨우 스물을 갓 넘긴 풋내기였다.
“보아하니 헌터로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았구만.”
“사 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사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친구 클래스가 힐러야.”
“아, 힐러라서 소독약 헌터라고 부르는 거군요. 다친 곳을 치료해 주니까.”
남자가 이해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게 아닐세. 힐이 소독약 바르는 것 정도밖에 안 돼서 붙여진 별명이야. F급이거든.”
“네? 그럼 F급 힐러와 던전에 들어간다는 겁니까?”
남자의 놀란 반응에 사내가 말을 이었다.
“F급 힐러만으로도 충분한 던전이라는 뜻이지. 쯧쯧. 아직 한참 배워야 하겠구만.”
“아…….”
남자는 그제야 질문을 멈추고 은석을 바라봤다.
이름을 확인한 후 돌아서는 은석이 사내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 * *
소독약 헌터.
모두 은석을 그렇게 불렀다.
힐러 클래스에서 흔치 않은 F급.
F급이라 제대로 된 치료는 할 수 없었다.
가볍게 긁힌 상처를 아물게 한다거나, 소독약처럼 당장 감염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만 가능했다.
지구에 던전이 생긴 지 7년.
은석이 헌터로 일한 시간이 5년이었다.
마력에 따라 대우가 완전히 달라지는 헌터 세계.
그 안에서 F급인 그가 받아 온 무시와 조롱은 상상 이상이었다.
다시 돌아온 은석을 보며 어린 헌터가 씩 웃었다.
“제가 이 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몰랐는데, 엄청 유명하신 분이더군요.”
은석이 남자의 말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 새끼야. 나 유명하다.’
쓴웃음을 지으며 어린 헌터를 바라봤다.
“그렇습니까? 아이고, 부끄럽네요. 제가 유명하다니.”
은석이 남자의 빈정거림을 모르는 척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번이 몇 번째 던전이시죠? F급이니 던전 경험도 많이 없겠군요.”
막 각성한 어린 헌터의 거들먹거림이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5년 동안 이런 놈들을 한두 번 만난 것도 아니니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5년 되었으니…… 음, 꽤 들어갔을걸요?”
5년이라는 말에 어린 헌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에에? 5년이나 헌터를 하셨다고요? F급이? 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와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저씨?”
어린 헌터의 무례함이 슬슬 짜증 날 때쯤,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게이트 입장이 시작됩니다. 먼저, 협회에서 오신 용병들부터 들어가십시오.”
* * *
“불산 길드에서 진행하는 던전인데, 혹시 윤혁도 올까요?”
“에이, 설마 이런 하위 던전에 천하의 윤혁이 왜 와. 상위 던전도 수두룩한데.”
“그렇겠지. 혹시나 했는데…… 기대를 말아야지.”
던전에 먼저 들어온 용병들이 불산 길드 헌터의 입장을 부러운 듯 바라봤다.
길드에서는 보통 돈이 되는 중상위 던전 위주로 공략하고, 그들이 관심 없는 하위 던전을 각성자 협회에서 맡았다.
이번에 불산 길드에서 맡은 이번 던전은 마력이 높지 않은 E급이었다.
불산 같은 상위 길드가 낮은 등급의 던전에 들어가는 이유는 주로 신입 헌터의 교육 때문이었다.
이번 던전 역시 그런 용도였고 부족한 인원은 협회의 용병으로 채웠다.
불산 길드 헌터를 넋 놓고 바라보는 용병들과 달리, 은석은 주변 지형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소독이! 왜, 뭐가 이상한 게 보이나?”
사내가 곁으로 다가왔지만, 은석은 쪼그려 앉아 땅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의 물음에 은석이 근처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고는 고사리처럼 끝이 말려 땅에 딱 붙어 있는 풀을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줄기마다 촘촘한 돌기가 솟아 있었다.
“이거 보십시오, 형님.”
은석이 잡고 있던 나뭇가지로 풀을 강하게 내려쳤다.
퍼져 있던 줄기들이 순식간에 모여들며 은석이 내려친 나뭇가지를 꽉 붙잡았다.
“여기에 발을 딛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만약에 밟더라도 빨리 빼셔야 합니다. 아니면 이렇게 잡혀서 꼼짝달싹도 못 한 채 몬스터에게 공격당할 겁니다.”
“오! 알려 주지 않았으면 저런 게 있는지도 몰랐을 거야. 매번 고맙네, 소독이.”
사내가 일어서는 은석의 등을 툭툭 쳤다.
F급 힐러인 은석이 5년 동안 던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의 생존 능력 덕분이었다.
은석은 살아남기 위해 던전을 공부했고, 던전의 자연환경과 몬스터에 대해 그를 따라올 사람은 없었다.
근처에 서서 그들을 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던, 조금 전 그 헌터가 다가왔다.
“고작 이런 보잘것없는 풀 하나 조심한다고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겠습니까?”
은석이 비아냥거리는 어린 헌터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5년 전에 첫 던전을 들어갔어. 그때부터 같이 레이드를 뛴 헌터 중에 살아남은 자가 몇 명일 것 같아?”
“쪼렙 아저씨도 살아 있으니 다 살아 있겠죠.”
은석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제로야. 모두 다 던전에서 죽었어. 나만 살아남았지.”
“에이, 말이 됩니까? 거짓말이죠?”
“아니, 진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무슨 뜻인데요?”
어린 헌터가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너도 오늘 죽을 수 있다는 거야, 이 꼬맹아.”
어린 헌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옆에 서 있던 사내가 껄껄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큭큭큭……. 다 죽어도 소독이 저 새끼는 살아남을 거야. 엄청 질긴 놈이거든.”
* * *
토끼굴이라고 불리는 던전 안에는 크고 작은 동굴이 곳곳에 뚫려 있었다.
