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 힐러는 네크로맨서-3화 (3/226)

3화

은석을 저승으로 안내한 저승차사들은 안으로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은석이 들어서자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염라대왕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서 진땀이 났다.

염라대왕의 집무실은 바깥의 황량한 분위기와 전혀 다른 곳이었다.

동네의 작은 카페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아늑했다.

두리번거리는 은석의 눈에 검은 도포에 갓을 쓴 또 다른 저승차사가 보였다.

“아!”

그와 눈이 마주치자, 은석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저승차사가 아니라 그의 머리 위에 뜬 글자 때문이었다.

[최상급 차사, 최성운]

‘또 글자가 뜨네. 저건 저승차사의 이름을 알려 주는 건가.’

은석이 저승차사의 머리 위에 뜬 글자를 보는 사이, 집무실 안쪽 의자에서 남자 한 명이 일어섰다.

“김은석 씨 오셨습니까? 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은석이 고개를 돌려 걸어오는 남자를 쳐다봤다.

“헉!”

남자의 얼굴을 마주한 은석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뱉었다.

염라대왕의 얼굴은 이승의 누군가와 너무나도 닮았다.

아니, 닮았다기보다 완전히 그 사람이었다.

“하하하! 제 얼굴이 염라대왕이라도 될 상입니까?”

염라대왕은 은석의 표정이 재미있는지 껄껄거리며 물었다.

그런 염라대왕을 보던 최성운 차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왕님, 부디 체통을.”

최 차사의 말에 염라대왕이 웃음을 뚝 그치고 의자에 앉았다.

은석에게도 맞은편에 앉기를 권했다.

“얼굴이 완전…….”

“왜요? 내가 어떤 영화배우와 닮기라도 했습니까?”

“네……. 아니, 닮은 게 아니라 그 배우라고 해도 믿겠는데요.”

“저승이 참 신기한 곳입니다. 보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보여 준단 말이죠. 요즘 영화 덕분에 저승에 오는 망자들이 날 참으로 멋진 배우로 봐 주고 있어요. 덕분에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하하하!”

은석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염라대왕이 은석에게 차 한 잔을 권했다.

“지금 이 상황이 혼란스러우시겠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던전 안에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 보니 다른 얼굴을 하고 있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염라대왕이 최성운 차사를 불렀다.

“김은석 망자를 데려오시게.”

‘김은석 망……자?’

얼마 지나지 않아 최 차사가 젊은 남자 한 명과 집무실로 들어왔다.

은석이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

남자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김은석입니다.”

자신을 김은석이라고 소개하는 남자는 은석이 화장실 거울에서 봤던 그 얼굴이었다.

망자 김은석은 은석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때 그의 앞에 스륵 빈 잔 하나가 나타났다.

염라대왕이 망자 김은석의 잔에 차를 채웠다.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은석이 염라대왕에게 묻자 들고 있던 찻주전자를 내려놓았다.

“마흔다섯 살의 김은석은 던전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의 김은석 역시 같은 날 사망하였습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염라대왕의 말에 은석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네?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뇨.”

“던전이 생긴 후 사망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던전이 뿜어내는 마력은 이승뿐만 아니라 저승도 혼란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타고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타고난 수명대로 살다가 죽어야 한다.

그 후 저승에서 이승의 업보에 따라 정확한 심판을 받고 다음 생을 이어 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지만 던전 출현 이후 비명횡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제대로 된 심판조차 받지 못한 채 소멸해 버리는 망자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럼 저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인 건가요?”

“맞습니다. 그런데 김은석 씨의 강력한 삶에 대한 열망이 저희에게 닿았던 거죠.”

“닿았다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승에서 준비 중인 프로젝트에 당첨되었다는 말입니다. 하하하!”

염라대왕은 더 이상 저승의 혼란을 지켜보지만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다고 저승에서 직접 나설 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이승과 저승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인간에게 임무를 맡기는 것이었다.

“그게…… 저인가요?”

“아닙니다. 이승과 저승을 오갈 수 있는 인간은 바로 저 김은석 망자입니다.”

염라대왕이 은석의 옆에 앉아 있는 김은석의 영혼을 가리켰다.

망자 김은석은 아무 말 없이 차만 마시고 있었다.

은석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저는 여기 왜 있는 거죠? 그것도 저 사람하고 같은 얼굴을 하고.”

김은석이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은석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승에서 원하는 능력은 있었으나, 제가 몸도 약하고 명도 짧았습니다. 타고난 명줄이 스물다섯 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염라대왕님께서 선택하신 것이, 저와 기의 파장이 맞는 영혼을 제 몸 안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빙의……라는 말인가요?”

“빙의라는 말이 딱 맞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이해하기 쉬우실 겁니다.”

염라대왕이 김은석의 말을 이었다.

“김은석의 죽음이 목전이었지만 그와 맞는 영혼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생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이고 파장도 맞는 그쪽이 나타난 거지요. 그것도 아주 긴 명줄을 가지고.”

은석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염라대왕과 망자 김은석 역시 묵묵히 차만 들이켰다.

“제가 죽기 전에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저에게 제안했고 저는 허락을 했고요.”

은석은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고 식은 차 한 모금을 얼른 삼켰다.

“만약에 제가 지금 말씀하시는 그 임무를 거부한다면 진짜 죽음을 맞이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저승 헌터로 활동할 경우, 다시 한번 더 살 수 있는 거고요.”

염라대왕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저승 헌터뿐만 아니라, 원래의 은석 씨가 각성자였으니 곧 다시 각성하고 헌터로 활동하실 수 있습니다.”

“네? 각성을 다시 할 수 있다고요?”

바닥만 내려다보며 질문하던 은석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헌터에게 빙의한 악귀들을 잡아내려면 헌터가 되는 게 가장 중요한 거지요.”

던전이 뿜어내는 마력은 악귀를 끌어당겼다.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지구에는 점점 더 높은 등급의 던전이 등장했고, 마력 역시 강해지고 있었다.

마력의 증가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보호막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것은 지옥의 악귀들이 쉽게 탈출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악귀들은 마력을 가지고 있는 헌터에게 주로 빙의합니다. 마력 때문에 저승차사들이 악귀를 찾기가 힘든 상황이고요. 그래서 각성자였던 은석 씨가 딱 맞는 분이라는 거지요.”

‘다시 헌터를 할 수 있다니.’

잠깐이었지만 은석은 계약을 파기할까 고민했었다.

외롭고 힘들기만 했던 이번 생을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헌터가 될 수 있다니.

‘윤혁…….’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신을 비웃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조금 전과 달리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은석에게 염라대왕이 물었다.

“그럼 계약은 그대로 진행하시는 거지요?”

은석이 주저 없이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하겠습니다.”

잠자코 지켜보던 망자 김은석이 고맙다며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결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게 아닌가 싶어 죄송스럽네요.”

“짐은 무슨…….”

결코 짐이 아니다.

다시 살 기회, 윤혁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그런데요…… 저는 귀신을 보고, 그들에게 생기를 전달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네?”

난데없는 김은석의 커밍아웃.

‘아니, 잠깐.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당황한 은석이 망자 김은석과 염라대왕을 번갈아 쳐다봤다.

“귀신을 본다고요?”

경악하는 그의 반응이 재미있는 듯 망자 김은석이 미소 지었다.

“귀신에게 생기를 전달하기도 하고요.”

“생기라는 건 또 뭐죠?”

망자 김은석은 태어났을 때부터 귀신을 볼 수 있는 눈, 귀안을 가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귀신과 산 사람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김은석만이 줄 수 있는 생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는 늘 귀신이 들끓었다.

“생기, 다른 말로 생력이라고도 합니다. 죽은 상태로 이승에 오래 머물면 점점 기억을 잃어 갑니다. 동시에 사람의 형태도 흐려지지요. 그럴 때 생기를 흡수하게 되면 다시 인간이 된 것처럼 기억이 돌아오고, 생기의 양에 따라 죽었지만 물건을 만질 수도 있게 됩니다.”

“엄청난 능력이네요.”

은석의 감탄에 김은석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귀신들이 계속 생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제 생명력의 일부를 주는 것이라 저 역시 힘들었고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네, 아무도 볼 수 없는 것을 혼자 본다는 것은 힘든 일이죠. 그런 상황을 겪게 해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사람이 무섭지, 귀신 따위 겁나지 않습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은석이 염려 말라는 듯 큰소리쳤다.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 마음 편히 다음 생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망자 김은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석도 따라 일어나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다시 살아 볼 기회를 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김은석이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움찔거리다 말았다.

“더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저는 죽었지만 제 가족들은 여전히 제가 살아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 대신 가족들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은석은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했던 가족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하지만 다음 생을 준비할 그에게 그런 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물론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은석의 대답에 김은석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내 그의 몸이 흐려지더니 은석의 앞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김은석과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귀안과 생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연이어 나타나는 메시지들.

[저승 헌터 김은석 님의 성장 프로그램이 시작됩니다]

커다란 상태창이 나타났다.

[상태창]

이름: 김은석

프로젝트명: 저승 헌터

[클래스: 미각성

[히든클래스: 네크로맨서(미개방)

[특성]

귀안(승계)

생력(승계)

귀력: 0/0

[스킬]

정보탐색: Lv1

자신의 현재 상태를 알려 주는 메시지에 은석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헌터였을 때도 이런 건 없었는데…….’

몇 가지 안 되는 스킬은 모두 김은석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그의 새로운 클래스, 네크로맨서.

‘네크로맨서? 내가? 그런데 귀력이라는 건 또 뭐지?’

“흠흠.”

허공에 뜬 상태창을 바라보던 은석이 염라대왕의 헛기침에 정신을 퍼뜩 차렸다.

“아, 죄송합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자, 이제 모든 계약이 완료되었으니 최성운 차사를 정식으로 소개해 드려야겠군요.”

염라대왕이 그들 뒤에 서 있던 최성운 차사를 불렀다.

“저승 최고의 무사, 차사 최성운입니다.”

최성운이 은석을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니, 노려봤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반갑다. 나는 최성운이다. 앞으로 너를 가르칠 것이니 각오하도록.”

“네?”

“너는 헌터였다고 하나, 김은석의 몸은 던전에서 몬스터와 싸울 수 없는 상태이다.”

‘아…….’

저승으로 오기 전, 병실에서 힘겹게 걸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니 훈련만이 살길이다. 앞으로 악귀를 잡으려면 강인한 육체는 필수다.”

최성운의 눈이 이글거렸다.

당장이라도 은석의 멱살을 잡고 훈련장으로 끌고 갈 것만 같았다.

그런 최 차사를 염라대왕이 막아섰다.

“저승에서의 시간은 찰나와 같으니 앞으로 훈련할 시간은 많습니다. 이승에서의 김은석으로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지요. 이만 올라가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문밖으로 나가면 올라가는 계단이 있을 겁니다. 병실로 바로 이어지니 돌아가셔서 푹 쉬십시오.”

은석은 염라대왕과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 차사에게 인사를 한 후, 집무실을 나왔다.

염라대왕의 말처럼 문 앞에는 긴 계단이 있었다.

“길다, 길어. 계단 말고 에스컬레이터는 없는 건가.”

은석이 이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

0