몬스터는 토끼와 비슷한 형태로, 크지는 않았지만 길고 뾰족한 송곳니가 무척 위협적인 놈이었다.
점프력 또한 뛰어나 순식간에 헌터의 목과 어깨까지 뛰어올라 이빨을 박아 넣었다.
특히 송곳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비 독이 가장 위험했다.
“크헝!”
작고 하얀 외형과 어울리지 않는 거친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사방에 뚫려 있는 작은 굴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가 순식간에 헌터들을 둘러쌌다.
“마법사! 불을 쏴!”
“으악! 내 팔!”
헌터들의 외침과 몬스터의 괴성이 던전 안을 가득 채웠다.
빠르고 높은 점프력 때문에 뛰어다니는 몬스터를 베기란 쉽지 않았다.
은석 역시 수없이 칼을 휘둘렀지만 놓치는 게 반 이상이었다.
“힐러…… 힐러……!”
그때 누군가 애타게 힐러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몬스터에게 목이 뚫려 피가 솟구쳐 나오고 있는 헌터 한 명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은석이 달려가 손으로 목에 뚫린 구멍을 막았다.
‘먼저 상처를 아물게 해야…….’
은석이 손바닥에 신경을 집중했지만, 은은한 노란빛이 잠깐 보이고는 이내 사라져 버렸다.
부족한 마력을 짜내느라 은석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헌터의 목을 누르고 있는 양손이 벌벌 떨렸다.
손을 떼고 상처를 바라보니 다행히 지혈된 듯 더 이상의 피는 흐르지 않았다.
“후우…….”
은석이 가쁜 숨을 내쉬었다. 헌터는 이미 많은 피를 흘려 의식을 잃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지혈에 도움이 되는 나뭇잎 하나를 뜯어 헌터의 목에 붙였다.
몬스터의 눈에 띄지 않도록 낮은 수풀 안으로 그를 밀어 넣은 후 다시 칼을 집어 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괴로워하는 신음이 들렸다.
“으윽…….”
은석이 주위를 둘러봤다.
몬스터와 싸우는 헌터들의 모습만 보일 뿐, 신음을 흘리는 사람은 없었다.
“으으…….”
또다시 들린 소리는 은석의 뒤편에 위치한 입구가 작은 동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몸을 굽혀 안을 살폈으나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컥……! 윽…….”
계속 이어지는 고통스러운 신음.
은석이 동굴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낮은 포복 자세로 천천히 기어들어 갔다.
작은 입구와 달리 동굴 안은 은석이 똑바로 설 수 있을 정도로 천장이 높았다.
“컥……! 컥…….”
소리가 들리는 안쪽에서 희미한 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은석이 칼을 쥐고 천천히 불빛을 향해 걸어갔다.
“돼지처럼 모가지가 두꺼워서 그런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좀 빨리 뒈지라고. 사냥이 끝나기 전에 나가 봐야 한다고요, 아저씨!”
또다시 들리는 남자의 짜증 가득한 목소리.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느낀 은석이 뛰기 시작했다.
불빛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들어간 은석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젊은 남자가 덩치가 큰 또 다른 남자의 목을 한 손으로 조르고 있었다.
“형님!!”
은석이 목이 졸리고 있는 남자를 보고 외쳤다.
“컥…… 소…… 컥!”
그가 형님이라고 부르던 사내의 입에서 거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은석은 바로 사내의 목을 조르고 있는 남자를 향해 칼을 휘두르며 뛰어갔다.
“손 치워! 이 새끼야!!”
텅!
남자가 달려오는 은석을 향해 귀찮은 듯 한 손을 휙 휘둘렀다.
강한 마력의 파장이 은석의 가슴에 부딪혔다.
“쿨럭!”
검은 핏덩이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뭐야, 저 쓰레기는?”
“퉤.”
입 안 가득 고인 피를 뱉어낸 후 은석은 다시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형님 목을 잡은 저 손부터…….’
“이 씨, 귀찮게…….”
남자가 다시 은석을 향해 마력 덩어리를 던졌다.
복부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엄청난 통증이 몰려와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는 순간, 남자의 손가락이 사내의 목에 콱 박혔다.
사내의 검은 눈동자가 뒤로 휙 돌아가며 목이 비정상적으로 꺾였다.
“혀, 형님…….”
목에 박힌 젊은 남자의 손가락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와 죽은 사내의 온몸을 감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내의 몸은 사라지고 거무튀튀한 연기가 동굴 안을 가득 메웠다.
“흐-읍.”
사내를 죽인 남자가 숨을 크게 들이켰고, 엄청난 양의 연기가 남자의 콧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연기를 모두 들이마신 남자가 입맛을 쩝쩝 다셨다.
“마력을 컨트롤 못 해서 낮은 던전만 돈다더니……. 소문이 맞나 보네. 늙다리 A급치고 꽤 괜찮은 마력 농도야.”
보고도 믿지 못할 장면이었다.
남자의 손에 죽은 형님이 순식간에 검은 연기로 변했다.
그리고 그 연기를 남자가 흡입했다.
분명 살인을 했고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식인을 했지만, 시체는 없었다.
“너, 너…… 이 새끼!”
은석이 목소리를 쥐어짜 남자에게 소리쳤다.
혼자 중얼거리며 서 있던 남자가 은석에게 다가왔다.
“어? 아직 안 죽었네.”
남자가 은석의 앞에 앉아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위로 휙 당겼다. 엄청난 힘이었다.
순식간에 허리가 꺾이며 남자의 눈높이까지 상체가 들려진 은석.
당겨 올라가 감긴 눈을 억지로 떴다.
살인자의 얼굴을 봐야…….
그리고 보았다.
“윤……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